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태권도 도장의 유래 ☞
우리 나라 최초의 도장은 일제식민통치가 끝나갈 무렵 한국인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던 무도수련을 당시 당수도란 이름으로 일반인들이 수련을 받을 수 있게 일본정부로부터 허락을 받아낸
청도관의 창시자 이원국옹은 1943년 서대문 영신학교 강당에서 현재의 태권도를 잉태하는 고귀한 역사의 한 장을 열었다 (월드태권도지, 1997)
해방과 더불어 개성 장안동 자남산의 관덕정에 노병직이 송무관을 창설하였으며,
서울역(교통부 철도국)에 황기가 무덕관을 세웠다.
윤병인이 YMCA 체육관에 권법부를 만들었고
을지로3가 한국체육관에 전상섭, 윤쾌병이 연무관을 창설하여 태권도교육을 통해 후배를 양성하였다(한국 태권도사, 1988). 이 창시자들은 중국의 권법과 일본 공수도의 서로 다른 요소를 제거하여 한국의 정통적이며 독창적인 기술을 창조하였던 것이며 무도를 수련함으로서 강인한 체력과 수준 높은 손발의 공격, 방어 기술 그리고 정신수양을 하고 이를 통한 훌륭한 인격을 도야할 수 있는 교육적인 가치를 중요시하였다.
일반인들은 태권도의 놀라운 파괴력과 유연하고 민첩한 공격, 방어의 기술에 감탄하였으며, 무도로서의 가르침이 생활에 실천이 가능한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태권도가 무도로서 그리고 스포츠 문화로서 정착해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도장을 세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태권도 도장의 모체가 되었다.
초창기 태권도 도장의 관 계보는 창시자의 도장이 창설되면서 특성을 가진 각 관으로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퍼져 나갔다.
1945년 해방 전후
청도관(이원국)
송무관(노병직)
연무관(전상섭,윤쾌병)
무덕관"(황기)
YMCA권법부(윤병인) 1950년6.25사변
청도관(손덕성,엄운규)
송무관(노병직)
지도관(윤쾌병)
무덕관(황기)
창무관(이남석) 1960년대
청도관(엄운규)
오도관(최홍희)
정도관(이용우)
송무관(강원식)
지도관(이종우)
한무관(이교운)
무덕관(홍종수)
관리관(김인식)
창무관(김순배)
강덕원(박철희)
군에서는 최홍희가 1946년부터 태권도(당시 당수도라 칭하였음)를 계속적으로 지도함으로서 국방체육의 한 분야로 정착되기에 이르렀고 군경학교에서도 필수적으로 수련하는 등 급속도로 보급 지도되었다. 좁은 장소에서도 별다른 도구사용이 필요 없어 쉽게 수련할 수 있고, 호신술로서 우수한 기능을 하였던 태권도는 용이한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겨루기에서는 발차기 기술 등의 특이한 기술을 발휘하여 각 관의 특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 가운데 창시자들에게서 직접배운 손덕성, 엄운규, 현종명, 이종우는 뛰어난 기술을 가진 자들로 인정받았다(김명수,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