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하모니카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시대순이 아니라 테마별로 사건별로 기록해서 보관해두려고 합니다. 기억 상의 이유로 오기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것 또한 나의 진실일 겁니다.
-김병철
경주 수학여행. 고등학교 2학년의 꽃은 수학여행이다. 당시 몇 번의 실패로 망한 우리 집. 작고하신 모친은 동사무소(이런 명칭도 이미 역사적인 단어로 전락했지만)에서 실시하는 새마을 노임증대사업(빈민구제사업)에 참가하여 얻은 돈을 주셨는데, 그 육칠천 원을 가지고 남들 다 해보는 탈선을 꿈꾸고 있었다. 소주도 한 병 사고 담배도 골드 라벨<청자>도 하나 사고, 기념품이나 선물도 좀 사고. 그러나 원대한 일탈의 꿈은 경주 거리에서 한 방에 깨졌다.
경주 거리는 지금의 모습을 생각하지 말고, 시대극에서 나오는 70년대를 그려주길 바란다. 아무리 관광지라 하더라도 시대의 벽을 벗어나기는 어려우니깐. 나무 테두리의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갔다. 쇼윈도우 대용으로 볼 수 있는 유리문 유리를 뚫고 보이는 하모니카. <영창> 하모니카가 당시에는 대세였는데(국산은 그것 밖에는 없는 줄 알았다), 케이스가 조금 달랐다. <삼광>. ‘혹시’하는 마음으로 들어가서 꺼내 불어보니, 상당히 잘 불어진다. 숨도 <영창>에 비해 가쁘지 않고. 더군다나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운 G장조였다. 진열장의 두 개를 모두 사 버렸다. 그리고는 돈 천원 남은 것으로 3박4일 동안 궁핍한 수학여행을 보냈다. 야밤에 담 넘어 나가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아야했지만, 그래도 혼자 남아 하모니카 부는 재미는 쏠쏠(G장조니깐) 했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최영진 선생님에게 수학여행에서 사왔노라며 주섬주섬 가방을 뒤적거렸다. 뭔 선물을 사왔나 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셨을 지도 모르지만(내가 교사가 되고 나서 그런 것을 몇 번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 그래서 나라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해보는 것이다. 오해 없으시길), 그런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경주에서 하모니카를 사왔어요. 아주 잘 불어져요." 선생님이 꺼내 한번 불어 보시고는 ”이것 하나는 놔두고 가라. G마이너로 만들어주마“ 그때까지 내 하모니카는 친척집에서 업어온(법률용어로 절도) <야마하>를 C장조 로 쓰고 <영창>을 C#으로 올려서 불고 있었는데, G/Gm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하면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내게 준 독주곡은 [뻐꾹 왈츠]이었는데 나는 그 곡이 맘에 들지 않았었다. 너무 유아적이고, 내부는 음이 길게 계속되는 부분이 많아 숨이 차다. 더 큰 이유는 폼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송석주(같이 하모니카 중주단을 하던 동기)에게만 연습시킨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악보는 진즉이 베껴 놓았으니 연습을 줄창 했다. 그리고 송석주에게 좀 봐 달라고 하고. 그러던 어느 날 [돌아오라 소렌토로]를 한번 해보겠다고 하니 곧잘 한다면서 그 곡을 가르쳐주셨다.
얼마 전 대한하모니카협회의 연주회 DVD를 보았는데 어느 분이 뻐꾹 왈츠를 연주하다가 호흡 때문에 몇 번 멜로디가 끊기고 버벅거리게 되자 체념의 표정을 짓고는 보면대를 들고서 중도 퇴장하는 것을 보았다. 그분이 나이가 드신 분이고, 약간 장애가 있는 분이지만 나의 일처럼 느껴졌다. 호흡 턱턱 막히고 # 들어갈 때 음이 끈히는 면, 버벅거리는 부분 까지도 내가 연습하던 때와 똑 같았다. [뻐꾹 왈츠]는 듣기는 가볍지만 부는 이는 들짐승이 하늘 날기이다. 3#23|4#46|5--|5-- |3--|3--에서 4마디를 8도와 베이스 치는 곳마다 다 찍고 나면 날숨이 다 빠져나와서 산소보충을 위해, 그저 살기 위해 어느 음이고 간에 들이 마셔야하기 때문이다. G7 하모니카를 이용해서 |5--|5-- |3--|3-- 부분에서 두 번째 |5--를 들이마시게 되면 어느 정도 숨을 해결할 수 있다. G7은 솔시레파(딸림 7화음)를 동시에 연주하기 위해 라를 솔로 음을 바꾼 것이다. 그러니깐 스케일이 도레미파솔솔시도 이다. 들이마시는 라를 솔로 바꾸어 들이마시나 내쉬나 솔이 연거푸 나오기에 들숨날숨을 정돈하기에 좋고, 화성학적으로도 라와 시의 플랫 화음을 피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다.
다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경주 수학여행 이후로 나도 독주를 마음껏 불게 됐다. 불던 C장조 야마하는 G장조로 바뀌어 예쁜 음색마저 확보하게 되고. 그 후에 <동보> 라는 라벨의 하모니카를 선생님이 제자분이 고물상에서 얻어왔다고 하시면서 Em를 만들어 주셨다.
삼광 G, 야마하 G / 영창 G# / 삼광 Gm / 동보 Em / 백조밴드 G7의 다국적군을 얻게 되어 그 후 37년 동안 불었다. 여지껏 보관하고 있는데 음이 많이 변질됐다. 최영진 선생님에게서 조율은 배우지 못했다. 리드의 끝을 야슬이(줄)로 긁으면 음이 높아지고, 안쪽을 긁으면 낮아진다는 말만 들었을 뿐. 하모사랑에 가입할 때 제1의 목적이 음 조율법 배우는 것이었다. 한 10년 전에 낙원상가에서 톰보를 새로 구입하기 전까지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었다.
며칠 전 미화악기사에 갔었다. <삼광>하모니카 어쩌구저쩌구 내가 이야기하니까, 판매점 사장님께서 <미화>가 처음 1년간은 <삼광> 이름으로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셨다. 아하! 삼광이 미화가 된 거구나. 37년 만에 알게 된 진실이다. 오래 전부터 사귀던 여인의 정체를 알게 된 기분이다. 그녀가 그녀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