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문학 특집>-110호
내 인생, 마지막 책 한 권
-생각의 탄생-
오덕렬
ohdl@naver.com
‘내 인생 마지막 책 한 권’을 대뜸 말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단서를 달아야 할 것 같다, 내 ‘문학文學 인생에서라고. 그렇다면 내가 옆에 두고 상想이 메말랐을 때 읽곤 하는 책이 있다. 생각의 탄생(로버트투르번스타인·미셀투르번스타인지음/ 박종성 옮김, 에코르의 서재, 2009.)이다.
나는 군대 생활을 김신조 덕분에 강원도에서 만3년을 채웠다. 제대 후 문교부 고시검정에 합격하여 여수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그때서야 문학의 문을 혼자 두드렸다. 그 무렵 나온 책이 수필문학입문(윤오영, 관동출판사, 1975)이다. 그래서 내가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 수필과 연이 닿았던 것이다. 오직 3다三多만 믿고, 읽고, 읽고 또 읽었다. 늦게야 혼자 문청시대를 보낸 셈이다. 독서로 친다면 김일손은 한퇴지의 글을 천 번, 나주 구진포 출신 백호 임제는 중용을 800번, 간이 최립崔岦은 한서漢書 중에서 ‘항적전項籍傳’만 만 독…. 옛 선현들의 독서에 비할 바 아니다. 그러나 <수필>에 대한 눈과 귀가 조금 트이기 시작하면서, 10년이 채 못 되어 제7회 방송문학상에 수필 「어항 앞에서」가 당선되었다.
이리 보면 수필문학입문을 내세울 것 같지만 문학의 넓은 바다를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생각’은 자기 운명을 결정한다. 운명에 대해서 회고할 때, 프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릴 때가 있다. 고등학교 2학년에서 문과로 갈까, 이과를 선택할까? 선을 보고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인생의 고빗길에서 내 생각으로 판단을 내려서 오늘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 그때그때 최선의 길을 선택하였던 생각들이 내 운명일 것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그 바다 같은 넓은 개념의 실체를 찾아보려 했다. 우선 국어사전의 뜻풀이부터 살폈다. 문학의 핵심 요소가 되는 생각, 느낌, 상상에 대해서 알아보고 위해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국어사전 11종류를 가지고 말이다. 사전마다의 ‘문학文學’의 뜻풀이가 지엽적으로 약간씩 달랐다. 이제 그 차이점을 살펴보자.
○ ‘문학文學’의 풀이와‘ ’상상의 힘을 빌려’의 유무 일람표
순 | 사전 명 | 풀 이 | 상상 유무 |
① | ≪네이버국어사전≫(인터넷사전) |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 무 |
② | ≪민중 포켓국어사전≫(이희승 감수, 중서관, 1968) | 정서·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서 언어·문자로 써 표현한 예술 및 그 작품. | 유 |
③ | ≪새우리말큰사전≫ (신기철·신용철,삼성출판사, 1975) | (Literature) 정서·사상을 상상想像의 힘을 빌려, 언어 또는 문자에 의하여 표현한 예술 작품. 곧 시가詩歌·소설·이야기·희곡·평론·수필 따위. | 유 |
④ | ≪다목적 종합 국어사전≫(김민수·홍웅선, 어문각, 1980) | 정서情緖·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어서 말과 글로써 나타낸 예술 작품. 시·소설·희곡·수필 따위. | 유 |
⑤ | ≪동아 국어 대사전≫(양주동 책임감수, 쌍룡문화사, 1983. | 언어와 문자로써 표현한 인간의 사상·감정·상상 등의 미적美的 작품의 모두와 또 이들 작품에 대한 지식과 그 창작 과정·효과·영향·가치 등에 관한 연구와 비평의 총칭. 시·소설·희곡·평론 따위. | 유 |
⑥ | ≪콘사이스 국어사전≫(이숭녕 감수, 동아출판사, 1985) | 언어와 문자로써 표현한 인간의 사상·감정·상상등의 미적美的 작품의 모두. 곧,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따위. | 유 |
⑦ | ≪동아새국어사전≫(이기문 감수, 동아출판사, 1992) | (좁은 뜻으로는) 정서와 사상을 상상의 힘을 빌려 문자로 나타내는 예술 및 그 작품.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따위 | 유 |
⑧ |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연구원, 두산동아, 2000) |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 무 |
⑨ | ≪ᄒᆞᆫ+ 국어사전≫(남영신 엮음, 성안당. 2010) | 생각이나 감정을 상상의 힘을 빌려 글자로 나타낸 예술과 그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과 이들에 관한 평론 같은 것을 포함한다. | 유 |
⑩ | ≪보리국어사전≫(윤구명 감수, 보리출판사, 개정판 2014) |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나타내는 예술. 시, 소설, 수필, 희곡 평론들이 있다. | 무 |
⑪ | ≪우리말샘≫(국립국어원, 2016) |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 또는 그런 작품.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따위가 있다. | 무 |
이상에서 11권의 국어사전에서 ‘문학’의 뜻풀이를 살폈다. 여기서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의 풀이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의 자리에 다른 사전들은 어떤 단어를 썼는지 조사한 결과는 아래와 같다.
① ‘사상’이나 감정을’(우리말샘) 등 5권: ⑪①⑤⑥⑧
② ‘생각이나 감정을’(ᄒᆞᆫ+ 국어사전 성안당) 1권: ⑨
③ ‘생각이나 느낌을’(보리국어사전 보리출판사)1권: ⑩
④ ‘사상과 정서를(동아 새 국어사전 등 4권: ⑦②③④
이상을 바탕으로 비슷한 것끼리 묶어보자. 즉 ‘사상’의 자리에 ‘생각’이 앉아 있고, ‘감정’의 자리에는 ‘느낌’이나 ‘정서’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 사상 ≒ 생각
∴ 감정 ≒ 느낌 ≒ 정서
다시 말해보면 ‘생각 ≒ 사상’이고, ‘느낌 ≒ 감정 ≒정서’임을 알 수 있다. 문학을 한자어 없이 순수 국어로 가장 쉽게 설명한 국어사전은 보리국어사전이다. 이 사전은 남녘과 북녘의 초·중등 학생용으로 편찬된 사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언어로 표현한 예술’ 앞에 ‘상상의 힘을 빌려’가 다 들어 있는데 우리말샘과 보리국어사전에만 빠져 있다. 보리국어사전은 초·중등 학생용이라 그런다고 치고, 우리말샘은 위키피디아형 사전이니 ‘의견 제시’ 난을 활용하여 삽입시켜 줄 것을 건의하면 될 일이다.
국어사전의 ‘문학’의 뜻풀이에서 유추해 보면 모든 장르의 문학은 소재(제재)에서의 ‘느낌’과 ‘생각’을 ‘상상’의 힘을 빌려 써야 할 것이다. 위에서 느낌은 ‘감정’, ‘정서’요, 생각은 ‘사상’이라 했다. 그러면 생각은 어떻게 태어날까? 생각의 탄생에서 찾아보려 한다. 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은 실재와 환상을 결합하기 위해 ‘생각의 ’도구’를 이용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생산적인 사고는 내적 상상과 외적 경험이 일치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역사 속에서 창조적인 사람들은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인식, 패턴 형성, 유추,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차원적 사고, 모형만들기, 놀이, 변형, 통합 등 13가지를 말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우선 앞의 3항목, 즉 관찰, 형상화, 추상화만을 논의 대상으로 한다.
1. 생각도구 1. <관찰>
생각의 도구라 했다. 우선 ‘생각’에 대해서 알아보자. 위에서 ‘생각 ≒ 사상’이라 했다. 문학은 소재(제재)에서 받은 ‘생각’과 ‘느낌’을 ‘상상’의 힘을 빌려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라 했다. 그렇다면 언어는 생각의 수단이다. 즉, 언어는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인 것이다. 자, 여기서 ‘언어’와 ‘생각’은 누가 먼저 태어났을까? 이규호 박사에 의하면 동시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느낌 ≒ 감정 ≒ 정서’라 했다. 정서는 자극이 주는 감정이다. 정서는 밖의 자극으로부터 일어난다는 말이다. 정서는 어떤 사물 또는 경우에 부딪쳐 일어나는 온갖 감정·상념 또는 그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분·분위기 따위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본능을 기초해 일어나는 喜·怒·愛·樂·愛·惡·欲·恐怖·不安 등의 감정 및 그 때의 정신 상태이다.(장백일의 정서론)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신체적으로 결함이 많다. 그러나 생각할 줄 앎으로써 그 결함을 극복한다. 그래서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pense'es에서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한다. ‘생각의 힘’처럼 큰 것이 또 있을까?
‘생각도구 1. <관찰>에서 수동적인 ‘보기[見]’와 적극적인 ‘관찰[察]’을 구분한 사람들의 살펴보자.
“내 작업은 눈에 익숙한 것들을 내가 어떻게 보는지를 ‘보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화가, 재스퍼 존슨
“당신이 보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라. 당신이 가장 생각하지 않는 것들에 대
해 가장 많이 생각하라.”-화가 마르생 뒤샹
“나의 세계가 남들과 다른 것은 소리, 냄새, 형상의 요철, 질감으로 느껴지는 것이
전부였다.”-생물학자 제라트 버메이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관찰은 생각의 한 형태이고, 생각은 관찰의 한 형태이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통찰洞察’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현대 화가들의 많은 놀라운 작품들은 ‘수동적인 보기’가 아닌 ‘적극적인 관찰’의 산물이다. 작금의 화가들은 그림을 그리는 재능과 관찰력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실제로 많은 화가들은 “손이 그릴 수 없는 것은 눈이 볼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을 믿고 있다.
“5층에서 떨어지는 사람이 바닥에 완전히 닿기 전에 그를 그려내지 못하면 걸작을
남길 수 없다.”-외진 들라쿠루아
글쓰기에도 예리한 관찰의 기술이 요구된다. 소설가 서머싯 몸은 “사람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은 작가의 필수적인 자세다.”라고 했는데 그 말은 사람의 외관뿐만 아니라 대화, 행동까지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얘기라도 몇 시간 동안 들어줄 수 있어야 무심결에 새어나오는 중요한 단서를 포착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텔레비전처럼 세속의 물건에도 지각할 것들은 너무나 많다. 그 속에서 어떤 ‘잠재된 것들’을 발견하려면 매일매일 새로운 관찰을 하겠다는 참을성과 끈기를 길러야 한다. 우리의 교육목표 중 하나가 평생 배우는 사람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면, 관찰력을 연마하는 것보다 더 좋은 훈련이 뭐가 있겠는가?
2. 생각도구 2. <형상화>
형상화는 창작의 다른 말이다. <이것저것 놀이>에서 <이것[주제]>을 {저것[제재]}으로 그려내는 것을 말한다. 왜 작가는 형상화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조물주·조화옹이 세상만물―문학 용어로는 존재의 총계라 함―을 다 실제로 있게―being·exist, 만져 볼 수 있고, 볼 수 있고, 냄새 맡을 수 있게 창조해 버렸기 때문에 제2창조자인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조물주·조화옹이 창조한 것을 가져다가 나름대로 가·감·승·제하여 형상화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형상화는 사물의 형상을 상상 속에서 그리는 일이 된다.
“문학은 구체적으로 형상形象이다. 작가가 인식을 하고, 사고 한다는 것은 과학자나 철학자에게서와 같이 개념槪念 그것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고, 형상으로써 한다는 사실이다.”(백철: 문학개론, 신구문화사, 61쪽)
“형상화란 모양을 지니지 못한 것이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남을 가리킨다. 일정한 테두리를 이루고 형태를 가지지 못한다면 그에 대해서 예술 작품의 이름이 허용되지 않는다.”(김용직: 현대시 원론, 학연사, 46쪽)
그러면 사물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그려낸 사람들을 찾아보자.
“나는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의 모양을 당장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그리고 상상 속에서 구조를 바꾸거나 작동을 시켜본다.”-공학자 니콜라 테슬라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시의 생명이자 정점이다.”-시인 존 드라이든
“침묵 속에서 음악을 들을 때 나는 마음으로 뿐만 아니라 내 몸으로도 그것을 느꼈다.”-무용가 마사 그레이엄
형상화에 대한 이렇게 손에 쥐어준 설명을 처음 만났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한다.
“형상화라는 것은 현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에서부터 특이한 추상능력, 감각적인 연상능력에 이르기까지 망라된다. 형상화는 시각과 청각은 물론 후각과 미각, 몸의 감각까지 동원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내면의 눈, 내면의 귀, 내면의 코, 내면의 촉감과 몸감각을 사용할 구실과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형상화할 때 마음에 떠오른 모든 이미지들을 다른 전달 수단으로 변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수단들은 말, 음악, 동작, 모형, 회화, 도형, 영화, 조각, 수학, 논문 등 매우 다양하다.”-(생각의 탄생, 83쪽)
3. 생각도구 3. <추상화>
추상화抽象化는 중대하고 놀라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추상화를 통해 새롭고 다의적인 통찰과 의미를 발견한 사람들을 보자.
“당신들은 보고 있어도 보고 있지 않다. 그저 보지만 말고 생각하라.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어 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으라! 눈이 아니고 마음으로 보라 !”-화가 파블로 피카소
“문학이 하는 일은 개체가 아닌 종種을 들여다보는 것이며, 전체를 포괄하는 특성과 주된 현상에 주목하는 것이다.”-시인 사무엘 존슨
우리는 주제가 뚜렷하지 못한 시시콜콜한 수필을 서너 쪽이나 써서 발표한 글을 흔히 본다. 답답하다. 시대성을 감안하지 않고 써댄 글이다. 독자들은 바쁘다. 문학의 안목이 높아졌다. 알맹이 없는 그 긴 글을 읽어 줄 독자는 없다. 윤오영 선생의 수필문학입문도 읽지 않고 수필을 쓰고 있는가 싶다. 발표하는 글은 보통의 문장에 전달하려는 말이 한 가지는 꼭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수필의 길이는 얼마면 좋을까? 10여 년 전만 해고 200자 원고지 17장 내외를 요구했다. 그러다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 13장→ 10장→ 7장 내외로. 더 짧아져도 좋다. 피천득의 「오월」은 넉 장이 채 못 된다.
시는 서정시에서 짧은 이야기시로, 소설도 신경숙이 선보인 <짦은 소설>로, 수필도 <창작수필>로 짧게 변해야 되지 않을까? “과학자, 화가, 시인들은 모두 복잡한 체계에서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변수를 제거함으로써 핵심적 의미를 발견하느라 애쓴다. 현실이란 모든 추상의 종합이며, 이 가능성을 알아냄으로써 우리는 현실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추상화란 현실에서 출발하되,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가면서 사물의 놀라운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할 일은 추상화 자체의 본질을 찾아내는 것이다.”-(생각의 탄생, 111쪽)
추상화抽象化의 보기는 우리 생활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간추린 소설, 요약된 논문도 일종의 추상이다. 읽었던 소설을 학생들에게 더 재미있게 얘기해주는 것, 보고 싶은 TV프로그램을 선택할 때 한 줄짜리 안내 기사를 보고 고르는 것 역시 추상이라 할 수 있다.
추상이란 어떤 대상의 전체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덜 띄는 한두 개의 특성만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추상화는 곧 단순화다. 사무얼 존슨은 문학에서 이루어지는 추상화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문학이 하는 일은 개체가 아닌 종種을 들여다보는 것이며 전체를 포괄하는 속성과 주된 형상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한 종을 특징짓는 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미미한 차이는 무시해야 한다.”
소설가 윌라 케이터의 말을 음미해보자. 예술작업의 보다 높은 단계는 단순화다. 그것은 실로 고급 예술 작업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없어도 되는 관습적 형식과 무의미한 세부를 골라내고 전체를 대표하는 정신만을 보존하는 일이다. 추상화의 본질은 한 가지 특징만 잡아내는 것이다. ‘추상화’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생각의 도구다. 추상화는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가며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추상화는 화가도, 작가도, 과학자도, 수학자도, 무용수도 모두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추상화가 고도화 될수록 일반화의 영역은 더 확대된다.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리처드 파이먼
“뉴진스의 ‘슈퍼샤이’, 아이브의 ‘애프터라이크’, 정국의 ‘스리디(3D)'. 공통점이 뭘까? 작년에 사랑받았던 노래들? 맞다. 그리고 모두 2분 30초 안팎의 짧은 곡이다.(2024.1.20. 한겨레신문, 이재익의 노래로 보는 세상)
이유는 쇼트포폼(짧은 영상) 전성시대의 흐름에 가요도 영향을 받은 거란다.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던 작가들이었는데…. 작가들만 시대 흐름을 나 몰라라 할 것인가? 모든 장르가 형식적으로 우선 짧아져야 하겠다. 대신 그 속에 시를 심어야 한다. 산문이 창작적 변화를 거듭하면 200자 원고지 5장 이내가 되어 <산문의 시>가 된다. <창작수필>과 <산문의 시>는 형식이 약간 다를 뿐이지 내용은 같다. 나는 김기림의 「길」을 계간 ≪산문의 시≫ 48호(2022)에 평설한 바 있다. 김기림은 9인회 동인이었고 주지주의 문학을 소개하는 데도 앞장섰다. 이로써 현대시의 발판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길」은 그의 수필집 바다와 육체(평범사, 1948.12.)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길」을 저자는 <수필>로 발표했지만 많은 독자들은 <시>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길」은 <수필>인가, <시>인가? 나의 생각은 이와 같은 작품을 <수필시>로 본다. 피천득의 「수필」도 <수필시>다. 노천명의 「설야 산책」도 마찬가지다. 시적 세계관(시정신)의 본질은 자아와 세계의 동일성에 있으므로 비유적 언어야 말로 가장 시적인 시의 언어이며 대표적 장치가 된다(김준오). <수필시>라는 장르가 있느냐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신생한 장르라고 이해하면 된다. 오덕렬의 첫 시집 여름밤 별 이야기(풍백미디어, 2022)도 <수필 시>들이다. <수필소설>이란 장르도 낯설 것이다. 나는 피천득의 「인연」을 <수필소설>로 평설하기도 했다. 문학 장르도 사람의 일생처럼 신생, 성장, 사멸하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문학은 크게 보면 어느 장르나 모두 사람 살아가는 얘기다. 작품은 주로 작자의 생활경험을 바탕으로 상상을 기록하게 된다. 우리나라 수필가들은 수필에서는 허구가 개입하면 큰일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수필문학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문학이라는 말 속에는 이미 허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수필가들은 상상은 허용하되 허구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 글 서두의 사전 풀이의 문학을 보면 ‘상상의 힘을 빌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허구’를 허용한다는 전제다. 상상과 허구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인 것을 왜 모를까? 머릿속에 있을 때는 상상이고, 그 상상을 표현해 놓으면 그것은 허구인 것이다. 찰스 램은 엘리아 수필집을 내어 에세이의 완성자로 세계인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그 수필집 속의 「꿈속의 아이들」이 창작에세이의 대표 격이다. 「꿈속의 아이들」의 얘기는 이렇다. 평생 독신으로 산 램이 총각 때의 애인과 결혼을 하고 이이도 낳아, 그 아이들과 모여 증조모를 만나고 집안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하는 중에 점점 눈에서 희미해지고, 아이들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우리는 엘리스의 아이가 아니요, 당신의 아이도 아니요. 엘리스의 아이들은 버트럼을 아버지라 부른다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오. 아무것도 안 되는 정도도 못되오. 세상에 나와서 이름이란 것을 지니려면 레테의 강가에서 기다려야만 한다오.”
―이 말에 곧장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총각 신세에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고, 거기에
서 나는 잠이 들었던 거다. 여기에 나오는 엘리스는 램의 첫 사랑의 여인이고, 버트
럼은 첫 애인의 남편이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램의 아이가 아니다. 태어나 실제로 이름을 가지려면 억만 년 동안 망각의 강에서 지루하게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꿈이다, 그 뒤는 꿈을 깨어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꿈을 깨기 전 꿈속의 일은 허구인 것이다. ‘총각 신세인 내가’는 현실인 수필로 돌아오기’인 것으로 문학적 용어로는 ‘허구적사실의 소재 형식’이라 한다.
수필에서 허구는 불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알 수 있는 수필계의 거물(?)들―은 “나는 상상과 허구의 관계를 모르요.” 하고 말하는 것과 같고, 또 나는 그 유명한 찰스 램의 「꿈속의 아이들」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말하는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평생 <창작수필> 한 편 쓰지 못하고 수필집을 내서 독자들에게 보내면 봉도 안 뜯고 휴지통에 버리는 <수필>을 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내가 힘겹게 무등도서관과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창작수필 교실>을 열고 있는 것은 오직 <창작수필>을 보급하려는 일념뿐인 것이다. 또 내가 어느 찻집에서 광주문인협회에서 운영하는 ≪문화시민 평생교육원≫에서 창작 강의를 자원봉사하것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문학을 하면서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이 혹 있다면 창작이란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장르 불문하고 말이다. 지금 생각으론 그 운영은 미지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창작의 틀 즉 ≪이것저것 놀이≫ 한 가지인 것이다.
• 소재[은유]: A = B
• 왜?[동일성]: A와 B[이질성] 속의 동일성 찾기.
• 원관념[주제]: <이것>: 두 소재 중 더 개념적인 것.
• 보조관념[제재]: {저것}: 두 소재 중 형상形象적인 것.
• 형상화[창작]: 보조관념 이야기로 원관념을 그려낸다.
창작의 기본 구조는 ‘<이것>→ {저것}’이다. <이것>을 {저것}으로 형상화―언어로 그린 그림―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마음은 호수요’에서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내 마음’이다. 그러면 ‘호수’는 무엇인가? ‘내 마음’이라는 원관념을 형상화해 주는 보조관념이다. <이것>이라는 것은 그 ‘글의 주제, 즉 원관념’이고, {저것}은 그 글의 주제를 형상화해 주는 보조관념인 것이다. 창작이 못 되는 작품들은 소재 <이것>만 다룬 작품이고, <창작> 작품은 <이것>과 {저것}으로 비유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쓸 때면 소재와 관계된 책들을 모두 모아놓고 읽는 버릇이 있다. <내 인생 마지막 책 한 권>인 생각의 탄생에 대해서 쓸 때에도 책상 위에는 ‘생각’에 대한 여러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 생각에 대한 책들
순 | 책명 | 저자 | 출판사 | 출판 연대 | 비고 |
1 | 생각의 도구 | 카토마사하루 박세훈 옮김 | 21세기 북스 | 2003 | ‘내 두뇌에 날개를 달아주는’ 책 |
2 | 생각의 지도 | 리처드 리스벳 최인철 옮김 | 김영사 | 2004 | 참고문헌만 17쪽인 책 |
3 | 생각의 즐거움 | 에드거 앨런 포 송경원 옮김 | 하늘 연못 | 2004 | 에세이집 |
4 | 위대한 생각의 힘 | 제임스 앨런 임지현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 | 오덕렬이 20번 읽은 책 |
5 | 생각이 사람을 바꾼다 | 데일 카네기 이상각 엮음 | 들녘미디어 | 2006 | 인간이 지닌 최고의 힘은 마음의 힘이다 |
6 | 생각 | 이어령 | 생각의 나무 | 2009 | 이어령 창조학교 |
7 | 생각의 탄생 | 로버트투르번스타인·미셀투르번스타인 박종성 옮김 | 에코르의 서재 | 2009 | <내 인생 마지막 책 한 권> |
나는 이 글, 「내 인생, 마지막 책 한 권」을 쓰는 동안 창작의 기본 틀 <이것저것 놀이>를 늘 생각했다. 이 글도 ‘창작’이 되게 하려는 뜻에서다. 이 글에서는 소재를 은유로 본 것은 ‘내 인생 마지막 책 한 권’은 생각의 탄생이라 하겠다. 왜 그렇게 잡았을까? 이질적인 두 소재 ‘내 인생, 마지막 책 한 권’이라는 형상이 없는 것과 형상이 있는 책, 생각의 탄생에서 동일성을 발견해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형상화는 보조관념[제재]인 생각의 탄생이란 책 이야기로 ’내 인생 마지막 책 한 권‘을 그려내는 일이었다.
첫댓글 감동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는 윌리암 제임스의 말이 떠오릅니다. 제대 후 문교부 고시검정에 합격하여 여수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게 되었고, 그때부터 문학의 문을 혼자 두드렸다는 샘형, 그 무렵 나온 윤오영의 '수필문학입문'과 인연이 닿아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 수필에 주목하게 되었으며 이후 오직 3다(三多)만 믿고, 읽고, 읽고 또 읽었다는 샘형. 늦게야 혼자 문청시대를 보낸 후, 10년이 채 못 되어 제7회 방송문학상에 수필 「어항 앞에서」가 당선되었다는 샘형, 그런 도전과 응전의 인생역정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도전이 없거나 변화가 없는 인생이나 조직은 결국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퇴출이라는 수순을 밟아야하는 냉엄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지금 같은 무한경쟁 사회에서는 변화와 혁신을 통해 개개인의 가치를 높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생각의 습관을 바꾸는 일이야말로 습관의 덫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하다” 는 가르침을 샘형의 삶에서 가슴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읽기도 지루할 텐 데 잘 읽어냈습니다 그려. 이제 봄이 완연합니다. .복수초, 산수유 노랗게 봄을 알리고, 매화가 빨갛고,하얗게 산비탈을 피고, 하얀 목련이 귀태를 부리며 벌고, 벚꽃이 축제에 오라 벙글고---. 봄입니다. 강변이라도 나가바야 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샘형! 수고하셨습니다.교과서에도 찾기 어려운 보감같은글
t세번이나 정독을 했어도 아둔한 탓으로 처음으로 되돌아가, 아예 따로 저장을 해서 보고 공부하고자 합니다.
샘형!! 거듭 '고맙습니다' 인사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