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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년제 대학 158곳 가운데 24곳(국립 2곳, 사립 22곳)이 2007~2009년 국·공립과 사립 중·고교 교사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158곳은 졸업생에게 교사자격증을 수여하는 사범대와 일반대 교직과정(일반학과 학생이 교직과목 이수), 교육대학원 등을 설치한 대학이다. 전국 대학에서 매년 3만여 명이 교사자격증을 따고 졸업하지만 교직 진출은 쉽지 않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말 치러진 국·공립교사 임용고시(2525명 선발)에서는 교사 자격증을 가진 5만8706명이 지원했다. 경쟁률이 23 대 1을 넘었다. 경쟁률만 보면 올해 사법시험 1차(8.7 대 1)보다 훨씬 높다.
이는 중앙일보가 한나라당 박보환 의원과 함께 최근 3년간 전국 중·고교 5331곳(국·공립, 사립)에 교사로 임용된 1만4531명의 출신 대학을 최초로 분석한 결과다.
대학별 교사 배출 비율(교사자격증을 주는 전체 학과의 입학정원 대비 임용자 수)은 서울대·공주대·경북대·한국교원대 네 곳만 30%를 넘었다. 같은 기준으로 사립대 중에선 고려대가 27%로 가장 높았고, 이화여대는 19.7%였다.
반면 지방대 24곳은 매년 1000여 명에게 교사자격증을 줬지만 교사(사립학교 포함)가 된 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교직에 진출하지 못한 졸업생 중 상당수는 시험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임용고시 대비 학원들은 그 인원을 1만여 명으로 추산했다.
박 의원은 “교원 수급의 불균형과 대학들의 학사 운영에 문제가 드러났다”며 “교사 양성 시스템의 수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홍준·이원진·박유미·김민상 기자, 유지연 중앙일보교육개발연구소 연구원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최근 전국 중·고교를 대상으로 교사 임용자 현황을 조사했다. 각 학교가 2007~2009년 임용한 교사의 출신 대학과 전공 등을 취합한 것이다. 3년 동안 임용된 1만4531명의 교사 신상자료가 모였다. 본지 취재팀은 한나라당 박보환 의원과 이 자료를 공동 분석했다. 이 가운데 교사 임용고시에 합격한 국·공립 중·고교 교사들은 1만990명이었다. 이들을 출신 대학별로 사범대, 일반대 교직과정, 일반대 교육학과, 교육대학원으로 분류했다. 그런 다음 양성기관별 학과와 전공을 파악했다. 교사 자격증을 주는 기관별 입학정원 등과 비교해 얼마나 많은 학생이 교사 양성기관에 들어와 그 가운데 어느 정도가 국·공립과 사립 학교 교사로 진출하는지 비교했다.
교사 임용자가 2007~2009년인 만큼 입학정원은 2006학년도 정원 기준(교육과학기술부 자료)을 활용했다. 교육대학원은 5학기 과정인 것을 감안해 2007학년도 정원 기준과 비교했다. 재학 중 군입대를 하거나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이 반영돼 있지 않아 졸업생 대비 교사 임용자 수 비율과는 차이가 날 수 있다. 현재 졸업생 대비 교사 임용자 수에 관한 자료는 공개돼 있지 않다. 또한 본·분교로 나뉘어 각각 교사 자격증을 주는 대학들에 대해서는 통합해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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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량진의 교사 임용고시 학원가에는 1만여 명이 넘는 준비생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강생들이 너무 몰리자 학원 측은 모니터 여러 대를 설치해 강의를 진행했다. [중앙포토] | |
교사 자격증 소지자가 갈수록 많아지는 원인은 대학과 정부가 모두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2005년 말 전국 45개 대학에 교직과정 정원(316명)을 새로 인정해 줬다. 그 결과 전국 19개 대학은 동일한 일본어과 교직과정(77명)을 설치했다. 이때 교직과정 설치를 인정받은 19개 대학 77명은 2009년부터 사회로 나왔다. 2005년 이전부터 일본어 교직과정을 인정받은 대학 졸업생과 함께 교사 임용고시를 본 것이다. 일본어 교사는 전국적으로 많아야 한 해 5명 정도를 뽑다 보니 2010학년도 시험에서 일본어 경쟁률은 61.5대 1을 기록했다.
김남순(전국사범대학장협의회장) 조선대 사범대학장은 “교사가 되려는 사람은 많은데 매년 임용되는 숫자는 적어 수급 불일치가 심각한데 교육 당국이 교직 학과 증설과 사범대 신설을 허용한 게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강남대·충남대 등 5개 대학의 사범대 신설을 허용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범대 교수는 “교직 관련 학과가 새로 생기거나 사범대 인가가 이뤄지면 교과부가 대학이나 정치권 로비를 받아 허용해준 게 아니냐는 소문이 떠돈다”고 말했다.
이기종 국민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학이 사범대를 만들고 교직과정을 신설하려는 이유는 재정난도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학생 모집이 잘된다면 졸업생이 교사가 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설치된 학과를 유지하거나 늘려 나가려는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교사 재교육 기관인 교육대학원이 교원자격증을 발급하는 것도 2005년 제한하려 했다. 하지만 논의만 무성하다 없던 일이 됐다.
◆특별취재팀=강홍준·이원진·박유미·김민상 기자, 유지연 중앙일보교육개발연구소 연구원
사법시험만큼 힘든 교사 임용] 서울 노량진 학원가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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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25·여)씨는 지난해 5월까지 고향인 강원도 춘천의 한 중학교 임시교사(기간제)였다. 하지만 학교를 그만둔 뒤 서울 노량진의 교사 임용고시 준비 전문학원에 다니고 있다. 교사 임용고시를 통과해 정교사가 되기 위해서다. 전공인 영어는 물론 파고들어야 할 내용이 많아 학원 자습실에서 하루 12시간씩 공부한다. 고씨는 “정교사가 되기 힘들어 임시교사로 일해봤지만 미래가 불투명해 시험을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고씨가 나온 서울 S대 영어교육과는 한 학년 정원이 45명이다. 고씨처럼 임용고시에 매달려 재수·삼수를 해도 한 해 겨우 5~6명만이 합격한다. 고씨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는 “식비에다 학원 수강료 등을 따지면 고시 준비하는 데 한 해 2000만원이 든다”며 “올해 11월에 치르는 시험에서 승부를 보겠다”고 말했다.
채모(28·남)씨는 2008년 가을 지방 K대를 졸업하고 2년째 노량진 학원가를 다니고 있다. 그의 고시 동료 중엔 37세 된 이도 있다. 기간제를 하다 시험에 도전하는 것이다. 채씨는 “방학 중엔 대학 재학생까지 원정 와 강의를 듣는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오후 노량진 W임용고시학원에선 교실마다 200~300명이 전공 강의를 들었다. 1차 필기시험 과목인 교육학 수업이 있는 날에는 수강생 수가 배 이상 늘어난다. 1000명이 듣는 강의도 있다.
노량진 학원가에서 유명 강사로 알려진 조화섭(52)씨는 “임용고시 준비생이 1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임용고시 학원마다 학원을 찾아와 강의를 듣는 수강생만 2000명 정도 된다.
임용고시 준비생들은 공통적으로 “대학 때 배운 지식으로는 도저히 임용고시를 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등교사 경쟁률이 2010학년도 23.2대1을 기록하는 등 해마다 높아지는 것도 노량진 학원가로 몰리는 이유다.
1차 시험 과목인 교육학은 시중에 나와 있는 교재만도 120종이 넘는다. 문제는 교수들이 펴낸 교재에서 나온다. 그러다 보니 학원가에서는 요약서가 불티나게 팔린다. 상·중·하로 각각 1000쪽이 넘는 분량이다.
일본어 교사가 꿈인 채씨는 “1차 시험이 1~2점 차이로 합격·불합격이 갈리기 때문에 교육학 책을 달달 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출제된 중등임용고시 교육학 3번 문제는 교육학 이론 5가지를 나열해 놓고 이론에 영향을 준 철학 사조를 찾으라는 문제였다.
조화섭 강사는 “임용고시에 나오는 문제 하나를 풀려면 교육학 이론 10가지를 알아야 할 판”이라며 “대학 교수들에게 교육학 40개 문제를 풀라고 하면 10개도 못 풀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예 지방대들은 노량진 학원가 강사들을 불러 특강을 하기도 한다. 대학 교수들이 못 하는 것을 학원이 대신하게 하는 것이다. 임용고시 재수생 윤모(26·여)씨는 “대학들이 하는 일이란 교직 관련 학과를 만들어 학생을 모집하고, 자격증을 주는 게 고작”이라며 “교수들은 임용고시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 학원에 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분석 결과 전국 42개 사범대의 354개 학과를 졸업한 8710명이 2007~2009년 전국 중·고교(국공립과 사립) 교사가 됐다. 단일 학과로는 공주대 특수교육과 출신이 1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영어교사는 고려대 영어교육과 출신이 124명으로 1위였다. 3년간 평균 국공립 중·고교 교사 임용고시 경쟁률은 16대 1이었다. 임용고시 응시생은 늘고 선발 인원은 적어 경쟁률은 계속 치솟을 전망이다.
교사 생활 6년째인 서울의 모 공립고 박모(31) 교사도 7년 전 10대 1의 경쟁을 뚫었다. 그는 “처음 교단에 섰을 때는 열심히,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초심과 현실은 차이가 심해 힘들다”고 말했다. 가르치는 일은 업무의 20% 정도이고, 학교 행사나 잡무에 힘을 빼기 일쑤여서 교직에 회의가 든다는 것이다.
7년째 제자를 키우고 있는 경기도 S고 김모(31) 영어교사는 “(나 자신이) 문제집 풀이 교사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교사가 됐을 때는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회화 중심의 수업을 하고 싶었는데 대입 장벽에 막혀 생각대로 가르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처럼 피 말리는 ‘임용 전쟁’에서 살아남은 교사들 상당수는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직 진입 문턱은 높지만 일단 교사가 된 다음에는 초심과 열정이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지난달 한국교총이 주최한 전국현장교육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인천 가좌고 박종립(37) 교사는 “교사가 학생들보다 더 공부해야 한다는 게 소신”이라고 했다. 그는 3년째 동료 교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수업교재를 직접 제작했다.
같은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은 안산 대월초등교 김계형(38·여) 교사도 학생들의 국어 어휘력을 길러주는 놀이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올 2월 교육과학기술부 주최 영어수업발표대회에서 1등급을 받은 경북 우보중 백선미(38·여) 교사는 “학원강사들이 수업 외의 활동을 통해 아이들을 관리하는 것처럼 교사들도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쟁력 유지하려면=임용고시를 통과한 교사들의 실력은 최고 수준이다. 시험에서 떨어져 일자리를 못 구한 사범대 출신 상당수는 학원강사로 취직하기도 한다. 문제는 일단 교단에 서면 62세까지 정년을 보장받는 ‘한 번 교사는 영원한 교사’ 시스템이 유지돼 자극이 없다는 데 있다. 잡무가 많은 근무 환경도 문제지만 평가를 받지 않아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공립고 교장은 “5년, 10년 교사를 하다 보면 소신이 사그라지고,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하는 학원강사보다 가르치는 실력이 뒤처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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