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 단상(斷想)
참 풍성하다. 이틀 전 연보랏빛 꽃잎들이 가뭇가뭇 보이더니 오늘 등꽃이 환하게 피었다. 보랏빛 포도송이가 연등행렬처럼 주렁주렁이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꽃잎을 피워내고야 마는 등나무에 경외심이 들었다.
낙동강 하구언 끝자락에 위치한 우리 학교는 원래 등나무 휴식 공간이 세 군데 있었는데 한 곳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없어졌다. 그 중에서도 바로 옆 중학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등나무가 훨씬 덩치가 커서 많은 줄기가 뻗고 잎이 무성하다.
어느 날 수업을 하다가 교실을 타고 올라온 흐드러진 등꽃 향기. 아, 아이들이 모두 올망졸망한 등꽃이었다. 알싸한 등꽃 향기 자욱한 교실, 등꽃처럼 예쁜 학생들, 천국의 모습이 이런 것일까?
밑둥치가 제 힘을 못 이겨 기울어지자 커다란 돌 받침대를 하고 있다. 오래 근무한 박씨의 말에 의하면 약 30년 전에 지금의 등나무를 옮겨 심었는데 실제 수령은 알 수 없다고 한다. 나는 이 밑둥치 앞을 지나칠 때마다 무엇엔가 끌리듯이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두 아름이 넘는 둘레와 군데군데 흉터가 새겨져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받았으면서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을 지닌 모습에서 생명의 경건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연보라 빛 등꽃이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 등꽃 향은 원숙한 40대 여인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게 가볍지도 않으면서 깊이를 간직하고, 주위를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몫을 다하고, 속되지 않으면서 은은하게 풍기는 세련됨이다.
갈라져 나온 얽히고설킨 줄기를 교실 위에서 보니 밑둥치 하나만으로도 숲을 이룬다. 저렇게 줄기들이 서로 꼭 껴안고 행여나 떨어질세라 보듬고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무성하게 서로 관심을 보여주는 가지를 보고 있으니 문득 용수가 떠올랐다.
“여기가 너희 집 놀이터인줄 알아?” “깨끗이 하지 않으니 친구도 없지 녀석아”
“선생님은 우리 집 사정도 모르면서.”
오랫동안 결석을 하다가 나온 용수에게 이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나도 모르게 사정없이 매를 들었다.
용수는 내가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을 때의 아이인데 아무도 용수와 짝을 하려하지 않았다. 이른바 `왕따`였다. 누런 치아, 헝클어진 머리, 교복에서 풍기는 이상야릇한 냄새 때문이었다. 나는 용수가 게을러서 씻고 다니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다. 계속된 결석으로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와 함께 용수 집을 처음으로 찾았다. 마당이 없이 바로 미닫이 문이었는데 몇 평 쯤 될까. 문을 연 순간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창문이 없어서 마치 동굴에 온 듯 습하였고 도배 안 된 하늘색 페인트 칠 된 벽은 군데군데 벗겨지고 얼룩져 있었다. 그 오른 쪽 구석에 교복을 넣는 옷장이 열려진 채로 있었다. 그렇구나. 그래서 용수에게서 냄새가 났구나.
만성신부전증의 경제력 없는 아버지, 그런 끝도 없는 생활고로 인한 어머니의 가출. 용수의 생활이 짐작이 되었다. 미리 집에라도 한 번 쯤 와봤으면, 좀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또다시 신학기가 되었다. 절도 사건으로 ‘분류원’이라는 곳에 다녀온 용수는 진급을 하지 못하였다. 어느 날 청소 시간에 용수가 우리 반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를 보고 어색하게 웃더니만 윗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넣었다 망설이는 것이었다. 초코파이 한 개였다. 순간 나는 코끝이 찡했다. 목이 메어 초코파이를 먹을 수가 없었다.
등나무 꽃말은 ‘사랑에 취하다’이다. 내 삶이 오롯이 등나무처럼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으로 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등나무 가지 끝의 가느다란 줄기가 바람에 한들거리며 고개를 삐죽이 내민다.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옆줄기가 아파하지 않는지, 남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고 있지 않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며 관심을 가진다. 등나무 줄기에서 무한한 정겨움을 느낀다.
첫댓글 학창시절 떠올라요.. 봄날, 등나무밑 나무의자에 앉아서 드넓은 운동장을 바라보던 제 모습이 담긴 추억이, 한장의 사진처럼... 선생님 글 거의 첨 읽는데요. 마음이 편해지네요.
요새 등꽃이 이쁘더군요. 향기도 좋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