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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 지 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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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장 스크랩 테스 下
동우 추천 0 조회 29 10.08.01 16: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에인젤을 향한 애오라지한 그 사랑이란 놈이 테스의 신세를 망쳤다.

 

내 느낌으로는 테스의 진면목을 파악하고 이해하여 수렴하는 사람은 차라리 알렉쪽이었고, 그러므로 테스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알렉이 아니었을까.

나는 테스가 알렉의 청혼을 받아들여 주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그리하였으면 테스는 행복하였을 것이다. (그러면 소설이란 놈이 이루어질 턱이 없을 테지만, 테스에 스민 나의 감정이입의 상태는 그 정도로 연민에 가득차 있었다. 하하)

 

에인젤 클레어.

캘빈교의 목사아버지와 캐임브릿지 출신의 경건주의류(類) 형들을 두었지만 막내인 그는 이를테면 이단아(異端兒)의 폼을 잡는 나름 투철한 이념가(理念家)였다.

예정론이라던가 인과응보, 또는 신비주의에 경도된 기독교 교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였고, 형이상학의 추상성이라던가 인습과 전통의 엄숙주의나 허위성을 경멸하여 그리스적 현세(現世)의 가치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理想主義者).

 

그러나 내 보기에 에인젤은 여자에 대하여 혹은 세상사(世上事) 인간사(人間事)에 대하여 유취(乳臭)한 애송이.

내 알거니와 이념가란 대부분 이와 같은 얼치기다.

몽롱한 이상(理想)에 사로잡혀 현상(現像)의 진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렴하지 못한다.

현상에다가 자신의 이념을 투사하여 해석한다.

어쩌면 그가 사랑한 대상은 테스가 아니었다.

자신의 이상이 투영된 테스, 자연의 건강함과 신선함 그 아름다움의 이데아를 테스에 덧씌워 그녀를 사랑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의 감정모체의 진실은 어떠하였는가.

“내가 사랑한 여자는 당신이 아니오. 당신 모습을 한 다른 여인이었소.”

 

작가가 일견 의식하였을지도 모르지만, 소설속 묘사된 그의 언행에 뿌리깊은 남성우월주의를 나는 보았고, 무엇보다 에인젤은 지독한 자기중심적 인간이다.

짐짓 자신의 이상(理想)에 어긋난 테스의 현실을 용남치 못하여 절망하는 폼을 잡고 있지만, 그는 또한 위선자였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였더라도, 그의 감정모체는 여전히 고루한 인습에 얽매여 있었다.

테스의 순결에 대한 이중적 잣대, 테스의 본질적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는 청맹과니였을 뿐이다.

자신이 그토록 경멸해 마지 않았던 그 영역, 정작 그의 관념의 실체는 바로 그곳에 고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얘기가 끝나자 이제껏 애정에 넘친 속삭임의 흔적은 앞을 다투어 소리 없이 사라져 버리고, 어리석었던 반소경 같은 어린 시절의 메아리만 되풀이해 들렸다. 클레어는 아무런 표정없이 불을 뒤적이고 있었다. 한참 타다 남은 불을 뒤적이다 그는 벌떡 일어섰다. 비로소 그녀의 고백의 힘이 그의 뇌리에 미친 것이다.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지고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계속 마루 위를 걸어다녔으나 클레어의 초조한 태도는 아무리 애써도 괴로운 심정이 그대로 표출되는 것이었다. 그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러나 그의 음성은 그녀가 언제나 듣던 감성이 넘치는 소리가 아닌 가장 어색한 음성이었다. 테스! 네, 에인젤. 나는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안 될까? 당신 태도로 보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소. 설마 당신 머리가 돈 건 아니겠지! 당신은 돌지 않았어. 여보, 테스! 하지만 그런 가정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없지 않소? 나는 맑은 정신으로 말씀드린 거예요. 그는 현기증을 느끼면서 말을 이으려고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그렇다면, 왜 미리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어! 아냐, 하려고 하는 것을 내가 말린 일이 있지. 이제서야 생각이 나는군! 이러한 그의 말들은 표면에만 이는 잔물결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몸을 돌려 의자 위에 몸을 굽혔다. 테스는 방 복판에 있는 그에게로 다서 눈물로 흘리지 않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무너지듯 그의 발 아래 무릎을 꿇고 그대로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 용서해 주세요! 제가 당신을 용서해 준 것처럼! 그녀는 바싹 타들어가는 입으로 속삭였다. 저는 당신을 용서했어요! 그가 대답을 하지 않자 그녀가 다시 말햇다. 당신이 용서받은 것같이 저를 용서해 주세요! 당신을 용서해 주지 않았어요, 에인젤? 그렇지, 당신은 날 용서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저를 용서하지 않으시겠다는 건가요? 이것 봐 테스, 당신의 경우는 용서를 바랄 수 없는 거야! 당신은 전엔 지금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소. 그런데 지금의 당신은 예전의 그 인간이 아니야.

 

그는 말을 멈추고, 갑자기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지옥에서 들려 오는 것처럼 소름이 오싹 끼치는 해괴한 웃음이었다. 제발 그만 하세요! 죽을 것만 같아요! 저를 가련하게 여겨 주세요! 클레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얼굴이 창백해진 채로 발딱 일어나 소리쳤다. 에인젤, 에인젤! 왜 그렇게 웃으셨죠? 그 웃음 소리가 얼마나 저를 괴롭히는지 아세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제껏 오로지 당신만을 바라고 그리워하며, 또 당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기도해 왔어요. 그게 바로 제가 품고 있는 당신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에인젤! 알고 있소. 당신이 지금의 저를 사랑하시는 줄 알았어요. 당신이 사랑하시는 게 지금의 저라면 어떻게 그런 얼굴로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겠어요? 전 무서워요. 당신을 사랑한 이상 어떤 변화나 어떤 굴욕에도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겠어요. 저는 더 이상의 것도 바라지 않겠어요.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 제 남편인 당신이 저를 사랑하지 않겠다는 거죠? 다시 말하지만, 내가 사랑한 여자는 당신이 아니란 말이오. 그럼 누구란 말씀이에요? 당신 모습을 한 다른 여인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테스는 느꼈다. 클레어는 자기를 순진한 가면을 쓴 죄많은 여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알아채자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뺨은 힘없이 처지고, 입술은 마치 마른 나무의 조그만 구멍 같았다.

 

브라질에서 심각한 고난을 겪으면서 비로소 사안의 진실을 깨닫게 되는 에인젤.

실패한 이상(理想), 실패한 영육(靈肉)의 꼬라지가 되고서야 에인젤은 다시 테스를 찾았다. 흐음..

 

아이고. 여보게 에인젤, 너무나 늦어 버렸네.

아니, 늦고 자시고 간에 자네는 다시금 테스를 찾아서는 아니 될 노릇이었네.

자네는 테스의 내면적 현실(테스의 성품과 자존심과 생각등등)을, 테스의 환경적 현실 (거간의 테스의 역정)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을 뿐 아니라 현실에 근거하지 않는 얼치기 이상주의자인 자네가 그녀에 관하여 갖고있는 상상력이란 너무나 빈약한 것이었다네.

아아, 근본적으로 자네는 테스의 본질에 대하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사람일세그려.

극도의 경제적 궁박, 맏딸로서 이고 진 가족의 생계, 테스의 빼어난 미모, 주변의 사내들, 알렉의 끈질긴 유혹, 급변하는 영국 사회 경제적 환경...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면 은행에 맡겨진 보석을 팔던지, 자네의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든지 함으로 궁박에서 벗어나 있을거라는 따위의 자네 생각이란 얼마나 안일한 것이었던지.

알렉에 비하여 자네는 풋내기, 테스의 자존이라는걸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내였다네.

당장 돈이 필요할거라는 알렉의 얘기에 테스는 “시아버지한테 있어요. 부탁만 하면 얼마든지 받을 수 있어요.”라고 대응하였고 알렉은 말하였다네. “부탁만 하면 말이지. 하지만 테스, 당신은 그런 부탁 따윈 하지 않을 걸. 난 당신을 잘 아니까 말이야. 차라리 굶어 죽으면 죽었지, 그런 돈 부탁을 할 여자가 아니야.”

 

자네가 샌드본 고급별장에 산다는 테스(테스는 이미 알렉의 정부가 되어 있었음에도)를 찾아 가면서 한다는 추론이란 고작 이따위였지.

“그녀는 이 많은 저택들 가운데 어느 집에 고용되었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자네는 근본 남성우월주의자, 이혼을 하여 주었다면 자유로웠을 테스였는데 자네의 고루하기 짝이 없는 관념은 테스를 그저 꽁꽁 묶어 두었을 뿐이었다네.

자네를 향한 애오라지 테스의 붉디붉은 사랑의 일념 또한 자네 무엇 한줌 알고 있었나.

자네의 출현으로 말미암은 테스의 격정, 그토록 꿋꿋하였던 테스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테스의 격렬한 마음밭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테스의 내면적 현실에 두루두루 무지한 자네의 어리석음이 그녀를 교수대로 내몰았던 것이라네.

 

당신을 두고 간 나를 용서해 주겠소? 나에게로 와 줄 수 있겠소? 너무 늦었어요. 그녀의 음성은 날카롭게 방안에 울렸고, 눈은 빛나고 있었다. 당신을 올바르게 생각하지 못했소. 당신의 참된 모습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오! 그는 애원하듯 말했다. 그 이후에, 아니 너무 늦게 나는 깨달았다오. 그립고도 사랑스러운 테스! 너무 늦었어요, 늦었어요! 심한 괴로움으로 말미암아 한순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초조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에인젤! 오시면 안 돼요. 비키세요! 그럼 당신이 내가 앓아서 이렇게 되었대서 사랑하지 않는단 말이오? 당신은 이처럼 변덕스런 여자는 아닐 텐데 난 일부러 당신을 찾아온 거요. 이젠 어머니와 아버지도 당신을 기꺼이 환영할 거요! 그래요? 물론 그렇겠죠! 하지만 늦었어요.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단 말이에요. 그녀는 마치 꿈속에서 도망갈래야 도망갈 수 없는 사람처럼 혼자서 중얼거렸다. 당신은 아무것도 물라요. 당신은 이곳 사정을 모르시나요? 모르신다면 어떻게 찾아오셨어요?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찾았소. 저는 당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어요. 그녀는 다급한 듯 계속해서 마을 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갑자기 피리 소리 같은 지난날의 애조 어린 음성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에게 애원하는 편지를 썼어요! 그래도 당신을 오시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당신은 이제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했고, 또 기다리는 제가 바보 같은 여자라고 늘 말하고 있었어요. 그 사람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동생들한테도 무척 고맙게 해 주었어요. 그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 그이는 나를 다시 찾아온 거예요. 클레어는 뚫어지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린 그는 병에 지친 사람처럼 갑자기 풀이 죽어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한때 장미빛을 띠었던 손, 그러나 지금은 한결 부드럽고 화사한 그녀의 손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은 지금 2층에 있어요. 왜냐고요? 당신은 결코 돌아오시지 않을거라고 나에게 거짓마를 했으니까요. 그런데 당신은 이렇게 돌아오셨어요! 이 옷도 그가 해 준 거예요. 저는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었어요! 그러니 제발 떠나 주세요. 에인젤, 이제 다시 찾아오지 말아주세요. 네? 그들은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보기에도 애쳐로울 만큼 덧없는 그들의 심정을 뚜렷이 엿볼수 있었다 두 사람은 편실에서 자기들과 감싸 줄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것 같았다. 아아, 내 잘못이었소! 클레어가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말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의 말은 아무 반응도 일으키지 못하는 침묵과 같았다. 나중에 가서야 뚜렷하게 느낀 것이지만, 그는 어던 한 가지 일을 어렴풋이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전의 테스가 지금 자기 앞에서 서 있는 육체를 정신적으로 자기의 것이라 인정하지 않고, 다만 물 위에 뜬 송장처럼 살아 있는 의지에서 떨어져 나가 물결이 흘러가는 대로 맡겨 두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몇 순간이 또 흘렀다. 그는 테스가 사라지고 없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정신력을 집중하고 서 있던 얼굴이 점점 싸늘해지면서 비참한 표정으로 바뀌어 갔다. 얼마 후 그는 정처 없이 홀로 거리를 걷는 자신을 발견했다

 

알렉을 살해한 테스.

에인젤은 테스의 그 동인(動因)을 추호도 자신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다음 대목에서 에인젤이 너무도 괘씸하여 숨을 씨근덕거렸다.

 

자신이 저지른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알지 못하는 그녀는 오히려 모든 구속에서 벗어난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자기 어깨에 기대어 행복감에 젖어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보고, 에인젤은 더버빌은 가문의 핏줄엔 무슨 잘못된 힘이 있기에 이런 탈선을 저지르게 만드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마차와 살인에 얽힌 전설이 문득 그의 마음을 스쳤다. 어지럽고 흥분된 머릿속을 가다듬어 상상력이 미치는 데까지 생각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었고, 일시적인 환상이라면 서글픈 일이었다.

 

알렉 더버빌

작가가 결코 알렉을 호의적으로 그리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알렉을 철저한 악인으로 만들었어야 소설적 재미가 있었을 법한데 어쩐 일인지 작가는 그렇게도 하지 않았다.) 나의 인상비평(印象批評)으로서는 알렉은 악한이 아니었다.

소설이 씌어진 그 시대 영국적 가치관이 갖는 인물론이란 알수 없지만, 이 시대 한국적 시각으로 본다면 외적인 조건이나 성품에 있어서 알렉의 (시쳇말로)스펙은 에인절보다 웃길로 느껴진다.

테스의 처녀를 빼앗은 알렉은 바람둥이였겠지만 파렴치한은 아니었다. (테스의 처녀를 농락한 전제도 완전히 결혼을 배제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론적으로 테스에게는 성실한 사나이였고, 무엇보다 에인젤은 테스 내면적 현실에 무지하였던데 반하여 알렉은 적어도 테스를 파악하고 있었다.

테스 용모의 어여쁨에 탄복하면서 오히려 어쩔줄 몰라 하였던 면면도 그닥 보기에 안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나 자신의 미모에 찬탄하는 남성과 함께 하는 여성의 행복이란 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알렉은 그녀의 입술에 딸기를 물려주고 그녀를 꽃다발로 만들줄 아는 여자를 대하여 미학적인 안목이 있는 남성이다.

테스가 현대인이었다면 얼치기 이상주의자인 에인젤보다는 당연히 알렉의 사랑에 방점을 찍었을 것이고 알렉의 청혼을 기쁘게 받아들였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런 얘길 하러 이곳에 온 것은 아니오. 내 형편은 이렇소. 당신이 트랜트리지에서 떠난 뒤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곳이 내 소유가 됐소. 그러나 나는 그 집을 팔고 아프리카로 전도하러 가려고 결심했었소. 전도 사업에 아주 서투른 건 사실이지만. 당신에게 부탁하는 건 부디 나의 의무, 즉 당신에게 저지른 잘못을 갚을 단 한가지 보상을 내게 맡겨 달라는 거요. 다시말해서 내 아내가 되어 나와 함께 가 줄 수 없겠소?

 

알렉이 전도자가 되었고, 무신론자인 에인젤로부터 영향을 받은 테스의 기독교 신비주의에 대한 비평으로 인하여 다시 파계하고 테스에 열중하는 알렉. (이 부분은 좀 억지스럽고 어색하였지만)

 

결혼하지 않겠다는 거지, 테스. 그래서 난 평생을 이 과오를 그대로 지닌 채 살라는 거요? 그들이 밭고랑을 건너자마자 알렉이 되풀이했다.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어째서? 당신에 대한 애정이 없다는 걸 잘 아시잖아요! 그러나 당신이 진정으로 용서해 준다면 자연히 사랑을 느끼게 될 거 아니오?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요! 어째서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지. 나는 다른 분을 사랑하고 있어요.

 

설교하기로 약속은 했지만, 가지 않겠소. 한때는 경멸하던 여자를 보고 싶은 간절한 욕망에서 말이오! 아냐, 경멸한 일은 사실 한 번도 없을 거야. 당신을 경멸하지 않은 이유는, 오직 순결하기 때문이었소. 당신은 자기 처지를 깨달았을 때 재빨리 결단력 있게 내 곁에서 떠났소. 그래서 난 당신을 경멸할 수가 없었소. 그러나 당신은 얼마든지 나를 경멸해도 좋소! 나는 산 위에서 기도를 올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직도 숲속에서 우상을 섬기고 있었어! 하하! 오, 알렉 더버빌! 그게 무슨 뜻이에요? 내가 뭘 했다는 거예요? 그는 비웃는 투로 말했다. 뭘 했느냐고? 고의적으로 한 일은 없지. 그러나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타락을 부채질했어. 테스, 적어도 당신의 그 눈과 입을 다시 보기까지는 더할 수 없이 의지가 굳은 사람이었소. 그런데, 왜 그때 나를 유혹했지? 다시 보지 않더라면 나는 꿋꿋한 남자로 변함이 없었을 거요. 이브의 입을 빼놓는다면 이토록 남자를 미치게 하는 입은 없었어! 그의 음성이 가라앉았고, 까만 눈에서도 뜨겁고 장난스러운 빛이 번뜩거렸다. 이 마녀, 귀엽고도 요염한 바빌론의 요부, 당신을 다시 만난 순간 나는 꼼짝할 수 없었단 말이오! 당신이 나를 다시 만난 것은 나로서도 피할 도리가 없었어요! 테스는 뒤걸음질치며 말했다. 그 일은 나도 알아. 거듭 말하지만 당신을 나무라는 게 아니오. 그러나 당신이 천대받는 걸 보면서 법적인 권리도, 또 당신을 가질 수도 없다고 생각하니 정말 미칠 것 같소! 그 사람을 욕하지 마세요. 그 사람은 지금 여기에 없단 말이에요! 그녀는 몹시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분을 대접하세요. 당신한테 나쁘게 한 것도 없잖아요! 떳떳한 그 사람의 이름을 더럽힐 추잡한 소문이 나지 않도록 제발 돌아가 주세요! 가지, 돌아가지! 그는 악몽에서 깨어난 듯 말했다. 난 장터의 가엾은 주정뱅이들에게 설교하겠다던 약속을 어겼소. 이런 장난 같은 짓을 하다니!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이런 건 생각지도 않았소. 난 가겠소. 그러나 당신을 멀리 할 수 있을까! 그러더니 갑자기, 테스, 한 번만, 꼭 한 번만 안아 줘. 지금.

 

당신을 괴롭힌다고? 그런 내가 할 소리요. 당신이야말로 나를 괴롭히고 있소. 난 결코 당신을 괴롭힌 일이 없어요! 그런 당신은 날 괴롭히고 있어! 잠시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 조금 전에 날 노려보던 그 매서운 눈초리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를 따라다닌단 말이오! 테스, 당신을 다시 만나고 부터 청교도의 물결 속에 흐르던 강한 힘이 다시 당신에게로 쏠리고 있소. 그때부터 종교로 통하던 운하는 바짝말라 버렸어. 그렇게 만든 건 당신이란 말이오! 알렉이 외치듯 말했다.

 

소설의 종장.

정의의 심판 은 이루어졌다. 그리스의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말대로 불멸의 수호신 은 테스와의 희롱을 끝마친 것이었다. 그리고 더버빌 가문의 기사와 귀부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들의 무덤 속에서 잠들고 있었다. 묵묵히 바라보던 두 사람은 마치 기다라도 하듯 땅에 꿇어앉아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깃발은 여전히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기운을 되찾은 그들은 함께 일어나 손을 마주잡고서 언덕을 내려갔다.

 

테스 출판 당시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까닭은 토마스 하디의 비관주의적 세계관 때문이라고 한다.

테스에는 기독교적 선악에 대한 인과론적 사상, 착한 것에 따르는 보상(報償)이라는 생각은 보이지 않는다.

이를테면 ‘팔자’라고 하는 염세적 숙명론이 지배한다.

테스와 같이 ‘팔자’란 어쩌면 한 실존의 ‘선택’에 따른(소피에게는 선택의 여지마저 없는 팔자였지만) 결과론적 측면이 있지만 아아, 그러나 인간은 평등하지 아니하다.

 

낫살 먹은 누군가가 하늘을 우러러 사람의 팔자가 왜 모양이어야 하냐고 투덜거렸더니만 바올이 한마디 콕 내쏜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 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 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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