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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깡(박계순)]

[광주갈피갈피]양림동에 호랑가시나무 심어진 내력

광주의 나무들

▲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심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양림동의 호랑가시나무. 이 수종은 기독교 문화와 밀접하다. 안현주 기자 presspool@gjdream.com

입추와 말복을  넘겼지만 아직 폭염의 기세가 완강하다. 다들 해가 갈수록 여름이 점점 뜨거워진다고 아우성이다.

 

기상청의 얘기로는 그래봤자 94년 여름보다는 덜 덥다지만, 그래도 새벽까지 계속되는 열대야에 잠을 설치고 한낮엔 자외선 차단제 안바르고 맨살로 뙤약볕 아래에 나설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래서 도로나 교통섬, 버스정류장에서 손바닥만한 그늘을 찾을 때면 나무들의 존재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도심의 찜통더위는 숲의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그 살인적인 더위로 유명한 대구 같은 곳은 지속적인 녹화로 도심의 체온을 낮추는 데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광주도 푸른길 가꾸기나 도심공원의 조성으로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예전의 녹음을 되찾는 데는 오랜 시일이 필요할 듯하다.

 

광주도 원래는 숲이 울창한 곳이었다. 무등산이 땔감 채취로 피부를 벗겨낸 듯 벌겋게 변해가던 조선후기에도 읍성 안팎은 커다란 교목들 덕분에 짙푸른 녹음을 유지했다. 경양방죽의 둑길을 따라 늘어선 숲이나 북문 밖 유림숲을 빼더라도, 도시 곳곳에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지켜온 덩치 큰 교목들이 늘 생기를 불어넣어 줬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나무는 궁수(弓樹)였다. 이 나무는 500여 년 전에 《동국여지승람》이란 책에 기록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다. 책에 따르면, 궁수는 남문 밖에 있었는데 줄기가 수십 아름이나 됐고 높이가 70여 척에 이르렀다고 했다. 특히 고을 사람들이 그 잎이 피는 시기를 보고 풍흉을 점쳤던 것으로 보아 매우 신성시했던 것 같다. 유감스럽게도 이 책이 나올 때쯤엔 이미 말라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나무였던 까닭에 궁수를 잇는 나무는 계속 식재되고 관리되었던 것 같다. 60년대까지도 지금의 남동성당 앞 제봉로 길 한가운데에 해당되는 지점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무렵에 촬영된 사진에서도 어렵사리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데, 남문 밖(남동) 주민들이 이 나무의 잎을 보고 풍년을 점쳤고, 당산나무로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 나무도 제봉로가 놓이기 훨씬 전에 말라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동의 느티나무처럼 급격한 도시개발로 많은 나무들이 도심에서 자취를 감췄다. 1920~30년대 광주천을 직강화하면서 강변을 드리운 숱한 나무들이 벌목됐다. 지금은 옛 적십자병원 뒤편 주차장에 몇 그루만이 남아 있다. 60년대 금남로 확장 공사 때도 상당수 고목들이 베어졌는데, 그 중에 실버들 한 그루가 지금 시립민속박물관에 그 뿌리 부분으로만 남아 있다.

 

용케 살아남은 나무들도 있다. 옛 전남도 의사당 앞에 있는 회화나무가 대표적이다. 이 수종은 종종 학자수(學者樹)로 불린다. 거침없이 뻗어나간 가지들이 곡학아세를 멀리하는 학자의 고집스런 기질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공교롭게도 이 회화나무만큼 광주의 독립과 민주화운동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나무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도시의 나무와 숲은 그 자체로 역사를 담는 그릇일 때가 많다. 양림동에는 호랑가시나무가 있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비교적 잘 보호받고 있다. 혹자는 양림동에 정착한 초기 서양 선교사들이 심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수종이 기독교 문화와 밀접하고 지금도 성탄카드의 장식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혀 엉뚱한 얘기는 아닐 성 싶다.

 

호랑가시나무처럼 이색적인 나무가 벚나무다. 수십여 년 전까지 옛 춘태여상 주변에는 벚나무가 장관을 이루었다. 원래 이 일대는 남사정(南射亭)이란 오래된 정자 혹은 그 터가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1920년대 지금의 조선대병원 부설 장례식장 터에 배수지가 조성됐는데, 이들 벚나무도 그 무렵에 식재된 것으로 여겨진다. 순환도로가 놓이고 배수지 터 주변에 건물들이 들어차 지금은 몇 그루만 남아 있다.

 

광주공원의 벚나무도 유명했다. 지금은 사직공원·옛 농촌진흥청 부지·광송간 도로 옆의 벚나무에 밀려 유명세가 덜하지만 일제 때엔 광주의 대표적인 명물로 꼽혔다.

 

물론 벚나무는 우리에게 늘 묘한 느낌을 준다. 이 나무가 일본의 상징인 탓에 요즘처럼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때면 언급마저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다른 이의 원죄를 뒤집어쓴 나무를 늘 희생양으로 삼을 순 없다. 되레 자신을 베러 오는 나무꾼에게도 그늘을 드리워주는 나무의 우직한 헌신성에 고개가 숙여진다. 비록 말 한마디 통하지 않지만 심신에 여유와 안정을 주고 창의력을 북돋아 주기도 한다. 그래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같은 거대시설만큼이나 문화도시 광주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기사 게재일 : 2006-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