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④
* 신해통공(1791)
조선은 고려보다도 상업 활동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여 허가받은 시전 상인으로부터 점포세와 상세를 받고, 왕실이나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는 국역을 부과하고, 대신에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사상(私商)들이 종루, 칠패, 배오개(이현), 송파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시전의 상권을 잠식하자 시전상인들은 국역을 담당하는 대가로 난전을 단속할 수 있는 권리인 금난전권을 행사하였으나 사상(私商)의 성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결국 정부는 영세 상인들을 보호하고 물가상승을 야기하는 시전도고 상인들의 폐해를 막고 난전을 양성화하여 수세(收稅)를 확대함으로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하여, 정조 때에 채제공의 건의로 통공 정책을 실시하여 육의전을 제외한 시전들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였다(1791, 신해통공).
① 일제는 중일전쟁 (1937)이후 국가총동원법(1938)을 제정하여 인적·물적 자원의 수탈을 더욱 강화하였는데, 공출제라 하여 대가 없이 쌀(미곡)이나 쇠붙이(금속) 등을 가져가는 공출제를 실시하였다.
② 개항(1876) 직후부터 일본 상인들이 곡물을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가면서 곡물 값이 크게 올랐고, 흉년으로 곡물이 크게 부족해지자, 1889년 함경도 관찰사 조병식은 곡물 유출을 막기 위해 개정된 조·일 통상 장정(1883)에 따라 1개월 전에 외교 담당 관청에 통고하고 방곡령을 실시하였으나, 일본은 1개월 전에 자신들에게 통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손해배상을 받았다.
③ 조선 후기에는 농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연분 9등법을 따르지 않고 풍흉에 관계없이 전세를 토지 1결당 미곡 4~6두로 고정시켰다. 이를 영정법이라 한다(1635).
⑤ 정조(1776~1800)는 신진 인물이나 중·하급 관리 가운데 능력 있는 자들을 재교육시키는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