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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먼드 클라우니의 개혁파적 교회론(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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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경적 기록론의 토대에 서 있는 교회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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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구(wmin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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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0일에 한국성경신학회에서 열린 클라우니에 대한 학술발표회에서 발제된 내용을 계속 소개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유익이 되기 바랍니다. 클라우니의 <교회론> 중 인용 대목은 논문의 본문 중의 ( )안에 제시하고 있습니다(예, 9=9). 앞의 숫자는 영문판의 페이지 수이고, 뒤의 숫자는 한글 번역본의 면수입니다. (저자 주)
예로부터 항상 바른 교회론은 항상 바른 기독론의 토대 위에 서 있었다. 클라우니의 교회론은 성경적 기독론의 토대 위에 서 있음을 분명히 하면서 진행되고 있다.
그의 건전하고도 성경적인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충실한 것에서 뿐만이 아니라, 현대적 상황에서는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성경이 말하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제시하는 모습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예수님께서 서 계셨던 감람산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위하여 생선을 구워주시던 것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논의하고 있다(Cf. 49=55).
이런 접근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의 80%를 부정하는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의 신약학자들의 접근(9=9)이나 예수님께서 실제로 12제자를 세우셨음을 부인하는 비판적 학자들의 접근과는 매우 대조적인 것이다. 그는 또한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우주 혹은 세계의 구조와 동일시함으로써 일반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94=108).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충만한 인간의 실존을 취함으로써 우주와의 일종의 일체 속으로 들어왔다”고 말하는 덜레스(Avery Dulles)나 그리스도는 물질적 우주와 동연적인 우주적 본성을 지닌다고 말하는 떼이아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의 견해 등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클라우니에 의하면, “보편성은 넓은 길을 향하여 열린 넓은 문이 아니라 교회의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좁은 문이다”(97=111).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이 환영하는 사람을 배제시킬 수 없고 그분이 배제시키는 사람을 환영할 수 없다”(97=111).
클라우니는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함께 성전의 기능이 끝났다”는 것을 잘 설명하면서 논의하고 있다(45=51). “하나님의 성전의 이미지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88=101).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의 현재적 의미를 잘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성도들은 “그분의 신령한 집으로 지어지는 산돌이요, 황소나 양이나 향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입술과 삶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들이다(벧전 2:4~5; 히 13:15~16)”(88=101). 클라우니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에 대한 전통적 성경적 개혁파적 이해에 매우 충실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주님의 임재에 대한 사라져 가는 기억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그분이 오신 현실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50=56). 이와 같이 클라우니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대한 통합적 이해에 근거한 이해를 가지고 그것을 자주 언급한다.
예를 들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존재로 만드실 수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심판을 담당하시고 우리에게 의를 공급하며, 우리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것이다”(158=178).
그러나 이렇게 삼위일체적 사역 안에 있는 “교회는 성육신의 연장이 아니다”는 것을 클라우니는 강조한다(52=59). 이는 일부 신학자들, 특히 천주교 신학자들이 교회를 성육신의 연장으로 제시하려는 시도(그 대표적인 에로 다음을 보라:Yves Congar, Sainte Eglise (1963), 144ff, cited in G. C. Berkouwer, The Church (Grand Rapids: Eerdmans, 1976), 341: “그리스도에게 죄가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도 죄가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한 인격이다)에 대한 성경적인 강한 반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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