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내에서 수름재를 너머 내수쪽으로 가는 길에 우측으로 대영자동차학원이 보인다. 또는 주성강당 이정표를 보고 진입하여도 좋다
길을 따라 직진하면 구성리 마을회관을 볼수있다. 효자비는 구성리 마을회관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전병남효행비(全炳男孝行碑)는 2013년에 천안전씨문효공파종회(天安全氏文孝公派宗會)에서 세웠다.
효자 전병남은 어려서 부터 부모의 말에 순종하며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효자였다.
그러나 부친이 간이식 외에는 회복할수 없는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간을 제공하자 하는 마음으로 은밀히 부친과 자신과의 조직적합 판정검사를 하니 조직이 같아 간을 이식할수가 있다는 판정을 받게 되였다. 전병남은 1978년 8월 구성리에서 태여났다.
이에 전병남은 부모에게 진언하여 부친이 자신의 간이식 받을 것을 말씀드리니 병중의 아버지 풍식씨는 늙은 내가 살자고 젊은 너를 어찌 위험에 빠트릴수있느냐 하며 아들의 뜻을 완강히 거절하였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몸 부모님을 위해 간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며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간의 일부를 떼어내도 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며 무릎을 끓고 눈물로 재차 간구하니 아버지도 눈물로 그 뜻을 허락하였다.이 때가 그의 나이 29세 였다.
전병남의 효행심과 아들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이 합치가 되였는지 수술은 무사히 끝나고 전효자의 아버님은 병세가 호전되여 일상새활에 지장이 없고 또한 전효자도 건강을 되찾게 되였다 . 이 또한 부모를 향한 효심에 하늘이 감동하였다고 많은사람들의 칭송이 가득하였다.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으매 집안에는 웃음소리만 가득하고 행복하였다고 한다.
그 후 전효자의 효행이 알려지며 보건복지부장관및 전의전씨종친회장.사단법인 노인회 청원지부등의 효자상및 패를 받게 되였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사회에서는 보기드믄 효자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도 전효자는 젊은 33세라는 나이에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하였다.천안전씨문효공파에서는 전병남 효자의 효성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효자비를 세우기로 뜻을 모으고 문중의 여러사람들의 성금으로 이 효지비를 세워 후세에 귀감이 되게 하였다.
비석의 비문은 금계서원 도유사 여흥후인 민병달이 짓고 대전대학교 서예한문학과 교수인 전홍규가 비문을 쓰고
천안전씨 문효공파 종회에서 효자비를 세웠다,효행비는 마을주민들에 의해 잘관리되고 있으며 마을사람들의 쉼터인 정자도 옆에 자리하고 있으니
사람들의 입에 영원토록 전병남효자의 효행사실이 오르내릴것으로 보인다.[비문참조]
첫댓글 (어울림)
효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효행비를 세워준
동네분들의 그 마음씀이 한몫을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한 효자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니
정말 하늘도 무심하십니다.
자식을 앞세운 애닯은 부모의 마음이
어떻다는 걸 짐작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해피엔딩이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효행비가 조금 슬퍼보입니다
먼저 간 자식의 장기로 살아가는 아버지의 심정..
너무나 애석한 사연입니다...
참 애석한 사연입니다...
현대판 효자비네요, 그란디, 부모보다 먼저가는 불효는 우찌히나요~끙
돈이나 재산가지고 속 끓이는 가족도 많은데
진짜 효자지요
효행비에 담긴 뜻은 후대에 길이 새겨야 할 내용이지만 규모가 가히 상당하므로 가문의 위세로 비춰지는듯하여 퇴색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아마 교통사고로 죽자 문중에서 효자비를 세운 듯 합니다
간이식을 받아 건강히 잘 지내는 모녀를 제 주변에도 있습니다.
효자비까지 세우다니 그또한 대단하네요.
생각보다 그런분들이 많이 게시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