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 따르면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528년)에 왕모(王母) 영제 부인의 발원으로 지어졌고, 574년에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 부인이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불과 아미타불을 주조해 봉안하였다고 적고 있다. 문무왕 10년(670년)에는 무설전을 새로 지어 이곳에서 《화엄경》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모습, 오늘날 불국사의 상징물로 알려진 석탑(석가탑·다보탑)이나 석교(石橋) 등의 축조를 포함한 대규모 중창불사가 이루어진 것은 신라의 재상 김대성에 의해서였다. 《삼국유사》 권제5 효선(孝善)9 대성효이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에는 김대성을 신라 신문왕 때, 혹은 경덕왕 때의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오늘날에는 경덕왕 때의 사람이며 불국사의 창건도 경덕왕 10년의 일로 보고 있다. 《삼국유사》에는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김대성 자신의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불사(石佛寺)를,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하였으며, 공사를 마치기 전에 죽자 국가에서 나서서 완성시켰다고 한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불국사다보탑(국보 20호), 불국사삼층석탑(국보 21호), 불국사 연화교칠보교(국보 22호), 불국사 청운교백운교(국보 23호), 불국사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26호), 불국사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등 다량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1995년 12월 석굴암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학술적·역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1]
현존하는 건물의 배치를 보면, 대웅전은 중앙에 위치하여 남향하였고, 그 앞에 석등이 있으며, 다시 그 앞의 동서에 각각 석탑 1기가 서 있다. 동쪽 다보탑의 기묘하고 정밀한 형태는 유례가 드물고, 서쪽 석가탑은 예로부터 애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이 탑의 축조를 맡은 백제의 석공인 아사달의 아내 아사녀가 남편을 찾아왔으나 탑이 완성되기 전이라 만날 수 없었다. 조언하기를 불국사 아래 잇는 영지(影池)에 그 그림자가 비친다고 하여 그곳에 가서 기다리다가 석사탑의 그림자가 비치지 않아서 마침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를 지니고 있어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부른다.
비로전 앞에 석등 모양으로 된 사리탑은 한때 일본 사람에게 팔려갔다가 1934년 반환되어 제자리에 다시 세운 것이고, 이와 맞선 관음전 앞에도 석등이 남아 있다. 1970~1972년 정부 보조비를 포함한 총공사비 3억여 원을 들여 복원시켰다.
경주시에서 시가 관리하는 입장료가 있는 유적지(및 박물관)는 경주시의 시민이라는 증거(주민등록증)가 있으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불국사는 다른 유적과 달리 대한불교조계종의 재산으로, 일괄적으로 입장료를 징수해 왔다. 2013년 3월부터 불국사, 석굴암과 함께 주민등록이 경주시로 되어 있는 경우 무료입장이 실시되고 있다.
지난 2007년 한 관광객이 극락전 정면 처마밑의 현판 뒷편에 가려져 있던, 나무로 만들어진 50센티미터가량 되는 황금 돼지 목조 조형물을 발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