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 | 시민사회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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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세대 (2014년-) | 자치 분권, 협치 체계 마련. 사회정책 추진 |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사회구상 (마을민주주의) 마을자치와 협치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정책 모색(마을정부) | ||
제 3세대 (2000년대-) | 사회적 자본, 사회적 결속, 사회적 통합 증진 사회적기업육성법(2007) 평생교육법제정(1999년) ‘평생학습마을 / 도시만들기’ (교육인적자원부) | 시장논리를 넘어 ‘협동’, ‘대안’에 대한 운동 풀뿌리자치운동에 대한 새로운 모색 돌봄과 교육공동체, 지역화폐운동(LETS), 생협, 사회적일자리 창출과 주민조직 | ||
제 2세대 (1980- 1990년대) | 경제성장과 발전을 위한 수단적 가치로서의 사회교육 직업교육과 평생고용가능성 증진 강조(기술변 화에 따른 특정 기술 교육) | 공간으로서의 지역운동을 위한 활동가중심의 지역주민조직 전문화, 다양화, 세분화 생산공동체운동, 환경운동, 풀뿌리선거운동, 여성운동, 공부방 등 | ||
제1세대 (1960- 1970년대) | 자아실현, 사회적응 강조 인문교양 중심의 교육 | 사회운동의 매개로서의 지역주민의식화교육, 사회운동의 매개로서 지역주민교육이 존재 빈민운동, 농촌운동, 노동운동 등 |
04민주시민교육,그유예된 미래에 관하여
강사 : 조보정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지난 12월 22일 전국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7 출범식을 개최하였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한 큰 걸음’이라는 구호를 내건 이날출범식에서는 71개 시민교육단체들이 포함된 서울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 등 13개 광역단위의 지역네트워크(2개는 준비위원회 형태)가 결성되어 전국네트워크에 참여하였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뿐만 아니라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 한국YMCA전국연맹, 흥사단, 교육희망네트워크 등이 함께 이름을 올림으로써 지역 뿐만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의 연결의 의미도담을 수 있었다. 민주시교육네트워크는 이제 막 첫걸음을 걷게 되었지만, 국가나 시장이 아닌 시민사회가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글은 민주시민교육이 활성화되기 위해서 어떤 방향의 흐름들이 나타나고 있는지를 간략하게나마 그려보았다. 물론 민주시민교육의 애당초의 목표와 지향대로, 민주주의 발전에이바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민주시민교육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주시민교육의 제도화는 필수적인데 해외의 사례를 둘러봐도 참조할 만한 모델들은 이미 존재한다.8 그런데 이 민주시민교육의 제도화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시민교육이 특정한기관이나 세력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시민교육’이라는 틀을 살려서 시민들이 활발하게 교육이 제공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글은 일상적인 민주시민교육의 장으로서 주민자치교육의 가능성을 타진함으로써 해보고,여러 시민교육의 영역과 주체를 가로지를 수 있는 민주시민교육으로의 연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았다. 당장 잰 걸음으로의 진전을 기대하기보다는 한 걸음씩이라도 이뤄나가는 마부작침 우공이산(磨斧作針 愚公移山)의 덕을 기대해본다.
01 세계정치는 지금 : 정당정치의 위기와 청년 정치세력의 등장
강사 박재순
2018년 초 영국 이코노미스트(Economist)지가 60개 정도로 설정한 민주주의 지표 조사 에 의하면, 전세계에서 ‘완전한 민주주의’를 누리는 인구는 5%에 미치지 못하며 거의 1/3 이상의 인구가 권위주의 체제 아래에 있고, 조사대상 167개국 가운데 대략 89개 국가가 2017년 당시 그 전 해에 비해 더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1 독일 홀로코스트 연구자 크리 스토퍼 브라우닝(Christopher R. Browning)은 지금의 미국은 1·2차 대전 사이, 파시즘이 등장하기 직전의 독일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거의 질식 상태에 있 다고 비판하고 있다.2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독일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헌법상의 비 상대권을 발동하여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노조를 탄압하였으며, 의회 활동을 정지시켜 결 국 스스로 무덤을 파서 히틀러의 집권을 예비한 것처럼 오늘날 트럼프 주도의 미국도 대외적 으로는 고립주의와 일방주의, 우방과의 무역 분쟁 등을 일으키고 대내적으로는 노골적 탈법 과 인종주의 전파,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등 ‘비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의 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3
이미 10년 전부터 정치학자 래리 다이아몬드(Lary Diamond)는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 고했지만, 그 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는 더 심각하게 후퇴하였다. 지금 프랑스는 마크롱의 부자 감세와 유류세 인상 정책의 비판에서 시작되어 기성 정치집단 전체를 거부하 는 ‘노란 조끼’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작년 독일에서는 극우 신나치 정당이 의회에서 76석 의 의석을 확보했고, 사회민주당은 참패를 했다. 바야흐로 우익 포퓰리즘(populism)이 자 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작동을 거의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일반적인 진단이
다. 심지어 좌파 이론가인 무페(Mouffe)는 자유민주주의에는 기대할 것이 없으니 좌파 포퓰 리즘을 적극적인 대안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4 이러한 민주주의의 후퇴에는 영국의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 프랑스 사회당 등 원래는 개혁 노선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친기업, 반서민 정책을 펴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더욱 더 부추긴 것에 대한 거부감도 깔려 있다.
노동운동의 힘에 기반을 둔 중도좌파(PT) 정권이 집권을 했던 브라질에서는 사회자유당의 극우파 보우소나르((Jair Bolsonaro)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극히 노골적으로 반민주적이 고 권위주의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으며, 과감한 감세정책, 친기업 반노동 정책을 표방하는 것은 물론 아마존의 숲을 태워버리자는 정책으로 전 세계 환경주의자들을 비웃고 있다.
물론 이러한 권위주의로의 회귀라는 흐름 속에서 새로운 정치세력, 특히 청년세대의 등 장이 주목할 만하다. 2017년 말 아이슬란드에서는 41세의 반전 페미니스트이자 범죄문학 전문가인 여성 자콥스도티르(Katrín Jakobsdóttir)가 수상이 되었다. 2018년 미국의 중 간선거에서는 바텐더 경력이 있는 29세의 라틴계 여성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 가 연방 하원의원으로 입성했다. 2018년 서울에서 개최된 촛불 1주년 국 제회의에 참석했던 스페인 청년정당이자 제3당 포데모스(Podemos)의 전략분석 사무국장 은 32세 여성이었다. 아이슬란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으로 제정했고 남녀 간의 임금 격차 ‘0’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의 오카시오 코르테스는 ‘녹색 뉴딜’을 위해 부자들에게 75%의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스페인의 거대정당 독점체제를 뒤흔든 포 데모스는 시민들이 온라인을 통해 직접입법을 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최근 서구가 자랑해 온 자유민주주의, 즉 역전 불가능할 정도로 공고화되었다고 믿어 져왔던 지난 100여년 동안의 대의제 민주주의 - 언론자유, 정당정치, 사법독립, 주기적이고 공정한 선거와 정권의 교체 - 의 여러 기반이 크게 흔들리는 것은 틀림없다. 이것은 1945년 파시즘 붕괴이후에 회복했던 서구 민주주의, 즉 자본주의 경제 질서와 보통선거로 집약되는 민주주의 간의 타협체제가 위기에 봉착한 것을 의미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신자유 주의 세계화, 금융자본의 세계적 지배 아래에서 민주주의의 작동이 심각한 장애 상태에 있 음을 말해준다. 경제적 양극화, 불평등의 심화, 노동시장에서의 내부자와 내부자 간의 균열, 복지 후퇴, 난민의 유입 등, 최근 한 세대 동안 진행된 사회경제질서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침 식했다. 극도의 적대와 혐오가 대중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가짜뉴스가 난무하면서 공 론의 장은 심각하게 훼손되었으며,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들은 기성 기득권 정치에 환멸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제도정치권의 구호는 허공에 떠도는 공허한 외침으로 들리게 되었다. 정당은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의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거의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결국 초국적 금융자본과 대자본의 이해가 개별 국가의 재정, 조세, 복지 정책을 크게 좌우 하게 되면서 심각한 청년실업, 양극화 등에 대해 각국의 기성 정치권의 문제해결 능력이 크 게 저하되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후퇴의 거시구조적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5 물론 각 나라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정치체제, 책임정치의 정도, 대중참여 수준과 시민사회의 역량 등 여러 가지 조건이 민주주의의 전진 혹은 후퇴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2019년 한 해 한국 민주주의의 지속 및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 치체제 변화, 정당정치 활성화, 정부의 투명성과 책임성 보장, 관료·사법부·언론의 개혁과 정상적인 작동 등 제도적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여러 조건이 어떻게 가능할지 살펴봐야함과 동시에,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포함하여 초국가적 조건과 국내 사회경제적 조건이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시민사회의 역량 강화, 특히 새로운 정치주체의 등장, 특히 청년들이 정치 사회적 주체로 나서는 일이야 말로 이것 을 현실화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02 선거와 제도정치는 민주주의를 보장해줄까? : ‘선출 권력’과 ‘선출되지 않은 권력’
강사 최영애
사람들은 민주주의라고 하면 먼저 선거를 떠올린다. 자기와 관련된 문제에 자신이 주인으 로 참가하는데 선거보다 더 중요한 절차 혹은 제도는 없을 것이다. 즉 민주주의는 인민의 지 배, 즉 인민이 자신의 처지나 이익에 미칠 수 있는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 한다고 했을 때, 경쟁적인 정당제도, 주기적이고 공개적인 투표, 법의 지배, 국민투표, 언론 의 자유 등이 민주주의 혹은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이다. 선거는 인민의 지배와 책임정치의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통로이자 방법이다. 그러나 래리 다이아몬드도 ‘질적으로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정당들 간 양극화와 부패, 기업권력의 정치관여, 부유층 의 정치적 의사 결정 부당개입 같은 문제들을 풀어가야”한다고 말했고,6 필자도 ‘기업사회’ 로의 변화가 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지적하였다.7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통령, 수상, 정치가 등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국민 은 법 앞에 평등한 존재다. 헌법과 법률은 특정 정체 아래에서 거주하는 모든 국민(시민권 자)들에게 적용되며, 실정법을 어길 경우 누구라도 처벌될 수 있다. 그리고 공적인 지위는 세 습될 수 없게 되어 있고, 법인의 최고경영자나 대주주도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경영 의 전권을 자식들이나 가족 구성원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결국 법 적용의 보편성, 비인격적 인 지배, 지위의 세습 불가능성 근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의제 민주주의 아래에서 과연 보통의 대중들이 자신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무엇 인지, 그리고 국가나 사회의 미래를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이며,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 을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되어 있을까? 그리고 그런 판단력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을까? 결국 투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나, 여기서 개인은 무지, 편견, 미신, 선동, 압력, 이기주의에 의해 매우 굴절된 생각을 갖는 경우가 많 고, 이러한 개인들의 선택으로서 투표 결과, 즉 정권의 창출과 유지 역시, 사회나 국가의 유 지와 발전, 개개인의 행복을 보장해 줄 수 없는 대표나 정당에 의해 독점될 수 있다. 대체로 후발국가, 즉 민주주의가 성숙하지 못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나 최근 민주주의의 후퇴를 겪고 있는 서구 인민들의 불행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한편 기존의 헌법, 선거법, 정당법, 정당정치의 관행, 대중들의 의식 등에 의해 공익 마인 드를 가진 최적의 후보자가 권력권에 진출할 수 없다면, 또한 공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의제 나 정책이 선거 시점에 거론될 수 없고, 미디어를 통한 토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거나, 상업 적인 언론 등에 의해 공론이 굴절된다면, 그리고 유권자들이 선거라는 절차와 기존의 정당 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실망하여 선거에 불참한다면, 선거는 민주주의와 무관 한 것이 된다. 선출된 정치가나 집권한 정당이 공약을 파기해도 그들을 비판, 소환할 수 없다 면,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자신을 지배할 ‘군주’를 옹립하는 요식 행위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선거를 통해 최선 혹은 차선의 인물을 선출하더라도, 언제나 특정 계층, 지역 출신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하면 선거의 의미는 사라진다. 게다가 선출된 사람이 선의를 갖 고서 민의를 대변하려 해도, 자신의 실적과 재선 가능성에 더 집착하여 정작 거시적이고 구 조적인 변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면, 선거가 아무리 반복되어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 이다.8
‘선출 권력’과 집권 정당,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소수의 최상위 권력자들이 국가나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결정권을 갖는다는 기성 언론과 교육의 지속적인 선전은 실제를 보여주 지 않는 가면무도회와 같다. 지금 유럽과 미국 등 ‘정치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청년들의 시위 와 정당정치에 대한 높은 불신, 낮은 투표율 등의 민주주의 위기 현상은 모두 대중들이 자신 이 선출한 권력을 불신하고 지지를 철회한 행동들이다. 즉 ‘정치 위의 정치’, ‘정치 아래의 정 치’ 가시권의 정치를 오히려 더 심각하게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출권력이 선출되지 않 은 권력에 압도당하는 상황, 세습 권력이 선출 권력을 압도하는 상황, 법 위의 권력이 존재 하는 상황, 이것을 미국 정치학자인 셀던 월린(Sheldon Wolin)은 ‘전도된 전체주의’라 불렀 다. 전도된 전체주의는 한편으로 국가의 권위와 자원을 이용하면서도 복음주의 종교와 같은 여타의 권력형식과 결합해, 법인 기업들로 대변되는 사적인 통치체계와 전통적인 통치(정 부) 사이의 공생관계를 부추김으로써 자신의 동력을 획득한다고 주장한다.9
흔히 ‘그림자 정부’라고 부르는 무대 뒤의 권력이 실제하고, 이 권력이 무대 위의 권력을 실질적으로 움직인다면 민주주의는 이름으로만 존재할 것이다. 여러 공안기구가 사법 절차 를 대신했던 87년 이전의 한국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국정원, 국방부, 경찰 등의 정부기관은 댓글부대를 운영해서 선거 과정에 직접 개입했다. 그리고 대 법원은 정부와 ‘재판거래’를 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그런데 87년 이전과 다른 점은 이들 공안기관이나 사법부, 검찰이 2012년 대선 과정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일 위 안부 협상, 통합진보당 해산, KTX 승무원 정리해고, 쌍용차 파업 등 광범위하게 국가의 사회 경제적 사안에 개입했으며, 특히 사법부와 검찰은 박근혜 정부와 보조를 맞추어 삼성 등 재 벌대기업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에 편향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이다.
‘그림자 정부’ 즉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위세가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 장충기 전 삼 성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보낸 문자들이었다. <사사 인>의 주진우 기자는 “초기 특검이 국정 농단사건을 수사할 때 특검은 ‘한국은 박근혜가 대통령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최순실이 대 통령이었다’는 말들을 했는데, 막바지 삼성수사를 하는 과정에서는 ‘대통령은 이재용이었 고, 장충기는 비서실장이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라고 전했다. 한국사회의 권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에피소드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장충기 사장에 보낸 언론계 고위직들이 보낸 “무한충성”, “과분한 은혜”, “쾌도난마와 같은 통찰” 등 낯간지러운 표현과 더불어 국정원, 사법부, 검찰과 삼성의 유착을 보여주는 수많은 문자들은 삼성이 얼마나 막 강한 힘을 갖고 있는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10
사법부, 검찰, 관료집단, 그리고 재벌대기업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 볼 수 있는데, 87 년 민주화 이후에는 과거의 공안기관 대신에 이들이 제도권 정치를 압도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축, 혹은 질식 상태라 부를 수 있다. 이러한 질식 상태는 바로 국민들은 이러한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방법이 없거나, ‘그림자 정권’이 가시적 정권 위에 있으 며, 이들을 통제해야 민주주의의 기반을 확대하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지 못하는 상황이다. 즉 대중의 일상은 사회경제적 처지에 크게 좌우되는데, 이러한 처지는 당장의 사용자, 모기업, 건물주 등이 좌우한다. 한 겨울에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 는 권리, 부당 해고를 원상회복할 수 있는 권리는 대중에게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그러나 이 러한 주거권과 생존권 문제가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기존 정부나 정치권이 이런 문제를 외면 하거나, 소수의 관심 있는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 10년, 혹은 20년째 잠자고 있기 때문이며, 피해자가 고소와 고발을 해도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거나 법원이 경제적 강자 를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도 다수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제대 로 해결하지 못한다. 정치권, 사법부와 검찰은 대체로 경제적 강자의 편에 선다. 물론 경제적 강자들의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로비가 입법과 행정을 압도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그러 나 그것만으로는 양심적인 정치가나 법률가도 다수 대중의 권리박탈이나 경제적 고통을 외 면하게 되는 현실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시장’, 혹은 ‘효율’이라는 ‘신의 명령’이 제도권 정치 위에서 정언명령처럼 떠도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시장을 작동하게 하고, 경쟁이 살 아남게 해야, 결국 국가나 사회의 부가 창출되고, 그렇게 기업의 부가 창출되어야 경제적 약 자의 몫도 생긴다는 매우 단순하지만 강력한 논리가 오늘의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시장주 의, 신자유주의는 권력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 그 자체다.11
경제와 정치는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로서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경 제권력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하면,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가 거의 무의미해지며 기업, 즉 경제권력 앞에서 숨을 못 쉬는 사람이 정치적 주권자로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즉 자본 주의 사회에서 경제는 가장 중요한 정치다. 그래서 기업들 간의 권력관계, 기업 내의 권력관 계는 민주주의의 토대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재벌의 존재 자체, 즉 경영권의 세습은 재벌 대기업 내 의사결정의 신속성이라는 장점이 있으나, 그 기업 내부의 사용자와 피고용자의 관계, 그리고 기업집단과 하청 중소기업과의 관계, 그리고 이들 기업집단 내의 정규직과 비 정규직의 관계 등 모든 사회적 관계를 수직서열화 할 것이다. 이것은 대한항공 조씨 일가의 땅콩 회항 사건, 그리고 조씨 3모녀의 각종 갑질 사태에서 우리는 충분히 확인했다. 언론은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재벌 총수일가의 도덕적 문제로 돌리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재벌 가의 세습을 정당화해주는 법과 제도, 행정의 집행 등과 관련된 것이다.
과연 시장은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성립할 수 있는가? 대중 들은 회사로 출근해서는 사장이 죽으라면 죽은 시늉까지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하청업체인 태안화력에서 24살의 나이로 이승을 뜬 김용균은 자발적으로 회사에 입사해서, 주어진 노 동조건에 대해 군 말없이 일을 했다. 그에게 과연 민주주의는 사치였나? 그에게 죽을 정도 의 위험한 작업장에 들어가기를 거부할 방법이 있었나? 조재범 코치에게 수년 동안 폭력과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국가대표 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한 심석희에게 민주주의는 과연 무 슨 의미를 가진 것일까? 조재범에게 “운동 그만두고 싶어?”라는 말을 들으면서 연습을 했던 그녀는 살아갈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아마 이들 이 시대의 모든 청년들에게 민주주의는 ‘사 치’였고, 자신의 권리 주장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루하루 치열한 경쟁 속 에서 생존을 도모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정치 혹은 민주주의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지 모른 다. 이들에게는 대통령이 아니라 사용자, 회사, 코치, 체육계가 거부할 수 없는 엄청난 권력 이었다.
시장이라는 권력은 시장에서 교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거역할 수 없는 엄청난 폭력 이다. 그리고 ‘경쟁력’이라는 무기가 없는 사람, 그러한 경쟁력을 기를 수 있는 여건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선거, 정당, 법은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선거, 정당, 법은 “1등만이 살아남 는다”, “기업이 잘 되어야 노동자도 산다”는 논리 앞에서 초라해 진다. ‘선출된 권력’은 ‘선출 되지 않은 권력’을 견제하여 다수의 인민, 즉 공공의 이익에 복무하는 임무를 가진 존재로 되 어 있지만, 대통령과 국회, 정당이 이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들이 주장하는 논리에 동조할 경우 민주주의는 결정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결국 오늘날의 한국에서 사법, 검찰, 정부 개혁은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일차적인 관 문이며, 시장과 경쟁의 논리에 민주주의가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가의 문제, 즉 재벌대기업 이 하청기업과의 관계에서 부당한 거래, 정치권과 사법부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 노동 자나 소비자의 항의에 대해 응답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시금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권력 즉 경제력이 법을 압도하게 될 경우, 경제력이 과거처럼 가시적인 방 법으로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방법으로 주권자의 권리를 무력화할 경우, 선거를 통한 정치권 력의 교체는 대중들의 삶에 가시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가 사치재가 아니라 필수재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일상의 가부장주의, 금권의 행사, 강자들의 모든 ‘갑질’에 대해 ‘을’들이 항의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약자들은 모 두 이 갑질의 피해자이나, 실업, 빈곤 상태의 청년들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질식을 가장 온 몸 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다.
03 ‘촛불정부’는 민주주의를 보장해줄까?
강사 조보정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킨 2016-2017 촛불시위는 3.1운동, 4.19, 6월 항쟁의 전통을 잇 는 거대한 대중적 민주화 운동이었다. 이 모든 항쟁의 중심에는 청년들이 있었다. 특히 촛불 시위는 이화여대의 학내 비리에 분개해서 시위를 벌였던 이해 관계의 학생들 참여가 매우 중 요한 계기가 되었다. 촛불시위 이후 선거를 거쳐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임을 자임하고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촛불시위 이 후 문재인 정부 이후 한국은 얼마나 민주화되었을까?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 자체, 이명 박·박근혜 전직 대통령, 양승태 대법원장의 구속만으로도 촛불 시위는 민주주의의 거보를 내디딘 역사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언론의 자 유를 확대했고, 대중의 정치참여 공간을 넓혔으며, 사법부의 독립과 검찰 권력의 제한을 위 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선출 권력’인 집권여당은 어떤 역할을 했나?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바로 한국식 우익 포퓰리즘의 시대였고, 한국에서 국민주권, 민주공화국, 책임정치의 원칙이 무너진 ‘부드러운 파시즘’의 시기였다. 이 두 정권 시기에 한 국은 총수 독재의 재벌기업, 목회자 세습의 일부 대형 교회, 탈법적으로 국내정치에 개입하 고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공안기관, 족벌 사학재단, 사주 일인 체제의 보수언론이 합작해서 비판세력을 향해 ‘좌파’ 딱지를 붙이는 등 과거식의 ‘공포의 권력’까지 적절히 동원했다. 용 산 참사, 세월호 참사가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듯이, 이 두 정부는 왕조시대 군주들처럼 국민 의 생명과 재산, 위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은 롯데재벌과의 유착 을 통해 국가 안보에 극히 중요한 군사시설의 변경까지 감행하고서도 잠실에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용했다. ‘국가 안보’를 금과옥조로 내세워온 한국의 군 출신들 원로들은 그런 정책 에 대해서 침묵했다. 사실 법의 지배, 언론자유, 삼권분립의 원칙도 이들에게는 너무나 힘겨 운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의 민주화를 제한해온 가장 큰 외적 걸림돌은 분단, 그리고 남북한 간 의 준전쟁체제였다. 냉전자유주의는 성장주의와 맞물려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작동을 가로13 막아온 큰 장벽이었다.12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화해와 평화는 한국 민주주 의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관문이다. 작년 문재인 정부가 대북 화해, 북미 회담 주선에 적극성을 보이고 세 차례의 남북정상 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은 한반도 의 운명은 물론 한국 민주주의의 진전에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것은 반북주의, 국가 안보의 이름으로 정치사회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다수 국민의 입과 발을 묶어온 한국의 냉 전 보수세력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장차 남북한 경제교류가 활성화되어 남한의 기업에게 대북진출의 숨통이 트인다면, 남한의 실업 청년이나 경제적 약자들도 혜 택을 볼 것이고 시민으로서 역량을 갖게 되어, 그것은 결국 일상의 민주주의 진전에도 기 여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이 요구했던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위한 조 치를 거의 취하지 않았다. 물론 사법개혁, 검찰개혁, 정부개혁은 국회에서의 야당의 반대에 부딪쳐 별로 진도가 나가지 못한 점이 크다. 그러나 대통령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 즉 인 사권과 재정 동원을 통한 과거의 개발주의 정책 청산,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복지 확충 과 그것을 위해 필요한 증세, 교육개혁에는 매우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검 찰은 박근혜 정부의 적폐에 대해 적극적인 수사를 하고 있으나, 그러나 검찰개혁이 없는 검 찰권력은 매우 위험하다. 대통령의 권력이 약화되면 다시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기 때 문이다. 즉, 제도적 적폐청산을 통한 민주화도 매우 지지부진하지만, 경제현장, 사회현장에 서 ‘을’들의 힘을 강화할 수 있는 조치들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부동산 폭등으로 상위 10%가 차지하는 총자산은 박근혜 정부보다 더 커졌는데, 이것은 청년과 무주택자들을 더욱 좌절시키고 경제적으로 무력화하여, 결국 한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재벌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하도급 업체의 입지와 교섭력이 강화되고, 종속상태에서 탈피 해야 이들 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보수와 노동조건이 향상되고, 대기업과 하청기업의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종업원에게 ‘갑질’을 한 대한항공 등 기업 오너 가족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노조파괴를 자행한 삼성 등 대기업 간 부들에 대해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생산 현장의 권력관계는 보다 민주화될 수 있다. 대 중의 권리와 복지 등이 향상되어야 이들이 적극적인 시민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 혜 정부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거쳐서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고, 검찰수사로 대법원 ‘재판거래’의 정황이 드러났지만, 전교조 법외노조 상태는 아직 시정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된 내용,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제반 조치들도 피해 당사 자들이 굴뚝에서 400일 이상 농성을 하거나 시위를 해야만 겨우 실현될 정도다.
남북한에 한해서 남북관계 진전 등 큰 성과가 나타났지만 실제 대중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일자리, 소득, 복지 등에서 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자 국민들은 점점 정부에 등을 돌리기시작했다. 촛불정부라고 자임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느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는점점 실망으로 변하고 있다. 대통령 지지율의 하락과 더불어 집권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도30% 대로 주저앉았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20년 집권 플랜을 내세우고 있지만, 국민들은그러한 언명에 대해 별로 호응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서영교 의원의 ‘재판 청탁’을 ‘관행’이라고 변명을 하면서 서의원을 감싸고도니,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원을 상대로 ‘청탁’하는 일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국민들은 집권당의 사법개혁의 의지에 회의적이다. 특히 이정부에 대한 20대 청년들의 지지율은 크게 하락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20대 남성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29%로 폭락했다.기대했던 만큼의 경제적 성과가 나오지 않게 되자, 문재인 정부는 경제에 올인 하겠다는입장을 더욱 강하게 내비쳤다. 이것은 사실 집권 중반기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걸었던 길이다. 즉, 집권 초기에는 몇 가지 구조 개혁안을 내세우면서 시도를 했으나 경제적 성과가 나오지 않자,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가진 재벌대기업에 손을 벌이고, 기업의 투자 촉진을 위해 규제를 무차별적으로 완화하거나 근로감독을 완화하는 등 친기업의 행보를 드러낸다. 미국의 클린턴·오바마 정부가 그러했듯이 이러한 노선은 결국 지지파를 돌아서게 만들어 정부는 좌우 양측의 공격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기 쉽다. 경제적 어려움은 2,30년 동안 진행되어온 구조적인 것이고, 제조업이 경제의 근간을 이루던 과거와같은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대체로 알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힘든국민들은 당장의 먹거리를 요구하고, 곧 총선을 치러야하는 집권당의 입장에서는 구조개혁을 포기하고 표를 잃지 않는 단기적, 대증적 처방에 진력하게 된다.
결국 촛불 시민의 큰 기대, 그리고 정권 초기의 청사진과 기획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에게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은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사실 87년 이후 지금까지 민주화 이후(post-democracy)의 시대에는 집권보다는 정치력, 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권의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정치력이란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료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사회적 타협을 유도하고, 대중의 역량을 동원할 수 있는 힘이다. 사실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도어렵지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정치권력이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면 구조개혁은 더욱 어려워진다. 대통령제에서 지도자의 식견과 지도력은 매우 중요한 변수다. 정당의 정치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의 힘은 더욱 큰 변수가 된다. 정당과 대통령이 최대의 힘을 발휘해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힘이 막강하고, 대중들의 의식과 의지가미흡할 경우 개혁의 길은 어려울 수밖에 없지만, 대통령과 정당이 그 힘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경우에는 민주주의는 좌초하게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를 복원해야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의 후퇴 국다. 권위주의 정치의 청산도 어렵지만, ‘시장 권력’의 시대에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정 치에 등장하여 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한국의 정치사회의 과거와 현재를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문재인 정부가 적폐청산을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도 매우 힘겨운 과제이지만, 민주주의의 질적 전환은 더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도 정치가 갖는 한계를 인정하되, 즉 현 정부나 집권당이 문제 해결을 하도록 최대한 압박함과 동시에, 사법 개혁, 선거법 개정 등 여러 가지 산적한 개혁과제를 거쳐 시민사회의 적극적 참 여와 역량강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진척시킬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04 제도를 개혁하여 청년이 일어서게 하자
강사 박재순
2019년 초 지금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는 선거법 개정 문제로 집약된다. 총선에서 1 개 선거구에서 1명의 최대득표자를 선출하는 기존의 단순다수제 선거법은 민의를 제대로 대 표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2015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인정했으며, 그래서 선관위도 연 동형비례대표제의 한 방법인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 등 선거제도 개편을 권고했다. 문재 인 대통령 역시, “선관위 안이 합리적”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현재의 선거법에서 다수의석 을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거대 여야는 선거법 개정에 매우 소극적이다.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은 '2019년 1월까지 선거제도 개혁안을 합의 처리한다'고 했지만 계속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13 야3당은 330석에서 360석 정도의 의석확대를 포함한 선거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 선거구에서 최다득표자 1인만 선출하는 단순다수제 선거는 양당제를 가져오고, 이 양당제는 소수정당의 등장을 차단하고, 결국 사회 내의 다양한 계층, 소수자의 의견을 거의 반영할 수 없으며, 정치적 타협과 조정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양당 간 의 극한적 대립의 정치를 가져온다는 것이 정설이다.14 물론 비례대표제가 현재의 대통령제 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고, 남미나 일본처럼 비례대표 의석이 확대된다고 해서 민 의가 제도정치권에 제대로 대변되지 않을 수도 있다. 즉 선거법의 개정, 혹은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민주주의의 굴절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키는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단 순다수제의 선거법, 47석에 불과한 비례대표는 정책 정당의 등장을 억제하며, 사회경제적 의제가 정치권에서 합리적으로 논의되고 합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다. 특히 냉전보수 의 정치문화가 지배하고, 지역사회에서 시민사회의 힘이 매우 취약한 한국의 조건에서 단순 다수제의 기존 선거제도는 기성 정치 엘리트의 권력 독점과 재생산을 지속시키는 제도다. 특히 문재인 정부 등장 이후, 1년 동안 국회 활동의 사실상 기능정지 상황을 보더라도 선거 법의 개정은 촛불시민과 청년의 참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관문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 진전의 관점에서 선거법 개정 다음으로 중요한 과제는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일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는 사법부의 독립을 어느 정도 진전시켰으나 지난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김앤장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회동 등의 사실과 최근 서영교 의원의 ‘재판 청 탁’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통령 혹은 거대 이익집단의 입김에서부터 사법부는 독립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양승태 대법원의 행태와 법원 행정처 의 인사권 남용 등의 사실을 통해 볼 때 설사 사법부 자체는 과거에 비해 어느 정도 독립성을 획득했을지 모르나 개별 법관은 결코 독립적인 판결을 내릴 수 없는 처지에 있다. 독립된 사 법부와 법관의 독립성, 그리고 법관들의 ‘거대이익집단’ 편향의 판결은 래리 다이아몬드가 강조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중요한 장애물이다. 즉 한국은 여전히 과거형의 사법의 정치적 종속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환위기 이후에는 사법의 재벌 대기업 편향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태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에 가담 한 법관에 대한 적절한 징계나 처벌, 법원행정처 폐지 등 대법원 제도 개혁에서 시작해서 법 관의 임용, 로스쿨에서의 미래의 법관에 대한 교육 등 매우 산적한 과제 해결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가져온 최대의 책임 주체인 검찰에 대한 개혁 작업도 아직 별로 진전 되지 못한 상태이다. 공직자 비리수사처 설립, 검·경 수사권 분리 등의 과제는 논의는 무성 했으나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검찰 조직 내에서도 이런 개혁을 선뜻 동의하는지 의문 이다. 검찰이 정치권력의 도구로 기능했던 과거 정권의 온갖 적폐를 생각해 보면, 검찰 권한 의 축소, 그리고 편향적 수사를 금지하는 것은 사법 사업 개혁, 다음으로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검찰 중립성과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될 수 없고, 그것은 사회통합은 물론 민주주의의 진전에 큰 장애로 남을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 법개혁, 검찰 개혁, 이 중 어느 하나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과제들 이지만, 이것들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과제는 그 상위 조건의 변화 즉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과 재벌개혁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대기업에 대한 감시, 공정거래 질서 확립 등의 시장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나 경제적 약자들의 피부까 지 다가오지는 못한 상태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바닥 노동자들의 경제적 처지는 약간 향상 되었으나 영세 자영업자는 더욱 어려운 처지로 몰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부는 삼 성 등 재벌들의 행태에 면죄부를 주는 조치도 취하고 있어서 큰 우려를 자아낸다.
중이 제 머리를 깍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집단이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선거법 개정에 소극적이고, 사법부가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 내부 개혁에 소극적이고, 검찰이 자신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검찰개혁을 반대하고, 재벌이 세습의 차단과 공정한 시장경제 확 립을 위한 법 개정을 결사적으로 저지할 경우 민주주의의 확대는 어려워질 수 있다.
결국 민주주의의 진척을 기피하는 이들 권력집단의 행태를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은 시민들 에게 있고, 고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조직된 시민들의 힘만이 그것을 추동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다. 즉 시민사회의 역량강화, 시민 조직화와 교육을 통한 시민의 조직적 참여와 고발, 그리고 연대만이 민주주의의 동력이 될 것이다. 촛불시위에서 볼 수 있듯이 시 위는 일종의 집단적 청원이자, 압력 행사이자 여론 동원이다. 그것은 정치권, 사법부, 검찰, 재벌을 일시적으로 반응하게 할 수 있지만, 제도의 개혁을 강제하지는 못한다. 막연한 분노 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구체적 사안에 대한 구체적 의견 결집과 행동을 통해서 민주 주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의 성취와 한계는 거시적으로는 87년 민주화와 직결된 것이다. 그러나 외환위기와 지구적 신자유주의 질서의 확산 이후, 한국은 크게 변했다. 냉전 시절의 잔재 를 넘어서는 구시대적 민주화의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으나 경제권력의 지배 아래에서 민주 주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새로운 연대와 가치로 무장해서 새로운 정치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 “연합”과 “타협”의 붕괴와 극우 포퓰리즘의 분화:
강사 최영애
유럽 서유럽에서는 지금 영국의 브렉시트를 둘러싼 입장의 대립, 각 나라에서의 우파 포퓰리즘의 제도권 확산으로 전후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간의 연정이 과연 지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되고 있으며, 새 정치세력의 등장으로 유럽연합 정치 변화의 가능성에 따른 시험대에 올라있다. 지난 5월에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이탈리아의 '동맹'과 프랑스의 국민연합(RN),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등은 '정체성과 민주주의'(Identity and Democracy)라는 이름의 새 정치그룹을 형성하였고 유럽의회 내 제5당이 되었다. 현재유럽에 등장한 극우 정당들은 민족주의와 반엘리트,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을 기초를 두고 각국에서 주요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계화에 따른 시장경제체제의 확산과 더불어 그로 인해 발생한 이민자 문제, 내부의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해지면 유럽 내에서는 합리주의에 기반한 토론과 협의를 통한 연합과 타협의 정치가 사라져가고 있다. 대중의 즉각적인 이익 추구 성향과 현 체제에 대한 불만에 극우의 엘리트 세력들이 편승하면서 자극과 갈등만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에 직면하였다.
(영국-의회민주주의의 한계) 한 때 의회의 어머니라 불리우던 영국은 최근 의회민주주의가 어떻게 망가져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보수당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9월 둘째 주부터 5주간 의회 폐회를 발표했다.
노동당은 3일부터 시작되는 국회에서 EU와의 협정을 맺지 않고 탈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안을 제출하였고 328 대 301의 표결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존슨 총리는 조기 총선을 발의할 것이라고 즉각 반발하였다. 사실 존슨총리의 이번 폐회결정을 두고 야권에서는 "쿠데타"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세력의 결집력을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이번 결정이 영국의 전통적인 헌법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왕이 국정 연설을 하게 되면 의회를 폐회할 수 있는데,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며 의원들은 이를 막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는 관행상 통상 1년에 한 번 있는 여왕의 국정 연설이 이 시기에 열리는 것을 보면 노딜 브렉시트를 반대하지 못하게 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폐회 기간에 정부가 EU 탈퇴법안을 정리하는 것으로 해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개회를 선언할 때, 법안을 읽어 내려가는 것으로 통과시킬 수 있다. 영국은 단일의 성문헌법이 없다. 대신에 과거 수 세기 동안 만들어져 온 수천 건의 법률이나 판례가 그것을 대신하고 있다. 이것과 연동하여 브렉시트 이후 영국이 현행 유럽공동체법(European Communities Act 1972)을 폐지하고 영국의 독자적인 법률 체계로 재정비되는 것과 관련, EU 탈퇴를 둘러싼 논의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이렇듯 의회 민주주의의 다양한 약점을 브렉시트를 통해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는 영국의 민주주의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이탈리아-극우와 극좌 연합의 미래) 이탈리아의 경우 2018년 3월 총선 결과 제1당이 된 극좌파 루이지 디 마이오가 이끄는 극좌 정당 "오성운동 (M5S)"과 마테오 살비니(부총리)가 이끄는 극우 정당 '동맹'이 연합하여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권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1년 2개월 뒤 “동맹 (Lega) "이 상원에 제출 한 내각 불신임안을 계기로 주세페 콘테 총리는 8월 20일, 세르 조 마타 렐라 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고 연정 해체를 발표했다. 이탈리아의 두 여당은 민족주의와 반 유럽주의 등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고는 있지만, 이민 문제부터 북부와 남부 지역의 예산책정, 프랑스까지 잇는 고속철도(TAV) 건설까지 곳곳에서 의견차이를 보였다. 특히 오성운동은 빈곤한 남부 지역을, 동맹은 북부 산업 지역을 지지 기반으로 한다.
이후 8월 28일 이탈리아의 오성운동(M5S)은 중도좌파의 민주당(PD)와 연립정권수립에 합의하고 세르 조 마타 렐라 대통령은 다음날 29 일 사의를 표명한 주세페 콘테 씨를 총리로지명하여 유임이 결정됐다. 이렇듯 이탈리아는 극우와 극좌가 연합하여 정권을 구성하여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극우와 극좌가 연합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공유하는 가치가 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사실 2018년 3월 다수당으로 등장한 오성운동 정당은 극우 정당인 동맹과 연합정부를 구성할 때 모두 의구심을 가졌다. 당시 두 정당은 이민자 문제에 있어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지만, 오성운동 정당은 이민자를 허용하기는 하지만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이탈리아의 약 800만명에 달하는 빈곤층, 노동자의 보호와 남부 지역의 마피아 경제에 반대는 등 여러 면에서 어느 정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지 세력의 극명한 차이는 결국 연합의 붕괴를 가져왔다.
(프랑스-노란조끼시위의 개인화, 폭력화) "우파도 좌파도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정치에 대한 신뢰 회복을 외치며 2017년에 취임한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식의 규제 완화와'작은 정부'노선을 기반으로 개혁을 실시해왔다. 그러나 2018년 10월 연료세 인상에 따른 불만으로 인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탄생한 "노란조끼시위"는 프랑스 전역으로 빠르게퍼졌다. 파리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 일어난 시위는 기성 제도권 정치에서 소외된 시골 과 도시 외곽 지역 주민의 불만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이 대규모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특정 정당이나 사회운동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입장의 참여자들이 심각한 경제난을 배경으로 하는 일상 생활에서의 차별에 대한 불만과 마크롱 대통령에 반대하는 것에 일치하여 모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경제는 성장한 반면 급여의 상승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물가는 치솟았다. 또한 젊은 층의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대도시의 물가와 집세는 폭등하고, 지방과의 격차도 선명해졌다. 대규모 참여가 이루어졌던 2018년 11월 17일 이후 시위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참가자들은 크게 줄어들어 2019년 8월 말 기준으로 거의 20~30명 내외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크롱 정부의 일련의 조치 이후에도 지금까지 노란조끼시위는 산발적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지역화, 개인화 되어가며 참여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프랑스 유력 일간지 La Croix에 따르면 일부 시민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특정 정책 영역을 담당하는 의원들의 개인 주택을 공격하거나, 방화 시도, 혹은 오물 투척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처럼 폭력이 개인화되고, 대중의 의견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서 공유되면서 이것을 더욱 조장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히고 있다.(독일-극우정당의 분화) 최근 실시된 독일 구 동독의 작센(Sachsen)과 브라덴부르크(Brandenburg) 지역에서 치른 선거에서 유럽의 대표적인 극우 정당인 AfD당은 각각 27.5%, 23.5%의 결과를 얻어 두 지역에서 제2당을 차지하지 하게 되었다. 이 결과 극우 세력이 더 강화되면서 전국적으로 야당세력을 강화시키는 발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AfD가 약진한 배경은 이 정당이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거의 30년이 지나도록 동독 시민에게 뿌리 깊게 남아 불만을 수렴한 점과 2015년의 난민 위기 이후 독일이 받아 들인 100만명 이상의 난민이 특히 동독 주민인 자신들보다 더 보호되고 있다고 대중의 분노를 적절히 활용한 점을 꼽는다. 이번 선거에서는 “어두운 독일(Dunkeldeutschland)”이라 불리우던 동독지역의 지역정서를 자극하며, “헬 독일(Hell Deutschland)”과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사용해가며 승리를 거두었다. 서독 지역의 보수적인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던 기존의 정당을 부르주아로 보고 반체제, 반유로를 외쳤던 AfD는 옛 동독 지역 뿐 만이 아니라 서독 지역에서도 지지를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세력 확장은 극우 세력 내의 분화를 예상할 수 있다. 기존의 정당이라면 이해관계가 다른 두 지역의 지지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이념적으로 극단적이고 대중의 즉각적인 이익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극우 정당의 경우는 다를 것이다. 이러한 우경화는 반대인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지금 유럽에서는 기후 변화 대책의 강화를 요구하는 운동 "미래를 위한 금요일 (Fridays for Future) '가 각 국에 확산되고 있으며, 특히. 독일에서도 지난해 말부터 학생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열리고있다. 환경의식이 높은 독일에서 최근에 들어 기후 변화 대책이 유권자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것은 투표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지방선거에서 녹색당(Grüne)이 선전을 하고있다. 이렇듯 유권자의 특정 이슈에 따른 관심이 극명하게 나누어 지면서 정권의 안정성은 더욱 미래를 알 수 없어 보인다.
민주주의의 후퇴
냉전 체제의 해체 이후 지금까지 약 40년 동안 전 세계의 민주주의는 민주화를 통해 특히선거를 통한 참여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일정 정도의 진전을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그 결과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거 민주주의 체제에 살고 있다. 그러나 현재 실질적인측면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도전과 씨름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위축', '역전' 또는 '침체'를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도전들은 부패, 정치와 엘리트 그룹에 의한정책포획, 불평등과 사회적 배제, 이주와 분쟁 등 민주주의 실질적인 질적 발전과 관련하여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많은 지도자들과 국가 행위자들이 민주주의 절차와제도를 지속적으로 조작하고 있으며, 이것은 해당 국가 뿐 만 아니라 주변 국가의 민주주의를심각하게 후퇴시키고 있다.
글로벌 거버넌스의 붕괴와 몰락하는 국제질서
프랑스 남서부 비아리츠에서 열린 주요 7개국 정상회의 (G7정상회의)는 현재의 세계민주주의의 가치관 위기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2019년 G7정상회의는 국제사회의 긴급한사안 등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나타낼 못한 채 폐막했다. 경제, 외교 정책, 환경 보호 등의관점에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점을 둔 세계적 문제에 대해 주요 국가 간의 포럼으로서대화와 타협을 통한 국제 협력의 상징이었던 G7은 조정 기능을 잃었다. 세계 경제의 미래가불투명한 가운데 미국으로부터 촉발한 자국 제일주의는 G7의 모든 이슈를 덮어버렸다. 현재미국과 중국이 상대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통화약세를 둘러싼 경쟁 현상은 1930년대를연상시키고 있다. G7의 공조의 장애는 이제 트럼프로 대표되는 미국 뿐만이 아니라, 극심한균열에 시달리는 유럽 역시 문제가 되고 있다.냉전시기인 1975년 독일과 프랑스 주도로 출범한 G7정상회의는 전 세계 GDP의 40%를담당하며 세계 인구의 10%이상을 차지하는 소위 서방 민주주의 선진국가의 유대를 보여주는목적이 강했다. 1977년 런던 정상 회의는 오일 쇼크 등 경제위기를 화두로 당시 카터 미대통령의 "기관차론(The Locomotive Strategy)” 이 설득력을 얻었다. 일본의 후쿠다 다케오총리와 구 서독의 슈미트 총리가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자처하며 여러 사안들에 대한 협조를 약속하며 공동 결의문을 발표하였다. 1983년 미국 윌리엄스버그 정상회의에서는 미-소갈등상황을 배경으로 기존의 경제현황 중심에서 의제를 평화구축으로 전환하여, 당시 레이건미국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주도하여 군축 협상에서 소련의 양보를 강요하는정치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는 트럼프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다자간의깊은 논의를 피한 나머지 알맹이 없이 끝나게 되었다. 과거 미국이 강대국으로서의 공통 의제주도 역할에 일정 정도 기여하고, 서방 국가 사이에서 유일한 아시아 국가였던 일본의 역할은현재, 과거와 비교할 정도의 수준이 되지 않는다. 아래 사진은 지금 전 세계가 처한 현실을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각국 수뇌부의 주요 발언을 살펴보면 국제 사회를관통하는 메시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엇이 전 세계 공동의 문제인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어떠한 노력을 협력해야 하는 지에 대한 그 어떤 고민도 보이고 있지 않다. 각국의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무엇보다 전후 국제 질서 만들기를 주도해온 미국과영국이 보호무역주의와 브렉시트를 주장하며 질서를 깨는 쪽으로 돌아서면서 그 기능은 크게쇠퇴되고 있다. 이제 세계에는 조정과 타협의 정치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완전하지 않은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최종 형태로 간주되어 온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도 그다지 완전하지 않았음이증명되었다. 서구의 지식인들은 ‘민주주의 공공화’라는 담론으로 후발국의 민주화를 대상화해왔지만, 기실 서구에서도 민주주의는 발전 혹은 성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쇠퇴하거나 역행할수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올 초 프리덤 하우스가 발간한 "Freedom in the World2019"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는 약해지고 있고, 특히 미국에서의 민주주의의쇠퇴는 위기적인 상황이라고 언급하고 있다.프리덤 하우스의 보고서는 전 세계 민주주의에 관한 전반적인 동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있다. 냉전체제에서의 서방 민주주의 국가의 승리 이후,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귄위주의국가들은 자유세계질서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신자유주의 이후 제3세계에서도 이러한추세를 추종하는 나라가 등장함에 따라 그러한 국가의 프리덤 하우스 지표가 급락하고있다. 또한 세계화에 의해 서방사회에서도 그들 간의 격차가 확대되었다. 세계화를 통한경제발전은 선진국의 부유층과 신흥국가의 노동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 반면, 선진국의미숙련 노동자들의 경제적 이익은 감소하고 처지는 악화되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에서는반 자유주의 운동이 높아지게 되고, 권위주의와 민족주의의 용인과 함께 다자간 규칙이나, 이민자 문제, 입헌민주주의 등이 부정되게 되었다. 이 보고서는 2005 년부터 2018년까지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상실을 '세계 자유 후퇴의 13년(the 13th consecutive year of decline in global freedom)'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최근 몇 년 간 많은 뉴스와 민주주의에 대한 수준을 평가하는 보고서에서는 민주주의를 도입하는 국가의 수가 감소하고, 새로운 형태의 권위주의 정권이 대두되고 있음을 강조하고있다. 80년대 중남미 국가에서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뒤이어 소련의 해체와 1989년베를린장벽붕괴, 동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에서의 민주화의 확산 등 투쟁과 진보의 역사를 뒤로하고 현재 전 세계 민주주의는 큰 위기에 처해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2019년 현재 전 세계 민주주의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중국식 권위주의 모델의 선전과 일본의 쇠퇴: 아시아
강사 조보정
아시아 여러 나라들 특히 동남 아시아 국가들은 서방국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명목으로 타국의 내정에 간섭해왔다며 반발하고 있다. 공산주의가 도미노처럼 퍼졌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권위주의가 도미노처럼 퍼져 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중국의 경험에 근거하고있다. 냉전 이후 중국을 비롯한 권위주의 국가도 경제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늘어나게 됨에따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질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현실의 중국은 권위주의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그 체제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있다. 러시아의 경우 군사적으로는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고는 있지만 경제적인 성공을 하지 못한 것에 비해 경제적으로 성공한 중국식 모델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더욱 설득력이 높아졌다. 또한 자민당의 장기집권에 별다른 변화 없는 대내외 정치의 지속과 장기적인 경제침체는 아시아에 있어 일본의 지정학적 패권의 쇠퇴로 이어졌다. 동남아시아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어 감에 따라 그에 비해 경제적 발전이 상당히 이루어졌던 동북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입김이 다시 거세지고 있다. 대만과 홍콩에 대한 입장을 두고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일본과는 동중국해를 둘러싼 영토권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아시 아민주주의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권위주의의 탈을 쓴 독재) 중국은 시진핑 시대를 맞아 공산주의를 강화하고 독재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시진핑은 국가 주석의 임기 제한을 철폐하는 헌법 개정에 성공하고 무기한 주석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임기 제한 철폐에 대한 여론은 좋지않다. 마지막 종신 국가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의 기억은 아직도 중국인들에게 잊혀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종신 독재자가 탄생하는 불쾌한 전망에 많은 국민, 특히 중국의 고도 성장으로 등장한 도시의 엘리트들에게 반감과 불안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시진핑은 대외무역 경제로 시선을 돌리고자 하였지만 트럼프와의 갈등은 결국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이로서 그는 2012년 11월에 권력을 장악한 이래 가장 어려운 시련에 직면하고 있다. 시진핑의 경제 정책은 줄타기일 수밖에 없다. 경제의 건전화에는 공공부채 감축과 구조 개혁이 필요하지만, 거기에 발을 디디면 단기간의 성장은 억제된다. 개혁을 억지로 진행하게 되면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는 어렵게 되고, 결과적으로 제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 파산에 몰릴 것이다. 또한 이미 빚더미에 있는 중국 경제에 일단 자금을 쏟아, 죽어가는 기업을 구제하면 지속가능한 측면에서 중국의 성장은 둔화되고 미래의 위기가 심화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개인 숭배적인 선전과 사상 통제는 더욱 강화되고 민간 부문과의 신뢰 관계 구축은 요원해지고 있고, 중국은 미국의 강력한 압박과 견제에도 불구하고 동남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각국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다자주의 진영의 세 결집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일대일로 사업은 현재 당사자국 뿐 만 아니라 중국자신도 늪에 빠지고 있는 실정이다.(홍콩-민주화 세대의 출현) ‘일국 이제도(一国二制度)’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한 나라의 두 가지 제도, 홍콩의 경험은 권위주의와 민주주의가 결코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있다. 홍콩의 이번 시위는 겉으로는 범죄 용의자의 중국 본토 인도를 인정하는 “송환범조례 '개정안에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에 숨겨져 있는 맥락은 좀 더 거대한 변화를 축으로 하고 있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었지만 홍콩은 홍콩특별행정구로서 자신의 법제와 국경을 가지며, 표현의 자유 등의 권리가 보장되어왔다. 즉, 홍콩에는 중국 본토에는 없는 정치적 자유가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내에서 1989년의 천안문 사건에 대해 시민들이 추모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장소이다. 홍콩 정부 최고 행정장관은 현재 1200명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에서 선출된다. 그렇지만 이 선거위원회는 전체 유권자의 6%에 그치며, 구성원은 전적으로 중국 정부 성향이다. 입법 전체 의원 70명의 선출 방식은 매우 복잡하며, 홍콩 유권자가 전원을 모두 직접 투표하여 선정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의석의 대부분은 친중파 의원들이 차지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배경으로는 심각한 경제적 불평과 치솟은 주택난에 대한 불만을 들 수 있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이전에는 2003년에 약50만명이 참가한 시위안보법 반대 시위, 2014년 우산 혁명이라 불리우는 홍콩 행정장관직 후보 제한 반대시위가 있었다. 또한 지속적으로 보통 선거권을 요구하는 시위와 천안문 사건 추모 집회는 매년 연례 행사가 되고 있다. 이렇듯 중국이 홍콩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홍콩시민의 민주화를 요구하는 물결은 거세지고 있다.
(대만-중국의 도전으로부터의 민주주의 수호) 내년 1월에 열릴 대만 총통 선거의 양대 정당의 후보가 정해졌다. 집권 민진당은 현 총통의 차이잉원(蔡英文)이 재선을 노린다. 야당인 국민당후보에는 7월 28일 전당 대회에서 현 가오슝 시장의 한궈위(韓国瑜)가 선출됐다. 또한 8월1일 현 타이페이 시장인 코웬제(柯文哲)는 대만 인민당을 설립하여 총선에 출마할 것을밝혔다. 현재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홍콩에서의 민주화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 속에서 내년 대만 총통 선거는 중요한 변곡점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선거의 경우 국내 경제가 중요한 의제로 놓였지만, 내년 선거의 경우 양안 관계가 최대 쟁점으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한궈위 가오슝 시장의 경우 대만 내에서 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인으로 분류되며, 당선된 직후 홍콩, 마카오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 공산당 간부들과 회담을 가졌다. 그리고 그 후 홍콩에서 송환 조례의 개정을 둘러싸고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고 이것에대해 대만 언론을 향해, 한궈위 시장은 "잘 모른다” 라고 대답하여 대만인의 빈축을 산 적이 있다. 대만 유권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주요 정당들 사이에서 세 차례의 평화적인 권력 교체를 이끌어내었다. 오늘날, 세계 다른 지역의 민주주의가 포퓰리스트와 민족 주의의 확산으로 인해 왜곡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은 한국과 더불어 꾸준히 지역과 세계의 민주주의 신호역할을 해왔다. 중국의 외교 및 군사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대만 내 정당의 분열은 내년총선은 중국의 도전으로부터 위협받는 대만 민주주의의 장애물이 될 것이다. (일본- 선택이 없는 민주주의) 여당과 야당 간의 대립 축이 보이지 않는 자민당 일당 독주 아래 현재의 일본 민주주의는 위기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상 일본에는 정치 이념상 경쟁적인 정당 간의 의미 있는 정치적 대립구도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진보 혹은 보수, 큰정부 혹은 작은 정부 등의 이념 혹은 사상적 구분이 일본의 정치 풍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도 드러났듯이 야당의 세력은 거의 붕괴되었다. 야당은 일회성 정당들이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으며, 자민당과 대립되는 이념이나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신조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오래 총리를 역임한 당사자가 되었다. 아베는 사회보장개혁, 무상 교육, 고령화 문제 해결 및 노동력 감소등을 포함한 차기자신의 당이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도전 과제를 제시했다. 그렇지만 2020년까지 기한을 두었던 헌법 개정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얻지는 못하였다. 또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과열되는 가운데 중국에 밀려 아시아 지역에서의 경제적, 정치적, 지정학적위상이 떨어져가고 있다. 이를 돌파하고자 역사적 문제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연임의 주요한 요인으로 꼽히는 아베노믹스 (Abenomics)로 알려진 일본의 경제 활성화 전략의 성과는 사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특히 구조개혁이행과 관련하여서는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일본의 지난 4년간 1인당 GDP 성장률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슷하다. 그러나 소득불평등은 OECD 국가와 비교하여 증가하였다. 일본의 경우, 사회 및 경제적 격차가 커지는 주요 원인으로 노동 인구의 채용 사진 - 현 총통 차잉인원, 현 가오슝 시장 한궈위, 현 타이페이 시장 코웬제@Ashley Pon,Bloomberg @AP Photo @ Daniel Shih/AFP10
형태에 있다. 여전히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시장 자체가 그것을 장려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본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앞으로 변화하게 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민주주의 종주국의 내부 붕괴) 미국의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전문가들은 최근 발발한 미·중 양강의 경쟁을 글로벌 파워 시프트,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재 대국화(再大国化)지향 등 외부 요인을 중시하여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유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여부는 중국과 러시아의 도전보다 내부적인 힘, 안정, 자국의 체제에 대한 신뢰에 달려있다. 사실상 미국의 민주주의는 트럼프 정권 등장 이전부터 이미 위기를 맞았다. 당파 분열의 확대, 경제적 유동성의 저하, 이익 단체의 강화, 언론에 대한 신뢰성 저하등이 눈에 띄게 드러났다. 다만 이것이 트럼프 시대에 사태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삼권 분립은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이민 문제를 놓고 사법이 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리자, 담당 판사를 "오바마 판사” 로 부르며 판결에 불만을 표출하며 사법부의 자격과 중립성을 폄훼했다. 둘째 트럼프는 언론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불리한 미디어는 즉시 "가짜 뉴스'와 '국민의 적'이라고 딱지를 붙여, 사실에 근거 언론에 대해 국민의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 또한 언론인에 대한 법적 그리고 사회적인 보호를경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중국의 시진핑이나 러시아의 푸틴 독재 국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기자의 안전을 위협을 조장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동맹국에 적대적인 자세를 취하고, 중국과는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로서, “아메리카 드림”으로 지금의 부와 권력을 얻은 역사를 무시하며 민주당 여성 의원들을 겨냥해 인종 차별적인 발언을 스스럼없이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미국 내 갈등의 조장과 더불어 총기사고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등을 돌린 유권자들의 지지를 다시 얻을 수있을지, 의회의 본래의 역할을 다시 찾을 수 있을 지 중대한 국면을 맞고 있다.
(캐나다-민주주의의 청정지대: 기후위기와 Bic Tech) 2019년 올해 10월 연방 총선을 앞두고 있는 캐나다는 집권 여당인 자유당(Liberals), 야당인 보수당(Conservatives), 신민주당(NDP), 그리고 녹색당(Green)이 주요 정당들로 각축을 벌이고 있다. 올 초 4월 캐나다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 총리는 총선에 러시아가 개입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대책을 추진하고 있음을 밝혔다. 토론토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그는 “지난 몇 년간 외국의 개입과 그러한 영향으로 보이는 사건이 민주주의의 과정 속에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대립적인 선거 활동, 많은 대립적인 소셜 미디어 활동, 즉 우리의 정치를 예전보다 훨씬
대립적이고 분노에 가득 찬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정보의 확산 배후에 러시아 같은 나라가 있는것은 분명하다 "고 강조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확대되어 가는 가운데, 이번캐나다 총선에서 국민당(People’s Party of Canada)의 막심 버너 (Maxim Berner) 총리가 이끄는 우익세력이 전국적으로 표를 얻을 것이냐도 중요한 관심사이다. 현재 총선을 앞두고정당들의 주요 이슈는 캐나다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인력을 이민을 통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면서도 개별 이슈들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특히 이번총선에는 기후변화와 빅테크(Big Tech)라고 부르는 다국적 거대 정보통신사업 기업들의 규제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캐나다는 올 봄 대규모의 홍수와 산불로 인해 기후 위기와 관련되어 환경문제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서 인간에 의한 환경 오염의 신호라고 보고 이것이 주요한 선거 문제로 등장하여 탄소세와 관련되어서 치열한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또한 빅 테크, 즉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과 같은 거대 기술기업이 정부의 규제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고 많은 논의들이이루어지고 있다.
3. “이민자 나라”의 미래: 북미 이민자들에 의해 다민족 사회로 구성된 두 국가 캐나다와 미국은 민주주의 측면에서 출발은 같았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현저히 차이가 나고 있다.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서 자유 수호와 민주주의 확산에 가장 많은 자금과 노력을 기울여온 미국의 민주주의는 한마디로 혼란 그 자체이다.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하는 다양성을 수호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인종주의와 차별 그리고 총기폭력이 난무하며, 흡사 남북 전쟁 이전의 시기로 돌아간 듯 인상을 지울 수가없다. 이에 반해 캐나다는 이민자 문제와 인종차별에는 아직까지 반대하는 입장이 강하며 기후변화와 다국적정보통신 기업의 규제 문제 주요 과제로 다루며,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국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북미의 두 나라 미국과 캐나다는 EIU가 발표한 2018 민주주의 지수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캐나다는 상위권을 차지한 북유럽 국가들에 이어 6위를 차지하였으며, 미국은 25위에 그쳤다. 민주주의가 시름시름 앓고 있는 미국과 아직까지는 여전히 건재한 캐나다 두 국가는 다민족 국가의 다른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4. 사회주의의 쇠퇴와 대두하는 “극우”와 “극좌”: 중남미
강사 박재순
2017년 이후 중남미 주요 각국은 잇달아 대선이 실시되었고 2018~2019년까지 많은 나라에서 새 정권이 탄생하며 중남미 주요국의 정치 지도는 크게 바뀌고 있다. 좌경화 우경화 같은 정치노선으로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각국 대선에서는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반발, 아웃사이더를 향한 지지라는 세계적 조류에 따른 영향이 크다고 평가할 수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자국 중심주의와 민족주의에 근거한 극좌와 극우 세력이 제도 진입을 통해 정치 세력화하고 있다. 중남미의 최대 과제는 경제발전과 이민자 문제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 대책에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남미 지역 사람들은 심각한 경제난을 이유로 계속 미국으로 향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자원가격의 상승과 각국의 경제정책 운용에 따라 중남미 지역내에서 성장률 격차가 크게 확대되었다, 중남미 국가 내에서도 태평양 동맹국들은 재정 규율이나 시장 기능을 중시하고, 개방적인 대외 정책을 지향하는 중도우파 혹은 중도 정권에 의해 안정 성장을 유지해 왔다. 메르코스르(Mercosur) 국가들은 “핑크타이드”로 불리우는 좌파정권 대두의 흐름에 영향을 받아 자원상승에 따른 세입증가에 의존한 선심성 재정이 막히면서 정치의 기능마비가 경기침체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중남미의 경우 경제발전과 정치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특정 정치노선이 경제발전을 이끌어낸 다기보다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하는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세계 경제의 변화에 민감하다. 따라서 이를 정치적 엘리트들은 적절하게 이용하며, 정권을 수립 운용해오고 있다.
(브라질 - 아마존을 둘러싼 유럽과의 갈등)
2018년 4월 당선된 극우 사회자유당의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두 가지 측면에서 위기에 직면해있다. 민족주의와 자국 우선주의를 내걸며 당선된 보우소나르도는 이번 아마존 화재 사태를 두고 대외적으로 유럽과 갈등을 겪고 있다. 지구온난화에 회의적인 견해를 나타내며, 브라질 북부의 경제 성장을 최우선 하고 있는 보우소나루 정부의 아마존의 토지 매매 및 농지 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의 추진에 따라 아마존 지역에서산불이 확대되었다. 이에 반발하며 아마존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럽으로부터 거세지고 있다. 이에 보우소나루 정부는 "내정 간섭"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럽과의 관계 악화는 브라질 내의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또 다른 국내 상황의 측면에서는 경제 성장을 위한 정치적 권한의 부족이 문제가 될 소지가 높다.
사실상 지역 간의 경제 격차를 기반으로 당선된 보우소나르 대통령은 역대 좌파 정권과 같은 분배가 아니라 경제 발전에 의한 격차 시정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쉽지 않다. 브라질 남부에 산업이 집중됨에 따라, 숲이 펼쳐져 있는 북부의 경우 빈곤율은 여전히 치솟고 있다.
(베네수엘라-좌파 사회주의의 몰락)
1,300,000 % 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5년 연속 마이너스 경제 성장(2019년 7월 기준 -39.9%), 총 인구의 10 %(약 400만명) 이상의 국민이 국가를 탈출하고 있으며, 5일에 걸친 전국적인 정전 등 전쟁 중인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베네수엘라의 이러한 경제위기는 차베스
정권에 이어 마두로(Nicolas Maduro) 정권의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 형태의 경제정책 실패에 있다. 가격과 환율의 비현실적인 수준에서 고정 외환을 취하며 기업의 통제를 통해 농업과 제조업의 투자를 억제함으로써 생산 축소를 초래했다. 국내 공급 부족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가운데 급격한 유가 하락과 산유량 축소, 대외 채무 지불 등으로 외화 부족이 심화되어, 결과적으로 수입이 어렵게 된 것이 현재 식량과 의약품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된 상황을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하이퍼 인플레이션은 차베스 시절부터 끝없는 재정확대가 재정 적자를 초래하고 그것을 정부가 안이하게 화폐 발행으로 메꿔 왔기 때문에 통화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야당 지도자 구아이도(Juan Guaido) 국회 의장이 임시 대통령 취임을 선언하고 위기를 해결하고자 하였지만, 군부의 지지를 받는 현 세력을 추방하기에는 요원하다. 더욱 더 독재색을 강화하고 있는 마두로 대통령은 야당 측에 조임을 강화하고 구아이도 임시 대통령이 이끄는 반정부 활동은 정체중이다. “2명의 대통령”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이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혼란이 해소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포퓰리즘 사회주의 몰락의 결과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엘리트들이 군부와 결탁하여 포퓰리즘과 사회주의를 이용하며 부정부패로 자신들의 권력을 이어가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멕시코-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의 탄생)
2018년 7월 89년만에 좌파 정당 출신인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 (Andres Manuel Lopez Obrador) 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빈곤층을 지지기반으로 기존의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과 민족주의 및 ‘멕시코 우선주의(México Primero)’를 주요 슬로건으로 내걸며 수립된 오브라도 정부은 민주주의 회복, 부정부패 척결, 대외정책의 안정, 치안 강화, 정의 실현, 열린 정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며 실천을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오브라도루 대통령이 멕시코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다른 차원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오브라도루 대통령은 거의 제약이없는 권한을 누리고자 헌법 개헌을 계획하고 있다. 이런 계획의 배경은 그가 속한 정당이 멕시코 연방 의회의 상원과 하원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의 지지율은 현재 매우 높으며, 내각을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데다가, 비교적 건전한 거시 경제가 지속될 전망에 따라 당장 시장의 압력에 노출되지 않아도 된다. 반면에 멕시코의 사법 제도는 매우 약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브라도루 대통령은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주 정부 프로그램과 예산을 감시하기 위해 행정부에 대해 책임을 지는 연방 '슈퍼 대의원'을 신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동시에 공공 부문의 임금 삭감을 통해 관공서에서 직업 공무원들의 대량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대통령의 권한을 억제할 수 있는 멕시코의 몇 안되는 독립기관은 약해지고 있다. 개혁을 실천하기 위해서 권력기반을 다지는 것은 매우 중요할 수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개인 재량이 아닌 적법 절차와 투명성 제고를 중시하는 새로운 제도적 접근의 일환 인 경우에 한정된다. 최근에는 직접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주요 정책 사안에 대해 여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고 있다. 이런 행보를 보면 앞으로 멕시코 민주주의가 질적 차원의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전 세계 민주주의 위기
전체적으로 과거 제3세계였던 나라, 구동구권이 경제 침체와 함께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고, 자유민주주의 선두주자로 간주되었던 서유럽과 미국의 민주주의가 크게 후퇴하고 있으며, 한국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의 보수와 권위주의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기 이후 파시즘이 등장한 것과 매우 유사한 양상이 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이후 세계 경제가 회복되기 않고 있으며, 각국에서는
청년실업과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으며 난민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못하고 지구 환경위기에 대처하는 공조가 후퇴되고 있다는 점이 세계를 위기로 빠트리고 있다.
스탠포드 대학의 래리 다이아몬드는 2019년 5월 월스트릿 저널의 기고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가 자유 정부를 공격하고 독재자 통치를 강요하고 있음에도 미국은 침묵을 지키고 있으며 새로운 권위주의의 물결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그에 따르면 반
민주주의적인 흐름의 초기는 군사 쿠데타가 주요 방법이었으나 그러나 이제는 다른방식으로 변화하였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한 국가에서 선거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방식은 민주주의와 관련이 깊은 조직, 즉 법원, 경제그룹, 미디어, 시민사회, 대학 및 대민 서비스 기관, 정보 기관 및 경찰과 같은 민감한 국가 기관의 독립을 점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분석하였다. 파괴의 주체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과 같은 우파민족 주의자 이든 베네수엘라의 휴고차베스와 같은 좌파 "볼리비안적(Bolivarian)"사회주의자이든 그 결과는 동일하다고 보면서 민주주의의 구조와 규범은 하나씩 제거되어지고 남은 것은 속이 빈 껍질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유럽을 비롯한 북미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익 포퓰리즘의 대두와 민족주의, 반체제 운동의 확산이 중국과 러시아 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의 저하
2018년 미국의 퓨 리서치 센터 (Pew Research Center)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27개국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대다수가 만족하기 보다는 불만족스럽다고 답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에 가장 불만족 한 12개국 가운데 멕시코, 그리스, 브라질, 스페인에서는 10명중 8명이 불만족스럽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라고 불리우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일본이다. 세 나라 모두 절반 이상이 자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불만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조사에 따르면, 자국 경제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는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가장 불만족스러운 12개국 중 9개국에서, 현재 경제 상황이 나쁘다고 응답한 사람의 3분의 2 이상이 민주주의에 불만족스럽다고 답변했다. 정치적 부패 역시 민주주의에 가장 불만족하는 국가의 또 다른 공통 관심사로서 이들 12개국 가운데 7개 국가의 상당수가 자국내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부패했다”다 답변하였다. 답변을 보면 그리스 89 %, 남아프리카 72 %를 포함하여 나이지리아 72%, 이탈리아 70 %, 미국 69 %, 튀니지 67 % 및 아르헨티나63 %순으로 조사되었다.
영리한 엘리트의 독식
현재 전 세계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거처럼 권위주의에 맞서는 제도적 차원의 자유와 평등의 획득이나 단순한 참여의 확장 문제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세계화를 통한 경제 패권의 집중은 아이러니하게도 각국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게 되었다. 정치적 엘리트들은 대중의 분노와 불만을 자양분 삼아 이념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며, 경제적 이익이 일부에게만 집중되는 불평등은 완화되지 않고 있다. 2018년 발간된 아난드
기리다라다스(Anand Giridharadas)의 저서 엘리트 독식사회(원제: Winners Take All: The Elite Charade of Changing the World)에 따르면 엘리트는 자신의 생활 방식이 위태로워지는 것을 거부하고, 공공선을 위해 권력자가 희생할 수도 있다는 관념을 부정하면서 일련의 사회적 합의를 고수한다. 예를 들어 진보는 자신들이 독점하고 그 부스러기를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상징적으로 건네겠다는 것인데, 사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그들 중 다수에게 그런 도움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보수 특히 극우세력은 이런 진보 세력들의 의제와 이념을 부르조아적 사고라고 비난하며 대중의 즉각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선전하며 이들을 동원한다.
참여의 변화와 가치의 회복
U N 세 계 민주주의 날을 맞아 ( António Guterres ) 사무총장은 올해의 테마를 참여(Participation)로 발표하였다.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란 시민사회와 정치 계급 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기반으로 하는 쌍방향 거리(two-way street)라고 정의하면서 이러한 대화는 정치적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정치적 참여가 증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다만 이러한 참여가 실질적인 영향을 얼마나 갖는지에 대해서는 대중은 의문을 갖고 있다. 공식적인 정치 제도에 환멸을 느끼는 수많은 대중은 분노를 행동으로 옮기고 투표하고 항의하고 있다. 이러한 참여의 맥락이 포퓰리즘의 등장을 불러왔다.
정치적 엘리트에 대한 분노, 급속한 사회 변화에 대한 경제적 불만 및 불안은 최근 몇 년간 전세계 지역에서 정치적 격변을 일으켰다. 권위주의와 민족주의, 포퓰리즘 등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세계화와 기술발전의 영향으로 인해 더욱 참여와 의사소통의 도구는 급속도로 성장하였지만, 그 질은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배경에는 경제적 불평등과 계급 격차의 존재가 있다. 이것은 가짜 정보의 생성과 확산을 통해 비약되고 지금의 체제에 대한 불신을 갖게 한다. 대중은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선거가 변화를 거의 가져오지 않는다고 보고 있으며, 정치인은 부패하고, 법원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고해져 가는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과 계급 앞에서 더이상 세계는 공동의 문제를 고민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등 등 중요한 사회적 가치와 담론은 당장 눈 앞에 놓여 있는 자신의 이익 앞에서 외면하고 있다.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구분은 모호해지고 이념의 구분과 편향은 두드러지고 있다. 전 세계는 함께 고민하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로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함께 우리의 문제를 고민하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충분한 협의와 대화를 통한 양보와 조정, 그리고 실천이 필요하다.
확대된 시민의 참정권을 기반으로 하는 제도 구축과 감시 기능의 확충
앞으로 우리는 무엇보다 경제적 불평등 완화와 사회적 정의의 실질적인 실천이 이루어 질 수있도록 새로운 형태의 시민운동과 보다 폭넓은 참여의 확대가 필요하다. 여론 조사 등에서나타나는 정치 엘리트들과 정치 제도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강력한 운동을 일으키지는 못하고있다. 민주주의 제도의 실패는 실수를 저지르는 엘리트가 있어도, 대중의 의지를 존중하는 더 유능한 지도자로 빨리 쉽게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선출직 국가의 수장은 현대 국가에서 쉽게 교체될 수 있지만 여전히 지배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비선출직 권력 공무원, 사법, 행정, 기업등은 계속해서 남아있고, 유지되며 이들 세력은 엘리트 지배 구조에서 후퇴하지 않는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도높은 감시와 기회구조의 평등을 제도적으로 확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이것이 정책으로 이어져 실현될 수 있도록 사회문화적, 제도적 장치들을 고안하고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의 저하는 결국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누적되어 가시적인 효과가 나타날 때 비로소 회복될 수 있다.
그동안의 선거를 통한 참여와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발한 시민운동은 세계 민주주의의 확산과 유지에 일정 정도의 역할을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적극적인 참여와 이러한 참여가 가능한 기회구조를 제도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미래 세대의 권리와 이익에 관한 최근 기후위기 운동과 같은 세계적 규모의 등장은 여전히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