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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꼬막축제와 함께한 제석산(563m)이야기(제1편)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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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꼬막축제와 함께한 제석산(563m)이야기
2008.11.15일 오전07시40분 성내 전철역을 출발한 우리들은 제석인들은 메카 벌교 제석산(563m)으로 향했다. 본회 제231차 정기산행을 겸해 제7회 벌교 꼬막축제에 참가하는 특별 이벤트도 마련된 산행길이 였다 고향을 찾아 간다는 설레임으로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여러가지 갈등이 많았다. 과연 힘든 무박산행길에 회원님들이 동참해 줄지도 의문이였고 부대 경비문제도 걱정거리였다. 그런데 공고가 나간 뒤로 호응도가 좋아 오히려 버스 좌석이 부족할 판이 되었다. 결국 젊은 회원들이 복도에 앉어 가는 불편을 감수하게 되었다. 총인원 48명이 1박2일의 일정으로 3번째 고향의 제석산을 찾아 먼길을 떠났다.
전세버스 유리창에 멋진 제석산악회 명찰이 나 붙었다. "벌교꼬막축제 제석산" 월당선생의 글 솜씨다.
한양대학교에 근무하시는 사진작가 분이 찍어 주신 단체 사진이다. 스포츠 신문에 기사용으로 쓸거란다. 아침 일찍 장비를 지참하고 나와 주신 성의가 고맙다. 그런데 7명의 회원님 얼굴이 빠젖다. 그세 어디 간겨?
머나먼 고향 벌교 찾아가는 길은 진짜 멀었다. 대진고속도로 상의 함양 휴계소에 들린 장면이다. 이곳에서 남원 구례간 국도를 이용할 계획이란다.
정오를 넘긴 1시30분에 벌교 장좌리 대경가든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식사를 예약한 곳이다. 이 식당은 옛날 제석산악회에서 고흥 팔영산을 찾아 갈때 이 집에서 아침식사와 산신제 제물을 장만해 갔던 일이있었다. 그날 트럭에다 제물과 막걸리 통을 싫고 팔영산으로 향했던 기억이 떠올라 감회가 깊었다. 고향 안택조 형님께서 직접 꼬막을 갖어와 별식으로 식단에 올려주시고 벌교읍의 기관장들 까지 안내를 해주신 열정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었다.
출향인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시는 기관장님들이 회원님들에게 인사를 하신다. 벌교읍장(김성곤), 벌교 꼬막축제 추진 위원장(이동현), 보성군의회 의원(강규종)을 안택조 형님께서 소개 했다. 저녁식사는 꼬막축제 추진 위원장님께서 특별히 준비를 해 놓겠다고 말씀하셔 큰 박수를 받았다. 고향을 찾아온 제석인들에게 베풀어주신 이 온정 잊이 않겠습니다. 짝 짝 짝......
역시 고향의 음식은 입안에 짝짝 붙는다. 생선찌게에다 꼬막을 곁들인 백반정식이다. 우선 내 입에 맞는 음식으로는 멸치젖갈과 게장 그리고 파래무침이였다. 꼬막을 깐 뒤 양념에 무쳐 내놓은 것은 벌교만의 맛갈스런 별미다. 파김치도 똑소리 난다. 밥을 두공기나 먹어 치웠다. 이 백반정식 가격은 6천원 이였다.
오후2시20분 산행들머리로 잡은 동화사 절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 절은 별양면에서 제석산 동쪽 끝에 위치해는 고찰이다. 대웅전 뒷편에 오래된 동백나무가 일품이다. 마치 고창 선운사 동백을 연상케 한다. 절집은 크지 않아도 대웅전 마당을 지키고 서있는 돌탑 만큼은 예사롭지가 않다. 이 절이 신라때 축조된 것이라고 하니 역사가 꽤 깊은 사찰이다.
절집을 오른 쪽에 두고 임도를 따라 오르면 이렇게 멋진 대밭 길이 나온다. 스스슥 대잎 부딛치는 소리가 정겹다. 이런 운치있는 길이라면 하루종일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산죽을 유독 좋아 하는 이유가 있다. 우선 사시철 푸르고 언제나 당당해 보여 좋다. 말하자면 선비의 기게를 보는 것 같아 내 자신 스스로가 목에 힘이 들어간다.
대밭을 통과하고 나면 시멘트 포장길이 경사가 조금씩 급해진다. 주변에 억새가 무리지어 핀 곳도 있고 다래나무가 잎을 다 떨어뜨린 체 엉켜 있기도 한다. 이제 마지막 농가 한체가 있는 언덕배기로 올라챈다. 방금 먹은 늦은 점심이 속에서 부글 거린다. 밥을 두 공기나 먹어 치운 뒤라 뱃속이 편치를 않다. 미련한 주인 양반 욕을 해대는 것 같다. 오늘 따라 날씨가 봄날 이다. 추위 걱정을 해 겨울 옷을 입었더니 그것도 죽을 지경이다.
우공선사께서 점심식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가까히 닦아 같는데도 시큰둥이다. 그 중 상당히 떼깔 좋은 우공선사께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니 뭐꼬?" 쳐다보는 눈꼬리가 못마땅한 것 같다. 지금 식사중인데 지나가는 산꾼이 똑딱 카메라를 들이내니 눈꼴 사납다는 뜻이다. 옛날 내가 어렸을 적에는 소죽을 끓여 먹였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소들도 피자 같이 손 쉽게 가공된 음식을 먹는 것 같다.
제석산 자락에 붙어사는 마지막 농가 주택 입구다. 이렇게 친절하게 이정표를 제작해 세워 놓은 것은 자꾸 산꾼들이 찾아드는 통에 귀찮아서? 이쪽은 사유지이니 들어 오시지 말고 반대쪽 길로 가라는 지시다. 그런데 "제석산 가시는 님 길" 이라고? 존칭어까지 붙여 놓은 것을 보니 예절 바르다. 어떻든 여기서 속세와 인연을 끊고 제석천왕이 계시는 하늘로 올라간다.
깊어가는 가을 속의 동화 같은 오솔길이다. 가을은 낙엽 때문에 슬픈 계절이다. 초록의 생명들이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저렇게 나 딩군다. 바람이 불면 힘없이 밀려가고 비가 내래면 초라하게 젖어 든다. 생명이 없는 저들의 낙엽을 바라보며 인간들은 어줍잖게 시인이 되기도 한다. 제석산 오름길이 동화사 쪽에서 보면 제법 운치가 있다.
한바탕 땀을 쏟아내고 경사지를 올라서자 툭 터진 여자만이 펼쳐 진다. 대한민국 유일한 청정해역 여자만(女瓷灣) 이다. 옛날에는 저 바다를 통해 여수,부산까지 뱃길이 통했다. 여자만은 갯뻘의 상태가 좋아 어패류의 보고다.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꼬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서해안의 개꼬막을 벌교 꼬막으로 속여 파는 장사치들도 극성이다. 오늘은 시계가 약간 흐렸다. 지금 서울에는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제석산은 화창한 봄 날이다.
제석산 정상에 세워진 표지석이다. 1994.4.15일 제석산악회에서 건립했다. 서체는 해천 민영현 선생님이 쓰신 것이다. 제작은 벌교읍 연산리 석제사에서 만들었다. 지금으로 부터 5년전 엄마와 큰딸, 외손녀가 함께 이곳 제석산을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의 추억이 그리워 오늘 산행에 따라 나섰다. 유혜민양이 벌써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으니 참말로 세월 빠르다.
제석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바라다 본 낙안 읍성의 전경이다. 오른 쪽의 암봉은 금전산이다. 그뒤로 호남정맥이 백이산을 향해 굽이쳐 간다. 낙안 읍성은 평야지대에 세워진 성벽으로 특이한 형세를 지녔다. 조선조 때에는 낙안현으로 불리웠고 임경업장군이 현감으로 부임 하면서 쌓았던 성벽이 원형 그대로 보존 되어있다. 성벽안에는 마을이 현존해있고 생업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 살아있는 민속촌으로 유명하다.
제석산 정상은 비좁은 편이여서 단체 사진 찍기에는 불편하다. 성질 급한 회원님들은 먼저 출발했고 증명사진 좋아하는 꾼 들만 남았다. 제석산에 큰 불이 두 번이나 발생해 정상쪽에는 나무들이 많이 죽어 버렸다. 이제 철쭉나무가 어렵게 그 자리를 찾이 했지만 아직도 쓸쓸한 느낌이다. 능선쪽에 철쭉이라도 더 많이 심어 잘 가꾼다면 제석산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제석천왕님 저희들이 5년만에 다시 찾아 왔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빌어 저희들이 산을 찾아 마음을 다스린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큰 사고 한 번 없이 무사산행을 할 수 있었음은 오직 당신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을 함께 찾은 산우님들 가정에 행복과 건강이 충만케 하옵시고 이들의 소망이 제석천에 닿아 그 꿈을 이룩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여기 작은 정성을 들여 술 한잔을 올리오니 부디 흠향 하시옵기를 바라나이다.
제석산은 크게 두 개의 봉우리로 되어있다. 남쪽 끝에 우뚝 솟은 암봉은 벌교의 산으로 이름은 신선대다. 정상은 북쪽 끝에 있고 토봉인데 순천시에 속해있다. 그러니까 토봉과 암봉이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형상이다. 정상에서 줌으로 당겨본 남쪽의 신선대 전경인데 제법 그림이 수준 급이다.
정상에서 신선대 쪽으로 진행을 하다 발견한 분재형 소나무다. 비슷틈하게 누워있는 암반의 틈새를 비집고 뿌리를 내렸는데 신기하기 이를데가 없다. 유심히 살펴보니 믿둥의 상태가 건강하고 바위 틈새에 뿌리가 깊이 박혀있다. 소나무 뿌리때문에 바위가 갈라젖는지도 모르겠다. 줄기도 튼튼하고 잎도 싱싱하다. 제발 수많은 등산객들이 소나무가 다치지 않게 조심해 주었으면 한다. 너무 이쁘고 사랑스러워 수통의 물을 한 통 다 바위 틈새에다 쏟아 부었다.
신선대의 암봉을 오르고 있는 회원님들을 가까히서 잡아 보았다. 이 암봉은 끝 지점에서 다시 되돌아 와야한다. 그것은 절벽 끝이 되어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제석산의 바위는 귀신을 쫒는다는 전설이 있어 일본인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어하는 돌이라고 한다. 바위 성분에 철(鐵)이 70프로 이상 함유되어 있어 돌이 아니고 쇠라고 할 정도다. 그래 작은 돌멩이 하나를 들어 보면 무겁기가 쇠덩어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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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기 갔다와서 허벅지에 모래주머니 단거 같오... 자~ 사진들에서 보리를 찾아보시라~
헤어스타일만 보면 금방 찾지뭐..근데 벌교댁 꼬막 무칠줄은 아시남..ㅎ
4.5장..^^ 1.제석인->벌교사람..? 2.탈춤에 나오는 그 제석산..? 3.동부6군,순천,여자만,,.....익숙한 동넵니다..ㅋ
저 꼬막백반정식 먹고잡다....
벌교꼬막에 소주 한 잔~~커~~예술이지~~^^*
부럽당...
오우......이러면 아니되는데...오늘도 땡긴다 ^^
동감 100%........클났다 중독 초기 증세다.....
안가본 동네중에 하나다...........
오~~가는길도 넘 좋고..백반정식도 너무 좋네요..아..배고파~~~
역시 장인어른 멋있으셔~~^^*
도대체 장인 어른이 몇명이세요?
only one!
할 말이 읍다....
20대 이후로 산 정상까지 올라가본 일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ㅎ 맛있겠고,, 멋있다,,,ㅎㅎ
보리가 벌교댁였나? 제석산 표지 배경으로 3명 찍은 사진에 나오더만
보리 앞에서 주먹 자랑 하면 안되겠구만
구럼~구럼~~ㅋㅋ
난 서울이거덩~ 아빠고향이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