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승주
이경애
오후 4시,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승주를 보러 간다. 항상 일요일 오전 11시 정도에 만났는데 오늘은 벚꽃 구경을 하고 오느라 많이 늦었다.
하수 종말 처리장에 도착했다.
두리번거려봐도 우리 차의 엔진 소리를 들으면 달려 나오던 승주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승주의 간식 봉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월월월월~~"
반갑다는 듯 입을 하늘로 치켜올리고 큰 소리로 짖으며 달려 나오는 승주가 보였다. 멀리서 나오느라 시간이 좀 걸렸나 보다.
나는 신이 나 얼른 간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곤 가까이 온 승주에게 그것을 던져주었다. 승주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냄새를 맡더니 맛이 있는지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간식을 더 주었다.
승주는 웬만큼 배가 불렀는지 남은 거를 물고 자신의 아지트로 향했다.
"건강하게 잘 있어. 다음 주에 또 올게." 하며 나는 손을 흔들었다. 승주는 알아들었다는 듯 나를 한 번 흘깃 쳐다보았다. 오늘은 지난번보다 승주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돌아오는 길에 "월월월월~" 짖던 승주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우리를 기다렸다는 그 소리가.
언젠가부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자연 속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게 어떨지 생각했다.
이슬을 머금고 피어나는 햇살, 그 햇살을 영양분 삼는 소박한 식사를 일단 몇 번이라도 실행해 보기로 했다.
보온병에 커피를 담고 단골 빵집에서 방금 나온 달콤 짭짜름한 빵도 준비해 자연의 품에서 맞이하는 식사. 그리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햇살과 함께 산책도 하고,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한 주 사이 변한 자연의 모습을 가슴에 담으며 상사 호를 따라가다가 '승주 하수 종말 처리장'에서 차를 돌려 집으로 오는 것이다.
조금은 엉뚱하고 뜬구름 같던 이 계획이 의외로 부담스럽지 않고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승주.
내가 지어준, 그 개의 이름이다.
승주를 처음 본 것은 주말마다 상사호에 오기 시작한 일 년 전쯤이다.
하수 종말 처리장 정문에서 차를 돌리려는데 목줄도 없는 누런 개가 달려 나와 우리를 보고 사납게 짖어댔다. 그러기를 거의 일 년.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곳에 사나운 개 한 마리가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한 달 전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차를 돌리려 했고 그 개는 달려 나와 짖고 있었는데, 짖어대면서도 마치 우리를 안다는 듯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창을 내리고 개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씻지 못했는지 털은 좀 지저분했고 배는 홀쭉했다. 족히 10살은 넘어 보였다.
그런데 씩씩하게 짖던 개의 눈엔 슬픔이 가득했다.
'이곳에서 키우는 갠가? 아니면 버려진 갠가?'
집으로 돌아오며 머리가 복잡했다. 슬픈 눈동자와 바싹 마른 체구, 특히 그 홀쭉하던 배가 눈에 아른거렸다.
'저 개는 도대체 무얼 먹고 지낼까?'
집에 도착한 후, 나는 어느새 승주의 간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어릴 적, 개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분에 마당에서 개를 항상 두세 마리 키웠다.
익숙했기에 개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키우고 싶은 정도로 좋아하지도 않는다. 품종도 키우던 개 몇 가지만 구별할 뿐 나에게는 그냥 다 같은 개일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감정은 무엇일까.
내 눈에 들어온 승주.
승주는 아마도 유기견이었을 것 같다. 처음엔 낯선 이들을 경계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나타나면 항상 먹거리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머뭇거렸다. 간식을 먹으라고 손짓해도 무슨 생각이 그리 많은지 먹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차에 올라타 문을 닫아야 비로소 천천히 먹이에게로 다가갔다.
지나다니며 또는 산책길, 공원에서 보는 개들은 얼마나 천방지축인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대체로 명랑하고 호기심이 많다. 내가 지나가면 다가와 나를 놀리듯 장난치듯 킁킁 코를 들이대기도 한다.
그러나 승주는 달랐다. 나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우연히 승주도 함께 하게 된 상사 호의 아침 식사.
사실 승주의 간식을 챙기고자 했을 때, 두려움이 있었다. 아예 시작을 하지 말까 생각도 했다. 서로에게 상처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에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눈물을 흘릴일이 생긴다는 것인지도 모른다."라는 말이 있다. 길드는 순간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지만 언젠가는 지켜주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내가 먼 곳으로 떠나가거나, 아니면 나이 많은 승주가 이 세상을 떠나거나.
그래도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는 정해진 시간을 지키려 애쓰며 서로를 길들인다. 승주가 그 만남의 간격을 알기는 어렵겠지만 본능적으론 알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면서. 오늘 반갑게 짖으며 달려온 승주를 보며 그렇게 믿고 싶다.
다양한 맛을 접해보지 못했을 승주에게, 허락된 시간 안에서 먹는 즐거움이라도 주고 싶다. 하루하루 쇠약해지고 있는 승주에겐 무슨 즐거움이 있을까.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적막한 그곳이 승주에겐 어떤 의미일까.
이런 승주에 대한 안쓰러움을 가끔 간식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대한 자책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새로운 먹거리를 맛보는 것이 승주에게는 작은 즐거움일 수도 있다고 나 스스로를 위로 하기도한다.
무수히 많은 사람 중의 내가, 무수히 많은 생명체 중 하나를 눈에 담는다는 건 큰 의미일 것이다. 특히 개에 전혀 관심이 없던 나에게 승주가 마음에 들어왔다는 것은.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소중함의 가치가 나이 들면서 변화해간다.
이 세상에 온 생명체들, 그 무엇 하나 소중하지않은 게 있을까마는 어떤 것은 사랑 속에서 살아가고 어떤 것은 버림받고 살아간다.
이 쓸쓸한 세상에, 나를 기다리는 그 누가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기다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만남의 횟수가 쌓일수록 조금씩 곁으로 다가오는 승주를 보는 것이 즐겁다.
'승주 하수 종말 처리장'에 사는 개라 별 생각없이 승주라고 이름 지었는데, 예전엔 순천보다도 더 알려졌던, 그러나 수몰 지역이 되면서 잊혀가는 지명이 된 승주.
승주도 누구에겐가 잊혀간 존재로 살아왔을까? 내가 누구에겐가 잊힌 존재로 살아온 것처럼.
수몰 지역이 되어버린 승주에서,
고향을 잃어버리고 승주에 온 내가,
고향에서 내쳐진 승주와 맺은 시절 인연의 끝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어느날부터 승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한동안은 찾아갈 것이다.
그러다 계속 승주를 못 보게되면 그곳 직원을 찾아 승주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월월월월~"
반가움에 달려나오던 승주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202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