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선수가 요즘 각광을 받자 동북고 출신이니 k-리그 유쓰 시스템이
낳은 작품이라며 자화자찬하는 경우가 있는데 좀 오버입니다.
알려져 있지 않은 손흥민 개인사를 좀 살펴 볼까요?
일단 흥민이는 1992년 7월 8일 춘천에서 태어났습다.
1999년 강원도 춘천 부안 초등학교에 입학합니다.
물론 이당시에도 부안초등학교 축구부가 존재했고
초등학교 연맹전을 비롯한 각종 대회에 출전하고 있었지만 흥민이는
축구부에 들지 않은 것 같습니다.대신 호반이 fc 내에서 각종 훈련을 한듯.
아버지 손웅정씨는 아마도 1984-85년(?) u-20 대표(오래전이라 인터넷으로 기록확인은 못했습니다)
,상무를 거쳐 프로팀 현대,일화에서 선수생활후 춘천에서
오랜 기간 유소년 축구지도(유소년 축구 클럽 춘천 호반이 fc 감독)를 해오신분입니다.
그런 까닭에 학교 축구부에 보내지 않고 직접 가르칠 수 있었던 거지요.
간단히 현대, 일화 시절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서 손웅정씨 소개를 하자면,
현대소속으로는 1987년 5골을 넣었습니다.
이당시 현대는 강원도가 연고지 1989년 말 연고를 울산으로 옮깁니다.
1987년 현대 감독 조중연 코치 김호곤,
선수 :손웅정 ,이상철,임고석,백종철,최강희,김종건,김삼수,정동복,함현기,유태목,이중갑,윤덕여,조긍연,김평석,정종수 등이 있습니다.
1987년 득점왕 어시스트왕은 최상국(15골.8도움,포철), 최우수선수는 정해원(대우) ,신인상은 김주성(대우),인기상 최순호(포철),
일화 소속으로는 1989년 2골 1990년 0골 넣었습니다
1989 일화감독 박종환,코치 원흥재,트레이너 이장수,의무 이상돈
GK, 김영호, 김경범, 문원근
DF, 임종헌, 김현석, 최청일, 김영주, 장창순, 박종대, 유승, 고정운, 박상록
MF, 백종철, 하성준, 김용세, 김이주, 남호상, 오동천, 방인웅, 안익수, 나치선, 정평렬
FW, 민병은, 한연수, 장정, 김기완, 박두흥, 손웅정, 안효철, 김재소
1990 일화감독 박종환,코치 원흥재,트레이너 이장수,의무 이상돈
GK, 김영호, 나치선, 마르첼
DF, 김경범, 문원근, 임종헌, 정영호, 방인웅, 김재소, 한연수, 김기완
MF, 김현석, 최청일, 김영주, 이상윤, 박종대, 박상록, 하성준, 오동천, 안익수, 박두흥
FW, 유승관, 고정운, 백종철, 김용세, 김이주, 손웅정
아래는 인터넷 검색자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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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화 천마 그 시작 창단 첫경기
1989년 3월 26일. 한국프로축구사를 새롭게 쓰게 될 일화천마프로축구단 돌풍의 시작이었다.
당대 대한민국 최고의 명장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일화천마의 데뷔 첫 상대는 85년 수퍼리그를 제패한 강호 럭키금성(현 FC북패)이었다.
시즌 개막전 전문가들이 예상한 일화의 성적은 2약(弱)중 하나. 박종환 감독의 예상 역시 “한 팀만 잡고 꼴찌는 면한다”는 다소 겸손한 생각이었다.
절대적인 경험 부족의 신인들과 친정팀들에서 방출된 설움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모인 신생팀의 개막전 선전을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개막전 결과에 대한 반응은 놀라웠다. 비록 승리를 따내지는 못했지만(2:2 무승부)
부담이 큰 개막전에서 멀티 골을 뽑아낸 박종환 감독의 공격축구는 전문가와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프로 축구 원년멤버이자 통산 최다골(41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전년 소속팀(유공)에서 C급 대우를 받으며
전성기가 끝났다라고 평가받던 ‘꺽다리’ 김용세는 홀로 2골을 뽑아내는 대활약을 펼치며 이적의 한을 달랬다.
관심과 화제가 집중되며 전주공설운동장에서 펼쳐진 이날 개막전에는 2만5천여 관중이 모여들었고,
박종환 감독과의 유명한 친분으로 일화의 홍보이사를 자처하던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 씨는 락커룸까지 찾아와
선수들에게 격려와 칭찬의 덕담을 건넸다.
*일화창단 첫승
첫승에 대한 목마름은 없었다. 기대하던 역사적 창단 첫승은 너무도 빨리 찾아왔다.
개막전 돌풍을 일으킨 지 일주일 후, 1989년 4월1일 청주공설운동장에서 열린 개막전 상대 럭키금성과의 2차전에서
일화천마는 1:0으로 감격스런 첫 승리를 낚았다. 역사적인 첫 승의 결승골 주인공은 ‘스라소니’란 별명을 갖고 있던 손웅정.
경기 시작 1분18초 만에 벌어진 벼락같은 골이었다.
럭키금성은 본의 아니게 창단 돌풍의 제물이 되는 악몽을 겪었다. 시즌 개막일 경기를 피하면서까지 불길한 예감을 피하려 했건만,
결국은 예상이 적중되 는 악연을 맺고 말았다. 그 불길한 예감은 다른 구단에게도 퍼졌다.
다음 언론 기사의 분위기처럼 89시즌 초반 수퍼리그의 주인공은 일화천마였다.
화려한 출발 일화 신선한 충격 예고
일간스포츠 1989. 3. 27
박종환 감독의 일화가 올시즌에 신선한 충격을 예고하고 있다. 일화는 럭키금성과의 데뷔전에서 박감독 특유의 기동력을
바탕으로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임으로써 관중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전주 개막시리즈 3경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역시 박감독은 관중들이 보기에 즐거운 축구를 한다”며 운동장을 빠져나간 관중들이 많았다.
축구협회는 일화-럭키금성의 경기를 개막전으로 치르려 했으나 럭키금성이 ‘첫 판에 새 팀에게 잡히면 창피하다’며 거절했다.
一和 돌풍에 “두번째 희생양은…” 각팀 불안 “럭키에게 미안하다”
일간스포츠 1989. 4. 6
신생 일화의 돌풍에 럭키금성 황소가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올 시즌 첫 홈경기에 1만2천여 관중을 입장시킨 럭키는
권토중래의 총력전을 전개했으나, 한골 차로 치욕을 겪었습니다. 럭키는 페널티킥 실축의 악몽을 되살렸지요.
지난해 5개의 페널티 킥 중 3개(구상범, 최순호, 정해성)를 실축했고 이영진이 올 시 즌 첫 페널티킥을 실축,
코칭스태프는 경악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창단 후 1승1무의 호성적을 올린 박종환 감독은 럭키금성을 꺾은 후
그야말로 입이 찢어지는 기쁜 표정을 지었 습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감독은 너무 빨리 첫 승리를 거둔 탓인지
기존 프로팀(럭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이제는 일화가 만들어낼 ‘제2의 희생양’에 관심이 쏠려있습니다.
이번 주(9일) 춘천에서 일화와 맞붙는 현대의 김호 감독은 은근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 됐지요.
주전 수비 윤덕여와 이종화가 2회 경고로 출전하지 못해 전력에 큰 차질을 빚게 됐습니다.
춘천은 일화 사령탑인 박종환 감독의 고향인데 강원도를 연고지로 하는 현대와 홈이란 개념애매 한 한판을 벌이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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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 축구부에 있지 않았던 탓에
언론에 노출될일이 전혀 없던 흥민이가 2004년 초등학교 6학년때
매스컴에 깜짝 등장합니다.즉 2004년 프라임 전국 축구 묘기대회에서
초등부 대상을 차지한것.2002년 월드컵 4강후 축구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특히 개인기가 강조되어서 축구묘기를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희용씨가 최고의 스타였죠. 2004년 프라임 전국 축구 묘기대회 중등부 대상받은
사람이 요즘 유명한 축구 프리스타일러 전권입니다.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흥민군의 형 흥윤씨도 고등부 동상을 받습니다.
2005년 강원도 원주 육민관 중학교에 입학하지만 축구부에 들지 않습니다.
당시 육민관 중학교 축구부 감독은 나승화씨.1992년 올림픽때 김귀화선수와 함께
양 윙백으로 이름을 떨쳤고 요즘은 황선홍 선수의 절친으로 더 유명하신분.
2005년 2006년 추계 전국 중학교 축구 연맹전 그룹내 3위(중등 축구연맹전은 5개 그룹으로 나눈후 그룹 우승팀 뽑고
그룹 우승팀 끼리 왕중왕전을 해서 왕중왕을 뽑습니다)를 하며
나름 이름있던 육민관 중학교 축구부에 흥민이가 처음 들어건건
2007년 중학교 3학년때입니다.그리고 2007년 추계 전국 중학교 축구 연맹전 청룡그룹(확실하지 않습니다) 준우승의
쾌거를 이루죠.물론 자료 부족으로 이 당시 흥민이가 출전했는지는 확인못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서울 동북고에 입학합니다.
이당시 동북고 감독은 럭키금성,유공 선수 출신 최진한 씨였죠.
흥민이가 축협 우수선수 해외유학 대상(6기이자 마지막 기수)으로
뽑혀 동북고를 자퇴하고 독일 함부르크간게 2008년 7월이니 실질적으로 동북고에 있었던 시간은
2008년 3월 4월 5월 6월 4개월입니다.당시 연맹전이나 프로 유스간의 경기였던
2008 sbs고교 클럽 챌린지리그에 출전했는지 아닌지는 기록 부족으로 확인 못했습니다.
이당시 동북고에서 유명한 선수로는 정승용,김상필선수가 있네요.
어떤 경로로 손흥민의 우수성이 눈에 띄었는지 알수 없지만
일반적인 학원 축구 시스템이나 프로축구 유쓰의 지도는 영향이 적었던게 드러나네요.
아 물론 학원 축구나 프로축구 유쓰 시스템이 못하다는게 아니니 오해는 하지 마시기를
단지 흥민이의 경우는 손웅정씨의 지도와 흥민군의 재능 노력이 더 컸다는 말씀입니다.
첫댓글 많이응원합시다^^ 아버지가 축구선수 이전에 인격관리. 인간의됨됨이를 잘 지도하는것같아 참 고맙게생각합니다
늘 긍정적인모습, 어린나이에 큰무대에서적응하는모습이 대견스럽습니다. 주말경기는꼭보죠. 우리 孫門의 빛낼인물이라
기대됩니다. 그라운드에서 맹수처럼포효하는 손흥민! 쑥~쑥 ~ 자라거라 화이팅!
암튼 세계적잉 대 스타가 돼길 기도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