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번 |
소 속 |
직위(급) |
성 명 |
성별 |
비고 |
1 |
경산과학고등학교 |
행정6급 |
김정화 |
남 |
팀장 |
2 |
고령교육청 |
행정7급 |
박두익 |
남 |
총무 |
3 |
영양교육청 |
행정6급 |
오경찬 |
남 |
|
4 |
군위교육청 |
행정6급 |
이진호 |
남 |
|
5 |
경산사동초등학교 |
행정6급 |
권순자 |
여 |
|
6 |
김천교육청 |
기능6급 |
김영일 |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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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경북교육청 |
기능8급 |
임영숙 |
여 |
|
8 |
경주교육청 |
기능8급 |
김남순 |
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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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칠곡공공도서관 |
기능8급 |
오상유 |
남 |
|
10 |
포항항도중학교 |
기능8급 |
이태옥 |
여 |
|
2. 연수내용
가. 머리말
시작이 반이라더니 2007년도 어느덧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요즘 들어 사회 전반에 걸쳐 거세게 밀려오는 변화의 요구는 우리교육계도 예외일 수 없으며, 교육혁신이란 교수-학습방법, 조직, 문화, 제도, 업무 수행과정, 조직구조, 경영기법, 교육행정 등 교육전반에 걸쳐 과거에 행하지 않았던 새로운 관행을 교육부분에 도입하여 실행하고 정착시킴으로써 교육경쟁력과 고객의 만족을 높여 나가는 총체적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와 발전의 중심에 교육행정이 있어야 한다고 우리들은 늘 생각하여 왔습니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우리나라의 현실 속에서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의 역할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사회가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면서 국민들의 기대치가 증대되고 고급화 되는 상황 속에서 그에 상응한 교육의 변화와 발전이 미흡했던 점을 우리 모두는 수긍해야만 한다. 변화를 두려워하는, 무사안일의 소극적인 자세로는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우리사회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결코 보조를 맞출 수 없으며, 교육 수요자인 학부모들의 기대치도 결코 충족시킬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과거의 관행과 제도, 고정관념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여 새로운 사고와 전향적인 접근논리에 따라 미래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미래의 추구는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변화에 적응하는 소극적인 참여가 아닌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가는 적극적인 노력이어야 하므로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생각을 우리교육행정인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번 짧은 해외 연수이지만 그래도 외국의 교육제도와 학교시설을 돌아보면서 우리 교육현장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우리교육과 외국의 교육을 비교하여 우리교육의 우수성을 찾아 교육 현장에 접목시킬수 있는지를 연구해 보고 외국 문화 및 사회등도 알아보고자 이번 연수에 임하고자 한다.
11월 13일 새벽 5시 30분 대구 어린이회관에 집결해서 여행사에서 준비한 버스에 타고 구미IC, 문경휴게소를 거쳐 우리들은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가방을 끌고 대합실을 옮겨 다니는 폼들이 영락없는 한팀임을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경북 교육행정을 좀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 보겠다는 그 마음만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또 팀원들의 연수에 임하는 자세는 눈에서 불빛이 보일 정도이다. 공항에서 기차를 타는 건 아니지만 무슨 수속이 그리도 복잡한지 너무 번거롭다. 오후1시30분 런던 히드로 공항발 비행기는 대한민국을 떠나고 있었다. 배정받은 좌석은 중간통로 부분, 뒷 공간에서 아래로 펄쳐지는 중국의 만리장성, 몽골의 더 넓고 광활한 초원을 보며, 시베리아의 빙하와 자욱한 운무가 나름대로 보기 좋았다. 점심으로 나오는 기내식 비빔밥은 맛이 괜찮았다. 가끔씩 음료수며 간식을 먹어가며 영화 한 편 보고 잠도 자고. 고도 1만 미터 상공에서 900키로는 넘는 속도로 날아가건만 유럽은 멀기만 한건가~장장 1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런던히드로 국제공항 1945년에 만들어졌다는 공항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우리들은 공항을 빠져나가는 수속조차도 더디기만 했다. 첫발을 내딛는 순간 다가오는 이미지 한마디로 조용하기는 했지만 코끝에는 냄새가 진동을 치고 있었다, 고층빌딩은 보이지 않고 2-3층짜리 가정집만 보이는 런던 주차장은 왜 그리도 잘 지워놓았는지 모르겠다. 도시락으로 저녁을 먹고 호텔 바에서 팀원 들간의 상견례, 연수일정 및 외국의 교육제도와 학교시설에 관하여 분임 토의도 가졌으며 내일부터는 하나씩 공부해가기로 했다.
나. 영국
1) 국가개요
○ 영국의 정식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이다.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은 연합국가인 셈인데, 그레이트 브리튼은 북부의 스코틀랜드, 남동부의 잉글랜드, 남서부의 웨일스로 되어 있다. 영국의 기원은 5-6C 경 게르만계의 앵글로 색슨족이 잉글랜드에 침입해 9C경 통일된 왕국을 수립한 것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앵글로 색슨족과 켈트족간의 갈등은 지금도 남아 있다.
○ 영국은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대헌장(마르나카르타)의 제정을 비롯해 시민
혁명, 권리장전 등 세계 민주주의의 발생국인 동시에 제국주의의 아성을 쌓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후 식민지의 잇따른 독립으로 화려했던 대영제국의 면모는 많이 사라졌으며, 1997년 7월 1일을 기해 홍콩도 중국에 반환되어 비로소 제국주의의 종말을 고했다. 정치형태는 입헌군주제로 국왕이 원수이나, 정치적 실권은 수상이 가지고 있다.
2) 영국의 문화와 사회 체험
호텔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영국식 아침을 먹고 우리들은 버스에 올라타 문화 체험에 나섰다, 약 5,700만명의 인구 중 주요 인종은 앵글로 색스계이며 웨일즈, 스코틀랜드 등은 켈트계가 중심을 이룬다, 퀸즈 잉글리쉬로 불리는 정통파 영어가 공용어 이며. 약간의 웨일즈어와 켈트어를 사용한다. 영국인들은 겉으로는 매우 차갑고 꼼꼼한 인상을 주었다. 대체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멀리서 바라보이는 웰링턴 장군의 동상 및 생가를 지나 하이드파크가 보였다, 헨리8세에 시대에 사냥터나 군대훈련장으로 사용되었던 터를 1637년에 찰스 1세가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총면적 약160만㎡에 달하는 매우넓은 공원으로 시내 한복판에 있어 런던 시민들의 가장 애용하는 공원이기도하다.
하이드 파크가 유명해진 것에는 스피커스 코너가 일조를 하였는데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 할 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어 공원의 명소가 되었다, 공원안에 있는 조각 중에서는 빅토리아 시대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엘버타 기념비와 그리스 신화의 아킬레스를 조각해 놓은 웰링턴 기념비가 유명한 것 닽다. 여의도의 두배정도의 공원이 수백년동안 잘 관리된다는 것이 의심 하면서 우리들은 하이드파크 바로앞에 있는 Royal College of Art(왕립미술대학교)를 가 보았다. 이설명은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하이드파크에 이어 영국의 문화탐방을 몇가지 소개하기로 한다.
▶ 대영박물관 :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대영 박물관은 러셀 광장 맞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박물관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찬란한 꽃을 피웠던 전성기 때의 그리스 문화와 고대 이집트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며, 세계최대인 이박물관에는 이집트, 앗시리아, 그리스, 고대로마시대 유물을 위주로 시대와 나라별로 전시되어 있었고 북미, 중남미, 인도, 중국 것까지 총망라되어 있었다, 람세스 2세 두상, 앗시리아 시대 인무마상, 파르테논신전 유물 로제타석등 유명 전시물들이 끝이 없었다. 그러나 많은 전시품 중에서 영국 것은 별로 눈에 뛰지 않는다. 일부는 돈을 주고 사왔거나 기증받은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 전리품이거나 약탈해 온 것들이다. 따라서 근래 많은 나라에서 반환을 요구받고 있지만 구차한 변명으로 계속 거절하고 있다. 이집트가 로제타석 반환을 요구하자 똑 같은 크기로 모조품을 만들어 보냈다고 한다. 염치가 없어서인지 관람은 공짜다. 삼성이 지원해서 한옥식으로 지어놓은 한국관도 있었다 한영교류 200주년을 기념하여 개설된 곳으로 구석기유물부터 탱화, 고려청자, 백자, 불상, 회화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서양에서는 드물게 신라의 금 귀걸이를 전시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탱화인 해인사 사천왕상도 있다. 한쪽에 지어진 사랑채에서는 우리의 고가구를 갖다 놓고 옛 모습을 재연해 놓았다.
▶ 버킹검궁전 : 버킹컴 궁전은 1703년 버킹엄 공작 셰필드의 저택으로 지어진 것을 1762년 조지 3세가 왕비를 위해 사들이고, 조지4세가 유명한 건축가 존 내쉬에게 막대한 비용을 들이면서 개축하게 한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빅토리아 여왕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영국왕실의 주 궁전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의 여왕엘리자베스 2세가 원저성에서 지내는
주말이나 해외 순방 중이 아닐 때는 여왕이 머물고 있다는 표시의 로열 스탠더드 깃발이 내걸린다. 궁전 앞에서 벌어지는 근위병 교대식 Changing Guard는 유명한 볼거리로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되면 궁전 앞에 운집하기 때문에 잘 보이는 자리를 잡으려면 일찍 가는 좋으며 궁전은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지만 8월부터 두 달간 660여 개의 화려한 방 중 일부를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 국회의사당 빅벤 : 1859년에 완성된 거대한 시계탑 빅벤은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건조물 중의 하나이다. 언제 봐도 멋지지만 특히 국회의사당의 조명이 빅벤위로 쏟아지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 어둠이 내린 밤의 빅벤이 환상적이다. 웨스터민스터 바깥에 자리 잡고 있는 국회의사당을 구성하는 건물 중의 하나이다. 빅벤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는 수치는 높이 97미터, 시계 숫자의 크기 60센티미터, 분침의 길이 4미터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마다 울리는 종중에서 가장 큰 것의 무게는 13톤에 달하고 4면의 시계의 지금이 7미터가 넘는다. 빅벤은 시계탑 자체를 부르는 이름이 아니고 매 시간마다 13개의 종중에서 가장 큰 것을 말하는 것이다. 빅벤의 시계는 정확한 것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어 런던 시민들은 물론 런던을 방문한 이들도 빅벤의 종소리를 듣고 시간을 맞추곤 한다. 1941년 세계 제2차 대전의 격전 속에서 국회의사당 건물 중의 하나가 파괴되는 와중에도 그 모습 그대로 살아남아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시간마다 종을 울리며 영국 사람들을 깨우고 있다.
▶ 타워브리지 : 런던의 상징인 타워 브리지는 템즈강 하류에 자리 잡고 있는 빅토리아 스타일로 건축된 교각이다. 호레이스 존스 경의 디자인으로 1887년에 착공해 8년간 거친 공사 끝에 1894년에 완공되었다. 100년이 넘는 시간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타워 브리지는 크고 작은 고딕풍의 첨탑이 있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중세의 성을 연상시킨다. 교각 중앙이 개폐식으로 되어 있어 큰 배가 통과할 때에는 90초에 걸쳐 무게 1,000t의 다리가 수압을 이용해 열린다. 타워 내부에는 타워 브리지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전시관과 빅토리아 시대부터 있었던 증기엔진실이 마련되어 있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엔진실에는 타워 브리지가 올라가는 원리를 설명하는 모형이 있다.
▶ 웨스트민스터사원 : 11세기 참회왕 에드워드가 지은 노르만양식의 성당이 원형으로 1245년 헨리3세가 고딕양식인 지금의 모습으로 개축하였다. 왕비와의 이혼과 앤블린과의 결혼 문제로 로마 교황청과 대립한 헨리8세가 대부분의 가톨릭교회와 수도원을 파괴하였지만 이곳은 무사하였다.40여왕의 대관식과 다이애나비의 장레식이 치러지기도 하여 영국 왕실과 깊은 관계가 있는 사원이다.
3) 학교탐방
▶ Royal College of Art[왕립미술대학교(원)]
세계유일의 아트디자인 전문대학원이며, 우리나라에도 미술 디자인을 공부하거나 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이미 잘알려져 있는 학교만큼 학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최고의 미술 학교중 하나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유는 우선 postgraduate university of art and design 이라는 슬로건이 말하듯 석/박사 학위만을 수여하는 세계유일의 아트 디자인 전문대학원이기 때문이며, 또한 다양한 나라의 뛰어난 학생들, 현장최고의 전문가인 교수진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현장감있는 수업이 전통을 이루기 때문이다. 1837년에 설립되어 학과는 크게 Fine art, Design, Communications,Humanities 네분야 17학과로 현재 850여명의 학생들과 100여명의 교수들이 있으며, 교수진들은 모두 현장 최고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져 영국정부와 세계적인 산업체, 기관들의 후원과 연계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프로젝트위주의 학습적 특징과 분야별 최고의 전문인을 배출하고자 하는 학교의 확고한 목표를 바탕으로 일반적인 영국 석사
예술대학교 교문 예술대학교앞에서 음악대학교 교문
과정이 1년인데 반해 RCA는 2년 과정으로 진행되며 학비 또한 높은 편으로 한해 20.700파운드이다.
학교를 탐방해보니 우리나라의 넓은 캠퍼스나 운동장은 보이지 않고 낮은 건물만이 있었다 교문이라는 것을 찾아보았으나 건물의 출입문이 교문이었다. 유럽 학교들의 정원은 우리나라의 교실 한 두칸 정도로 중앙에는 잔디로 나무 몇그루 있는 것이 전부 인 것 같다. 학교에 들러보니 학구열이 샘솟는 조용한 분위기였으며, 교문에서 사람들마다 일일이 검색하며 체크하여 우리팀에서도 몇 명만이 들어 갈수 있었다. 학교주위에는 공과대학, 음악대학이 존재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단과대학이 몇 개 모여 대학촌을 이루고 있는 분위기였다.건물은 유럽풍으로 지어져 어찌보면 삭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학문의 연구는 건물의 외형이 아니라 안에서 얼마나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해 본다. 우리들은 현장 안내자에게 영국의 교육제도에 대해 물어보았다
4. 영국의 교육제도
◇ 취학 전 교육
5세 미만의 어린이에 대한 교육이 의무적인 것은 아니지만, 영국 학부모들이 5세 미만 자녀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지방교육청(LAE)들은 수준 높은 학교(Pre-school/
Nursery)를 찾는다. 일반 개인이나 지원 단체들도 지방 교육청과는 별도의 취학 전 그룹을 운영하여, 어린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시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 공립학교 State Nursery Schools, Nursery Classes Attached to Primary Schools
-사립학교 Playgroups in the Voluntary Sector, Privately Run Nurseries
◇ 초등교육(Primary Education, 5-7년 과정): 연령 5세-11세 영국에서의 의무교육은 5세부터 시작된다. 공립초등학교 나이: 5세-7세(infant school), 7세-11세(Junior)
최고 16명 정원으로 정규 시간표에 따라 오전에는 수학, 영어, 역사, 지리, 과학, 외국어(라틴어, 프랑스어 등), 컴퓨터 등의 기본 수업이 있고, 오후에 진해오디는 예체능 수업 중 미술과목으로는 그리기, 칠하기, 만들기 등의 단계별 수업과 피아노, 첼로, 하프 등 15개 이상의 악기 중 선택하여 음악 수업을 하며 체조, 테니스, 수영, 말타기, 골프 등의 체육 수업을 통해 학생들의 재능이 창출된다. 시간표는 학교와 학년별로 약간씩 다름.
◇ 중등교육(Secondary Education,5년 과정): 연령 11세-16세
- Conprehensive School: 선발시험없이 모든 능력의 학생들을 받아들이며 교과목을 포함하여 광범위한 일반 중등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 Grammar School: 11+(Eleven Plus)라고 불리우는 시험을 통해 선발된 학생들에게 교과목을 가르치는 학교(인문계 중등교육)
- Secondaty Modern School: 보통 시민으로서의 교양을 터득시킬 목적으로 일반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
- Independent School(사립학교): 선발고사를 통해 입학한 학생들이 수익자 부담으로 공부하고 있음. 학문중심의 형태 특별한 교육철학을 배경으로 운영 외국인과 소수의 특정인을 위한, 특수 상황에 있는 학생을 위한 학교
- 학교생활(사립학교 기준)
교과목 중심의 수업 단계로서 학교마다 방침에 따라 9-11과목의 수업을 받게 된다. 기본 과목 및 선택 과목(영어, 수학, 과학, 정보, 기술, 역사, 지리, 외국어, 미술, 음악, 종교, 컴퓨터, 디자인, 드라마, 미디어, 영화, 사회학 등)에 의해
학생들의 시간표가 짜여지며, 일반적으로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4시정도까지 수업을 마친다. 시간표에 따라 골프, 발레, 스케이트, 펜싱, 크리켓, 테니스,승마 등의 개별 활동 이후에는 교내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는 2시간 정도의 의무 자습이 있으며, 밤 10시 정도 취침시간 전까지는 자유시간으로서 휴식을 취하건, 개인적으로 공부 또는 숙제를 하게된다. 수업 일정에 따라 전체관람으로 전시회,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등을 방문하며 계절별로 유적지 방문 또는 단체여행을 통해 타지역 및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하기도 한다. 정기 외출이 아닌 일반 주말에는 필드하키, 조정경기, 산책 및 자연학습, 쇼핑 등을 하거나 골프, 테니스, 오케스트라 등의 다양항 클럽활동에 참여한다.
◇직업교육
학위 과정이 아닌 직업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16세 이상의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다. 이들 교육기관에는 독립된 사립 전문대학 이외에도 전문대학 재정 위원회 (FEFC)의 지원을 받고 있는 800여 개의 공립 직업교육 College들이 있으며, GCSE, GCE 'A' 및 AS 시험과정과 더불어 직업, 기술, 공예와 Art & Design 과정들을 개설하고 있다. 이러한 직업교육기관의 가장 큰 특징은 기초적인 수준으로 입학한 학생도 최종적으로는 높은 수준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 고등교육
고등교육이라는 용어는 학위과정과 교사자격 과정에 이르는 학위 과정 수준의 다양성 교육과정을 총괄할 때 쓰는 말이다. 대체로 18세 이상의 학생들이 대상이며, UNIVERSITY, COLLEGE AND INSTITUTES OF HIGHER EDUCATION, COLLEGE OF EDUCATION, SCHOOL OF ART 등 여러 고등 교육 기관이 있다.
영국의 대학은 다른 나라에 비하여 그 규모가 작아 대부분 총 학생수가 10,000명 미만이며 이보다 큰 학교의 경우 여러 단과 대학으로 나뉘어져 있는 등 교수와 학생의 비율이 약 1:12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이러한 영국의 제도는 학생 개개인에 대한 학교들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엿볼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영국의 학위는 어느 교육 기관에서 수여했든 간에 똑같이 인정을 받는데, 각 대학에서 채택한 외부 시험관 제도와 국립 고등교육 평가위원회(HEQC)에서 실시하는 Course Validation에 근거하여 각 대학의 평준화가 이루어진다. 따라서 영국 유학시에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대학의 순위를 고려할 필요없이 자신이 연구 하려는 주제에 잘 부합되는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학교를 선택하면 된다.
- 학부 과정 (First Degree Courses)
6년제인 건축과, 의과, 치의과 대학을 제외한 영국의 학부 과정은 3년제이며, 스코틀랜드는 4년제이다. 영국 대학으로의 입학은 보통 UCAS나 ADAR를 통해 이루어지며 2,3과목의 GCE A-Level과 여러 과목의 GCSE 성적이 요구된다. 또한 외국 학생의 경우 IELTS나 TOEFL 등의 영어 성적과 함께 최종학교 성적증명서, 졸업증명서 및 추천서 등이 필요하다. 입학 자격이 안되는 외국인의 경우 college나 각 대학 자체에서 설립해 놓은 Foundation Course에 입학하여 1,2년간의 대학 진학 준비과정을 거친 후 학부로의 진학이 가능하다
- 석사 과정 (Postgraduate Courses)
영국에는 석사과정이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우리나라 대학의 석사과정과 비슷하게 수업을 듣고 논문을 쓰는 12개월 과정인 일명 수업석사과정 (Taught Master)과 수업은 없이 연구를 통해서만 석사과정을 마칠 수 있는 2년 과정인 연구석사과정 (Research Master)이 그것이다. 전공이 같은 계열이고 성적이 나쁘지 않을 경우 곧장 석사과정으로 입학이 가능하나 우리나라 학생의 경우 대부분은 수업석사과정 (MA 또는 Msc)을 선택하며, 간혹 해당분야의 학부를 졸업하고 직장에서 연구경험이 많은 경우에는 연구를 통한 석사과정(Mphil)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Mphill 과정을 할 바에는 대부분의 경우 1년 더 공부해서 PhD를 받으려는 학생이 더 많습니다.새로 하려는 공부가 학부 때의 전공이나 직장에서 하던 일과 관련이 있다면, 전공을 바꾸어 석사과정 지원이 가능하겠으나, 매우 다른 경우라면 stgraduate Diploma 과정을 한 후에 석사과정으로 지원하기를 권한다. 어떤 경우든 지원하는 학교에서 결정 할 수 있는 것이므로 학교에 직접 문의 해보아야 한다.
- 박사과정
영국의 박사과정은 3년이며, 전공이나 연구진행 상황에 따라 4년 정도 걸리기도 한다. 이 경우 3년 학비만 내고 그 후에는 실험실 사용료 등의 명목 으로 실비만 내고 연구를 진행 할 수 있다. 영국대학의 박사과정은 Course Work가 대부분 없고 교수와 정기적으로 만나서 연구진행에 관한 지도를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교육학, 공학, 임상심리학, 비즈니스 등의 박사과정은 코스워크가 포함되는 경우도 있다.
5. 영국에서 느낀점
영국은 365 중 300일이 비가 온다는 말이 맞듯 비 오는 밤이었다.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로 유럽인이라는 하나의 '집단'에 묶이는데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영국은 유럽의 많은 국가들 중에서도 독자적인 자존심을 유지하는 나라이다.
다른 나라들은 유로를 사용하지만 영국은 아직도 파운드를 고집한다. 그리고 유럽 여러나라에 비해 빨리 움직이는 나라인 것 같다. 건물들은 고층은 거의 없고 2-3층 정도의 집이 대부분이다.
다. 프링스
우리들은 영국 방문을 마치고 프랑스로 이동하기 위하여 유로스타에 몸을 실었다. 프랑스 철도 노조원의 파업으로 인하여 유로스타 열차가 운행을 할수 없다는 말도 들리고 내일 프랑스로 가는 배를 타야 한다는 등의 소문을 들으면서 우리들은 파리로 향했다. 프랑스를 빼놓고 유럽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예술과 패션, 와인과 축구, 낭만으로 가득 찬 프랑스를 많은 사람들은 동경한다. 그 덕분에 프랑스에는 항상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더불어 프랑스는 뛰어난 과학 기술과 스포츠 강국으로도 세계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자신만의 문화를 잘 지켜나가는 자신감의 나라이기도 하다.
1) 국가개요
○ 19세기 대영제국과 함께 서양열강의 주축을 이루던 프랑스는 현재 EU 국가 중의 하나이며 현재 투자규모로 볼 때 한국이 EU 국가에 투자한 금액으로는 제 3위 국가에 속하며, 세게 제 6위의 투자국 이다.(99년 기준) 99년을 기준으로 일인당 국민소득으로 따져보면 프랑스는 서유럽 국가 중 중위권을 차지하지만 프랑스의 국민 총생산(GDP)으로 따지면 미국과 일본, 독일, 영국 다음으로 세계 제 5위의 경제 대국이다.(92년까지는 4위였음)
기간산업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관세를 바탕으로 프랑스의 대외수지는 현재 큰 폭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 가장 많은 공항을 보유하고 있고, 총 도로 807,601km, 철로 34,469km로 각각 유럽 최장 길이를 자랑하고 있다.
세계 제 4위의 자동차 생산국이기도 한 프랑스는 교통 분야에서 매우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한국의 최초 위성 '우리별 1호'는 프랑스의 아리안 로케트에 의해 쏘아 올려졌을 정도로 우주산업에 대한 노하우도 막강한 나라이다.
2. 프랑스의 문화와 사회 체험
문화란 개념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프랑스인들은 그것을 전부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비록 현대 세계시장에선 이제 구석자리로 밀리는 경향이 있지만. 프랑스인들이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다른 나라사람의 취향과 생각에 부합되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얼마나 프랑스적인 것에 도취해 있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가장 먼저 튀는 것은 프랑스 건축물로 12세기 중반 북부 프랑스에서 기원된 고딕양식이다. 이 양식은 샤르트르(Chartres)와 렝스(Reims), 아미엥(Amiens)의 성당 양식으로 이어진다. 그 후 15세기 말 샤를르 8세가 이탈리아를 수회 침입할 무렵, 르네상스가 프랑스 전역에 퍼졌고, 이는 건축, 시각예술 분야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시대라블레(Rabelais)와 몽테뉴같은 작가들에게는 이것이 프랑스문학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16세기말에서 18세기후반까지 지속된 바로크시대에는 회화, 조각, 고전건축이 한층 정교하고 세련되며 우아해졌다. 프랑스 바로크 음악은 국내뿐만 아니라 널리 유럽에도 영향을 끼쳤다.이 시대 프랑스 연극은 당대 최고의 희극작가 몰리에르(Moliere)로 인해 웃음이 주류를 이루었다.1789년 혁명 지도자 중 하나인 쟈끄 루이 다비드(Jaques Louis David)는 나폴레옹에게 발탁되어 공식적인 국가의 화가가 되었고 실상 미술분야의 독재자역할을 하였다. 그의 방대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혁명독재자였던 마라(Marat)가 욕실에 누워 죽은 그림이다. 이 시기 문학은 볼테르(Voltaire)와 루소(Rousseau) 등 철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음악에서는 프랑스음악에 르네상스바람을 일으키며 오페라와 교향곡을 작곡한 현대관현악의 창시자 베를리오즈가 두각을 나타내었다. 그의 영향하에 가브리엘 포르(Gabriel Faure)와 인상파음악가 끌로드 드뷔시, 모리스 라벨 등 위대한 음악가들이 탄생하였다.레미제라블(Les Miserables), 노트르담의 꼽추(Notre-Dame de Paris)와 함께 시로 널리 인정받은 빅토르 위고(Victor Hugo)가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이 외 유명한 작가로는 스탕달(Stendhal)과 마리 앙리 베일(Marie Henri Beyle), 방대한 프랑스 사회역사를 다룬 소설 '인간의 희극(La Comedie Humaine)'을 쓴 오노레 드 발작(Honore de Balzac) 그리고 조르쥬 상드로 더 잘 알려진 오로르 뒤뺑(Aurore Dupain), 몽테크리스토백작의 알렉쌍드르 뒤마(Alexandre Dumas) 등이 있다. 19세기중반 낭만주의가 소설과 시에서 새롭게 대두되었는데 이 주류의 세 거장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그리고 에밀졸라(Emile Zola)가 있다. 시인 랭보(Arthur Rimbaud)는 불후의 명작을 두 편을 남겼는데,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s)과 지옥의 계절(Une Saison en Enfer)이 그것이다. 조각가 로댕(Auguste Rodin)도 이 시대의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로, 미술역사상 가장 정교한 초상화화가로도 평가되고 있다. 인물화는 앵그르(Jean Auguste Dominique Ingres)와 들라크루와(Eugene Delacroix)가, 풍경화는 밀레(Jean-Francois Millet)와 바르비종 학파, 그 뒤로 마네(Edouard Manet)와 사실주의자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마네의 후기작품들은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인 모네(Claude Monet)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의 제자들 중 피사로(Camille Pisarro)와 드가(Edgar Degas)를 꼽을 수 있다.후기인상주의는 20세기 획기적이고 많은 양식을 파급시켰다. 그 중 특히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와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파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 후 1차 세계대전의 부정적인 반향으로 허무주의가 나왔고, 대표적으로 마르셀 뒤샹은 실생활의 물건들을 작품으로 전시하는데, 예를 들면 소변기를 전시해 놓고 'Fountain and signed'란 타이틀을 붙여 논 것이 유명하다.문학에서 20세기초를 대표하는 작가로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의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있다. 2차대전 후에는 실존주의가 일어났고 쟝뽈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브와르 그리고 알메르 까뮈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1950년대 후반 젊은 소설가 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와 1984년 '연인(L'Amant)'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마르그리트 뒤라(Marguerite Duras)도 참신하고 개성있는 작가들이다. 1950년과 60년대는 프랑스 영화의 혁명기이다. 이 시기 새바람을 일으킨 영화감독의 선두주자는 쟝뤽고다르(Jean-Luc Godard), 프랑소와 트뤼포(Francois Truffaut) 그리고 루이말르(Louis Malle)등이다. 이 감독들은 1970년대까지 독주하였는데, 이후는 새바람의 실험적인 선을 넘지 못하였고, 불란서 영화에 대한 고정적인 틀(수준높고, 엘리트하며, 솔직하고 지루한 기획이라는)이 생기게 되어 더 이상 앞서지 못하였다. 1980년과 90년대 가장 성공적인 감독들의 영화는, 특이한 소재와 이상한 스토리, 독특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근본적이고 시각적으로 눈에 두드러지는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주목받는 감독으로는 디바(Diva)와 베티블루(Betty Blue)의 쟝쟈끄베네(Jean-Jacques Beineix) 그리고 제5원소와 니키타, 프로페셔날을 직접 쓰고 감독한 뤽베쏭(Luc Besson) 이 있다.종교는 로마카톨릭이 다수인데 실제로 교회생활은 거의 없고, 예배참석률도 매우 낮다. 1905년 정부와 교회가 분리됨에 따라 일반적으로 신앙도 세속적이 되었다. 이어 이슬람교도가 많으며 그 뒤로 신교, 유대교 등이 있다.프랑스 음식에 대해 말하자면 끝이 없는데, 간요리, 로크포르 치즈, 달팽이 요리, 과일 파이 등 많은 독특한 요리들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끌어당길 것이다. 그러나 달팽이요리와 포도주만 먹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의 북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 요리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전형적인 프랑스사람들의 아침식사는 카페오레 한 사발과 크루와쌍, 버터와 쨈을 바른 빵 한조각이다. 점심과 저녁은 거의 비슷하게 먹는데, 주로 전채요리는 떼뜨빠떼(돼지머리를 젤라틴화시킨 것)나 생선수프의 일종인 부이야베스(Bouillabaisse), 그리고 주요리로 송아지나 양고기로 요리한 화이트소스 스튜(블랑켓트(Blanquette)) 그리고 후식으로 치즈나 사과 파이등이 대표적이다. 식사 전에는 키르(kir)라고 하는 달짝지근한 화이트 와인이 나오기도 하며, 디제스티프(digestif)라고 하는 소화촉진제로 꼬냑이나 아르마냑 브랜디가 식사 후에 나오기도 한다. 식사 후 소화를 돕고 얘기를 더 하기 위해 마시는 것으로는 에스프레소나 맥주, 파스티스(pastis)같은 술류 그리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프랑스산 와인 등이 있으며, 프랑스의 문화 탐방을 몇가지 소개하기로 한다.
▶ 루브르박물관 : 루브르 궁전은 800년에 걸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세의 성에서 프랑스의 역대왕의 궁전까지, 그 후로는 미술관으로 그 건물양식이 발전해 왔다. 원래는 궁전으로 중세부터 프랑스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의 한 부분을 차지했으나 지금은 국제적인 명성에 힘입어 궁전보다는 미술관으로서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1793년에 프랑스 공화국에 의해 설립된 루브르미술관은 설립시기 면에서는 애슈몰린미술관(Ashmolean Museum,1683년)과 드레스덴 미술관(Staatliche Kunstsammlungen Dresden,
1744년),
그리고 바티칸미술관(1744년)보다 늦지만 유럽에서 최대최고의 미술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루브르는 원래 미술관으로 사용될 계획은 아니었다고 한다. 마리 4세가 1671년에 그랜드 갤러리를 1층에 열었다. 미술과 예술품에 박식했던 그녀는 "고대의 방"과 왕의 데상실과 왕의 회화실을 두었고 일반인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1747년 왕의 콜렉션들을 감상할 수 있는 "뮤즈의 궁전"으로 불리 우면서 박물관의 역할이 부각되었다고 하니 그 옛 부터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에는 페이가 설계한 유리로 만들어진 피라미드가 루브르를 대표한다. 루브르의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을 몇 가지 말하자면, 다 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니케", 들라크르와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다비드의 "나폴레옹 대관식" 등등 헤아릴 수 없는 유명한 예술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유리 피라미드를 좀 더 지나면 1805년 나폴레옹의 승전을 기념하여 베니스에서 빼앗았다가 1815년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돌려준 산 마르코의 네마리 말들을 조각한 카루젤 개선문도 볼거리이다.
▶ 에펠탑 : 프랑스 혁명 100주년인 1889년에 세운 높이 320.75m의 탑으로 구스타프 에펠이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세운 파리의 상징이다. 탑 아래 위치한 샹 드 마르스 공원 왼쪽에는 나폴레옹의 유해가 있는 앵발리드, 그 근처에는 로댕 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정상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건너편 샤이오 박물관에서 보는 에펠탑의 야경은 정말 장관이다.
전망대 내부에는 선명한 태극기와 함께 서울, 부산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다.
▶ 콩코르드 광장 :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루이 15세 광장이었고 1792년에는 레볼뤼시옹 광장이었다가 지금의 이름이 확정된 것은 1830년이다. 테뢰르 통치하에는 이 광장의 84,000㎡에 달하는 넓이의 광장이 교수형 장소로 이용되어, 루이 16세와 그의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를 포함한 1119명의 사람들이 비참한 죽음을 맞은 곳이기도 하다. 이 광장은 1755년에서 1775년 사이에 앙쥬 자크 가브리엘(1698-1782)에 의해서 설계되었다. 난간으로 둘러 쌓인 도랑으로 만들어진 8각형으로 설계되었으며 프랑스의 대표적 8개 도시(브레스트, 루앙, 릴르, 스트라스부르, 리옹, 마르세이유, 보르도, 낭트)를 상징하는 8개의 동상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 또한 로마의 산 피에로의 분수에 영향을 받은 두 개의 분수가 만들어져서, 북쪽의 분수는 강에서의 유람을, 남쪽의 분수는 바다에서의 항해를 표현하고 있다. 루아얄 거리 입구를 양쪽에서 호위하는 듯 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는 같은 스타일의 두 쌍둥이 건물은 가장 화려한 건물 중 하나로 꼽히는 것으로 , 1778년 2월 6일 루이 16세와 미국의 13개 독립주와의 우호와 교류의 조약을 체결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조약으로 미국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 샹제리제거리 : 샹제리제 거리(Avenue des Champs-Elysee)는 파리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길이 2km의 대로이다. 개선문을 기준으로 뻗어 있는 12개의 방사형 길 중에 정면으로 있는 가장 큰 길이의 거리이다. 양쪽에 이름난 상점, 식당, 영화관, 여행사가 즐비하며 화려한 거리의 노천카페가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리도쇼를 볼 수 있는 리도 극장도 이곳에 위치한다.
3. 학교탐방
우리 일행들은 파리 시내의 문화체험을 끝내고 프랑스 사립학교와 파리대학교(소르본느대학교)가 있는 LYCEE LOVIS -LE-GRAND(로비 르그망 리세 고등학교)를 탐방하였다. 1583년에 설립된 lovis le grand 고등학교는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기관의 하나로 전 프랑스에 알려진 학교이며, 학부 과정은 정규와 엘리트 코스 준비 과정으로 나누어저 있고 정규과정은 일반 대학입
학을 위한 과정이며. 영재 교육과정으로 준비과정으로는 첫째는 A 엔지니어 1년차는 수학 물리이며, 4개의 반은 수학과 물리 2개의 반은 수학과 물리 그리고 화학 2년차는 수학 물리 4개의 반 기본 과정이며, 1개의 반 물리 심층과정 그리고 3개의 반 화학 심층과정이다. 둘째는 B 문학과정은 2개의 반으로 문학과 철학 역사 지리 문학, 현대문학, 영어, 독어, 스페인어이며, 셋째는 C 상업과정은로 1개의 반에 과학이 추가되어 있다. 학교 운영교장은 1997년부터 현재까지 교장은 맡고 있는 Mister Joel H. Vallat이며, 부교장은 Madame Monique du Mouza 서무 는 Conseillers Principaux d'Education 주교육담당고문이 하고 있으며, 학교가 소재하는 학구가 좋은 편이어서 학생들 수준이 쾐찮다고 한다. 교문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하는 직원이 근무하고 있고, 교문을 보니 경직된 분위기를 느꼈다. 영국의 학교와 같이 정원은 작으며 건물은 대리석으로 ㄷ자형으로 구성되어있다. 운동장은 없어며, 우리가 학교를 갔을때는 학생들의 하교 시간 있었다. 체육관인지 아니면 다목적교실에서 이제막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을 볼수 있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마치고 나면 선생님에게 질문하는 모습등은 흡사 닮아가고 있었다. 다목적교실은 낡아 춥게 보였다. 발랄하게 뛰어 노는 모습과 외국인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 데 자연스럽게
다가온
모습은
우리아이들과 다를바
없었다.
고등학교학생들과 함께 고등학교 교문 수업을을 미치고 나서 정 원
4. 프랑스의 교육제도
한 나라의 교육제도는 그 나라의 가치관을 담고 있다. 교육제도는 평등에 대한 가치관, 기회에 대한 가치관, 인재 상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미래에 대한 가치관을 담은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 한다. 그렇기에 프랑스가 어떠한 교육제도를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프랑스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필수적인 과정이다.
영미권에 비해 프랑스나 독일은 학위 따기가 훨씬 까다롭고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언어 문제로 말 못하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대학 교육의 의미는 역시 독특한 학제와 학풍 그리고 수준 높은 내용과 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랑스는 중세를 통해 오랫동안 성직자에게 한정되었던 교육을 15세기 말에 이르러 파리대학교를 창설함으로써 일반에게 개방하려 했다. 18세기에는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사상과 과학 기술의 경험주의라는, 언뜻 모순되는 2개의 경향이 교육의 사상과 방법에도 나타났다. 현재의 교육제도는 제3공화국의 교육제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 학교에서 추구하고 있는 교육 이념은 종교, 사회, 민족 간의 구별 없이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인데, 이를 학교의 중립화라고 일컫는다. 이런 교육 의도의 계기를 마련한 사람은 장 마쎄(Jeam Mac)이다. 장 마쎄가 이러한 중립 혹은 평등 교육 이념의 기초를 마련했다면 이를 실제로 학교교육에 적용시킨 사람은 쥘 페리(Jules Ferry)이다.
프랑스 교육 체제는 프랑스 혁명의 기본 이념 중 하나인 평등(galit)에 기초를 두고 초등교육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 프랑스의 교육제도와 교육의 특징
- 교육제도 : 공교육체제를 통하여 국가가 모든 것을 관장하며, 누구나 마음만 있다면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무상교육의 원칙을 두고 국가를 이끌어 갈 엘리트를 양성한다.
- 교육의 특징 : 페리법 : 무상, 의무, 비종교성, 교육의 민주화, 평등화, 교육의 중앙관리 체제
다.
- 공교육과 사교육
프랑스의 교육은 국가가 관장하는 공교육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도 전체의 17%나 된다. 프랑스의 어린이들은 의무적으로 거주지 학군(Carte scolaire)에 위치한 공립학교에 다녀야만 하는데, 사립학교는 거주지와 관계없이 학생을 받아주고 있다.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사립학교를 선택하기도 한다. 학생 수가 적어 양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의 90여 개 대학 가운데 사립대학은 6개에 불과하다. 공교육은 의무교육과 무상교육이 가장 큰 특성이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는 정부에서 교과서에 한하여 무상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반면, 고등학교의 경우는 부모의 부담이고, 사교육사립대학은 6개에 불과하여 모두 카톨릭 재단에서 운영하고, 앙제의 서부카톨릭대학교 외에 리용, 릴르, 파리, 뚤루즈, 세브르에 있다.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의 임용에 관해 사립학교장이 추천하고 교육부가 교원으로서의 일정 자격을 갖춘 자들을 임명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교원은 고등사범학교라는 그랑제꼴이나 일반대학교의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들만 아그레가시옹 agr gation이라는 대학교수자격시험을 보아 합격한 아그레제가 있고 합격하기가 매우 어렵다. 대학 학사 이상이 까페스 C.A.R.E.S라는 중등교원자격고사를 응시하여 중등교원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들이 되고 2차 면접시험이 까다롭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임시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이 엠.아. M.A.라고 불리는 자습감독교사를 한다.
◇ 교육과정
- 탁아소 : 크레쉬(La cr?che)
생후 3개월부터 3살 이하의 어린 아이를 돌봐준다. 어린이의 건강, 안전, 신체적 발달 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주로 놀이, 만들기, 이야기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갸르드리 Halte garderie라는 시설은 아이를 잠시 동안만 맡아주는 곳으로서 바캉스 기간에 이용한다. 크레쉬나 갸르드리의 위탁료는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책정된다.
- 유치원 : 에꼴 마떼르넬(Ecole maternelle)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이전의 3세에서 6세에 이르는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들이 다니고 있고, 유럽에서 최초로 유치원 교유의 무상교육제도를 실시하였다. ‘에꼴 ?cole’은 ‘학교’, ‘마떼르텔 maternelle’은 ‘어머니 같은’ 뜻으로 “어머니를 대신하는 학교”로서 공립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급식비의 일부만을 부담하면 된다.
먼저 가벼운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게 하고 음악, 미술, 만들기 등과 같은 지적 또는 감각적 활동들을 통해 아동들의 정신을 개발시키고, 아동의 자질을 길러주는 동시에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성취욕을 갖게 한다. 또한 놀이를 통해 나와 타인에 대한 자각 및 지식을 개발시켜 타인과의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아동의 사회화 과정에 도움을 주고, 자신의 옷을 정리하는 일이나, 테이블매너, 공동생활의 예절 등을 가르침으로써 올바른 인격 형성을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말하기와 쓰기 학습을 통해 아동의 표현력을 다양화시켜주는 학습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를 맡기고 데려가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가 책임지도록 한다.
- 초등학교 : 에꼴 프리메르(Ecole primaire)
초등교육의 무료화, 비종교화, 의무화라는 3대 원칙을 쥘 페리가 선언하였다. 6세에서 11세까지의 의무 교육 대상 아동에게 실시되는 교육으로서 교육과정은 5년으로 저학년에서는 읽기와 산수의 기초를, 고학년에 올라갈수록 보다 깊이 있는 지식을 배우게 된다. 초등학생 가운데 85%가 공립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깨끗이 쓰고 반납하도록 하여 후배들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교과서까지 무료로 제공 된다.
중학교 교육 과정을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초 지식을 길러주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성공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초 지식을 길러주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게 해주면서 자율성과 자유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일깨워주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수업이 없는 수요일이면 아이들은 “씽트르 아에레”라 불리는 문화센터에 등록하여 음악, 그림, 연극 등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거나 야외할동을 한다.
- 중학교 : 꼴레쥬(Coll?ge)
4년간의 교육 과정으로 전반기 2년은 관찰과정이며, 후반기 2년은 진로결정과정이라 부른다.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받을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중학교의 교육목표가 첫째가 논리적 사고력을 키워주는 것이고, 둘째는 쓰기, 말하기, 영상 표현 등 3가지 능력을 길러주며, 마지막으로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신장시켜 주는 데 있다.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똑같은 시간에 시작하여 동시에 수업을 마치는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소그룹으로 나누고 학습 시간 또한 교사의 재량에 따라 조절할 수 있게 함으로써 딱딱하고 정적인 학급 분위기에서 자유롭고 동적인 분위기로 학생들의 학습 의욕을 촉진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 고등학교 : 리쎄(Lyc?e)
고등학교 교육도 16세까지는 무상으로 실시되고 있다. 입학시험이 폐지된 1963년부터는 중학교 성적과 교사의 추천만으로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되었다.
- 대학입학자격시험 : 바칼로레아(Baccalaur?at)
바칼로레아는 프랑스혁명 이전까지는 대학에서 수여하는 첫 번째 등급의 학위였으나 1808년 나폴레옹법령으로 고등학교졸업자격시험으로 바뀌었다. 프랑스판 대입 수능시험인 바칼로레아 시험은 6월 중순경에 전국적으로 치러진다. 그러나 모국어인 프랑스어 시험은 졸업 1년 전 6월에 별도로 실시되기 때문에 2년에 걸쳐 치러지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후반까지 있었던 입시제도인 예비고사와 비슷하다. 평점은 ‘20점 만점에 몇 점’ 그리고 ‘Assez Bien(아세 비앵 : 제법 잘했음.), Bien(비앵 : 잘했음), Trs Bien(트레 비앵)’으로 주어지며, ‘트레 비앵’은 우리 나라식으로 치자면 수 우 미 양 가 중 ‘수’ 정도에 해당하는 등급에 불과하다. 필수 과목과 선택 과목 시험을 보는 1차의 경우 20점 만점에 평균 10점 이상을 받으면 합격이다. 단지 ‘박 Bac’ 을 가지고 있어야만 사회에서 인간 대접을 받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모든 일반대학과 고등교육기관에 진학하려면 반드시 바칼로레아를 통과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시험에 통과하였는가가 대학의 학과 선택에 제한조건이 되지는 않는다. 대학은 대중 교육기관이며 엘리트 교육기관은 그랑제콜이 담당한다
- 일반대학교 : 위니베르시떼(Universit?)
프랑스의 대학은 엘리트 교육기관이 아니다. 프랑스는 캐나다와 스페인 다음으로 세계에서 세 번째로 대학생이 많은 나라로 만들어주고 있다. 프랑스 고등교육의 중심이 되는 일반대학교는 대부분 국립대학이므로, 사립대학이나 사설전문대학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학비가 저렴하다.
대학 과정 중 기초 과정에 해당하는 단계로서 대학교 1~2학년에 해당하는 더그(DEUG) 과정으로서 기본 학과목들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 일반 교양 교육을 습득함과 동시에 향후 전공하게 될 세부 분야에 앞서 학습하는 방법이나 연구 방법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D.E.U.G.라 불리는 처음 2년간의 학부과정은 전공 선택을 위한 탐색의 기회가 된다. 2학년에 제대로 진급하는 학생은 절반 정도에 불과하고 D.E.U.G과정을 마치면 대학교 3~4학년에 리상스 Licence라는 학사과정을 등록하여 학사 학위를 취득하게 된다. 이때부터는 하나의 학부 U.F.R.안에 설치된 여러 학과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리상스 1년 과정을 마치고 학사학위를 취득한 학생은 대학원 과정으로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메트리즈 과정을 거친다. 이때부터는 메트리즈을 제출하여야만 학위를 받을 수 있다. 석사과정을 마치면 1년 과정의 D.E.A.에 등록한다.
- 그랑제꼴(Grandes ?coles)
인격적인 평등이나 보편적인 인권은 철저하게 존중하지만 학력의 차이는 평등이라는 잣대로 재단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는 오히려 뛰어난 영재를 국가가 책임지고 가려 내고 지원하고 배려해 주는 엘리트 교육을 중요시한다. 이런 독특한 엘리트 교육제도가 프랑스의 우수한 두뇌를 배출한 원동력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랑제콜은 ‘큰 학교’란 뜻으로 선진국 중 프랑스의 고등 교육제도만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다. 1794년 국민공회가 세운 파리 고등사범학교 E.N.S.는 가장 유명한 그랑제꼴 가운데 하나이다.
명문 세 학교는 에콜 노르말 쉬페리외르(ENS : 고등사범학교), 국립행정학교(ENA), 파리 이공대(에콜 폴리테크니크)이다.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자를 노르말리앵이라 부르고, 에콜 노르말 1학년은 6개월 후에 학사 학위(리상스)를 따 와야 하고, 2학년 때는 6개월 후에 준석사 학위(매트라즈)를 따야 하며, 외국의 명문 대학에서 6개월을 연수한 후 연구 보고서도 내야 한다. 3학년 때는 석사(또는 준박사) 학위에 해?하는 DEA를 끝내고, 4학년 때는 교수 자격시험(아그레가시옹)이나 국비 박사 과정을 준비하게 된다. 권위 있는 교수가 되려면 전통의 명문 고등학교를 거쳐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콜 노르말 쉬페리와르 Ecole Normale Sup?rieure)를 졸업해야만 한다. 현대 프랑스 사회학의 두 거장 피에르 부르디외, 알랭 투렌, 미셸 푸코 등이 파리 고등사범학교 출신이다. 에콜 노르말의 경우 한 학과 선발 정원은 불과 20~30명 선이다.
공과 계통에서 최고의 명문은 흔히 ‘X(익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에콜 폴리테크니크(Ecole Polytechnique)’이고, 파리 고등사범학교와 라이벌 관계이다.
이 두 학교와는 좀 성격이 다른 권력 엘리트 양성기관이 있으니 바로 국립행정학교이다. ‘에콜 나쇼날 다드미니스트라시옹(ENA, 약칭 에나)’이라는 이름의 이 그랑제콜은 프랑스의 정치인 및 고급 행정관료를 양성하는 실무적인 교육기관이다. 프랑스 정치판은 에나크 일색이다.
아마도 고등교육기관이 ‘대학(위니베르시테)’과 ‘그랑제콜’로 이원화되어 프랑스에서의 엘리트 교육은 ‘그랑제콜’이라는 특수 교육기관에서 이루어지면 선발 과정이나 입시제도로 일반 대학과는 별개로 이루어진다. 일반대학이 학문을 하는 학자나 기사를 교육한다면, 그랑제꼴은 각 행정 부처에서 필요한 고급 인재를 길러내는 특수 교육기관이라 하겠다. 이것을 통해 프랑스의 엘리트는 20세 전에 결정된다. 엘리트 대학의 첫 번째 전제는 ‘소수 정예제와 국가의 절대적 지원’이므로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는 학생 수로 볼 때 결코 소수 정예의 엘리트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없다.
4. 프랑스 교육문화와 한국 교육문화 비교
공통 |
프랑스 |
한국 | |
- 교육의 평등화. 교육에 대한 중앙정부 관리, 통제의 성격 (각 대학의 자율성이 적은 상황) 차등원칙보다 기회균등을 더 강조 (프랑스의 2001년부터 실시한 ‘우선교육협약’과 한국의 2004년에 도입된 서울대학교의 농어촌 학생을 위한 ‘지역 할당제가 유사) | |||
차 이 점 |
평등에 대한 정의에서 중점의 차이 |
모두에게 같은 교육의 기회를 주는 성격에 더 중점(차등원칙) |
개인의 차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성격에 더 중점(기회균등 더 강조) |
초중의 교육과정 |
초등학교가 5년인 대신 중학교가 4년 |
초등학교가 6년이고, 중학교가 3년 | |
초중등교육 |
학교의 중립화 (종교, 사회, 민족 간의 구별 없이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무료화, 비종교화, 의무화) |
‘평준화’라는 정책이념으로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평등화 | |
고등교육의 입시 |
바칼로레아의 합격, 불합격에 따른 고등교8육의 평등화 (단, 그랑제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바칼로레아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
고등교육이 서열화 (대입 수학능력시험의 상대 점수에 더 중점)
| |
고등교육 |
-비교적 자유로운 학교와 전공의 전환 학제간 연구나 통합을 중요 기초 학문의 중요성 |
- 극심한 학문의 분야별 분화 극심한 학문간 분절 현상 |
<한국과 프랑스의 초중고 교육과정 비교표>
구 분 |
1년차 |
2년차 |
3년차 |
4년차 |
5년차 |
6년차 |
7년차 |
8년차 |
9년차 |
10년차 |
11년차 |
12년차 |
한 국 |
초1 |
초2 |
초3 |
초4 |
초5 |
초6 |
중1 |
중2 |
중3 |
고1 |
고2 |
고3 |
프랑스 |
CP |
CE1 |
CE2 |
CM1 |
CM2 |
중6 |
중5 |
중4 |
중3 |
고2 |
고1 |
떼르미날 |
(한국어의 어순과 프랑스어의 어순이 정확히 정반대인 현상에서 발견되었다
5. 프랑스에 대한 감상
프랑스에 가면 영어를 알면서도 쓰지 않는다고 소문난 게 1980년대쯤까지였다고 한다. 요즈음은 영어를 아는 사람은 영어로 대답해준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자기민족의 우월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잇을 것이다. 프랑스 역시 한 때 언어가지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 모양이었다. 설문조사에서 어린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으로 1위를 프랑스로 꼽았다고 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땅이 넓은 나라이다. 자연히 다양한 물산, 문화, 사상등이 존재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파리의 예술적 감각에 관심이 많을 것이다. 세느강, 개선문, 샹제리제 거리, 루브루 박물관,에펠탑, 베르사이유 궁전 등은 그 이름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이나 일본에서 왔다는 사람보다 프랑스에서 왔다고 하면 어린이들까지 예술과 연관시킬 것리다. 예술가들이 많이 활동한 결과도 있지만 모든 분야에서 만다른 예술성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인 것 같았다. 그런 것 또한 노력의 산실일 것이다. 그런데 파리를 다니다 보며 거리도 지저분하고 사람들도 매일 놀고 지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선진국인지 의심이 가기도 했다. 그래도 그 동안 일구어 놓은 것이 있어서 기본은 꾸준히 한다는 생각으로 이해했다.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 생각난다. 오늘날의 프랑스가 있게 한아픈 과정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일제 시대때 활동 했던 친일파 세력이 해방후에도 주요 요직을 차지했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 바로 세우는 작업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해결이 안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는 그런 것을 해냈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군이 파리를 침공하여 프랑스가 독일에게 항복하자 일부 프랑스 인들이 독일 나찌의 앞잡이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레지탕스라는 애국자들도 활동했다고 한다. 1945년 독일이 연합군에 항복하고 프랑스는 독립이 되었을때 프랑스 정부는 나찌에 동조했던 앞잡이들을 색출해 내어 무려 2,000여명을 처형 시켰다고 한다. 그 뒤 프랑스 국민들의 애국심은 커져만 갔고 오늘날 자부심을 가지게 된 기틍이라고 한다. 일제시대 때 독립군들이 만주에서 독립운동하느라 자식들 교육도 제대로 못시키고 있을때 친일파는 호의호식하면서 지내다가 해방을 맞은 후에도 같은 형편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무일푼으로 돌아온 독립 운동을 한 가족들은 계속 가난 했고 친일 집안은 계속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때 프랑스처럼 애국정신을 키울 수 있는 나라를 바로 세웠으면 오늘날 우리나라도 프랑스 이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부분이 프랑스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강력한 나라를 바로 세운 작업 같았다. 그런 프랑스이지만 목욕처럼 몸을 깨끗이 하는 것을 싫어해 몸 냄새를 없애기 위해 향수를 발명하여 오늘날 세계적인 향수를 개발하게 된 것과 같이 특이한 민족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몸을 깨끗하게 하고 다녀서 향수 같은 것이 필요없었던 우리 민족이다. 어떤 분야에서도 우리나라는 저력을 발휘 할 수 있을 것이다.
라. 스위스
프랑스 학교방문 문화 현장 체험을 마치고 프랑스 떼제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국에서 올 때처럼 프랑스 철도노동자들이 파업하여 로쟌역 기차를 타지 못하고 제네바기차를 탔다. 차장너머로 보이는 프랑스 농촌 풍경은 우리들의 농촌 풍경 다를바 없었다. 스위스에 도착하니 왜 이리도 공기가 깨끗한지 그리고 겨울이 몸에 와 닿은 것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청정호수와 구름 한 점 없는 바다 같은 파란 하늘 위로 솟아오른 산봉우리가 만년설을 이고 있다. 급경사로 깍아지른 언덕위에 마을이 형성되어 산림을 주업으로 살아가는 산촌의 모습이 아름답다.
1. 국가개요
○ 면적은 약 41만1천㎢로 남한의 반 정도로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리히텐슈타인, 프랑스 등의 국과와 접해 있다. 국토의 70% 이상이 산악지대로 북서부에는 쥐라산맥, 그 옆으로는 제네바, 루쩨른, 쮜리히를 잇는 평평한 대지가 펼쳐진다. 알프스 산맥에는 몬테로사, 마터호른 등의 험준한 고봉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라인, 론, 다뉴브강의 발원이 되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특징 때문에 스위스는 4개 국어를 표준으로 삼고 있으며 각 주마다 표준 언어가 모두 다르다.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라면,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이 유창하다. 각 TV의 채널마다 각 주가 지정한 외국어로 방영되며, 다국적인 환경에 어릴 적부터 쉽게 노출이 된다. 1%를 차지하는 토속 로만어는 거의 접할 수 없다. 독일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며, 이런 지역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는 모두 통한다.
2. 스위스의 사화와 문화 체험
기원전 5세기경 켈트족의 일부인 헬베티아인이 정착한 스위스는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는 고난의 역사를 걸어왔다. 그 후 동스위스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게 되자, 이에 대응해 1291년 8월 1일, 3개 주가 외적에 공동 대응을 약속하면서 오늘날 스위스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에 의해 스위스의 독립을, 그리고 1815년 빈 회의에서 영세 중립국으로 승인을 받았다. 제1ㆍ2차 세계 대전 때에도 중립을 지킨 스위스에는 많은 국제 기관들이 설치되었다. 과거 로마 가톨릭 국가였던 스위스는 프랑스 루이 14세가 낭트 칙령을 폐지해 많은 신교도들이 스위스에 들어오면서 프로테스탄트를 믿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했다. 오늘날 로마 가톨릭 교와 프로테스탄트를 믿는 사람이 각각 47%, 44%로 거의 비슷해졌다. 최근 프로테스탄트는 스위스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이 높이 평가되어 교세가 확장되었다.스위스는 유럽 대륙 중앙에 위치해, 외국 문화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문화가 주변 지역으로 꾸준히 전파되었다. 그 결과 포용력 있는 스위스 문화를 만들어냈다. 또 스위스 내에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대 문화권의 다채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기반이 되었다. 특히 스위스의 공용어로 사용되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는 스위스의 지적, 문화적 지평을 주변 국가로 확대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런 스위스 문화의 다양성에 힘입어 매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벤트와 축제들이 개최되고 있다.
크리스트 교 국가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스위스에는 대부분의 전통 축제가 크리스마스와 같은 크리스트 교 기념일에 거행된다. 그루예레 지방의 목동들은 푸른색 짧은 재킷을 입고 '브레드종(Bredzon)'이라 불리는 신발을 신고, 여인들은 긴 소매 재킷에 크로세 리본을 단 밀짚 모자를 쓰고, 비단으로 짠 앞치마를 두른다. 정교한 스위스 장식을 단 스위스의 전통 복장은 축제나 행진 등에서 볼 수 있다.
▶ 인터라켄아름다운 호수의 도시 인터라켄은 인터라켄(Interlaken)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툰(Thun) 호수와 브리엔즈(Brienz) 호수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스위스 최고의 관광지이자 알프스의 3봉인 아이거(Eiger), 묀히(Monch), 융프라우(Jungfrau)가 나란히 있는 베르너 오버란트(Berner Oberland)로 올라가는 관문으로 고도는 569m이다. 스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로 빼어난 아름다움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시인과 예술가, 문인들 자연애호가들이 그 아름다움에 반했던 이곳에서 알프스의 다양한 모습을 즐길 수 있다.
▶ 젊은 처녀 어깨를 뜻하는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역이다 우리는 이곳을 등정하려고 새벽5시에 기상하여 인터라켄 동역으로 나가 입산료를 포함한 등산열차 표를 구입하였다. 동역에서 일반 레일로 출발한 기차는 중간에 등산열차로
두 번 갈아타며 경사진 비탈길을 3개의 레일로 올라가는데, 가운데 레일은 토비바로 되어 있어 미끄러움을 방지하고 있다. 인터라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등산열차를 타고 올라가는 2시간30분동안 알프스의 절경을 감상하면서 융프라우흐역에 오르는 것이다.
열차가 달리는 동안 중간 중간 안내 방송이 나오는데 한국어 방송도 들을 수 있다. 첫 번째 터널 정거장에서는 아이거 빙하의 북면 한가운데서 그린델발트 계곡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고, 두 번째 정거장은 빙하가 시작되는 아이스 메르인데 창문을 통해서 그린델발트 빙하가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계곡을 끼고 오르다보면 동화 속에서 나올법한 산악마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자연에 오염되지 않은 무공해 신선들이 사는 마을처럼 보인다. 산악마을 주변으로 다양한 하이킹코스가 잘 닦여 잇어 등산열차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알프스의 자연을 만끽할 수도 있다. 알프스의 산자락에 방목한 젓소가 방울을 울리며 한가롭게 풀을 뜯고 언덕 위로는 하얀 눈이 소복 쌓여 있어 한 폭의 그림 같이 보인다. 융프라우요흐 전망대 통로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핑크스 전망대에오르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로 알프스 거봉들이 눈앞에 딱버티고 서있었다. 대자연의 위용은 참으로 위대하여 보는 이들을 압도 한다. 왼쪽으론 알프스의 지붕 알레츠 빙하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망원경을 통해 정상에 도전하는 등반인들은 작은 개미새끼 만하게 보였다. 일년 365일중 이렇게 좋은 날씨는 몇날 안된다는데 하였다. 밖으로 나가 설산을 잠시 걸었다. 언제 또 여길 오겠나 싶어 대자연의 순수함을 그대로 느껴본다. 식당으로 내려가 컵라면를 하나 샀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찾아 오길래 라면까지 준비했을까하고 생각 해보았다. 그리고 우리들은 융프라우요흐를 내려와서 이탈리아로 발길을 돌렸다.
3. 스위스에서 느낀점
휴전선을 맘대로 그어놓고 남북한 대치하고 있는 우리네 현실을 보다가 국경이라는 검문소를 버스를 타고 지나치다니 기분이 참으로 묘해진다.
나라 전체가 꽃으로 둘러싸인 스위스는 아름다운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중세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한 나라이기도 하다. 도시 곳곳을 장식한 발코니의 꽃들과 알프스에서 볼 수 있는 고산지대의 꽃들, 만년설이 뒤덮인 유럽의 지붕-융프라우와 필라투스, 티틀리스, 리기와 같은 많은 산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계공예 등 스위스는 그 이름만으로도 매력이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몇 년이 걸려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알프스의 터널을 인력으로 16년이란 시간이 걸려 통과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몇 년에 자연을 파괴하면서 길을 닦는 모습은 우리들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 이탈리아
우리들은 스위스 방문일정을 마치고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향했다 버스안에서 가이드의 앞으로 일정과 주의할 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주의할 점은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것이다. 말인즉 세계의 소매치기는 이태리가 집합장소라고 할 수도 있단다. 가방을 뒤로 매면 그가방은 100% 내가방이 아니라는것! 가방을 옆으로 매면 그가방은 50% 내것 50% 소매치기것! 가방을 앞으로 매면 100% 내가방이지만 방심하면 금물 이라는것! 우리나라도 소매치기 많다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가 않다.
1. 국가개요
○ 로마제국의 찬란한 역사와 르네상스의 화려한 꽃을 피운 곳으로 쥴리어스 시저 등이 활약한데 이어, BC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왕위에 오른 것으로 시작된 로마 제국은 그 뒤 아프리카 북부는 물론, 중동과 영국에까지 손을 뻗치는 큰 제국을 이루었다. 4세기 말에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아 세계 종교로 전파시켰다. 15세기에는 높아진 시민 의식과 귀족들의 비호로 르네상스의 꽃을 피웠으며, 5세기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분열된 국토는 1861년에야 통일을 보았다. 1,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승전국과 패전국의 자리에 서게 됐으며, 2차 대전 뒤에는 자동차 공업, 패션 산업, 관광 등으로 경제를 재건하였다. 그러나 공업이 발달해 부유한 북부 이탈리아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농업과 어업이 주를 이루는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가 공존하고 있다. 유럽대륙으로부터 지중해 쪽으로 긴 장화 모양을 하고 있는 길이 약 1,170㎞의 반도국가인 이탈리아는 반도와 시칠리아섬, 샤르데냐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면적은 301,245㎢로 한반도의 약 1.4배정도 되며, 산지와 구릉이 많고 평야는 전국토의 1/5정도 밖에 안 된다. 지반이 불안정하여 지진이 잦으며, 시칠리아섬의 에트나산은 유럽 최고의 화산으로 화산운동을 하고 있는 분화구와 900여개가 넘는 기생화산이 있다. 북쪽은 알프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하고, 서쪽은 시칠리아·사르데냐섬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은 아드리아 해에 면해 있다.
2. 이탈리아 사회와 문화 체험~
피자와 파스타의 나라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는 동안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로, 표현의 자유와 검열 금지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 일간신문이 80여가지나 되는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송국과 정기간행물을 갖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민의 98% 정도가 카톨릭으로 외부에서 보이는 자유분방함, 다양성과 다르게 내적으로는 강한 보수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반도국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가 뚜렷하며, 요리에 마늘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도 잘 맞아 최근 몇 년전부터 유행하면서 정착했다. 이탈리아의 음식은 이전부터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는데, 이 사실은 최고의 요리로 알려진 프랑스 요리도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의 카타리나 공주가 프랑스에 시집가면서 데려간 요리사들이 프랑스에 다양한 요리를 전파시키면서 발전된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지만. 이탈리아는 1861년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많은 작은 국가들로 나누어 독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역사 때문에 요리도 각 지방에 따라 특색 있게 발전되어 왔습니다. 크게 남부와 북부로 나눌 수 있는데, 각각의 요리 특색을 보자면 나폴리, 시칠리아 섬 등의 남부는 해안가라서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으며, 맵고 짠 강한 맛이 특징입니다. 또한 토마토를 많이 사용해서 토마토 소스를 쓰는 피자와 파스타가 발달했다. 반면에 베네치아와 볼로냐, 밀라노, 제노바를 포함하는 북부 지방은 알프스 산맥에 접하고 있어서인지 육류와 치즈를 이용한 요리가 많고, 남부보다 쌀 요리를 많이 먹는다. 이탈리아인 역시 식사를 상당히 즐기는 국민으로 정식 식사의 코스는 안티파스토 - 프리모 피아또(1번째 접시라는 의미) - 세콘도 피아또의 순으로 이루어집니다. 안티파스토는 카파치오처럼 해물이나 야채로 복잡한 조리과정 없이 간단히 만드는 에피타이저이며, 프리모 피아또는 첫 번째 접시라는 뜻으로 파스타나 피자를 먹습니다. 그리고 본 식사인 세콘도 피아또(2번째 접시)에서는 고기나 해물 요리를 먹지요. 중간중간에 샐러드나 미네스트로네라고 부르는 수프를 먹으며, 역시 와인이 빠질 수 없다. 와인은 식사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한 병 정도를 천천히 마십니다. 아침과 점심은 간단히 먹으며, 저녁은 온가족이나 친지가 모여서 떠들썩하게 몇시간 동안 천천히 즐깁니다. 아침에 많이 마시는 커피는 우유를 섞은 카페오레의 이탈리아 버전인 라떼와 진한 에스프레소가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커피라고 하면 에스프레소를 가리킵니다.
사실 이태리 음식하면 피자가 먼저 떠오르실 것입니다. 고대 이탈리아 중서부 에트루리아에서 밀반죽을 돌 위에 구워 기름이나 식물로 간을 하고 수프나 고기를 그 위에 얹어서 먹은 것이 피자의 시초이며, 요즘과 같은 피자는 약 100년 전부터 만들기 시작했답니다. 어떤 사람이 빨간 토마토, 향신료로 쓰는 초록색의 바질, 그리고 흰색의 모짜렐라 치즈(이탈리아 국기에 쓰이는 색깔들) 로 피자를 만들어 여왕에게 바쳤다는 전설도 있지요. 이것을 2차대전 후 이탈리아에 파병 나가있던 미군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피자도 같이 가져갔는데, 이때를 계기로 전 세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원래 이탈리아의 피자는 얇고 토핑은 1~3가지 정도로 조금만 올려서 담백하게 만드는 반면, 미국식은 푸짐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토핑을 다양하게 많이 올립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이 즐겨먹는 피자는 이탈리아식이라기보다 미국과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스파게티로 더 잘 알려진 파스타, 파스타는 인파스타래리라는 이탈리아말에서 온 것으로, 밀가루를 물과 반죽한 것의 총칭입니다. 나비와 바퀴, 알파벳, 칼국수 등 모양과 당근, 오징어먹물, 시금치 등등 재료에 따라 수백여가지가 있으며, 그 중 하나인 단면이 동그란 국수모양의 면을 스파게티라고 부르는 것 일뿐이지요. 파스타요리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있으며, 이탈리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한끼 식사로 먹기보다는 앞에서 본 것처럼 에피타이저와 메인요리 사이에 먹습니다. 파스타 요리는 사용하는 면과 소스에 따라 무척 다양한 조합이 가능한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크림소스인 카르보나라, 볼로냐 지방에서 유래한 토마토 미트 소스의 볼로냐, 이탈리아어로 '조개'라는 뜻의 봉골레 등이 있다. 이 외에 가운데에 소를 넣고 싸서 만드는 만두와 비슷한 라비올리, 감자와 밀가루 반죽으로 수제비처럼 생긴 뇨키 등 다양한 응용이 가능하다. 이탈리아에는 파스타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따로 있어서 1년에 한번씩 모여서 발표회를 갖기도 합니다.
▶ 바티칸박물관 : 바티칸의 산 피에트르 대성당에 인접한 교황궁 내에 있는 미술관이다. 역대 로마 교황이 수집한 방대한 미술품·고문서·자료를 수장(收藏)하고, 또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대화가에 의한 내부의 벽화·장식으로 유명하다. 창설은 율리우스 2세(재위 1503∼1513) 때 벨베데레의 정원에 고대 조각이 전시된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일반에게 공개된 것은 클레멘스 14세 치하인 1773년이다. 현재 본관은 피오 클레멘티노미술관·도서관·성(聖)유물관·회화관 등 많은 부분으로 나뉘고, 또 각실은 보르지아실(室)·라파엘로실·지도실이라는 특유의 명칭으로 불린다. 미켈란젤로나 안젤리코의 벽화로 유명한 시스티나성당·파오리나성당·니코로 5세 성당 등도 미술관의 일부로 여기는 것이 보통이다. 천정화 '천지창조'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대표적인 그림이다. 아마 이것을 보러 이곳을 들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이곳이 내부 장식을 담당할 화가를 찾던 중 그 당시 최고의 화가였던 미켈란젤로를 추천받게 된다. 미켈란젤로를 만나 교황은 자신이 구상하고 있던 12사도와 장식용 도안을 그리도록 지시하였으나, 미켈란젤로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그림을 작업하지 않는다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말해, 끝내는 교황의 허락을 받고 천정화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약 8백 평방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의 공간을 초인적인 노력 끝에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작업시작 4년 5개월 만에 완성하게 된다. 저 높은 곳에 벽화도 아닌 천정화를 직접 그린 다는 것을 머리 속에 상상해보니 나라면 그릴수가 있을까? 절레절레~^미켈란젤로는 작업 진행 중 어느 누구도 이곳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한번은 교황이 작업 진행상황을 보고자 내부로 들어가려 했으나, 미켈란젤로는 강력하게 반대하였다. 이에 화가 난 교황은 그 자리에서 미켈란젤로를 구타했으며, 이 일을 당한 미켈란젤로는 즉시 천정화 작업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려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교황은 즉시 미켈란젤로에게 달려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사과하고 약간의 금화로 미켈란젤로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노력한다. 진심어린 교황의 사과에 감동한 미켈란젤로는 마음을 돌려 다시 작업에 임해 끝내 불후의 명작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 성베드로대성당 : 로마의 5대 바실리카의 하나로 교황청에 인접해 있는 총대주교좌 성당이다. 최초의 베드로 성당은 90년경 교황 아나클레토(St. Anacletus)가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운 작은 기념당 이었다. 그 뒤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베드로가 처형된 원형 경기장을 헐고 기념당과 무덤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이 성전은 1100년경까지 존속하였고, 몇 번의 개보수(改補修)를 거쳐 낡아진 대성전을 헐고 더욱 영광스러운 성전을 건립하려 한 사람은 교황 니콜라오(Nicolaus) 5세였다. 교황의 명을 받은 르네상스기의 대미술가 브라만테(D. Bramante), 미켈란젤로(Michelangelo) 등이 설계하여 176년간에 걸친 대역사를 통해 완공되었고, 1626년 11월 18일 교황 우르바노(Urbanus) 8세에 의해 성대한 헌당식이 거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대성전은 최대길이 221m, 최대높이 141m로 세계 최대의 성당일 뿐 아니라 예술적으로도 그 독창적인 구상과 중앙의 거대한 돔(dome) 양식은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창조물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성전 앞 대광장(plazza)의 중앙에는 베드로의 처형대로 사용되었다는 오벨리스크(obelisk)가 세워져 있고, 대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주랑(柱廊)에는 높이 약 3.6m에 이르는 126성인의 입상이 늘어서 있다. 성전의 정면에는 입구 위로 길게 내뻗은 난간(Loggia della Benedizione)이 있어 교황이 이곳에서 축복을 내린다. 이곳을 지나면 5개의 입구를 거쳐 성당 내부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년에만 열리는 성년(聖年)의 문(porta santa)이다. 성당 내부에 들어서면 수도회 창립자들의 거대한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중앙 통로를 지나 중앙의 대 제단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이 대 제단은 1633년 베르니니가 제작한 것으로 여기에는 95개의 등불이 밤낮 없이 계속 타올라 아래층의 청동관을 비추고 있다. 대 제단에서 조금 들어가면 바로크 양식으로 된 베드로의 교좌(敎座)가 놓여 있다. 한편 지하성당에는 베드로의 무덤과 수많은 교황들의 무덤이 있고, 지하성당에서 올라오는 계단 위에는 베드로의 청동상이 놓여 있는데 수많은 순례자들이 청동상 오른쪽 발끝을 어루만지고 입 맞추었기 때문에 닳아서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다. 그 밖에 성당 안에는 미켈란젤로의 유명한 <피에타>(pieta)가 소장되어 있다.
▶ 콜로세움 : 로마의 상징이며 거대한 원형경기장으로 당시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며, 네로의 궁전의 뜰에 있었던 인공연못에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80년에 완성된 대형 원형투기장 겸 극장이다. 생사를 겨누는 검투사와 짐승과의
격투기 등이 여기에서 개최되었고 80개 정도가 되는 출구에 5만 5000명도 넘는 관객이 입장할 수 있는 경기장 이였다. 네로 통치시대를 영화로 한 영화 "쿼바디스"에서는 기독교도의 박해장 으로 사용된 콜로세움 장면을 잘 보여준다. 고대 로마 유적지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최대지름 188m, 최소지름 156m, 둘레 527m, 높이 57m의 4층으로 된 타원형 건물이다. 콜로세움은 거대하다는 뜻으로 근처에 거대한 네로상이 있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1층은 토스카나식, 2층은 이오니아식, 3층은 코린트식의 아치가 장식되어 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려면 입구 반대편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된다.
▶ 포로로마노 : 베네치아광장(Piazza Venezia)과 콜로세움(Colosseo)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포로"라는 뜻은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또한 "포럼"이라는 말의 어원이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상업, 정치, 종교 등의 시민생활에 필요한 기관의 모든 것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 이였다. 로마의 중심지로써 로마제국의 발전과 번영 그리고 쇠퇴와 멸망이라고 말하는 로마 2500년의 역사의 무대가 되었고, 중심이 되는 곳을 제외한 많은 건물들이 283년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 바실리카 에밀리아(Bcilica Aminlia)와 시저 신전(Templum Caesar), 원로원(Curia),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새턴신전, 바실리카 율리아, 베스타신전, 베스타신녀의 집의 흔적, 카스토르와 플룩스 신전, 로물루스의 신전, 콘스탄티누스의 바실리카등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있다.
▶ 꽃의 두오모 : (※두오모 - 주교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는 성당을 말한다. 이태리의 큰 도시에는 모두 두오모가 있으며 플로렌스와 밀라노의 두오모가 가장 유명하다.) 1456~1470년에 건축가 알베르티가 완성한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 우아하고 아름답게 균형 잡힌 비율과 색 대리석판을 사용한 장식이 특징인 건물이다. 소설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나오는 중요한 약속장소이며, 꽃의 두오모, 연인들의 두오모라고도 불리다. 아름다운 색깔이 모두 자연의 색깔이라고 한다. 핑크색, 에머랄드색, 흰색의 오직 세 가직 색의 대리석으로만 만들어졌으며 색이 매우 아름답다.
▶ 단테의 생가 : 일 크로소라는 이름을 가진 골목길에 접어들면 다소 어둡고 칙칙한 그의 집이 나타난다. 이 골목길에 단테의 생가와 단테의 교회라고 불리 우는 성 마가레 교회가 엄숙하고도 근엄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교회에는 단테의 여인 베아트리체와 그의 현실 여인 젬마가 한 곳에 누워 있다.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출생한 문학자, 대 사상가, 예언자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신생>, <리메>, <향연>, <속어론> 등이 있으며, 전 인류에게 영원불멸의 대작으로 손꼽히는 <신곡>을 남겼다. 신곡(Divina Commedia) 13세기에 쓰여진 <신곡>은 지옥편(서곡 포함, 34편), 연옥편(33편), 천국편(33편) 총 100편에 달하는 대서사시이며, 단테가 자신의 삶의 고찰을 통해 얻은 종교관이 담겨 있는 책이다
▶ 피사 : 아르노(Arno) 충적토 평야에 있는 피사(Pisa)는 화려한 해안 도시로 12세기의 웅장하고 화려했던 예술 시대를 직접 체험한 곳이다. 바로 두오모와 세례당, 기울어져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 세워졌던 시기이다. 피아짜 데이 미라콜리(Piazza dei Miracoli)로도 알려진 피아짜 델 두오모(Piazza del Duomo)에는 아름다운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웅장하고 화려한 네개의 건축물이 있다. 바로 대성당과 세례당, 사탑과 기념 묘지이다.
▶ 피사의 사탑 : 대성당의 종탑이 바로 “피사의 사탑(Leaning Tower)”로 알려져 있는 것인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탑 중 하나이다. 1173년 이탈리아 천재건축가 '보나노 피사노'의 설계에 따라 만들었는데 설계도에 따라 탑을 만들어가던 중, 공사관계자들은 지반 한쪽이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책임기술자였던 보나노 피사노는 기울어진 모양을 보정하기 위해 새로 층을 올릴 때 기울어져 짧아진 쪽을 더 높게 만들었으나, 추가된 석재의 무게로 건물은 더욱 가라앉게 되었다. 기술자들이 해결방안을 찾으려고 몇 번씩 공사를 중단했으나 결국 1350년에 맨 꼭대기 층이 기울어진 채 완성되었다 한다. 물론 건축 당시부터 의도적으로 기울어진 탑을 세운 것은 아니며 1년에 1mm정도 기울어지는 미세한 자연 현상이 누적되다보니 오늘날과 같이 탑의 꼭대기가 수직선에서 무려 5m나 기울어지게 되었단다. 그런데 기울어진 것도 기울어진 것이지만 이 탑이 유명해진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중력 실험 때문에 그 유명세를 더했다 한다. 둥근 모양의 이 탑은 사랑스러운 로지아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에서는 피아짜 데이 미라콜리(Piazza dei Miracoli)가 내려다보이는 좋은 전망을 선사한다.
▶ 베니스 : 베니스는 이탈리아의 최 북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동양으로 가는 입구에 있으며,
10세기에 비잔틴(Byzantine) 구역으로 독립하였다. 1204년의 십자군의 승리로 동양과 긴밀한 무역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부유와 권력을 가져다주었지만, 유럽인과 터키의 경쟁자에 의해 아주 서서히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지리적으로 베네치아는 강이 흐르는 평지부터 산맥지대인 돌로미테스(Dolomites)까지 뻗어 있는 베네토(Venoto)지역과 근접해 있다.
▶ 산마르코광장과 산마르코 대성당 : 베네치아 시 중심의 산마르코광장 정면에 있는 성당. 2명의 상인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성마르코 유골의 납골당으로 세워진 것(829~832)이다.11세기 말에 현재의 산마르코성당이 재건되었는데 이 재건공사에 롬바르디아의 건축가와 석공이 상부구조 건축에 참가했다. 산마르코성당의 건축양식은 비잔틴 건축의 대표적인 양식으로 유명하다. 외부와 내부를 뒤덮듯 장식된 모자이크 벽화는 12~17세기에 계속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미술사적으로도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내부는 그리스 십자형 위의 다섯 개의 큰 원 천정으로 되어있으며, 여기에 성마르코의 업적을 말해주는 12~13세기의 그림을 비롯하여 티치아노의 바탕그림에 의한 모자이크 등이 장식되어 있다.
▶ 한숨의 다리 : 베니스의 또 하나의 볼거리인 탄식의 다리는 감옥과 연결되는 통로로 죄수들이 감옥에 갇히기 전 마지막으로 밝은 햇빛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다리의 작은 창으로 내려다보이는 밖의 세상을 보며 한숨을 짓고 감옥으로 가면 다시는 세상으로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이 다리는 작가이자 희대의 바람둥이였던 카사노바가 한때 투옥되기도 했다가 탈옥을 해서 더 유명해졌다.
▶ 밀라노 : 화려한 과거가 있고, 무척이나 다이나믹한 현재가 있는 도시, 바로 밀라노(Milano)이다. 313년 밀라노가 메디오라눔(Mediolanum)이라는 라틴이름으로 서부 로마 제국의 수도로 있을 때,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밀라노 칙령을 공포,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1000년경부터 커다란 경제 발전이 포(Po) 계곡에 찾아왔고, 이는 밀라노의 정치 구조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황제의 권능에 도전 할 만큼 매우 막강하고 활동적인 지방자치제로 변하게 되었다. 실제로 1176년 레가 롬바르다(Lega Lombarda)를 이끌고 레냐노(Legnano)에 있는 황실 군대를 무너트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번성기가 있었던 덕택에 밀라노에는 훌륭한 예술적 가치가 있는 유물이 가득하다.
▶ 두오모 : 밀라노의 상징인 두오모(Duomo)의 건축 기간은 자그마치 5세기가 꼬박 걸렸는데, 1386년 착공되어 1813년 외관이 완전히 마무리 지어졌다. 이 무척이나 긴 공사 기간에도 불구하고 중간의 계획 변경 없이 한결 같은 양식으로 지어졌다. 높이가 157m, 너비가 92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고딕 양식의 교회이다. 웅장한 크기에 첨탑이 숲을 이루고 있는 자태는 감탄을 자아낸다. 15-16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장엄한 빛을 받아 더욱 화려하고 장엄한 실내 장식은 이탈리아 최고의 두오모라는 찬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게 하고 있다.
3. 학교탐방
로마의 스페인광장을 둘러보고 우리들은 학교방문에 임했다. 방문할 학교는 산타 체칠리아 콘세르바토리오라는 국립음악교육기관이며, 설립연도 1565년, 설립목적 음악 전문교육, 주요활동 음악가 배출, 연주회, 기원은 1565년 로마에서 지오반니 팔레스트리나(Giovanni Palestrina) 등이 마리아 산 그레고리오 산타 체칠리아의 이름에 의한 음악가협회'라는 로마와 음악의 수호성인 성녀 체칠리아를 기념하여 이름 붙인 교육기관을 설립한 데서 출발하였다고 우리는 안내자의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판테온에 본부가 있었으나 뒤에는 시내의 교회를 전전하였다고 하며, 교황청의 지원을 받은 적도 있고 미술가협회와 합병도 하였으나, 19세기 초 교회음악의 쇠퇴와 함께 활동이 저조해져 교육 중심에서 벗어나게 됨으로써 음악 부문만 분리되어 1876년에 음악중등학교가 되었다. 1919년에는 국립음악원(고등학교이상의 과정)이 되어 독자적인 음악전문가 양성과정을 마련하게 됨으로써 우수한 음악가를 배출하고 있다. 이탈리아 최고의 음악학교로 알려져 있으며 교원을 중심으로 한 관현악단과 합창단이 연주회를 개최하고, 음악도서관도 설치되어 있다.
우리나라 음악 유학생들이 많이 찾아오는 학교이며, 어떤 한편으로는 마음 설레임속에 방문을 하였다. 들어가자마자 조용한 분위기와 학구열이 넘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창문너머로 보이는 정원은 아담 할 뿐 잔디위에 조그마한 나무 두 세그루만 있었다. 층층마다 학교를 관리하고 통제하는 선생님들이 모퉁이 마다 기다리고 체크하고 있었으며, 학생들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으며, 피아노 수업은 1대 1수업을 하고 있었다. 교실은 우리들의 교실 3분1정도의 크기에 선생님 한분에 학생2명 정도 수업을 받고 있다고 하였다.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음악 연습실에 가 보았다 연습실 시설은 우리보다는 그리 좋지 않았다 흑판은 아직도 분필을 사용하고 있는 그러한 칠판이며, 어떤 시설을 아껴Tm는 자세로 시설을 관리하는 것 같았다. 연구실을 나와 우리나라의 행정업무를 보는 곳으로 가보았으나 철제문으로 닫혀 있어 구경을 하지 못했다 행정실에 관해서 여쭈어보니 우리나라와는 달리 일주일에 2번정도 업무를 본다고하며 시간은 월, 목요일 09:00~12:00 14:30~16:30까지이며, 학생들이 접수라든지 상담 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9:00~12:00)에만 가능하다고 한다. 우리행정실의 업무와는 판이하게 다른가 보다 우리는 일주일내내 08:30 ~17:00까지다. 학교구조는 1자형이
많으나 유럽의
학교는
ㄷ자 형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음악원 정원 교수.학생들과 함께 교실내부
4. 이탈리아의 교육제도
◇ 개 요
학제는 초등학교 5년(6~10세), 중학교 3년(11~13세), 고등학교 5년(14~18세), 대학교 3-5년(18세 이후), 초.중등 8년간은 의무교육 학기는 9월시작, 6월 종료 1주일 6일 수업, 수업시간은 초등학교 1일 4시간, 중고등학교 1일 5시간 학교는 운영주체에 따라 국립학교, 사립학교, 주정부가 운영하는 직업학교가 있으며, 전체 학교의 90% 이상이 국. 공립학교로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국립학교에 취학
국립학교의 경우, 고등학교 및 대학비용의 대부분을 국가 및 지방정부가 부담하며, 학부모의 부담은 적은 편입니다.(고등학교 연300 euro, 대학 연 500 euro정도).
◇ 교육기관
- 유치원 : 입학가능 연령 : 3~5세. *종류 : 국립, 지방정부, 사립유치원.
- 초등학교 : 시험제도 : 입학시험은 없으며 지역별로 입학, 학년말 고사로 진급이 결정됩니다. 졸업시 종합시험에 합격하여야 졸업이 가능하며, 개인의 학비부담이 없고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부담합니다.(교과서도 무료)
- 중학교 : 초등학교 졸업 종합시험 합격자는 중학교 입학자격이 주어집니다. 취득입학시험 없이 지역별로 입학, 졸업시험에 합격하여야 졸업가능 합니다.교과서를 제외하고는 학비전액을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부담합니다.
- 고등학교 : 중학교 졸업시험 자격자는 고등학교 입학자격이 주어집니다.입학시험은 없으며 학군제입니다.학년말 고사결과 3과목 이상 낙제인 경우 유급 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어느 분야든지 국가시험을 치러야만 합니다. 하나는 자격시험 (Esame di Idoneita`)이고, 또 하나는 국가 졸업시험( Esame di Maturita`)인데 전자는 국립 고등학교에 입학하고자 하는 외국 학생 지원자에게 종강 이전에 실시되며, 후자는 이태리 학생이면 누구나 치뤄야 하는 중요한 고등학교 졸업 자격 시험입니다.이 시험에 통과되면 대학입학자격이 주어집니다. 이 시험은 필기시험과 구술시험이 동시에 실시 되며, 필기 시험은 일반적으로 이태리어 작문 시험으로 모든 학교에 동일하게 실시됩니다. 학생들은 역사, 시사, 사회학, 정치학 중에 한가지 주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필기시험의 두번째인 에세이 시험 주제는 5년 동안 공부한 교과과정 안에서 정해집니다.그리고 구술 시험은 두 시험이 끝난 후 일주일 내에 다섯 명의 심사위원과 학교장의 입회 하에 이루어 집니다. 다섯 명 가운데 한명은 모교의 선생님이 심사하며,학생은 그가 선택한 주제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되며 시험은 약 30분간 진행됩니다. 시험은 60점 만점으로 36점 이상이면 통과하게 되고, 시험에 떨어진 학생은 다음해 다시 시험을 치러야 하지만, 합격율은 95%로 높습니다. 학부형은 연 25~30.99 euro의 교육세와 교과서비용을 부담하고,학교의 특수활동 및 특수시설 경비를 학부형회가 결정하여 학부형에게 부담시킵니다.
일반고등학교 : 인문고등학교(5년제) 한국의 문과에 해당 과학고등학교(5년제) 한국의 이과에 해당
교원고등학교 : 사범고등학교(4년제) 국민학교 교사 양성 교원훈련학교(3년제) 유치원 교사 양성
전문고등학교 : 3~5년제, 직업학교로서 학습에 중심 6개분야
(Agricultural, Industrial, Maritime, Commercial, Hotel and Women's, Business)
예술고등학교 3~5년제
언어고등학교 5년제
- 대학(Universita')
이태리의 대학은 백만 이상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으며, 6만 이상의 교수가 있고 50여개의 대학이 있습니다. 이태리에는 College 는 없으며, 대학은 몇몇 학과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모든 학생들에게 입학을 허용하는 개방 대학입니다. 교수들의 수준은 거의 비슷하고 학위의 가치도 대학 사이에 동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학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국립대의 수업료는 매우 저렴하여 1년에 500~800 euro 정도지만,사립대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비쌉니다. 이태리 대학에는 대학생과 대학원생의 구분이 없습니다. 모든 연구는 기술상 대학원 공부입니다. 대학 과정은 학부에 따라 4년에서 6년이지만, 일반적으로 문리대는 4년, 건축은 5년, 의대는 6년 정도입니다. 이 외에도 코스에 따라 Breve Laurea, Crso di Specializzazione, Corso di Perfezionamento의 3가지 유형의 졸업장이 있습니다. 이태리의 대학 학부에는 연구소와 기술 연구소가 있습니다. 교수 연구실이 바로 연구소 이며 학생들이 연구 발표한 자료들이 소장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태리 대학은 입학하기는 쉽지만 공부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워서 학생들의 첫해 낙제률은 40~55%에 이르며,최근 입학생의 큰 증가에도 불구 학위를 받는 학생의 수는 그다지 늘고 있지 않음은 졸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기술고등학교 : 5년제, 직업학교로 이론교육에 중점 8개분야
(Agricultural, Commercial, Surveying, Nautical, Industrial, Women's, Business
- 학위제도 : 이태리 대학제도가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는 학위제도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미국식 제도를 따르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학부 과정(4년)을 마치면 학사칭호를 받게 되고 이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2년), 박사(3년)과정을 단계적으로 이수하고 논문이 통과되면 석·박사 칭호를 받게 되지만, 이탈리아의 경우, 대학에서 4년 과정을 마치고 논문이 통과하면 dottore(영국 doctor)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물론 이태리에도 이 과정을 마친 뒤 진학할 수 있는 여러 과정들이 있으나, 그것들은 우리의 석.박사 과정처럼 일정한 수업기간과 그에 따른 칭호 등이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졸업20여 과목시험과 과정 수료 후 논문 통과자에 한하여 졸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태리 대학은 입학은 비교적 쉬우나 학기 중 시험이 무척 까다로워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국인들 조차 4년 과정을 4년 만에 마치기는 어려우며 보통 5~6년 만에 마치고 심지어는 10년이 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학교성적은 취업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 학위논문(La Tesi di Laurea) : 모든 이태리 대학의 학부는 논문을 요구합니다. 일반적으로 논문은 독자적인 연구의 결과 이어야 하며 논문의 성격이 이론적이건 실제적이건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학생들은 학위 논문 주제를 설정하여 3학년 초에 지도교수와 상담을 합니다. 학위 논문의 주제는 논문 심사 이전 6개월 전에 학장에게 보고하여 승인을 받아야 하고,. 논문의 초안은 심사 15일 전에 제출해야 합니다 학위 논문의 분량은 약 200쪽 정도가 보통이며 논문 심사 토론은 학장이 임명한 11명의 심사 교수에 의해서 이루어 지는데 일반적으로 1시간 이상 계속됩니다. 학위 논문 심사평가는 그 동안 학생의 시험 성적 평균과 논문 점수를 기초로 주어지는데 110점 만점에 66점이 최저 점수입니다. 110점을 취득한 경우 그 논문은 대학 출판부에 의해 출판됩니다. 교수들의 수준은 거의 비슷하고 학위의 가치도 대학 사이에 동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예.체능전문교육기관 : 우리의 일반 정규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예.체능계 학과를 위해 이태리에서는 Conservatorio(음악원)와 Accademie di Belle Arti(미술원),그 외 여러 Istituto (전문 교육기관)를 두고 있는데 크게 사립과 국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국립음악원(Conservatorio) : 성악5년,작곡9~10년,기악10년 과정으로 전문음악인 양성에 필요한 기초적인 전과목을 이수하는 국립음악교육기관 입니다. 학부형은 교육세 및 교재만 부담합니다.(교육세는 연 3만리라 정도)
- 국립미술원(Accademie di Belle Arti) : 4년 과정으로 회화,조각,벽화장식,무대미술,무대장치,장식미술 등의 코스가 있습니다.
- 직업학교 : 주정부에서 운영하며 보통 2~3년제 학교
- 사립학교 :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이 있으며, 국립학교에 비해 막대한 학부형의 수업료 부담이 있어 전체학생의 5~10%만 취학 합니다.
5. 이태리에서 느낀점.
로마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유럽의 도시가 다 그렇듯이 건물 하나하나가 모두 문화재고 골동품이다. 옛것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 때문이리라. 수 년이 지나 다시 찾아와도 그때마다 고향같은 푸근함을 주는 거리들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유럽에서는 거리에서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던 학교건물 찾으면 초라한 건물이 초등학교라니 못 찾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활문화와 어차피 같을 순 없지만 이태리라는 나라 참 웃기는 나라 같다.
오후1시부터 4시까지 가게 문도 닫아가며 무조건 쉬며 잠자는 나라. 저녁 8시만 되면 가게 셔터를 내리는 나라. 석회석 때문에 수돗물 대신 생수를 사먹어야 하는 나라.
오후2~3시면 퇴근 한다는 공무원들 굳이 관광 오지 말래도 세계에서 관광오는 나라...
한마디로 조상 덕에 먹고사는 나라가 맞는 것 같다. 잔디가 다 깔린 산뜻한 미니 축구장이 무척 많다. 그냥 재미삼아 차는 것이 아니라 정식 축구화에 정식 유니폼을 입고
심판 또한 정식 유니폼을 입고 축구를 하는 나라란다.이러한 밑거름이 축구강대국의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태리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방법3가지>
1.축구를 못하게 하고 못보게 한다 : 워낙 축구를 좋아해서 그렇게 하면 죽는단다.
2.토마토를 못먹게 한다 : 이태리 피자엔 토마토가 주소스이다
3.두 손을 뒤로 묶어놓는다 : 이태리 사람들 대화 할 때 자세히 보면 연신 손을 흔들어가며 대화를 한다. 운전 중 전화 받다가 사고 나는게 대다수란다.
바. 오스트리아
1. 국가 개요
유럽 중심부에 파이프모양으로 자리잡은 오스트리아는, 동서 560km, 남북 280km로 그리 큰 면적은 아니지만, 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의 여러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남서쪽에 자리잡은 알프스는 3,797m의 글로스글로크너 (Grossglockner)가 최고봉이다. 보헤미아 산봉우리의 고지대 숲이 북으로 체코 국경까지 뻗어있고, 다뉴브계곡과 동쪽의 비옥한 저지대는 오스트리아의 대규모 경작지대이다. 카린시아(Carinthia)와 짤즈카머굿(Salzkammergut)은 호수지대이고, 오스트리아 저지대인 부르겐란트(Burgenland)와 스티리아(Styria)는 가장 중요한 포도주 재배지이다. 오스트리아의 저지대는 오크와 밤나무가 빽빽한 숲지대로 국토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고지대는 침엽수림이 많다. 알프스 지역은 야생염소인 아이벡스(Ibex)와 영양(Chamois), 마멋(Marmot)의 서식지이다.오스트리아의 관광사이클은 둘로 나뉘어 지는데, 5월-10월의 여름시즌과 12월-4월의 겨울 스키시즌이다. 오스트리아는 일반적으로 온난한 중부유럽기후지만, 고도에 따라 기후가 변화하므로 다양한 옷을 준비해 두자. 참고로, Grossglockner정상은 여름에는 20-25도, 겨울은 1-4도, 봄, 가을은 15도 정도이다. 고도에서의 태양열은 치명적일 수 있으니 스키고글과 입술보호라인이상의 철저한 예방이 필요하다.
2. 오스트리아의 사회와 문화 체험
오스트리아의 언덕은 언제나 음악소리로 활기차다. 18,19세기 전 유럽의 작곡가들이 합스부르크가의 후원을 얻으려 이곳에 몰려들었다. 실상 합스부르크가의 대다수가 음악에 천부적인 이들이었다. 아마도 시대가 허락했다면, 작곡가 레오폴드1세, 바이롤린 찰스6세, 더블베이스 마리 테레사, 하프와 첼로에 조셉2세로 구성된 4중주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곳에서 베토벤, 브람스, 글룩, 하이든, 말러, 모차르트, 슈베르트, 스트라우스 등의 거장이 음악적 재능을 키웠고, 오늘날에는 비엔나 필하모니와 비엔나 소년합창단, 국립오페라단(Staatsoper), Mussikverein, Konzerthaus등에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이들이 그 뒤를 이어가고 있다. 음악과 더불어 환상적인 건축양식도 오스트리아의 문화유산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14세기와 16세기에 걸쳐 유행한 고딕양식은 비엔나의 스테판성당같은 걸작을 남겼다. 이어 바로크 양식이 유행했다. 이태리 양식의 영향을 받아 피셔 폰 엘라흐(Fischer von Erlach)는 오스트리아식 바로크라고 불리는 이 나라 고유의 양식을 개발하였는데, 비엔나 국립도서관과 챨스 성당이 그 대표적인 건물들이다. 마리아 테레사는 바우하우스풍의 바로크양식인 섬세한 로코코양식을 선호했다-쇤브룬(Shonbrunn)궁전 내부양식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대표적인 건축가로는 자유주의 건축가로 Friedensreich Hundertwasser가 있다.오스트리아의 성당에서는 수 많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에술품들을 볼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으로는 가구양식의 비더마이어(Biedermeier)인데 비더마이어 아티스트로는 Moritz Michael Daffinger가 대표적이다. 가장 잘 알려진 오스트리아 화가로는 Gustav Klimt (아르누보)와 Oskar Kokoschka(비엔나 표현주의)가 있지만, 비엔나 행위예술이 더 유명하게 되었다. 1950년대후반에 나타난 이 엉뚱한 표현주의는, 빨간 페인트를 캔버스에 붓고칼로 마구 난도질하기도 하고, 페인트 대용으로 피와 대변을 써 몸을 붓처럼 그리는 등 무의식적인광란을 표현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예술세계에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꿈의 해석'등 다양한 방법으로 정신분석의 시초를 연 오스트리아 정신과의사 프로이드(Sigmund Freud)이다. 이 외오스트리아 유명인사로는 영화감독 프리쯔 랭(Fritz Land)과 근육질 영화배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가 있다.오스트리아 음식은 든든하고 먹음직스런, 고기와 만두요리가 많다. 비너 슈니첼(Wiener Schnitzel)은 비엔나의 대중 요리로 전 세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커틀렛이다. 주로 계란과 빵가루를 입힌 송아지 고기(때로 돼지고기)커틀렛이 많다. 오스트리아인들은 특이한 요리재료를 좋아하는데 부쉘(Beuschel)은 송아지 내장류로, 송아지 허파와 심장을 정말로 얇게 잘라 조리하는데, 맛은 있다. 지갑을 자주 열게 유혹하는 먹거리로는 오스트리아 패스트리와 케잌이 있다. 인기있는 디저트로는, 다양한 과일을 넣어 구운 빵에 포도주와 계피를 묻힌 스트루델(strudel)이다. 이렇게 먹은 칼로리는 오스트리아 맥주나 포도주로 씻겨 내려 보내야될 것같다.
▶ 인스부르크 : 오스트리아는 우리를 비롯한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넘어오는 동안에 멋지고 아름다운 경관을 보았다. 그것만으로도 포스트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쟀든 인스부르크는 오스트리아의 비인 만큼 화려한 명성은 없다고 해도 그 깔끔한 고전 유럽의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얼마되지 않는 거립입니다. 근대화의 물결과 과거의 영광이 함께하는 정서적인 분위기는 확실히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멋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이곳에는 스와롭스키의 가게가 하나 멋지게 존재합니다. 겉에서 보면 그렇게 잘 보이는 편은 아니지만 이동네의 대부분이 고전적인 가옥을 기준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무척 귀엽게 어울려 있습니다. 남자가 보아도 반할만한 구조인데 여성들은 더더욱 뽕 기살 것 같습니다.그리고 구시가 막다른 길에 위치한 3층 발코니를 덮은 차양이 번쩍번쩍 빛나는 건믈은 인수블르크의 랜드마크로 1500년에 완성된 것이라고 한다. 소위 말하는 황금지붕이라는 곳이다. 막시밀리 1세때 고아장에서 비앙카 마리아 스포르자와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이 집은 티롤지 방의 한 가난한 공작 프리트리의 집이었는데 모여든 구경꾼들이 금화를 던져서 지붕이 온통 금으로 덫이게 되었다 하여 이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지붕은 2657장이나 되는 금박을 입힌 지붕으로 풍부한 장식이 잇는 고딕양식으로 르네상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2층난간에는 각 지방의 문장들이 섬세한 띠 모양으로 새겨져 잇으며, 3층에서 우선은 이런 정도로만 합니다.그래도 이런저런 느낌을 보여주는 것이 관광명소라니 하고 생각인 든다.
3. 학교탐방
인스부르크 시내 문화체험을 하고 우리들은 늦게 호텔로 들어와 프랑스에서는 학교의 하교 모습을 탐방했지만 내일은 학생들의 등교 모습을 보고자하였다. 내일 아침 일찍일어나 학교를 탐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리들은 학교를 사전에 연락하지 못하여 직접학교에 가서 의논하기로 하였다. 아침 7시에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끝내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따라 갔다. 학교는 VOLKS UND HAUPTSCHULE(폭스 운트 하우프트슐레)를 탐방하였다 우리나라의 중학교쯤되는 과정을 밝고 있는 학교이며, 아이들울 보니 문방구에 가서 학용품을 사서 가능모습 가면서 장난치는 모습, 가방을 메고 가는 모습은 우리와 별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리고 학교를 보고자 학교담당자에게 여쭈어 물어보았으나, 아침 수업이 있고 우리들의 일정이 있어 학교 주위만 둘려보았다. 교통경찰이 아침이 나와 학교앞의 교통정리를 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놀란 것은 학교옆에 공동묘지가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혐오 시설이라 하여 주민들이 반대하고 난리 일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으로 학교옆에 묘지를 그대로 둔다고 합니다. 학교는 4층 건물로 교문은 별 다로 우리와 같이 되어있지 않고 오래된 건물을 리모델링 하여 사용하는 것 같이 보였다. 각 교실 및 특별교실의 진열은 잘되어 있었다. 학교가 주민들이 사는 한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한적한 곳에 있었다. 학교의 담장은 자연 그대로의 담장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실내부의 전기시설은 형광등으로 아주 밝게 사용하고 있었다.
등교학는 학생들 교실건물 학교정문으로 들어가는 모습
4. 오스트리아의 교육제도
◇ 의무교육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모든 어린이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의무적으로 학교에 다녀야 한다. 의무교육은 9년간 지속된다. 어린이들은 공립(주립)학교나 사립학교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공립학교에 다니면 학비는 무료이다.
의무교육은 만 6세 생일이 지난 후 9월 1일 시작된다. 9월 1일(학년의 시작)부터 12월 31일 사이에 6번째 생일을 맞는 아이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수업을 따라가기만 하면 이르더라도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의무교육은 유치원 과정과 함께 시작하거나, 초등 4년 과정(초등학교나 특수학교의 1학년부터 4학년까지)으로 시작된다. 5학년부터 8학년 까지는 초등학교 상급과정, 실업학교 과정, 인문학교 입문과정이나, 특수학교 상급과정으로 연계된다.
9학년은 직업학교 입학 전 과정, 인문학교, 기술학교, 직업학교나 전문학교(전문대학)에 다닐 수 있다. 학생들은 여러가지 인문학교나, 기술학교, 직업학교, 전문학교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 보통교육을 하는 학교
- 초등학교
초등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기본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 설치되었다. 그리고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사회적으로 차별 없이 수용하기 위한 특별한 배려도 되어 있다. 초등학교의 교육목표는 어린이들에게 사회적, 정서적, 지적, 신체적 제반 기량과 능력을 길러주는 기본적이고 균형 있는 보통교육(공교육)을 제공하는 데 있다.
학생의 수에 따라서 초등학교의 몇 개 학년을 한 교실에 두기도 한다. 즉, 학년마다 한 학급을 만들만큼 학생 수가 충분하지 않으면 몇 개 학년의 어린이들을 한 학급으로 묶어 한 교실에서 교육한다는 뜻이다.
1학년부터는 현대 외국어(크로아티아어, 체코어, 영어, 프랑스어, 헝가리어, 이탈리아어, 슬로바키아어나 또는 슬로베니아어)를 학습하는데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없이 의무적으로 배운다.
종교 교육을 제외하고는 초등학교의 수업은 학급 담임 교사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 그 외에도 특수 교육을 전공한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비독일어권 언어를 모국어로 하기 때문에 독일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따라가는데 문제가 있는 학생들과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학생을 지도하는데 배치된다.
- 특수학교
특수학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불편해서 초등학교나 실업중학교의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아동에게, 또는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하거나 노동 세계로의 편입을 준비시키거나 교육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 실업중학교
실업중학교는 중등 인문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의 초등학교 후반기 의무교육과정에 해당된다. 즉, 실업중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4년간 기본적인 보통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업중학교의 교육목표는 학생들에게 노동의 삶을 준비시키는 것과 상급학교의 진학을 위해 필요한 지식을 갖추게 하는데 있다. 실업중학교의 수업은 각 학생의 관심과 기술 능력 등을 특별히 고려하여 이루어진다.
실업중학교의 3년차와 4년차에서는 학생들이 한층 더 직업 경험과 전문 경험을 쌓도록 준비시키는데 더 주의를 기울인다. 그래서 "직업(경력)안내"과목이 개설되고, 회사에서의 실습 시간 및 교육적인 회사 방문 시간이 편성되어 있다. 각 학생의 능력과 일의 진도를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 실업중학교는 독일어(모국어), 수학, 현대 외국어 과목에서 학생들을 분반 편성을 한다. 그리고 능력별로 분반된 학급간 (개별적인) 학생의 이동은 학년도가 끝날 때 이루어질 수도 있고, 학년 중에 이루어질수도 있다.
- 직업학교 입학 전 과정
오스트리아 10대의 약 20퍼센트는 직업학교 입학 전 과정(종합 기술 강습 과정)에 다님으로써 의무교육의 과정을 선택하고 있다. 이러한 선택 기회는 도제 훈련 과정에 들어가려는 14살, 15살의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직업학교 전 과정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도제 훈련이나 지속적인 전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데 있다. 그래서 학생 개개인의 관심과 능력, 기량에 대해 특별한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다.
- 중등 인문학교
중등 인문학교(일반 중 고등학교)의 목표는 폭넓고 확대된 보통 교육을 시행하는 데 있다. 그래서 학생에게는 표준적인 대학 입학 자격을 주고 있으며, 중등과정 이후의 교육과정에서는 전문학교 이후 과정과 전문대학 코스, 직장에서 보다 전문화된 교육이나 훈련이 이루어 질수 있도록 그 기초를 닦아주고 있다.
그러나 중등 인문학교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하지만, 학생들에게 수많은 다른 자질과 기량(예를 들면, 근로 방식, 협동능력, 독립심, 책임감)을 제공하는 것도 목표에 포함된다.
중등 인문학교 교육은 전체로 보면 8년간 지속되는데, 초급과정(5학년부터 8학년 까지)과 상급과정(9학년부터 12학년 까지)으로 나뉜다. 핵심과목은 독일어, 두 개의 외국어, 역사와 사회, 지리와 경제, 수학, 물리, 화학, 생물과 생태학, 심리학, 철학, 음악, 미술, 수공예(초급 수준), 컴퓨터학(9등급)등이다.
중등인문학교에는 폭넓고 확대된 보통 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핵심 교과교육과정이 마련되어 있으며, 이 과정은 제반 각종 학교에서 졸업시험을 치를 때까지 적용된다. 이러한 교육과정에는 의무 교과 외에 학교가 목표로 하는 특별 취지에 입각하여 특정교과분야에서 심화된 전문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 졸업시험과 합격증
졸업시험은 현실적인 학업을 알아보고, 또 자주적으로 학습하는 외국어에 대한 이해를 측정하는데 중점을 둔다.
학생들이 치러야 하는 시험 과목은 학교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학생들은 독일어, 수학, 외국어 등 핵심 과목의 필기시험을 치러야 한다.
- 기술 직업 고등교육 과정
일반적으로 보통교육을 받는 것 이외에 기술직업교육에 대한 기초적인 기술직업훈련을 실시한다. 기술직업 고등학교와 기술직업 전문학교는 8년의 의무교육 과정을 마치고 나서 다닐 수 있다. 이러한 고등학교와 전문학교의 주요 목표는 개별 학생의 인격을 함양시키고, 높은 수준의 노동의 유동성과 유연성을 갖게 되며,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을 계발하고, 비판적 사고, 팀웤, 의사소통 기술, 사회의식을 함양시키는데 있다.
5. 오스트리아세서 느낀점
다른 유럽 구가들도 그렇지만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여유롭다 서두르는 기색이 없이 자
기 자신의 인생을 즐기는 모습이다. 일과가 끝나면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즐기
는 것이 우리들의 직장 생활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지만 철저
한 개인문화가 존재한다. 남의 간섭은 받지도 남에게 불편을 주지도 않는 개인문화,
가족문화 중심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나라들이 분명 우리보다는 국민소득이
높은 국가인데도 절약하는 정신이 투철하다. 1회용 물품은 거의 볼수 없었고, 거리의
자동차도 소형이 많아 보였다. 시내의 길은 대부분 좁고 야간의 조명조차도 불필요하
게 밝지 않았다. 수백년이 넘은 건물들은 간판이나 안내문이 없는데도 공중화장실에
가면 한 줄로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고, 2인 이상이면 반드시 줄을 섰다.
기다리는 습관이 생활화 된 것 같다. 우리들은 어떠한가? 길에는 자신의 가계보다 넓게
진열한 물건 들 건물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간판들 그 것도 모자라 전신주에는 각종
안내전단이 넘처난다. 정말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문화다. 오스트리아는 산이 많은
나라이면서 잘 살수있는 것은 향상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우리와도 비슷한 지형조건
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도 이러한 점을 배워 미래로 도약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하겠다.
사. 독 일
1. 국가 개요
유럽 중북부에 있는 나라. 면적 35만 7042㎢. 인구 8239만 8326명(2003). 알프스산맥 외곽 능선에서 중위산지 북독일저지를 가로질러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는 폴란드·체크·슬로바키아, 서쪽으로는 프랑스·베넬룩스 3국,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스위스, 북쪽으로는 북해·덴마크·발트해와 접하고 있다. 수도는 베를린.
북쪽으로는 북해와 발트해의 해안지대에서부터 남쪽으로는 알프스까지 약 850㎞, 동쪽으로는 오데르강·나이세강에서부터 서쪽으로는 라인판암산지(板岩山地)까지 동서 약 640㎞에 이른다. 동·서로 접한 이웃 국가들처럼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지형학적 특징을 보인다. 독일은 남에서 북으로 향하여 알프스 및 알프스 전지(前地), 중위산지(中位山地), 북독일 저지(低地)의 3지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독일의 남쪽 끝,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에는 높고 험준한 알프스가 우뚝 솟아 있다. 알프스는 신생대(新生代) 제3기 조산운동에 의해서 형성된 산맥으로서, 전체적으로 보면 화강암·편마암·결정편암 등으로 이루어진 알프스 동체부(胴體部)와 중생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북부 석회암 알프스, 남부 석회암 알프스의 3지역으로 구분된다.
독일 남쪽 가장자리의 알프스는 북부 석회암 알프스의 일부이며, 최고봉은 해발고도 2963m인 추크슈피체산이다. 홍적세에는 빙하에 깎여 많은 U자 계곡이 생겼으며, 산지 경사면은 절벽과 깊은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로프웨이라든가 리프트 등의 시설도 잘 정비되어 있어 여름에는 관광·휴양객과 하이킹·등산객, 겨울에는 스키어들로 붐빈다.
알프스의 북쪽, 도나우강까지를 <알프스 전지>라 하는데 완만한 구릉과 평지가 이어져 있다. 이곳은 홍적세에 알프스에서 온 빙하로 뒤덮였던 곳으로, 그 퇴적물인 빙퇴석(모레인)이 낮은 언덕을 이루고 그 언덕들로 막힌 많은 호수가 생겼다. 최대의 호수는 스위스와의 국경에 있는 보덴호(539㎢)이며 이 밖에도 뮌헨 남동쪽에 있는 킴호(80㎢), 뮌헨 남쪽에 있는 슈타른베르크호(57㎢)가 있다. 호반에는 많은 관광·휴양지가 개발되어 있다.
알프스 전지의 완만한 구릉과 평지는 주로 목초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농업은 낙농이 중심을 이룬다. 슈바르츠발트산지의 남동부에서부터 시작되는 도나우강은 알프스 전지의 북쪽 가장자리를 동쪽으로 흘러서, 제히강·이제르강·인강·나프강 등의 지류를 합쳐 파사우에서 오스트리아로 흘러 내려가 마지막에는 흑해로 흘러 들어간다.
2. 독일의 사회 문화 체험
新매체들의 영향력이 날로 커져가기는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출판과 도서의 나라다. 매년 10월에 열리는 Frankfurt 서적 박람회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유명한도서관으로는 60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뮌헨의 바이언 도서관, 400만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프로이센의 문화 중심지-베를린 도서관, 유서깊은 헤어초크 아우구스트 도서관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독일 도서관은 독일어로 된 문헌 (약 1,400만권)을 총망라하여 보관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독일문학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귄터 그라스의 최근 소설 ”넓은 지평”(1995)은 새로운 독일의 상황을 진지하게 성찰한다. 50년대 이래 활발히 활동했던 작가, 가령 마틴 발저와 지크프릿트 렌츠는 과거의 테마에 몰두하고 있는 반면, 대중소설 시장은 영국 풍의 통속소설로 넘쳐 난다. 하지만 비르기트 반더베케, 잉고 슐체, 서정시인 두어스 그폰바인등과 같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주목받고 있다.
5년마다 카썰에서 국제적 전위예술을 선보이는 "Documenta"(1997년에 10회를 맞았다)는 예술가들의 집합장소이다. 독일의 현대 예술은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 그리고 화랑과 박물관의 소장품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일 예술가를 몇몇 언급하자면 A.R 팽크, 울리히 뤽크림, 뵈어크 임펜도르프, 안겔름 키휘, 레베카 허른, 게하르트 리히터, 게어크 바첼리츠, 마쿠스 뤼퍼츠, 지그마 필케 등을 들 수 있다. 문화만큼 독일의 연방적 특징을 분명히 보여주는 분야는 없을 것이다. 독일에는 문화적 중심지가 따로 없다. 학문 및 예술분야에서 연방주는 모두 고른 수준을 보인다. 일찍이 제후들이 그들의 거주지를 문화중심지로 만들고자 노력했고, 나중에는 의식있는 시민들이 그 전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독일에는 3,000개 이상의 박물관과 160개의 공립극장, 190개의 사립극장, 50개의 지방극장, 50개의 문화 오케스트라가 있으며 40개의 축제가 개최된다. 쾰른, 뒤셀도르프, 카쎌은현대예술의 중심지로 유명하다. 독일에는 약 13,500개의 공공도서관이 있으며, 1인당 서적 출판부수는 영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이다. 독일은 도서 정찰제를 시행하며 서적 관련 세금은 낮게 책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출판사들은 베스트셀러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주제의 책들도 출판할 수 있다.
▶로텐부르크 성 : 독일이 자랑하는 로맨틱가도의 한 지점인 로텐부르크의 첫인상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여행객들에 대한 배려가 있는 성이라는 것이었다. 알뜰한 여행을 계획하는 여행자들에게 성문 바로 앞에 마련된 무료주차장과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무료화장실은 실로 반가운 시설이다. 거기에 몇백년전 세워진 건물외벽을 거의 손대지 않은 채 내부시설만 현대화한 화장실은 앞으로 여행자가 맛보게 될 로텐부르크성의 단면적인 모습이었다.
우리는 인스부르크에서부터 한달음에 달려온 버스를 주차장에 세워놓고 바로 로텐부르크성으로 들어갔다. 마치 버스의 문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마법성의 문처럼 가고 싶은 곳으로 저절로 연결되어 있는 듯 했다. 편안히 앉아서 경치를 즐기다가 문을 열고 내리면 목적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발을 딛게 되니 말이다. 실제 로텐부르크에서 만난 한국의 배낭여행객들은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세번이나 갈아타고 왔다고 했다. 유레일패스의 기간이나 기차시간에 구애받지 않으면서도 한번에 목적지에 안착시켜주는 캠핑카가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로텐부르크에는 작지만 개성 넘치는 박물관이 여섯개 있다. 인형박물관, 향토박물관, 범죄박물관, 도시국가박물관, 크리스마스박물관, 테디베어박물관. 다 돌아보는데 두시간이 걸리지 않는 이 작은 성안에 박물관이 이렇게나 많다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지만 천천히 돌아보다보면 비록 상업적인 의도도 엿보이지만,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알릴만 한 것은 뭐든지 모아서 기념하는 독일인 특유의 성실함을 느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로텐부르크의 작은 가게들이 내놓고 파는 물건들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아주 신기하지도 않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 성의 위치를 보면 공격보다는 방어하기 좋은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고, 구조를 보면 상당히 폐쇄적이다. 또, 날씨는 흐리고 눈, 비오는 날이 맑은 날보다 많다. 이런 조건들은 가내수공업을 발달시켰을 것이고, 대대손손 할머니에서 손녀딸로 이어지는 가업이 되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욕심 부리지 않고 터를 지켜온 인내심과 축적된 문화에 여행자들의 마음은 흔들리게 되는 것이리라.
우리 일행 역시 유기농에 순식물성으로 만들어진 식품을 파는 곳에서 그 동안 아껴두었던 쌈짓돈을 꺼내들고 말았다. 처음엔 가게를 운영하는 남매 중 오빠가 우리에게 사과칩을 권하더니 뒤에는 여동생이 나와 차분하고 분명한 영어로 여행자들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그 과정이 어찌나 진지한지 싸구려 호객행위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드는 것이었다. 자그마한 가게에 들어가 보니 역시나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이다. 소박한 규모와 정직한 가격이 한결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겼던 것이다.
그러나 로텐부르크를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의 도시, 소박하고 정직한 한적한 성으로만 기억할 수는 없다. 그것은 중세를 아름다운 예술사조들로만 기억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유다. 로텐부르크에는 중세의 별칭이 왜 ‘암흑의 시대’인지 이해할 수 있는 범죄박물관이 있다. 사실 말이 범죄박물관이지 사실은 고문박물관이다. 이곳에는 갖가지 고문도구와 형벌기구가 전시되어있는데 처음에는 장난처럼 형틀에 머리를 집어넣던 사람들은 한층한층 올라갈수록 숨을 죽이고 어깨를 움츠렸다.
대체 왜 이토록 잔혹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의 형벌과 고문이 필요했는가. 그것은 신처럼 군림하기 위해 폭력적인 방법으로 민중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기 위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의 여행전문가는 주교들이 왕을 임명하던 중세시대, 평민들이 성서를 소지만 해도 극형에 처했던 사실을 들며 왜곡된 권력욕의 실체를 성토했다. 성직자를 비롯한 권력자들은 스스로의 거짓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큰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에 로텐부르크성이 괴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유럽의 이국적이고 고전적인 풍경 뒤에 중세의 암흑기에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야 했던 민중들의 고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사실은, 사람을 새장 같은 곳에 가두어 강물에 넣어두고는 “살면 마녀, 죽으면 사람”이라는 논리를 폈던 중세의 억압이 본질적으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세가 거짓된 신의 논리로 민중을 탄압했다면, 현대는 무자비한 자본의 논리가 민중을 짓누르고 있지 않은가.
로텐부르크성의 두 얼굴은 작은 성에서 전 지구를 돌아보게 한 셈이다. 또 중세에 비춰 현재의 본질을 상기시켜주기도 했다. 결국 여행이란 이색적인 풍물을 보고 명품을 싼값에 사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역사의 흔적을 현장에서 실감나게 더듬으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더욱 깊이 있게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행의 목적이자 최고의 수확물이 아니겠는가.
▶ 노이슈반슈타인성 : 온 산천이 하얀 눈으로 덮여 있고 파란하늘처럼 깨끗한 무공해 알프스 청정호수는 짙은 녹색의 계곡믈을 담고 있다. 자작나무, 전나무, 이름 알 수 없는 가지만 있는 활엽수의 울창한 수림사이의 길을 따라 도보로 40여분 걸어서 올라 갓다. 산새들의 아름다운 소리로 이방인을 맞이하고 성은 외관 일부를 보수하고 있었는데 가까이서보니 더욱 장엄했다. 이 성을 건축가도 아닌 루트비히 2세가 직접 설계했더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미치광이로 몰려 41세에 비운의 생을 마친 왕의 심미적 감각이 살아 있는 성 슬픈 사연과 함께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애깃거리를 들려주는 성이다. 성 입구에는 사계절의 멋있는 성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전시해놓고 팔고 있는 데 사진마다 다 명화이다. 벼랑 끝자락에 세워진 네오를마네스크양식의 대리석조 성곽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 성이다.새로운 백조의 돌이라는 뜻을 가진 노이슈반슈타인 성은 일찍이 바이에른 국왕인 루트비히 2세가 권력과 재력을 총동원해 만든 성이다.
▶마리엔베르크 요새 : 마리엔부르크 요새는 B.C. 1000년 경에 세워졌다가 1200년 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1253-1719에는 주교의 주거지로 쓰였던 이 성은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이 성은 1600년대에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재건되었고 관광객의 시선을 끄는 우물사원에는 깊이가 104m나 되는 우물이 있으며, 17세기,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의 정복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어 영주의 정원으로 이용되었다. 성에서 내려다 보이는 도시 전경과 마인강이 매우 멋있습니다.
3. 학교탐방
우리들은 오스트리아에서 학생들의 아침 등교시간에 잠시 학교 주위만 둘려보았다 독일의 학교는 어떤지 한번 방문해보기로 하였다. 하루 전날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학교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전날 호텔담당자에게 학교위치를 알아두어 아침에 조편성을 하여 가기로 하였다. 아침 7시30분 우리들은 학교를 방문 하였다.이른 아침인데도 수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 학교는 초.중.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곳이다 먼저 게오르그 빌헬름 스텔리 김나지움고등학교를 방문 하였다 교문이 보이지 않아 학교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학교의 북쪽으로 나가는 곳이 있어 담장에 학교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며,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늦게 오는 학생들도 간혹 있어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건물은 낡아지만 건물안의 시설은 현대화 한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도서관 과학실 보건실등에 현대화의 바람이 불고 있듯이 독일의 학교도 내부에는 현대화 시설을 갖추고 있는 느낌이다. 학교 수업준비실 및 도서관 아주 깔끔하였으며 교실내부도 아주 깨끗하였습니다.학교 입간판은 학교 담장에 조그마하게 붙어 있어 처음 보기에는 학교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도서관은 우리나라의 사서교사가 도서실을 관리한다고 하였다.도서관은 별도의 건물로 있었다. 교실 한칸에는 1대1수업을 하고있었다 선생님 한분에 학생 1명이 아침에 지도를 하는 모습은 70-80년대 우리나라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울타리 담장을 두고 바드 빈트 샤임 초 ․ 중학교가 있었는데 건물은 오래되어 리모델링을 하였으며, 아침에 스클버스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우리가 학교를 방문하는날 비가 오고 내리고 있었다. 우리나라 학부모님들처럼 비오는날 아이를 학교에 까지 데려오는 학부모들이 보였다. 야외시설로는 야외학습장, 농구대, 미끄럼틀이 보였다. 이 학교 학생들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였다. 수업은 1교실 10-15명정도 수업을 하고 있었다, 교실은 정리가 잘되어 있었으며, 학생들의 순진함은 우리나라와 같았다. 그리고 교사 연구실이 있었다. 교실 3분 1크기로 아담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으며, 교사연구용 책들이 꽃혀 있었다. 현관과 복도를 보니 우리나라 현관과 복도는 통로일 뿐인데 이 학교의 복도는 화장실에 가거나 교실을 이동하는 통로가 아니라 교실의 또 ·다른 개념인 학습공간이며 생활 공간 이었다. 복도 한 켠에는 가지런히 아이들의 외투들이 걸려 있기도 하고, 때로는 복도의 중간 중간에 걸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교실이나 도서실만이 아니라 학교 내에 존재하는 모든 공간 즉 운동장, 복도, 계단, 휴식공간, 나무그늘, 수돗가 등이 모두 학습공간으로 받아 들여진다면 공부가 덜 지루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자전거보관소, 휴지통 모둠등은 우리나라와 별만 다른 차이는 없었다. 여기가 농촌 학교인데도 운동장은 보이지 않았다.
미끄럼틀 모습 교사연구실 모습 학생들의 옷정리 모습
김나지움 도서실 모습 김나지움 교문에서
4. 독일의 교육제도
6-18세의 어린이와 청소년은 무상 의무교육을 받는다. 교육행정은 각 주의 주요 권한에 속한다. 교과과정·필수과목·학습수준 등의 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16개 주가 참여하는 상설 공동협의기구를 두고 있지만, 무엇을 우선 순위로 삼는가는 각 주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교과서와 부교재는 일반적으로 무료로 제공되며,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대해서는 재정 지원 등 여러 가지 지원이 이루어진다.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이 유치원을 일컫는 보편적인 용어로 정착할 만큼 현대 유아교육에 큰 영향을 끼친 독일의 취학 전 교육은 3세부터 가능하다. 6-10세 어린이는 누구나 예외 없이 초등학교인 그룬트슐레(Grundschule)에 다닌다. 그룬트슐레를 마친 뒤에는 전통적으로 다음 세 과정으로 각자의 진로가 갈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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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Kindergarten)
독일이 처음으로 실시한 제도. 18-19세기에 아동교육기관은 원래 기본적인 성경공부를 시키거나 초기 산업화의 역효과로 나타난 궁핍한 어린이들의 복지를 위하여 설립. 유치원 교육의 핵심은 언어능력촉진, 인성신장, 사회성교육과 놀이활동이다. 일반적으로 유치원에서는 문자나 수를 가르치지 않는다. 유치원 교육은 의무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은 부모의 의사에 달려 있다. 놀이 중심의 사회성 함양을 목표로 하는 유치원은 공,사립을 막론하고 유상 교육을 실시한다. 대부분 아이들은 오전에만 유치원에서 지내며 오후에는 가정에서 보낸다. 그러나 종일제 유치원도 있으며 병설기관으로 탁아소도 운영하고 있다. 오늘날 3세부터 6세 사이의 아이들 중 약 80%가 유치원에 다닌다.
-기초학교(Grundschule)
의무교육 단계로서 당해 연도 6월 30일까지 만 6세가 되는 아동이 입학 대상. 능력에 따라 5-7세부터도 가능하며 신학기는 9월 1일에 시작한다. 기초학교과정은 일반적으로 4년간의 교육과정이지만 브레멘, 베를린, 함부르크에서는 6년간으로 되어 있다. 어떤 주들은 5-6학년 기간에 학교계통간에 이동을 쉽게 하기 위한 특별 규정을 두고 있다. 오늘날은 많은 학생들이 어떤 학교를 결정할 것인가에 대해 더 생각해 보고 또 바꿀 수도 있는 상황 파악반(5학년과 6학년 과정)을 우선 택한다
첫째,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로 진학해 약 15-16세까지 계속 기초교육을 계속 받은 다음 직업학교인 베루프스슐레(Berufsschule)에서 시간제로 견습공 등 직업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합해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는 이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은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절반 미만에 이른다.
둘째, 실업학교인 레알슐레(Realschule)에 진학해 상업·사무 교육을 받는 과정이다. 중급 수준의 기업·행정·사무 능력을 쌓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전문 직업학교인 파흐슐레(Fachschule)에 입학하는 자격을 취득하는 이 과정에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1/3 미만이 진학한다.
셋째, 김나지움(Gymnasium)에서 9년 동안 고전·현대언어·수학·자연과학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여 대학으로 진학하는 과정인데, 그룬트슐레 졸업생의 약 1/4이 이 과정에 선발된다. 한편, 이처럼 어린이들의 진로를 너무 일찍 결정짓고 한번 선택한 진로를 도중에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한 이와 같은 전통적인 과정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각 주마다 영국의 종합 중학교에 해당하는 소수의 게잠트슐레(Gesamtschule)를 운영하고 있다. 게잠트슐레에 다니는 학생들은 보다 자유롭게 자신에게 알맞은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주요학교(Hauptschule)
기초학교 졸업생의 약 30% 정도가 사회적 위신과 학업수준이 낮은 주요학교에 진학하며 5학년부터 9학년 까지 5년제 학교. 보통 교육을 실시하는 주요학교에서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학교로 졸업 후 직업생활에 기초가 되는 내용을 교육하며, 직업교육을 받을 때 도움이 되도록 한 가지의 외국어(대개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졸업 시험은 없으며, 이후 직업 전문 학교에의 입학이 가능하다. 근래에 이 주요학교는 점차 인기가 떨어져 쇠락의 상태에 있다. 더욱이 주요학교는 학업 성적이 아주 낮은 학생이나 이민 온 아동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현재 개혁이냐 폐쇄냐 하는 논쟁에 휘말려 있다.
-실업학교(Realschule)
초등학교 졸업생 중 20% 정도가 진학하는 실업학교는 주요학교와 김나지움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 수준. 이 학교는 대학진학과는 직접 관계없는 중등학교 형태로 현재 약 1/3의 학생들이 다니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적어도 한 개의 외국어는 필수과목으로 이수해야 하며, 보통 제 2외국어도 가르친다. 현재 이 학교는 고등 교육기관으로 연결되는 경로로서의 기능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 김나지움(Gymnasium)
독일에서는 학교 성적이 우수하고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은 김나지움에 입학. 김나지움을 이수한 학생은 독일 모든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취득하는 아비투어(Abitur)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5학년부터 13학년까지의 9년과정이며 독일의 전통적인 인문계 고등학교로 학생들에게 대학진학을 준비시킨다. 5-10학년은 중등 1단계, 11-13학년은 중등 2단계로 구분되며 교육과정은 학교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김나지움은 세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현대어, 고전어 그리고 수학 및 과학 김나지움이 그것이다.
-종합학교(Gesamtschule)
주요학교(Hauptschule), 실업학교(Realschule) 김나지움 (Gymnasium), 세 학교 형태들을 혼합한 종합학교. 기초학교 졸업 후 주요하교, 실과학교, 김나지움 등의 3단계식 학교제도는 호환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왔다. 즉 많은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게 하고, 또 후에 잘못 내려진 결정을 수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보완책으로 1970년대 초에 사민당의 주도로 생겨난 것이 종합학교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특히 19-20세기 초에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한 독일의 대학은 오늘날 학생수가 폭증하고 사회적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전통적인 대학 구조의 변화라는 힘겨운 요구에 직면해 있다. 대학에서 원하는 기간 동안 학업을 계속하거나 원하는 대학으로 옮겨가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독일은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꾸준히 대학을 증설하고 있다. 전통적인 대학과 동등한 수준의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인문 대학을 세우는 한편, 공학·교육·예술 분야 단과대학과 학교들을 종합대학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기계공학·건축·디자인·예술·농학·경영학 등 어느 한 분야만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고등기술학교인 파흐호흐슐레(Fachhochshule)와 같은 새로운 전문학교를 만들었다
-전문대학(Fachhochschule)
특수화된 고급기술대학 혹은 종합기술대학. 전문대학은 좀 더 많은 실기 교육을 실시하며 특히 기술, 상업, 사회사업, 디자인과 농업분야에서 디플롬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 12년의 학교교육을 마친 사람에게 입학자격을 부여하며, 보통 실용적 경험을 강조하는 엄격한 교과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대학지원자의 1/3은 이 전문대학을 택하는데 전문대학의 과정은 종합대학에서보다 짧다.
독일의 고등교육기관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의 형태는 교육과 연구를 통합하도록 계획된 종합대학(Universität)과 이와 동급의 단과대학(Hochschule)이다. 종합대학은 학생들에게 많은 선택권을 허용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프로그램에 들어가기 전에는 어떠한 필수과목도 없다. 그리고 학부교육과 대학원 교육의 구분도 분명하지 않다. 4-6년 동안의 공부가 끝나면 첫번째 졸업장을 수여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도 탈락율이 상당히 높은 편으로 수업 연한은 평균 7년이 넘는다. 이들 대학에서는 디플롬(Diplom), 마기스터(Magister), 국가자격시험 과정으로 수료과정이 나누어진다. 수료후에는 박사학위과정을 계속하여 이수할 수 있다. 일부 과정들은 마기스터나 박사과정만으로 되어 있다. 또한 포괄적인 종합대학 유형인 종합단과대학 (Gesamthochschule)이 설립되었다. 이것은 다양한 단과대학 형태들을 한데 포괄하여 연합과정들을 제공한다. 이 대학은 종전의 전문적 직업교육의 편중을 시정하고 학문과 교양을 중시하는 교육과정을 새로 도입하여 학문성과 직업성을 조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들 중 몇 개의 대학은 아직도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큰 호응은 받지 못하고 있다.
1368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대학인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공부하든 1976년에 설립된 베스트팔렌의 하겐대학교에서 공부하든 그에 따른 사회적 위신의 차이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 20세기 말 현재 97개가 넘는 종합대학교와 200개가 넘는 고등교육 기관들이 있다. 17세기에 폐지되었던 문학석사 학위가 부분적으로 부활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석사 학위는 없고 박사 학위만 수여된다.
5. 독일에서 느낀점
독일에 대해서 변함없이 존경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이 나라의 철저한 과거청산의 의지이다. 독일하면 제일 먼저 괴에테와 베에토벤을 떠올린다.
독일에는 여러 형태의 보조금이나 자녀에 대한 혜택이 있어서 꼭 극빈자뿐만 아니라 대졸수준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수입이 많지 않으면 종종 각종 보조금을 받기도 하한다. 독일인들이 평소에는 새로운 문화와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나라 밖의 정세에도 관심이 많아서 세계평화를 위한 데모에도 참가하고, 어려운 살림에도 다른 나라를 위한 모금운동에 참여하는, 한마디로 의식이 깨인 사람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불과 5년 전만해도 신 나치주의를 추종하는 청소년들이 백주에 외국인을 때려죽이거나 또는 동네주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망명신청자들의 합숙소에 불을 지르는 일이 독일에서 가끔 일어났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의 지지율이 독일보다도 훨씬 높은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러한 야만적인 행위가 하필이면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역사청산을 철저히 실현하고 있는 독일에서 일어난다는 일은 사실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이러한 것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면서 사회의 저변에 도도히 깔려있는 말없는 동조의 분위기를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고. 그 다음에는 동독지역이 신나치의 출몰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금방 떠오른다. 통일 이후로 이어지는 불경기와 실업으로 인하여 그 지방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좌절감과 열등감이 이런 이상현상에 한몫을 한 점도 분명히 있겠다. 독일은 통일 이래로 동독지역에 무지막지한 돈을 쏟아 부었지만, 그리고 그 여파로 아직도 독일의 경제가 휘청이고 있지만, 두 지역의 사람들을 화합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화합정책이 실패를 한 건지, 아니면 두 개의 불평등한 입장이 화합한다는 일이 원체 실현 불가능한 현상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동독인들은 통일 이후에는 자신들도 당연히 누릴 줄 알았던 부와 안정 대신에 실업과 상실감만을 맛보게 되었고, 또한 자신들이 통일 이후로 독일의 이등국민으로 취급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발 아래를 살펴서 자기도 밟을 자가 없는지를 살피게 되는 법이다. 우리도 통일해야하는 나라로써 배워야 할점 이닌가 싶다.
독일국민의 의식은 아직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현재 그 변화가 어느 선까지 와 있나를 말하기 이전에 먼저 독일의 보통사람들이 겪었던 근세의 역사를 조금 들여다보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오늘의 모습을 과거의 행적에 비추어 '어디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어느 만큼 와있나?'를 생각해 보아야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어떤 속도로 나아갈 것인가?'하는 미래를 점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과저에 했던 자기일들을 반성하고 고쳐가지만 아직도 일본은 과거를 반성히가는 커녕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 국민들의 근면 성실함은 어느 나라도 빼놓을수 없을 것이다. 300년이상된 집이며, 건물들을 수리하여 계속 사용할 수있다는 것은 이탈리아 국민들과는 다르다고 생각 할 수 있다.
◆ 경북교육행정에 반영 가능한 주요내용
교육의 영향을 최대화 할 교육행정의 방향과 역할에 대해서 말하자면, 해외연수기회가 있어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을 다니면서 그 나라들이 잘살게 된 많은 원인 중 한가지와 교육제도 등을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으며, 설명하고자 한다.
1. 영국의 경우는 별도의 교과서가 없어서 지도교사의 프린터 물로 지도하므로 틀에 얽매인 내용이 아닌 다방면의 지식 습득이 가능하고, 또한 전문성 신장과도 연계되는 해당 과목을 집중적으로 교육하여 학교와 사회 진출 시 필요한 모든 평가량을 단순화 하여 학생들의 자유로운 지식습득의 기회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여가시간을 이용 많은 독서를 권장하여 짧은 시간에 많은 경험을 갖도록 하는 제도 마련.
2. 프랑스의 경우는 국민은 16세가 되면 노동을 할 수 있으며, 18세에는 독립을 하여야 하므로 부모가 자식을 부양할 의무가 없으며 만약 자식을 부양한다면 부모는 자식에게 그에게 소요된 생활비를 청구하는 경우처럼 청소년들의 독립정신배양 교육과정이 세계화에 대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
3. 스위스의 외국어교육처럼 국가가 처한 환경에 맞는 교육행정에 관한 정책수립과 시행이 필요하고, 준법정신이 투철한 스위스의 경우처럼 위반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심한 경우는 위반자를 정신이상자로 취급)할 수 있는 정신력 함양을 위한 제도마련.
4. 먼저 고대 로마제국 조상들의 생명유지를 위한 삶의 방편과 어우러진 제한적인 사람들의 지혜로 마련된 고대의 웅장한 건물들이 최근의 관광 상품화되어 많은 관광수입으로 개인들의 소질이나 능력이 반영된 노력 없이도 동방의 다른 국가에 비해 조기에 국민들의 교육과 의료보험 등 원만한 사회보장제도를 갖춘 선진국이지만 다른 한편은 일부이지만 개인들의 사고와 능력은 안이한 생활방식(대학진학률, 일일수업시간, 규제된 시간동안의 사회생활 등)과 편안한 사고(현재의 풍요로운 생활에 안주와 자존심 등)를 가진 국민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현재는 그들 국가들보다는 부족한 면이 많으면서 자원이 부족한 나라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고, 그들에게 마음 놓고 자랑할 수 있는 한민족의 지혜로운 두뇌와 불굴의 의지력이 있는 한 멀지 않는 시간이 지나면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로 발돋움 할 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는 여건이 조성(세계적으로 뒤지지 않는 교육력과 대학진학률, 정보산업, 불굴의 노력 등)된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실을 반영한 교육행정(정책)이 필요함을 느꼈다.
5. 독일인들은 향상 준비 자세로 모든 일들을 처리한다는 것에 우리도 유비무환의 자세로 모든 일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국인들은 높은 인구밀도와 부족하기 짝이없는 자원과 격변하는 역사때문인지 어릴때부터 격한 경쟁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변화하지 않으면 정체되는거다. 정체된다는 것은 뒤쳐지는 거다. 뒤쳐진다는 건 죽는거다. 거의 세뇌와 다름없는 교육을 받고 자라나게 되니 남들보다 더 뛰어나야 하고 남들보다 더 앞서 나가야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있는 듯합니다. 앞만 바라보고 살다보니 뒤돌아볼 여유도 없고, 높은 곳만 바라보니 낮은 곳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사람들끼리도 삶이 팍팍하다보니 배려보다는 경쟁으로 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한국을 보고 빨리빨리라고 한다. 그리고 독일은 기본적인 의료와 교육이 무료이며. 나라에서 실직수당도 철저히 챙겨준다. 월급으로 이네들이 목숨거는 건 우리나라처럼 집을 넓히는것이 아닌 여행이라고 한다. 기본적인 삶의 필요조건을 국가에서 보장해주니 나머지는 삶의 여유를 찾는데 노력할 수 있는 듯 하다. 독일은 일단 공교육비가(심지어는 대학도 무료라고 하네요) 공짜인데다가, 우리나라같은 과도한 사교육비 경쟁이 없고 또 김나지움(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대부분 독립해서 알아서 살아간다고 하며. 또 은퇴하면 연금도 나오고 하니 굳이 높은 연봉에 목멜 필요도 없고 회사에서도 그렇게 많은 부담을 가질 필요도(일정 부분은 국가에서 보장해주니)없는 자본주의의 탈을 쓴 공산주의 사회라고 할 것이며. 우리도 이러한 제도는 배워 교육의 양적인 발전이 아니라 질적인 발전을 취해야 할 것이다.
6.오스트리아에서는 자연 환경을 잘 보존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산이 많은 나라이지만 자연을 잘 가꾸어 가는 것 같다. 그 좁은 나라가 잘 살 수 있는 것은 자연경인 알프스의 혜택도 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오스트리아 국민들의 근면성이 아닌가 싶다. 독일어를 사용하지만 그 체제도 독일하고 비슷한 것 같다.
7. 공통점은 유럽의 많은 국가는 급당 학생수는 17-30명 정도(국가마다 차이가 있었음)이며, 담임은 많게는 3명(담임 1, 보조교사1 또는 2명)이 처음 맡은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지도를 하는 관계로 부진아를 별도로 지도하고, 학생 개개인의 자질과 취약점을 쉽게 파악하여 상급학교 진학 또는 진로지도에 큰 문제점 없이 자연스럽게 결정하고 있었다. 필요한 교육제도와 정책이 좋더라도 실천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정책이 되므로 만들어진 제도와 정책은 지키지 않을 수 없도록 사전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며, 외국에서 시행중인 다양하고 도움이 예상되는 교육제도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때 시행 상 용이한 경우가 많은 바, 정부의 한 부서에서만 필요한 제도나 정책을 도입이나 입안할 것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의 상호작용 된 철저한 제도 도입과 정책수립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연수를 마치면서
1. 서유럽의 해외연수는 국제화 시대에 부응하고 국제마인드를 향상 시키고자 선진국의 역사문화를 토대로 교육행정, 교육제도, 학교시설등을 체험하고 우리경북교육행정에 접목시켜 발전방향을 설정하는데 필요한 자료 및 정보를 얻는데 중점을 두었고 12일간의 연구과정에서 더 많은 학교방문 및 탐방을 하였으며 하나 학교와의 연락등으로 인하여 많은 학교를 탐방하지는 못했다.
2. 직무역량 강화, 국제경쟁력 향상, 관련분야의 전문성을 높여 경북교육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자질을 함양하고자 연수를 신청하였고, 해외라는 낯선 도시에 내려서는 우리의 목적대로 전문성을 확보하기위한 자료수집에는 시간적인 여유와 정신적인 무장이 모자라서인지 해외연수라는 거창한 구호 아래 우리와는 다른 면이 어떤 것인지를 찾고자 나름대로 많은 지식과 사전준비가 필요하였다.
3. 연수를 다녀와서 한마디로 정리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머릿속 한편에는 미래를 생각하는 현재의 나와 나의 위치를 발견하려고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잠재력과 가능성을 배양하는 데 연수 효과를 두고 싶다. 비록 기간이 짧고 인원이 적은 연수였지만 향후에는 더 많은 동료들에게도 연수의 혜택 및 기회를 누릴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4. 학교를 방문 및 탐방하는데 있어서 사전에 준비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린다. 한 팀에서 학교를 교섭하여 방문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 같다. 도교육청 차원에서 외국의 학교 몇 군데와 국제교류를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며. 이러한 학교를 교육행정직들이 찾아간다면 외국 학교에 대한 연수효과는 더욱 높을 것이다.
5. 끝으로 참으로 뜻깊고 의미 있는 해외 여행이 아니라 연수였다. 나라별로 그때 그때 사정이 있어 학교 교육의 현장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한게 흠이지만 그래서 연수의 효과가 적었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다. 오래고 깊은 서구 문화앞에서 우리문화에 대한 자긍심은 다소 위축이 되었지만 21세기에 대비한 교육의 열정은 우리가 분명 앞서 있음을 확인한 연수 였다.
첫댓글 붙임물로 오리려고햇는데 안되어서 올리는데 잘 아데요 그냥 한번 적어서 제출햇습니다
대단하셔요.![걍](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1.gif)
책으로 만들어 보심이![?](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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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총무님 고생 만땅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