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는 중동의 안방이고 그 안방의 주인은 카타르가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다. 이건 그 지역의 역사가 말해준다. 아라비아 반도의 최대 실력자가 이븐 사우드(압둘 아지즈 빈 압둘 라흐만 이븐 사우드)가 창설한 현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지드 왕조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라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인데, 로렌스와 대화가 통하는 아라비아의 왕자(알렉 기네스 분)로 나온 그가 바로 이븐사우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디는 '사우드 왕가의'란 뜻이다. 현 사우디 국왕은 이븐사우드의 손자이며 사우디 왕가의 인원은 30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3000명이 사우디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그 중에서 특히 축구는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회교는 만민평등을 주장하지만, 중동사회에서는 계급사회의 구조가 시퍼렇게 살아 숨쉰다. 가장 꼭대기에 '셰이크'라고 부르는 지배자가 있다. '에미르'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토후(土侯) 또는 제후(諸侯) 쯤 되는데 지역의 영주로 이해하면 된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 변방 제후들의 연합국이다. 원래는 바레인도 이 연합의 멤버였으나 나중에 떨어져 나왔다. 카타르는 바레인의 한 귀족이 소유했던 땅으로서 석유가 나기 전에는 진주조개 양식으로 연명했던 척박하고 가난한 모래사막이다. 영국의 아랍식민지배의 결과 카타르가 바레인 이란 등 주변국의 간섭에서 독립할 수 있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에는 본업이 산적인 아랍추장이 하나 등장하는데(안소니 퀸 분), 카타르의 현 왕조인 칼리파 알타니가 바로 그런 존재의 후신이다.
아랍 중동지역에서 왕정체제를 청산한 나라는 이란 이락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 몇개뿐이고, 요르단 사우디 쿠웨이트 카타르 오만 UAE 바레인 등은 입헌군주제를 표방하고는 있으나 전 인구의 0.5%에도 미치지 못하는 왕족과 귀족들이 사실상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왕정국가 아닌 나라들에서도 전통적인 신분사회의 구조는 변함없이 살아있다. 중동의 왕가들은 모두 '셰이크'를 자처하고 있지만 그들 중에서도 뼈대있는 집안과 산적 출신의 구별이 있다. 전통적으로 중동사회에서는 유목민(베두인)들이 사회의 상층계급이고 농경민들은 하층계급이다. 중동의 왕가는 모두 베두인 출신이며 그들이 보호세를 받는 농경지에 아프리카에서 끌어온 흑인들을 농업노동자로 투입했다. 아프리카 원주민을 붙잡아 노예로 매매하는 사업은 유럽인 이전에 아랍인들이 담당했으며 아프리카 대륙의 동해안은 기원전부터 아랍인들이 장악했던 지역이다.
아랍의 왕가 중에서 가장 알아주는 가문이 요르단의 후세인 왕가와 사우디아라비아의 네지드 왕가다. 이들은 오스만투르크와 영국의 지배에 맞서 아랍의 자존심을 지키는 데 앞장섰기 때문에 존경받는다. 나머지 왕가들은 석유 때문에 떵떵거리는 것일뿐 중동지역에서는 산적놈들의 후예 정도로 여겨진다. 이는 특히 이란인과 이집트인들의 시각을 대변한다. 이란인들이 아랍인들을 얼마나 같잖게 여기는지 알고보면 기가 찬다. 이란은 회교국이긴 하나 아랍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문화를 보유한 전통문화대국이다.
눈썰미가 조금이라도 있는 이라면 중동 축구팀에 인종적인 차이가 심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사우디 카타르 UAE 오만에는 흑인 또는 흑인혼혈로 보이는 선수들이 꽤 있지만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락 등에는 흑인의 얼굴과 피부를 가진 선수가 거의 없다. 아리안족을 자처하는 이란에 이르러서는 흑인 선수는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다. 이란도 사실은 다민족국가이고 과거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북유럽 출신의 백인, 동양에서 데려온 몽골인 등 다양한 피부빛깔의 노예들이 재산으로 매매되었지만 이란의 기층사회에선 이런 이민족을 배제했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도태되었던 반면 출신이 한미했던 아라비아 반도의 기층사회에서는 흑인노예들이 아랍사회의 하층민들과 피가 섞였다. 평균적으로는 이락의 주민들이 아랍인의 인종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고,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에 가보면 노랑머리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유럽 백인들과의 혼혈이 보인다. 피부 빛깔도 이란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선수들이 UAE 사우디 오만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밝다.
중동이 산유국 클럽이라지만 1인당 소득은 인구가 적은 나라일수록 많고 인구가 많으면 1인당 소득도 적다. 쿠웨이트 카타르 UAE의 1인당 소득은 6만 달러를 넘지만 인구 4천만의 사우디는 2만 달러 수준이고 8천만의 이란은 빈국에 속한다. 석유매장량은 사우디>이락>이란>UAE>오만 순이다. 물론 1인당 평균소득이 그렇다는 것이지 대부분의 부는 극소수의 특권층이 독점하고 있으며 카타르 쿠웨이트 UAE 등에서는 인구가 적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막대한 석유판매수익의 덕을 보고 살기는 한다.(대학까지 모든 학자금 무료!)
중동에서 본격적으로 프로축구리그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그 전에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서아시아 축구의 절대적 강자였다. 이스라엘은 아랍제국들이 단합하여 AFC에서 축출되었고 이란의 팔레비 왕가에서 축구를 통치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눈여겨 본 중동제국들은 너도나도 축구에 투자하기 시작하여 유력 왕족들의 소유물로서 축구팀은 필수품목이 되었다. 왕족들의 경쟁적 투자로 인해 아프리카 오지에서 축구에 재능이 있는 선수들을 데려가다 귀화시키는 풍조가 일반화되었다. 산유부국일수록 귀화선수들이 많은 이유는 사우디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 예로부터 혼혈이 잦았고 그로 인해 피부빛깔이 다른 자들이 자기네 나라 축구를 대표하는 것에 별 저항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흑인선수들을 수입해서 그간 짭잘한 재미를 본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그랬던 아랍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 축구가 그들이 안방으로 여기는 카타르 땅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 조예선을 넘지 못하고 탈락했다. 사우디 축구가 정체된 탓도 있겠지만 시리아 요르단 등 그간 눌려지냈던 나라에서 축구에 투자를 감행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쨌든 사우디는 앞으로 정신차리고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고 예상이 된다. 조광래로서는 유력한 경쟁자가 하나 떨어져나간 것으로 여길 일이지만, 어제의 패배는 순하게 놀던 사자가 코털이 뽑혀 발광하는 사태를 일으킬 것으로 본다.
이슬람 중동은 자기들끼리는 툭탁대며 다투다가도 공동의 적이 등장하면 단합한다. 사우디를 중심으로하는 (산유부국vs돈 없는 아랍제국)vs이란 이것이 축구판에서 볼 수 있는 그들의 경쟁구도다. 그러나 한국 일본 호주 등 역외 축구강호들이 자기네 안방에서 벌어지는 아시안컵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필사적으로 단결하는 것이 또한 중동이다. 사우디와 쿠웨이트가 떨어져나간 마당에 이제 한국의 대항마로는 이란과 이락 UAE 카타르 시리아 요르단이 남았다.
파이낸스투데이 K리그 게시판 : '大macho'님 글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문화,역사를 바탕으로 침대축구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했으면 더 재밌었을 듯ㅎㅎ
이런거 재밌어요
역시 중동도 우리나라랑 똑같이 축구리그가 생겼군요.. 우리나라도 전빡빡이가 12.12쿠데타로 정권 잡은거 국민들 눈을 딴데로 돌리려고 만든거죠...
어제의 패배는 순하게 놀던 사자가 코털이 뽑혀 발광하는 사태를 일으킬 것으로 본다.ㅋㅋㅋㅋㅋ
박문성 해설위원은 이란 이라크 둘 다 강 건너에 있는 나라라 유럽 쪽과 가깝고, 사우디 카타르 등은 아니라던데, 제대로 못 주워들은 얄팍한 지식임 ㅋㅋ
지리적특성도 있겠죠...잘못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함
이란 이라크 두 민족이 다르고 이라크는 사우디 쪽과 민족이 같은데, 추가설명 없이 저렇게만 말하면 안 된다고 봄요. 게다가 이란 경기 때 말한 거임.
님제밋어요
확실히 페르시아놈들이 다른 아랍국들하고 같이 취급받는 거 안좋아하고 자부심도 쎄다고 들었네요
근데 페르시아 제국이 한가락 했었고 자부심 있는 건 좋은데 왜 침대축구는 똑같이 하는데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