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성당 성탄 이야기/윤용혁
욕골집 바로 옆에
애단이라는 성당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당 안에는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풍금과
영국에서 들여왔는지
영어와 로마숫자가 새겨진
커다란 난로가
성당 중앙복도에
딱 버티고 앉아
이글거리는
장작불을 삼키고
있었다
소나무 두 그루를
잘라 세운 제단 앞
크리스마스 트리에는
은종과 샛별
그리고 색종이를
말아 이은
줄이 쳐 있고
솜들이 흰눈을
흉내내며
얼기설기 얹혀있다
주일학교 성탄극과
재롱잔치를 위해
한 달 전부터
아이들은 저녁마다
성당에 모여 연습에 몰두할 때
짓궂은 동네 형들은
어디서 났는지
후레쉬로 아이들의
얼굴을 비추며
장난을 치다가
주일학교 선생님한테
걸려 성당밖으로 쫓겨났다
성탄 이브날,
드디어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재롱잔치가
성당 저녁미사를 마친
교인들 앞에서 펼쳐졌다
한 여자 어린이가
뒤꿈치를 구르는
율동을 해가며
귀엽게 탄일종
노래를 불렀다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 들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성탄극이 이어지고
신부님의 총평이 그치면
성탄절 어린이 행사가
막을 내렸다
시간이 깊어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려할 때
큰대문 밖에서
호소식이 진행되었다
주로 불리어지는
노래가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그리고 "노엘"이었다
노엘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좋았다
어머니는 대문을
활짝 열고나가
미리 준비한
양초와 과자봉지를
호소식 교우들에게 내밀었다
"즐거운 성탄입니다"
"메리 크리스 마스!"
새벽녘
숭늉그릇이 꽁꽁 언
머리맡에 새 양말과
크라운 산도 과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밤사이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굴뚝을
통해 오셨다가
선물로 주고 가셨다는데
좀 의아했다
우리집 굴뚝은
다 쓰러져 가고
저녁에 어머니가
군불을 때 무척 뜨거우셨을텐데
멀쩡한 대문을 놔두고
어찌 그리
좁은 곳을 통해 오셨는지
어린 나로서도 도통
이해가 안 되었다
성탄날 아침
밤새 흰눈이 내렸다
"우리가 사랑하는
주일학교는
천주께서 은혜로이
세워주셨네
따듯하고 즐거우며
애정에 넘쳐
일년 중에 쉰 두 번
여기 모이네" 라는
주일학교 교가를 부른 후
성당 주일학교에서는
개근상과 과자봉지를
아이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주일학교에 잘 나온
아이나 그렇지 않고
성탄절날 과자를 준다니까
생전 성당근처도
얼씬거리지 않던 아이까지
과자를 똑같이
나누어 받는 것에
불만을 품은
동생이 심술궂게
옆에 아이를 때려
울렸다
과자를 입안에 욱여넣던
그 아이는 눈물과
콧물이 과자와
뒤범벅이 되어
과자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가관이었다
주일학교 여선생님이
달려와 동생을 나무라고
성당안이 떠나가도록
우는 아이를 달랬다
인천중학교에 다니던
큰형이 성탄절날
오전쯤 집에 왔다
어제 저녁에 오려했는데
양도 시골집 나오는 막차를 놓쳐
강화읍 성당에서
중고등학생부원들과
밤새 놀다가 왔단다
놀던 중 인중 모자를
눌러쓰고 목청을 가다듬고
거룩한 척
노래를 한 곡
불렀는데 시작하자마자
가사를 까먹어 혼났단다
"천사들이 깊은 밤에~"
까지는 나갔는데
그 다음이 생각이 안나
고장난 카셋트처럼 반복하며 쩔쩔매는데
듣다못한 어른 한 분이
"그래 천사들이 깊은 밤에 어쨌다는거냐?
답답해 죽겠다?"
좌중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형은 쥐구멍을
찾고 싶었단다
뾰족한 종탑이
우뚝 서있고
성당지붕이 하얀 눈으로
소복히 덮혔던 성탄절날
풍경이 아련하다
화이트 크리스마스/플루겔연주
https://youtu.be/6_h54XrMHjs?si=Dpn6mnptqZYCkQFp
트럼펫 연주
https://youtu.be/gIiq6zUcD3w?si=Ul0tJBNhysYVv9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