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26) - 영원히 기억하리
가을 가뭄이 심하더니 단비가 내렸다. 노인건강타운에서 만난 어른들이 김장채소에 약비가 내렸다고 좋아한다. 국빈으로 미국을 방문한 대통령은 전에 없는 극진한 환대를 받고 있는데 서민들의 주름살은 펴지지 않는 세태가 안타깝다. 팍팍한 서민들에게도 살맛나는 약비가 수시로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난 14일,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상원과 하원 합동연설에서 한미우호와 협력을 다짐하는 가운데 특별히 한국전쟁에 참전한 네 명의 하원의원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여 당사자는 물론 의원 전원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다.
'이 자리에는 한국전 참전 용사들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존 코니어스 의원, 찰스 랭글 의원, 샘 존슨 의원, 하워드 코블 의원께 각별한 사의를 표합니다.'
연설을 마친 이 대통령은 이들에게 다가가 거수경례를 하며 자유를 지켜준 노병들에게 한국 국민의 감사와 존경의 뜻을 전하였다.
15년 전(1996년) 여름, 워싱톤DC를 여행할 때 국회의사당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한국전 기념공원을 찾았다. 그곳의 기록에 의하면 한국전쟁에서 산화한 미군 병사가 3만3천여 명이요 부상자는 10여만 명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다음날 들른 한적한 시골에 있는 루레이 동굴 안에는 각종 전쟁에 참여하여 희생당한 주민의 숫자가 기념비에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 한국전쟁에서 다섯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기록된 것을 보며 가슴이 뭉클하였다.
8년 전(2003년) 2월,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한국공원에서는 더 진한 감동을 받았다. 한국공원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가 전사한 터키군인 770명의 넋을 기리고 추모하는 기념장소로서 앙카라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한국정부가 기념물을 건립하여 1973년에 문을 연 한국과 터키의 피로 맺은 우의의 상징으로 한국인들은 각별한 관심과 감사의 뜻을 표해야 할 장소다. 전사자는 대부분 20 -30대의 젊은 청년인데 770명의 전사자 명단이 일련번호로 1번부터 770번까지 새겨져 있다.
그 중 세 번째가 TOP UTGM 1943-54 MEHNET GONAC, 23. 4. 1951이라고 새겨진 포병장교다. 그가 침공중인 중공군을 격퇴하기 위하여 포격지점을 사격지휘부에 알려주어서 확인해보니 바로 그가 서 있는 곳으로 밝혀졌다. 얼른 피하라고 하였으나 자기는 죽어도 좋으니 그가 서 있는 목표물을 향하여 빨리 포사격을 가하여 적을 물리치라고 독촉하며 장렬하게 전사하였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한국공원에 세워진 기념탑의 발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탑은 토이기군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전에 참전,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되다. 앙카라시의 적극적인 협력을 얻어 세워지게 된 이 탑은 토이기공화국건립 제50주년 기념일을 기하여 한국정부가 토이기국민에게 헌납하다. 1973. 10. 27'
이를 지켜보며 결혼에 즈음하여 동작동 국립묘지의 수많은 전몰희생자들에게 옷깃을 여미고 그 공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서 기념식수를 한 바 있지만 그 생각이 멀리 미국, 영국, 터키, 호주 등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청년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한 것을 크게 뉘우쳤다.
같은 해(2003년) 7월,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또 다른 감명을 받았다. 오클란드의 로즈가든에 세워진 '영원히 기억하리'라는 묘비명(墓碑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실어온 돌에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씨다.
'유엔헌장의 숭고한 정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싸운(1950 -1953) 모든 뉴질랜드 용사들의 공로를 여기에 기린다.'
그때 학생들에게 쓴 편지글을 덧붙인다.
'영원히 기억하리
새벽에 일어나서 헤피데이스(2003년 7월호)란 잡지를 들추다가 함석헌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가 눈에 띄어 뜻을 음미하며 읽었습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운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한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가졌는가
온 세상 찬성보다도 ‘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오늘 오전 오클랜드 시내를 관광하는 중 한국전쟁(1950~1953)에 참전하였다가 희생당한 용사들을 비롯한 뉴질랜드 군인들의 공을 가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로즈가든을 둘러 보았습니다. 부산에서 직접 실어 온 돌에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는 ‘영원히 기억하리’의 묘비명(墓碑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유엔 헌장의 숭고한 정신을 수호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싸운(1950~1953) 모든 뉴질랜드 용사들의 공로를 여기에 기린다.’
6.25 전쟁 중 가평전투지역에 영국․호주․뉴질랜드 연합군으로 전투작전에 참전하여 43명이 전사하고 104명이 부상당한 혈맹의 고마움을 영원히 잊지 앉겠다는 우리 국민의 다짐 앞에 일행 모두 숙연하게 머리를 숙였습니다. 성경에는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난 2월 터키에 갔을 때 수도 앙카라의 한국공원에도 700여명의 6.25참전희생자들의 이름과 공적을 기린 참전기념비를 돌아보며 15,000여명의 터키 참전 용사들과 가족들이 한국을 고향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우리나라를 위하여 피 흘려 생명을 바친 애국선열들과 해외 참전 용사들의 공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새벽에 읽은 함석헌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와 우리가 그 고마움을 다짐하는 ‘영원히 기억하리’가 우연의 일치처럼 뇌리에 연결되어 지더군요. 가평전투에 참전한 관련자들은 지금도 한국․뉴질랜드 친선에 기여하고 있으며 매년 3명의 가평중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여러분을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길수 있는 ‘그 사 람이 되겠는가’ 돌아보기를 권합니다. 또한 받은 은혜와 고마움을 영원히 간직하는 진실한 사람, 선한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어 가는 훌륭한 일꾼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서 영원히 기억할 이름들을 잊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영원히 기억될 이름이 되면 더욱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