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 그리는 남자
근래 들어 화장대에 앉아 거울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날마다 다르다. 전날 술이 과했거나 잠이 부족한 날은 얼굴에 윤기가 없다. 좋은 비누를 쓰고, 오이 마사지를 하고, 영양크림을 바르는 등 아내가 공을 들여도 날이 갈수록 꺼칠해진다. 젊은 날에는 찬물에 세수하고 맨 얼굴로 다녀도 볼만했는데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어느 날인가부터 이마에 주름이 하나둘 가고,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지더니 머리 밑이 훤해졌다. 속된말로 소갈머리가 없어진 것이다. 거기까지는 흐르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참을 수 있었다. 부분별로 500원 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생기고 이곳저곳 유행병처럼 번지더니 서로 결합을 한다. 원형탈모증상이 심각해진 것이다.
평소 막역하게 지내는 선배에게 눈부시게 빛이 난다며 놀린 죄 값을 받는지 만나는 사람마다 걱정을 해줄 정도가 되어버렸다. 급기야는 눈썹까지 뭉텅 달아나 버린다. 탈모증상이 눈썹에까지 전이된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아내는 치료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웬놈의 민간요법은 그렇게도 많은지?
탈모부위에 치약을 발라라. 과산화수소를 발라라. 심지어는 변소에 뿌리는 크레졸 소독약을 바르면 머리카락이 난다는 등 별 짓을 다해보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6개월 정도 먹는 약과 바르는 약을 혼용하여 치료를 하면서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의 처방을 받고 돌아서는데, 또 다른 처방 하나가 귀를 때린다.
"아저씨는 치료도 중요하지만 급한 성격부터 고쳐야 머리카락이 날거요. 불덩이(火氣)가 머리로 차 오르는데 머리카락이 안 빠지고 견딥니까?"
무언가 한마디 대꾸를 하려다 맞는 말이다 싶어 그냥 나온다. 못된 성질머리 때문에 손해를 본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화장을 하기로 했다. 원형탈모 부문이야 나머지 머리카락으로 적당히 감춰지지만 눈썹이 문제다. 눈썹 그리는 연필로 그려 보지만 제대로 될 리 없다. 아내의 도움을 받아 대충 그리고 출근을 하면서 자신이 한심해진다. 얼굴로 먹고사는 탤런트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해야되나 싶기도 하지만 민원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서 상대에 대한 예의일 수도 있다는데 생각이 미쳐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하였다.
우리나라 남성의 화장은 언제부터 유래되었을까? 연극하는 배우들로부터 시작되었을까? 궁금증이 발동한다. 관련 서적을 뒤지고, 인터넷을 헤집고 다니며 찾아보지만 명쾌한 답이 없다. 신라의 화랑들이 남성화장의 효시라는 설이 있다. 귀족출신의 이들은 얼굴화장은 물론이고 장식물을 패용 하는 등 외모의 치장에 열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판소리 춘향가의 사설에서는 이 도령이 분 세수를 하여 백옥 같은 얼굴을 가졌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화장의 역사가 꽤 오래되었음을 알려주는 기록들이다.
그러나 화장의 기원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발전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아름다워지려는 인간본능의 욕망이 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다. 자신의 용모에 만족하지 못하고 타고난 용모를 수정하고 보완하려는 노력이 화장이다. 요즘 유행하고있는 성형도 넓은 의미에서는 화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아름다워 지려는 노력은 끝이 없다. 시어머니의 눈총이 두려운 며느리가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버드나무가지의 재로 눈썹을 그린 것이 라든지, 날마다 그리고 지우는 것이 귀찮아진 여성들이 아픔을 참고 눈썹문신을 한다든지 하는 것을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노력은 차라리 처절하다.
내면의 아름다움보다 눈에 보이는 외모를 중시하는 현재의 풍조가 지속된다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 같아 걱정이다. 우리가 가꾸고 다듬어야 할 것은 밖으로 드러나는 피부와 몸매가 아니다. 안에서 우러나는 은은한 아름다움이 중요하다. 주름을 가리는 분가루나 겉으로 향기로운 향수보다 아름다운 미소와 따뜻한 눈빛이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을 준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심신의 균형과 건강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황희 정승이 은퇴하여 노후를 즐기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우리 집 소가 새끼를 낳았는데 내일 저희 아버님 제사는 지낼 수 없겠지요?" 라고 묻자 "그야 지낼 수 없지"라고 대답하고 이어 찾아온 다른 사람이 "저희 집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내일 아버님 제사는 모셔도 되겠지요?" 라고 묻자 "그야 물론 모셔야지" 라고 대답한다. 곁에 있던 부인이 "한 사람은 된다고 하고 한 사람은 안 된다고 하시니 어찌된 일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러자 황희 정승은 "소나 돼지는 문제가 아니고 요는 제사인데 지내고 싶은 사람은 지내게 하고, 지내기 싫은 놈에게는 하지 말도록 하였을 뿐이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한다. 건전한 사고는 자연스럽게 얼굴에 묻어나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가꾸어진다. 사람의 얼굴은 자신의 삶의 내용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했다. 좋은 글을 읽고, 바른 생각을 하고, 맑은 소리를 내는 입을 가져야한다.
오늘도 출근 전에 화장대에 앉아 서툰 솜씨로 눈썹을 그리면서 "내가 아직도 멀었구나. 이 나이에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혼자 소리로 입안에 굴려 보지만 끝내 눈썹 연필을 놓지 못한다.
10년쯤 지나 공직을 떠난 내 얼굴은 어떤 모양으로 변해 있을지 궁금하다. 맑은 얼굴일까, 일그러져 보기에도 딱한 얼굴일까. 외모를 그리는 화장술에 의존하기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어, 화장대에 앉지 않고도 훤해질 맑은 얼굴을 기대해본다.
첫댓글 싱거비님..늘 건강하십시오...늘 즐거운 이야기와 웃는 얼굴이 좋았습니다...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글이 너무 좋군요 잘읽었습니다. 성격에 문제가 있는거 보다는 유전에 대한 영향이 크다더군요. 부자신가봐요.
참으세요. 참으면 흰머리가 나게 돼 있어요. 그리고 더 참으면 그 흰머리카락 검은머리칼로 변해요. 제가 성질 불칼은커녕 미련퉁이인데도 그 500원짜리 구경 많이 했지요. 참고 기다리세요. 목욕 자주하시고 솔잎침 맞으세요. 아, 싱기비님. 심금을 잘 빚으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