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진 2장은 공주 시내 반죽동 시절의 교사 모습입니다. 1960년대 말까지 공주사범대학교는 지금 공주사대부고 터에 입지해 있었습니다. 공주사범대학교가 신관동으로 이전한 것은 1970년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사대부고를 가 보아도 아래의 건물들, 하나도 볼수 없을 겁니다. 실용을 강조하는 세태에 따라 새건물들을 짓지 위해 다 허물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3번째 사진부터가 신관동 시절의 공주대학교 사진입니다.
아래의 사진들은 1970년 육영수 여사가 공주사범대학을 방문했을때 찍은 것들입니다. '목련사'(현재 중도관 자리에 있었던 학생생활관) 준공식에 참여한 영부인, 공주 사대 학생들은 물론이고 공주 시민들로부터도 열열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예전에 우리 학교에 유독 '목련'이 많았는데, 육여사 때문이라는 걸 아니는 분, 별로 없는듯 합니다. 대통령 문장인 봉황 그림을 배경으로 우아(?), 근엄(?)하게 앉아 있는 여사님 표정, 어떻습니까.
아래 사진 윗쪽 둔덕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게 보이시죠. 그곳이 요즘 제1과학교육관이 들어서 있는 둔덕인듯 합니다. 당시 학교를 다니신 분들의 회고담에 따르면 날이 좋으면 점심때 그 곳 무덤가에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까먹었다더군요. 당시 공주사대 학생들은 매일 소풍을 다닌거나 마찬가지였던듯 합니다. 당시 속칭 날나리 학생들이 범생이들에게 흔히 했던 말, 그게 뭔지 아세요. "공부 열심히 한다고 교장시켜주는 것도 아닌데...". 당시 국립 사범대생들을 '의무적'으로 소정의 기간동안 중등학교 교사직(일종의 役)을 수행해야 했었습니다. 그 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소정의 배상을 해야 했습니다. 참으로 낮선 제도이지요. 당시 사범학교는 사관학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사와 장교는 동격이었지요. 맨 아래쪽 사진을 보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날 겁니다.
왼쪽 건물, 지금 우체국이 입점해 있는 이른바 '구 인사대' 건물입니다. 그리고 한창 공사중인 건물, 뭘까요? 지금 박물관 건물입니다. 1970년 10월 현재 공주대학교의 전체 시설, 아래의 2개 건물과 목련사(학생생활관) 뿐이었습니다. 남여 학생들이 다 교복을 입은 모습도 흥미롭지요. 당시 여학생들 교복, 지금 입고 다니라고 한다면... 아래의 모습처럼 줄 맞춰서 여사님 말씀을 듣고 있으라면... 차일 밑에 학교 교수는 물론이고 공주의 기관장이나 유지급 인물, 죄다 모여 있었을 겁니다. 그 분들도 다 차렷자세인데 감히 학생들이... 동원되었는지, 자진하여 참여했는지 알수는 없으나 동네 아주머니들 집에서 제일 좋은 옷입고, 다들 참여하셨군요.
길가에 늘어서 있는 이들이 바로 공주사대 여학생들입니다. 여학생들 뒤로 보이는 어수선한 공터가 바로 지금의 대운동장이고요. 사진 뒤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이 바로 공산성입니다. 학교 후문쪽 풍경, 상당히 낮설지요. 영부인이 온다고, 목련사를 기꺼이 하사하셨다, 게다가 귀한 걸음을 해주셨다고 감읍해서였을까요. 아마도 몇시간전부터 나와서 길에 늘어서 대기하고 있었을 여학생들, 지금 영부인이 오신다고 이 짓을 하라면 하시겠습니까? 도대체 이게 뭘까요? 조선왕조 시기 의궤나 풍속도처럼 확인히 여러분들에게는 낮선 풍경들일 겁니다. 하지만 저 때 저는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게는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첫댓글 수업 시간에 보여주셨던 사진이네요?! 육영수 여사와 목련사
수업시간에 보앗던 것이네요,
읽어보고 사관학교와 사범대가 동급이었던 것이 재밍잇네요,
어쩌면 교사와 장교 다들 졸업하고 한분야는 선생이 한분야는 장교가 되는 것이고,
또밑에 학생이나 군인들이 있는 점에서는 비슷하네요
그리고 수업에서 사범대가 많이 엄격했다는것과 과거 사진들을보면서 얼마지나지 않은 시간이엇는데
많은 발전이 된것과 많은것이 바뀐거 같아 재밌있엇습니다
수업시간에 보여주셧던 사진인데 집에와서 보니 또 새롭네요.
우리 학교가 이렇게 달라졌다니 너무 신기하고 흥미로뤄요^.^
저라면 그 당시 학생들처럼 영부인께서 오신다면 옷을 갖추어입고 엄숙하게 줄맞추어 있을수 있을거같아요ㅋ
흑백이라 더 그래보일 수 있지만 지금의 공주대학교의 모습이 많이 발전한 것 같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