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YOUR ESSAYLIFE
언양에세이포럼
22기-5차시
일시 : 2024년 3월 19일 (화) 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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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1 | 백 세의 꿈 | 김연희 | 2 | 권춘애 |
2 | 손녀의 나라 | 민창현 | 4 | 김선애 |
3 | 인연 | 박동조 | 3 | 김인옥 |
4 | 열암곡 마애부처님을 뵙다 | 김순향 | 2 | 박희자 |
5 |
합평순서 / 권춘애 김순향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민창현
박동조 박희자 배정순 예수백 이경자 이혜경
1. 백 세의 꿈 / 김연희2
1. 새해 첫날, 미래에 내가 살아갈 터를 찾았다. 퇴직하면 조용한 곳에서 노년을 보내고자 오래전에 구입하여 시간 날 때마다 가꾸고 있다. 내 미래의 터에는 각종 유실수와 다양한 꽃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이른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요리의 재료가 되고 차와 약제가 될 나무들이 자란다.
2. 터 안에는 연못도 만들었다. 연못에는 연을 심었다. 연잎이 나면 연잎 차를 만들고 연밥도 만들 수 있다. 연꽃이 피면 연지에 꽃을 띄우고 멋진 차회를 열 수 있다. 작년에는 산에서 샘솟는 물을 발견하여 호수로 연못까지 연결하여 항상 맑은 물이 연못으로 흐르도록 했다. 일월의 매서운 날씨에도 연못의 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
3. 집터 뒤로는 산이 있다. 작년에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명이나물을 심었다. 산 마늘이라고도 하는 명이나물은 약성이 뛰어나다고 인기가 많은 임산물이다. 백운산 자락에 있는 이 지역은 기온이 낮아 명이나물이 적합하다고 산림청에서 추천하였고 산림조합과 협력하여 심었다.
4. 노후에도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노후의 일로 여러 가지를 계획하고 실험해 보았다. 신체의 노화를 생각해서 일주일에 이틀 정도, 연중 두어 달 일 하는 것을 찾고 있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산마늘을 선택했다.
5. 명이나물은 수확기가 짧아서 일 년에 두어 달 일하면 되고 한번심어 두면 사 십년 이상 수확이 된다고 한다. 명이나물은 뿌리로도 번식하지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씨로도 번식한다. 산마늘 예찬가들은 씨앗이 떨어져 번식하고 또 번식하여 사 십년을 이어가니 한번 심어 영원히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더 좋은 점은 이른 봄에 수확함으로 농사의 제일 걱정거리인 잡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6. 나는 노후 설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즐겨한다. 사람들이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나는 젊은 날 ‘행복한 노년을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한 적이 있다. 회원들은 일하는 백 세를 꿈꾸며 백 세까지 할 수 있는 일을 찿아보기로 했다.
7. 모두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하는 백세를 꿈꾸며 아름답고 멋지게 늙어갈 생각을 했다. 열 명의 회원은 마을을 만들고, 어떤 이는 허브 키우는 일, 어떤 이는 주말에만 하는 카페를, 어떤 회원은 된장 담그는 일을, 어떤 이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스토리를 들려주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8. 마을 만들기 사업은 국가에서도 권장하는 사업이다. 정부에서는 한때 특임장관실을 만들고 마을 만들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공모하여 무료로 연수를 시켜주었다. 나는 공모사업에 신청하여 당선되어 일본의 마을 만들기 사례를 연수하고 왔다.
9.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령사회를 맞이했다. 퇴직한 노인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자신 있는 일을 하거나 취미생활을 하면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 건강에 따라 일주일에 며칠, 몇 시간 일하고 있었다. 젊은 날 하고 싶었지만 생계 때문에 못 했든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고 했다. 노인들은 일을 하면서 더욱 건강해지고 친구와 교류하고 소득도 창출하고 있었다.
10. 평생 일을 한 사람이 퇴직하여 직장을 떠나게 되어 일이 없어진 사람이 빨리 늙는다는 사례가 많다. 산이 많은 마을에서는 할아버지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고 밭이 많은 곳에서는 할머니들이 건강하게 장수한다는 통계도 있다. 산이 많은 곳에서는 남자들이 할 일이 많고 밭이 많은 곳에서는 여자들의 할 일이 더 많다는 논리이다.
11. 퇴직 후에도 일할 수 있는 터를 만드는 것은 내 일생의 숙원사업이었다. 지난해 산마늘 심어 숙원사업은 이루어졌다. 잡목으로 들어 갈 수 없었던 산은 벌목하여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십여 년 전에 심은 편백나무는 많이 자라 산책길에 스토리를 더한다.
12. 지인들은 나만 보면 말한다. 퇴직하면 편하게 쉬어야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가. 늙어 산길을 어찌 걸을 수 있겠는가. 백년을 살수 없는데 백세의 꿈은 꾸어서 무엇 하나 한다. 나도 가끔 생각한다. 산책길을 걸을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을 가끔 해 본다. 나는 허망한 꿈을 꾸어 현재를 망치고 있는 것일까.
13. 새해, 다시 백 세의 꿈을 꾸어본다. 나의 수명이 길어 백 세까지 살아있다면 침상에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보낼 수 있길 기도한다. 주름진 손으로 잎 차를 덖고 나눌 수 있길 기도한다. 날마다 햇살과 바람, 나무와 하늘을 충분히 느끼며 산을 오르내릴 수 있길 꿈꾸어 본다.
14. 하늘빛이 특히 고운 이 백운산 자락에서 보낼 노년의 하루하루가 설렌다. (12.3)
2. 손녀의 나라 1 - 민창현 4
1. 요즘 아침마다 색다른 행복을 맞보고 있다. 커 가는 손녀 덕분이다. 딸이 일을 나가기 때문에 손녀는 유치원 등원하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아침 식사를 한다. 식사 동안 병아리 같은 입으로 매일의 일상을 종알댄다.
2. 아이의 기분이 유난히 좋아 보인다.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자기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언제는 아빠와 결혼한다고 했는데 변덕이 죽 끓는 나이라 그런지, 세상 이치에 눈을 떠가서인지 결혼 상대가 남자 친구로 바뀌었다.
3. 순진무구한 손녀를 보면 하얀 도화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밑그림이 그려지고 무슨 색 물감으로 곱게 칠해져 나갈까. 아름다운 산과 강을 바탕으로 예쁜 나무와 꽃들이 무지개 색깔로 그려졌으면 좋겠다. 한켠에 고즈넉이 쉴 의자도 있으면 한다. 완성될 그림이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다 된 그림을 우리가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4. 아이가 저렇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멋진 세상을 만난 덕이다.
도깨비방망이처럼 말만 하면 뚝딱 원하는 것은 다 된다. 호시절에, 좋은 곳에서 태어나서 자신을 사랑해 주는 부모를 만난 덕분이겠다.
5. 백 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여자로서 삶이 어땠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참정권은 말할 것도 없었다.
6. 여성 투표권이 세계 처음으로 인정된 것은 1893년 뉴질랜드서였다. 뉴질랜드 10달러짜리 지폐에 얼굴이 담겨있는 여성 인권 운동가 케이트 셰퍼드의 줄기찬 청원의 고귀한 결과였다. 민주주의의 대명사인 미국과 영국도 1920년과 1928년에야 각각 인정되었다. 우리나라는 1948년 총선거 실시 때 남, 여 한꺼번에 참정권이 주어졌다.
7.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모든 인류는 평등하다'라고 외친 중세 계몽시대의 진보적인 철학자 루소조차 여성의 평등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가 외친 '모든 인류'에 여성은 예외였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여성은 인권이 없기 때문에 교육도 필요 없고 참정권을 주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8. 우리보다 선진국이라고 배워 온 스위스(스위스는 1971년)보다도 우리의 여성 참정권이 훨씬 일찍 열렸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여성 참정권이 제한되고 있는 나라들을 생각할 때 손녀가 우리나라에 태어난 것은 축복이다.
9. 투표권은 선거권이 있는 모든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국가 경영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10. 이렇게 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22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생업에 바쁜 국민들이 각 지역의 대표를 뽑아서 복리 증진과 국가 발전을 대신 논의토록 하는 것이다.
11. 잘못 판단하여 뽑은 우리의 대표가 부정을 저지르거나 위법한 행동으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흔히 보아 왔다. 이로 인해 치르는 재 선거 비용이며 시간은 또 얼마나 헛짓인가. 아이의 맑은 눈망울 보기가 부끄러워진다.
12. 개인적인 문제 뿐만아니라 소속 정당의 잘못된 방향에 의해 틀어진 정책들도 문제다.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천문학적인 세금의 낭비와 엄청난 기회비용이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아왔다. 이 모든 것은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온다.
13. 어떤 사람들은 '그놈이 그놈'이라며 투표권 행사를 아예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근래 총선 투표율을 보면 제일 높았던 게 2020년의 66%였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국민의 삼분의 일이 귀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뒤늦게 비난하고 때늦은 원망을 하고 있다.
14.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 이론이 있다. 사소한 변화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뜻한다. 이처럼 세상의 변화는 단번에는 오지 않는다.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어 힘이 모아지다가 때가 되면 큰 변혁의 형태로 한꺼번에 분출되는 것이다.
15. 한 표 한 표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가냘프게 보이지만 태평양 건너에 태풍을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우리의 삶이 늘 최선의 길만 걸어갈 수 없는 것처럼, 최선이 안되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한다.
16. 4월10일은 손녀의 손을 잡고 투표장으로 나가 국민 주권의 나라 주인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지키는 당당한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다.
16. 재잘대는 손녀를 바라보며 마음 속 깊이 빌어본다. 아이가 살아 갈 세상은 밝고 정직하길. 깨끗하고 희망으로 차 오르길. 여성의 한계에 갇히지 말고 현명하고 아름답게 인생의 그림을 그려나가길.
3. 인연 (난지도) / 박동조
1) 난지도를 대면하다
1. 직장 발령을 앞두고 이모님 댁에서 잠시 머물렀다. 이모네가 사는 마을은 주소지가 서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깡촌이었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 들길을 지나 산모퉁이를 돌아야 나지막한 지붕이 옹기종기 붙어 있는 상암동 마을이 나왔다. 마을 앞으로는 한강의 지류인 샛강이 흐르고 강 가운데로 기다란 섬이 펼쳐져 있었다. 섬과 맞닿은 강가에는 수양버들이 늘어선 사이로 물새가 끼룩대며 떼 지어 놀았다.
2. 낙조가 드리우는 시각이 되면 강은 거대한 화판으로 변했다. 노을이 그려놓은 타오르는 불꽃 같은 그림은 장관이라는 말 말고는 따로 표현할 말이 없었다. 그럴 때, 섬은 누런 연무에 잠겨 강에 그려진 그림의 배경처럼 보였다.
3. 어느 날 밤,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아침에 나와보니 강 건너 섬이 온데간데없어졌다. 검붉은 물살이 넘실거리는 강물 위로 수양버들 가지가 휘청휘청 춤을 추었다. 비가 멎고 해가 나자, 마술을 부리듯 사라졌던 섬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그 섬을 난지도라 불렀다. 그곳이 행정구역상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 549번지 일대라는 주소를 갖고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4. 나는 이렇게 먼발치서 난지도를 대면했다. 강 이쪽에서 바라보는 섬은 닥치지 않은 미래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아침 해가 솟아올라 자욱하게 드리운 안개를 밀어낼 때, 그곳의 자연은 까무룩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생명체처럼 경이로움을 연출했다. 그것은 내 안에서 갈등하고 모색하는 불확실한 미래의 꿈과도 같았다.
2) 난지도에서 밭을 매다
5. 홍수가 나고 보름이 지났을까, 이모가 난지도에 있는 밭으로 풀 매는 일을 하러 간다고 했다. 돈이 아쉽던 차여서 나도 따라나섰다. 뱃나루에서 나를 본 밭 임자는 다른 일꾼들의 절반의 노임밖에 줄 수 없다고 했다. 단발머리에다 왜소한 내 체구를 밭을 매기에는 시원찮게 본 것이다. 부득이 절반의 품싻만 받기로 하고야 노를 저어 건너는 배를 탈 수 있었다.
6. 섬에 도착해서 생각보다 광활한 밭을 보고 놀랐다. 산골에서 다랑이 논밭을 보고 자란 내게는 평야처럼 펼쳐진 콩밭이 영화 속에서 본 이국의 풍경인 듯 비현실적이었다. 아침 안개나 저녁나절의 노란 연무에 둘러싸여 신비로움을 연출했던 그곳에는 수해를 이겨낸 콩을 비롯한 작물들이 긴 이랑에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그 아득한 콩밭의 풀을 매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7. 십여 명의 아줌마 일꾼들과 함께 나란히 풀매기를 시작했다. 자잘한 풀이 초록의 융단처럼 돋아 있어 일은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그런 중에도 월등히 앞서가는 사람이 있었다. 풀을 매는 일은 호미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결괏값이 달라진다. 풀을 뿌리까지 낱낱이 제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뿌리는 뽑는 둥 마는 둥 호미로 흙을 긁어 풀을 덮어가며 매는 척만 하는 사람도 있다. 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척만 해서 호미질한 이랑에서는 며칠만 지나면 파란 풀들이 뾰족뾰족 돋아나기 마련이다.
8. 밭 주인이 일한 결과를 알아채는 데는 한 주간의 날짜로 족했다. 내가 맨 밭이랑만 유독 풀이 나지 않았던 거다. 훗날, 밭 주인은 그 사실을 밭을 매는 일꾼들에게 교본처럼 들려주고 일을 시작하더라고 이모가 말해 주었다.
9. 사실 나같이 꼼꼼하게 일하는 사람은 대강 하는 일손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호미질을 아무리 부지런히 해도 일의 분량에서 뒤처지게 마련이다. 그날, 호미에 손가락을 찍히는 상처를 입고서도 일손을 멈추지 않았다. 남들이 새참을 먹으며 쉴 때도 쉬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상처 입어가며 풀 매는 일로 난지도와 연을 맺었다. 비록 하루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운명을 결정하는 저울추를 기울어지게 하는 데는 충분했다.
10. 일을 마치고 피와 흙으로 범벅된 상처를 본 이모는 나를 미련하다고 나무랐다. 농군으로서 자존심을 지키려는 내 나름의 고집이었다는 걸 이모가 알 리 없었다. 고향에서 잘 사는 마을을 만들어 보겠다며 애쓴 결과로 벼 다수확왕으로 뽑힌 전력이 있는 나는 그때까지도 취업을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까를 고민했었다.
11. 어쭙잖은 계기가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 내게는 농사일을 추어낼 자질이 없다는 걸 밭매는 일을 통해 알아버렸다. 농군에게는 꼼꼼함과 성실함보다 더 필요한 게 재바름이었다. 내게는 그런 재바름이 없었다. 그날 밤 농부의 꿈을 버리기로 결심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난지도에서 밭을 맨 하루의 경험치가 도회인으로 인생길을 바꾸게 한 길목이었다. 그 뒤로 다시는 농사 일을 하지 않았다.
3) 난지도의 기적
12. 난지도가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았을 때가 밭을 맨 그날부터 십 년째 해였다. 그때까지 난지도는 새들의 놀이터에다 사람들의 먹거리를 여념 없이 키워내는 낙원의 섬이었다. 그런 비옥한 땅이 쓰레기 매립장으로 운명이 바뀐 것이다.
13. 그때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 무렵 고정급을 받는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경영 능력이 아무리 뛰어난들 주변 상황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실패에 따른 고난과 절망이 얼마나 무서운지 겪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 와중에도 하루 풀을 맸을 뿐인 연에 이끌려 난지도에 관한 소식에는 본능처럼 눈과 귀를 쫑긋거렸다.
14. 난지도는 원래 존재하지 않은 섬이었다. 강물이 범람할 때 떠밀려온 흙이 쌓여 섬이 되었다. 홍수로 수해를 입기도 한다는 게 흠이었으나 토질이 비옥하고 물 빠짐이 좋아 인근의 농부들에게는 선물 같은 땅이었다.
15. 그랬던 섬이 쓰레기 매립장으로 지정된 뒤, 15년 만에 100미터 높이 쓰레기 산이 두 개나 생겨났다. 그 결과로 최악의 환경오염지역으로 해외의 언론에서까지 이름이 오르내렸다.
16. 1993년, 난지도에 쓰레기 반입을 막는다는 공고가 붙었다. 이후 관에서는 사람이 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걸 난지도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구제 불능 같았던 그곳에 꽃이 자라고 새가 찾아왔다. 지금은 어엿한 육지로 편입되어 여섯 개의 공원에다 야영장과 골프장, 그리고 해수욕장까지 갖춘 관광명소가 되었다. 사람에게 팔자가 있듯이 땅에도 팔자가 있는 것일까. 난지도의 옛날을 기억하는 사람 중에 누가 지금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17. 난지도를 읽으면서 인생을 생각한다. 아니 나를 생각한다. 시골에서 상경한 내게 미래는 안개에 덮인 듯 불확실했다. 앞날이 검은 장막으로 가려진 듯 막막한 순간도 있었다. 팔자였을까. 길고도 고단한 인생길을 걸어 노년이란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수필가의 명찰을 단 작가가 되어 있었다. 이만하면 내 인생도 나쁘지 않다. 오늘따라 햇살이 유난히 예쁘다.
4. 열암곡 마애부처님을 뵙다 /김순향2
1. 경주 남산 열암곡에 계신 마애불을 뵈러 간다. 사십여 개의 계곡과 크고 작은 바위로 이뤄진 험한 남산은 최정상이 466미터이다. 더러는 ‘낮은 산이다’라는 말에 가볍게 생각하고 올랐다가 혼쭐이 나는 산이기도 하다.
2. 야외 불교박물관이라 불리기도 하는 경주 남산은 절터만 해도 백여 곳이 되고, 석불은 여든여 좌가 넘는다. 석탑 또한 예순여 기가 널려있고 경치가 아름다워 사철 남산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새갓골’이라 불리던 열암곡은 바닥 돌과 코를 5센티미터의 틈을 두고, 아슬아슬하게 엎어져 있는 마애불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적한 산 중턱이었다.
3. 5센티미터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마애불이 발견되자 열암곡이 북적거렸다. 새로 출현한 부처님께 더욱 영험한 기와 원력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일까? 삼삼오오 짝지어 험한 산길을 매일 오르는 참배객도 있고, 멀리서 가까이서 소문 듣고 달려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4. 불교 조계종에선 사찰마다 돌아가며 스님들이 매일 마애불에 불공을 드린다. 가끔 동참하는 나는 무늬만 불자인 때문인지 부처님의 원력을 믿기보다 그 작은 틈새에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마애불 모습에 마음이 더 끌렸다, 오뚝하고도 잘생긴 코에 대한 연민과 어쩌면 딱 저기 5센티미터의 틈을 두고 멈출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신비스럽기조차 했다.
5. 열암곡은 산등성이에 큰 바위들이 열列 지어 서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시어른 생전에 들려주셨다. 바위들이 줄지어 선 산등성이 넘어 선산에는 조부모님을 비롯한 윗대 조상들을 모신 곳이어서 오랜 세월 수없이 오르내렸던 계곡이다.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에서 천 삼백여 년이나 엎드려 계셨던 마애불을 발견했다는 당시의 뉴스를 접한 순간 충격이 컸다. ‘좀 더 관심 있게 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어리석고 미욱한 내 탓이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6. 등산로 초입에는 야자 매트를 깔아두었으나 오를수록 바윗돌과 나무뿌리가 걸려 위험했다. 땅이 녹느라 미끄럽고 질척거리는 해빙기 산길은 무디어진 내 순발력을 수시로 시험한다. 마애불 부처님 계신 곳까지 800미터를 쉬엄쉬엄 오르니, 목탁 소리와 염불 소리가 들린다. 주차장 관리자가 삼백여 명 불자들이 벌써 올라갔다더니 성심을 다한 그들의 염불과 목탁 소리가 솔바람과 하모니를 이뤄 불국토인 경주 남산을 날고 있음이다.
7. 드디어 산길 왼쪽에 편편한 공터가 보인다. 열암곡 제1 작은 절터이다. 건너편엔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볼품없어 보이지만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이다. 조선 시대 파괴된 석불이다. 머리 부분과 받침돌 윗부분이 유실된 채 앞으로 엎어져 있던 석불을, 다른 곳에 버려졌던 잔해들을 수습하고 보수하여 지금의 석불좌상으로 세웠다.
8. 동쪽 몇 걸음 아래로 오색연등을 내건 철 구조물이 보인다. 구조물 상단엔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부처님 바로 모시기 천일기도’라는 긴 현수막이 걸려있다. 오체투지를 하듯 엎드려 있는 마애불 임시 보호소이다. 얼마 전까지도 노지에 맨몸으로 엎드려 있던 마애불에 불교계가 마음 모아 마련한 선물이다. 마애부처님이 우뚝 설 수 있을 때까지 비바람을 피할 수 있어 안심이 된다.
9. 경주는 활성단층이 지나는 지진 대이다. 줄지어 서로를 기대고 있는 열암 주변에 이리저리 쓰러져 마애불과 친구하고 있는 바위들을 보면서 마애불도 분명 지진으로 쓰러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우일 수도 있지만 덩치 큰 마애불이 쓰러졌다면 다친 곳이 있으리라는 생각에, 참배할 때마다 유심히 살펴본다. 외형상으로는 온전하다. 그 위급했을 상황에서도 미소 지으며 중생들을 품는듯하여 감동을 준다.
10. 산비탈이 온통 참배객들로 꽉 찼다. 해인사를 비롯한 영남 일대의 큰 사찰에서 온 스님들과 불자들이 좌정한 뒤편에 서서, 법문을 듣고 염불도 따라 해본다. 한나절의 행사가 끝나고 사회자의 끝맺는 인사가 있었다. 전국의 사찰이 돌아가면서 매일 부처님 전에 기도를 드리면 마애불을 세울 수 있는 원력이 쌓이고, 불자들의 마음이 모여 소원하는 아미타불 부처님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했다.
11. 다만 너무 오랜 세월 엎드려 계셔서 온전히 일으켜 세우려면 많은 실험을 거쳐야 한단다. 과학자들 주장은 돌의 질이 같은 성분인 경주 돌로 실험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하여 올해 실험에 들어간다고 했다. 아울러 오로지 부처님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종단을 초월해 모든 한국 불교계가 노력하고 있음도 알렸다. 하긴 천삼백여 년을 엎드려 계셨는데 일이 년을 더 못 참으랴!
12. 그동안 참 궁금하기는 했다. 부처님이 발견되고도 십오여 년 세월이 지나지 않았는가! ‘요즘 복원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쓰러진 부처님 한 분 바로 세우지 못할까?’하고 애태우기도 했다. 그 궁금증을 오늘 사회자가 풀어준다. 길이 5m, 무게 80톤의 육중한 마애불을 바로 세우려면 뛰어난 기술과 많은 인력, 예산이 필요한 거대한 프로젝트여서 무던한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공사임을 알려준다.
13. 나는 종교와는 무관한 유가에서 자랐다. 도덕에 가까운 유교 덕목을 그대로 실천하려 애쓰는 부모님 삶을 존중하면서도 그 삶을 벗어나고 싶은 아이러니를 겪으며 성장했다. 그런 탓에 佛心이 대단한 가문으로 출가했지만, 선 듯 부처님을 품지 못했다. 함께 녹아들지 못한 채 언저리에서 서성이던 어리석은 나를 깨우치려 함인지 부처님은 내가 애지중지하던 아들을 당신 품으로 데려갔다.
14.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출가로 마음고생하던 중 만난 열암곡 마애불이다. 아들이 수행 중 겪을 고초를 걱정하던 가슴에 언제부터인가 긴 세월 요지부동으로 엎드려 있어야 했던 마애불의 모습이 들어왔다. 오뚝한 코와 잔잔한 미소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마애불은 석불이 아닌 내게 위안을 주는, 넉넉한 품으로 자리했다. 호젓한 산에서 무섬증도 있으련만, 그와 가만히 눈맞춤하고 있으면 ‘그만 내려놓아라,’고 말하는 듯하여 마음이 편안해진다.
15. 이제 남은 세월 그리 길지 않은데, 아직도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불심은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들과 남편이 가는 길, 미련한 나도 기꺼이 함께할 수 있게 이끌어 달라고, 열암곡 마애부처님께 소원하며 합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