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종로구 필운동 사직공원 옆에 살 때 만난 "장여사"는 한국일보 여기자 였다.
학식도 외모도 실력도 대단한 그녀는 "남편"은 총맞아 죽고 아들 하나 데리고 평양에서 남한으로 내려 왔다고 했다.
가장 친한 친구도 역시 아들 하나 데리고, 밤중에 산 넘고 걷고 걸어서 "두여인"은 남쪽으로 온 것이다.
평양여고를 졸업한 "두여자의 일생"을 지켜보면서... 인생(人生)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본다.
장여사는 한국일보의 유명한 기자로. 활동하면서 아들을 경기중, 경기고, 서울법대 수석 졸업 그리고 미국으로 가서 나사 미항공우주국에 취직후 계속 공부하여 하바드대 교수 등 공부 벌레로 성공했다.
장여사와 만남 후, 장여사는 자주 아들 자랑과 편지를 보여주었다.
지금부터 35년전 이야기다.
서울대학 시절 아들 뒷바라지 하는 재미로 살고 아들자랑 하는 재미로 살고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간 후, 편지만 올 뿐 가끔 국제전화, 얼굴은 도통 볼수가 없었다.
너무 바쁘니 오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의 글이 편지에 적혀 있었고, 장여사도 이 곳 신문사 일이 여간 바쁜게 아니었다.
휴가 때 미국에 아들 보고싶어 미국에 갔는데, 아들은 만나 주지를 않았다.
여기 저기 강의, 강연 스케쥴때문에 엄마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것은 성공한 아들 아니냐며 아들은 분명 엄마가 원하는 성공한 아들이 되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시라는 거였다.
울면서 비행기타고 한국에 왔다.
생일날 이면 어김없이 20불 카네이션을 주변 꽃집에서 사서 달고 다니라고 보내온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결혼식 했노라고 사진과 편지를 보내왔다.
워낙 바빠서 그냥 둘이 동거를 하기 뭐해서 간단히 사진만 찍는 결혼식 했노라고 이해해 달라고 했다.
노랑 머리 파란 눈 며느리 사진으로 보고 내 앞에서 엉엉 운다.
성공한 내 아들하며 슬피 운다.
엄마 재산은 전혀 필요 없으니 사회 단체에 기부 부탁한다고 써 있었다.
한국에 올 시간이 전혀 없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미국 간 날 마지막 얼굴 본 아들 10년이 흐르고 또 10년이. 흐르고 .......
장여사 친구는 평양에서 오자마자 남대문시장 순대국집 주방에 취직했다.
아들 때문에 취직이 불가 했으나, 순대국집 주인은 받아 주었다.
해서 열심히 일했고 아들은 학교에 보낼 수가 없었다.
식당 근처에서 남대문시장에서 뛰어 놀고 6년 후 순대국집 주인이 죽고, 그동안 모은 돈과 사채 일수돈 빌려 순대국집을 인수했다.
24시간 영업 남대문 시장 순대국 집 골목 나란히 여러 개 집들 중 한곳 열심히 장사를 했다.
아들이 도와주고 효자 아들은 비록 국민학교도 안 가 보았지만, 아침마다 엄마를 업고 재롱을 부린다.
18살에 시골에서 올라와 식당에서 일하는 2살 많은 여 종업원과 결혼식을 올렸다.
아들 셋 딸 하나 웃음꽃으로 시작하는 그 집은 돈 버는걸로 20년전 부터 강남에 땅을 사두었다.
무식하니까 여기 저기 미사리, 오금동, 천호동에 조금씩 땅을 사두었다.
그걸 모두 팔아 테헤란로에 34층 건물을 사고 삼성동에도 건물을 샀다.
두 여인은 가끔 만난다 근데 이제 장여사도 연락이 두절 되었다.
서울대 하바드대 교수와 국민학교가 뭔가요?
"하바드대 교수"와 "순대국집 주인" 아들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하고 잘 사는건가요?
첫댓글 슬픈사연 글 이네요 순대국 주인이 행복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다그러디다
잘키운 아들놈은 처가집에 빼앗긴다고~~~~~~
순대국집이 헐씬
배고풀때 어린시절 순대국이 생각 나는군요
순대국에 소주 한잔 거나하게 하시자구요.
아무튼 열심히 열심히 일하는게 행복입니다
순대국에 소주한잔 보다 맛난회한사라에 소주한잔이 더좋지요
조만간 한잔 하자구요
순대국 한그릇 하시져 ㅎㅎ
순대국에 소주 한잔 좋지요
소주한잔할 기회를 만들지요
잘배우멷
모해여
사람이. 되야지
그니까
넘 잘난 자식
자신밖에 모르게 키우면 안된다니까.
정답입니다
아무리 잘난놈도 인성교육이 안되면 잘키운놈이 아니지요
공부만 잘한다고 출세한것은 아니지요
낮은곳을 볼줄알고 소외된이웃을 보듬을줄 알아야 성공된 인생을 사는거라 생각 합니디ㅡ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행복은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