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느
직원 2500명의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명품 가방만드는 거대 기업
버버리 셀리느 코치 DKNY 등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명품 가방들을 ODM 방식으로 제작
하는 회사..
그리고 루이비통 샤넬같은 초명품 브랜드들도 비밀리에 만들어주는 회사
그회사가 어딨는줄 아시는 분은 별로 없죠..
그게 어디냐하면 대한민국 경기도 의왕시랍니다.
우리나라 회사입니다.
여러분이 들고다니는 명품가방중 30%는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서 외국에 수출됬다가
다시 역수입한 제품입니다.
코치」 「셀린느」 「로에베」 「쥬시쿠튀르」 ...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명품 핸드백 브랜드들. 이들 제품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기지’는 어디일까? MADE IN ITALY? MADE IN SPAIN? 많은 사람들이 유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곳은 놀랍게도 한국에 있다. LVMH를 비롯해 전세계 내로라하는 명품 핸드백 업체들과 거래하고 있는 이 업체는 바로 전세계 OEM 생산업체 중 7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시몬느이다.
1987년 박은관 회장이 핸드백 OEM 수출 회사로 창립한 시몬느는 매년 놀랄 만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MADE IN KOREA’라는 명품 핸드백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시대에 이 길을 개척해 온 시몬느는 현재 아시아 생산 기틀을 마련한 창시자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해 있다. 창립 첫해 「도나카란」과 4백만달러의 첫 계약을 맺은 이후 점차 거래선이 늘어나면서 1989년엔 매출 1천8백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997년 1억2천만달러를 기록하며 1억달러선을 처음 돌파하더니 지난해에는 2억달러 고지를 점령,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업체로 자리잡았다.
ODM*을 거쳐 이제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 시몬느. 이 회사의 성공신화와 비전을 살펴봤다.
*‘ODM’은 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제조업자 개발생산)의 줄임말로서 Original Design Manufacturing(제조업자 설계생산)이라고도 한다.
①배짱있는 3W’로 베팅하다 황유희 기자 sarommy@fashionbiz.co.kr
명품 핸드백을 핸들링하는 세계적 ODM 수출회사 시몬느. ‘MADE IN KOREA’라는 명품핸드백을 생각지도 못했던 시대에 ‘Well Design’ ‘Well Made’ ‘Well Price’라는 3W를 제안, 배짱으로 이 길을 개척했다.
「코치」 「셀린느」 「로에베」 「쥬시쿠튀르」...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명품 핸드백 브랜드들. 이들 제품이 가장 많이 만들어지는 ‘기지’는 어디일까? MADE IN ITALY? MADE IN SPAIN? 많은 사람들이 유럽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곳은 놀랍게도 한국에 있다. LVMH를 비롯해 전세계 내로라하는 명품 핸드백 업체들과 거래하고 있는 이 업체는 바로 전세계 OEM 생산업체 중 7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시몬느(대표 박은관)다.
1987년 박은관 회장이 핸드백 OEM 수출 회사로 창립한 시몬느는 매년 놀랄 만한 성장을 거듭해 왔다. ‘MADE IN KOREA’라는 명품 핸드백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시대에 이 길을 개척해 온 시몬느는 현재 아시아 생산 기틀을 마련한 창시자와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해 있다. 창립 첫해 「도나카란」과 4백만달러의 첫 계약을 맺은 이후 점차 거래선이 늘어나면서 1989년엔 매출 1천8백만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997년 1억2천만달러를 기록하며 1억달러선을 처음 돌파하더니 지난해에는 2억달러 고지를 점령,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업체로 자리잡았다.
LVMH 등과 거래하는 ‘큰손’
현재 전세계 생산업체는 유럽 시장이 점차 코스트와 인력난으로 인해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아시아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는 상황. 중국만 하더라도 6천개가 넘는 생산업체가 있지만 고급 핸드백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불과 10개에 지나지 않는다. 이중에서도 시몬느는 현재 ‘최대 거래선’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시몬느가 거래하는 브랜드 중에는 「코치」 「케이트스페이드」 「콜한」 「DKNY」 「마이클코어스」 「쥬시쿠튀르」 「마크제이콥스」 「버버리」 「지방시」 「에밀리오푸치」 「셀린느」 「겐조」 등 그야말로 대표급 브랜드들이 숱하다.
창립 초기 영등포 한 사무실에서 공장을 돌리던 이 업체는 이제 국내 본사는 물론 뉴욕 홍콩 지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광저우에 제4공장, 인도네시아에 제2공장을 가동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지난해부터는 중국 칭다오에 제3공장을 설립하고 있다. 제조회사로 급성장하면서 이 회사는 앞으로 패션회사로 발돋움하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지난해에는 「쿠스토바르셀로나」와 「타라자몽」을 수입하는 정하실업을 인수했으며,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마이클코어스」를 내년 가을 국내에 도입해 패션회사로서의 기틀을 다질 예정이다.
‘제품력’으로 아시아 문열다
이같은 시몬느의 성과는 계속되는 신장이라는 표면적인 수치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는 내로라하는 거래선만 봐도 알 수 있지만, 그들에게 충분한 메리트를 제공하는 비결이 있기 때문이다. 시몬느의 성공 비결은 첫째 제조 매뉴팩처링의 구축, 둘째 OEM에서 업그레이드된 ODM 시스템, 셋째 하드웨어 기반 마련, 넷째 고급인력 양성 등으로 축약된다.
우선 시몬느는 럭셔리 브랜드의 ‘MADE IN KOREA’ ‘MADE IN CHINA’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는 제조 매뉴팩처링을 구축했다. 1백50~2백달러의 고급 핸드백을 아시아에서 생산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을 깨뜨려 산업격변기에 핸드백 시장의 새로운 장을 연 것. 그 시작은 첫번째 바이어였던 도나카란과의 거래를 통해 이뤄졌다. 당시 시몬느는 공장직원까지 15명이 일하는 소규모였고 아직 단 한건의 오더도 받지 못한 상태였지만 세계적 브랜드 「도나카란」에 ‘Well Design’ ‘Well Made’ ‘Well Price’라는 3W를 제안하며 배짱(?)있는 베팅을 걸었다.
처음에는 2스타일 오더를 맡기면서도 미덥지 않게 생각했던 도나카란 측에서 시몬느가 만들어낸 퀄리티와 40% 절감된 생산비용에 놀랐다고 한다. 이후 오더 물량이 2배로 늘어났으며, 6개월 후에는 전 물량의 60%를 시몬느에 맡기게 됐다. 「도나카란」과의 거래로 퀄리티와 저렴한 생산단가를 인정받은 시몬느는 이후 「캘빈클라인」 「랄프로렌」 등 해외 유명 브랜드로부터 연이어 제안을 받게 됐다. 이로써 고급 브랜드의 ‘MADE IN KOREA’ 한계를 뛰어넘은 시몬느는 1992년 중국에 생산 기지를 마련하면서 ‘MADE IN CHINA’ 벽도 허물었다.
이는 유럽 생산기지가 점차 와해되고 있는 현실을 앞서 판단했기에 가능했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장인들이 이끌어 오던 생산업체들은 40세 이하의 숙련공을 보유하지 못한 데다 이미 높아진 단가로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고 아시아시장을 럭셔리 핸드백 생산기지로 구축했다는 점에서 시몬느는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그 결과 세계적으로 명품시장을 리딩하는 LVMH사에서도 3년 전부터 시몬느와 거래를 시작해 「로에베」 「셀린느」 「겐조」 「지방시」 「크리스찬라크르와」 「푸치」 「도나카란」 생산을 맡기고 있다.
제품력을 갖춘 시몬느가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된 원동력은 단순히 생산력에만 있지 않다. 다른 업체를 따돌릴 수 있었던 것은 늘 두세 발짝 앞서 생각하고 실천했기에 가능했다. 카피 상품으로 저단가 생산에 주력하는 업체가 비일비재한 상황에서 시몬느는 스타일과 소재를 개발해 고가 시장을 공략했고 퀄리티 엔지니어링에 투자했다. 이는 OEM(Original Equip ment Manufacturers) 개념에서 벗어난 ODM (Original Design Ma nufacturers) 시스템을 구축한 것에 기반한다.
ODM으로 기술+디자인까지 수출
ODM(Original Design Manufacturers)은 단순 제조개념뿐 아니라 디자인까지 제안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패션 회사에서는 시몬느가 아시아 최초로 도입했다. 판매업자가 아이덴티티와 컨셉만 전달하면 이 설계도면에 따라 기술 자체를 개발해서 납품하기 때문에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 이는 시몬느와 거래했던 브랜드가 대부분 런칭 브랜드였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급 브랜드 테이스트에 어울리는 제품을 개발해 온 기술력으로 현재 보유하게 된 디자인 패턴만 해도 11만개에 이른다.
또 시몬느는 ODM 공장으로는 처음으로 ‘QA(Quality Assurance)’ 개념을 도입해 실행했다. ‘QA’란 주문의 시작부터 끝까지 1백% 생산업체에서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자동차 등 다른 산업에서는 시행되고 있지만 패션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기존에는 선적된 제품들을 바이어가 모두 뜯어서 품질검사를 했지만 ‘QA’ 시스템은 최종 품질 검사까지 공장 안에서 완벽한 확인이 가능토록 했다. 소재부터 컬러 디자인에서 품질확인까지 세세한 공정이 있을 때마다 바로바로 바이어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위험부담도 덜 수 있고 물류비용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4곳 생산기지, 하드웨어 ‘튼튼’
이러한 시스템은 시몬느가 갖추고 있는 해외 지사와 생산기지 등 하드웨어를 갖췄기에 가능했다. 한국에 있는 본사를 헤드쿼터로 뉴욕지사와 홍콩지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각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시몬느가 보유한 공장은 총 4개 지역에 위치하는데, 중국 광저우쪾라조쪾칭다오와 인도네시아의 공장에서 일하는 인원만 1만명에 달한다.
중국 광저우 공장은 5천명의 인력이 월 40만 피스를 생산해 내는 가장 큰 공장이며, 인도네시아와 중국 라조 공장은 각각 2천명쪾1천5백명의 인력이 월 15만피스씩 생산하고 있다. 내년 1월에 오픈할 중국 칭다오 공장도 1천5백명의 인력이 15만피스를 생산할 것으로 추정된다.
놀라운 점은 이들 회사와 공장들 모두가 생산기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본사도 3천평이라는 큰 규모에 2백20명이 편안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는데, 뛰어난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이 건물은 2003년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중국 광저우 공장도 중국 전체에서 종합평가 1위를 받았다고 하니 시몬느의 하드웨어 시스템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직원 220명 평균경력 = 10년
이와 함께 시몬느는 어느 생산업체보다도 탄탄한 인력구조를 자랑한다. 한국 본사에 근무하고 있는 전직원 2백20명의 경력만 합해도 총 2천7백12년. 평균 10년 이상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모든 공정이 사람 손에서 시작되는 산업이기에 유능한 인재발굴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박은관 회장 역시 해외 영업으로 핸드백을 접한 이후 올해로 26년째 노하우를 쌓아왔기에 다른 회사에서는 살 수 없는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이같이 시몬느의 눈부신 발전은 상품 제조력, ODM 시스템 구축, 하드웨어적 요소, 인력이라는 소프트웨어적 요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전세계 핸드백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로 치달아 어느 순간 구조조정도 일어나겠지만 전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시몬느의 행보는 거침없을 것으로 보인다.
시몬느 주요 거래 브랜드
USA
「코치」 「케이트스페이드」 「콜한」 「DKNY」
「마이클코어스」 「쥬시쿠튀르」 「마크제이콥스」
「앤클라인」 「리즈클에이본」 「파슬」 「띠어리」
「나인웨스트」 등 다수
EUROPE 「버버리」 「지방시」 「에밀리오푸치」 「로에베」
「훌라」 「셀린느」 「겐조」 「크리스찬라크르와」 등 다수
시몬느 HISTORY
1987 시몬느 설립
1988 수출의 날 5백만달러 탑 수상
1989 수출의 날 1천만달러 탑 수상, 대통령표창 수상
1990 뉴욕지사 설립
1991 수출의 날 산업포장 수상/공장사옥 이전
1992 중국 광저우에 해외공장 설립(100% 단독 출자)
1993 중국 광저우에 제2공장 증설
홍콩지사 설립
1995 중국 광저우에 제3공장 증설
1996 생산성대상 세계화 부문 수상
수출의 날 5천만달러 탑 수상
1997 중국 광저우에 제4공장 증설
인도네시아에 해외공장 설립
1999 인도네시아 제2공장 설립 증설
2000 무역의 날 수출 1억달러 탑 수상
2001 모범 납세자 재경부 장관상 수상
2003 중국 광저우에 신공장 준공 이전
본사 신사옥 준공 이전(대한민국 건축대상 수상)
2004 중국 칭다오에 제3공장 설립 진행
정하실업 인수
본사 경기도 의왕시(220명)
지사 뉴욕지사
홍콩지사
공장 중국 광저우 인력 : 5,000명 월생산량 : 400,000pcs
중국 라조 인력 : 2,000명 월생산량 : 150,000pcs
인도네시아 인력 : 2,000명 월생산량 : 150,000pcs
중국 칭다오 인력 : 1,500명 월생산량 : 150,000pcs
(06년 1월 오픈 예정)
Interview
시몬느는 가치생산 근원지
Carolyn Komminsk
「케이트스페이드」 개발디렉터
“「케이트스페이드」는 시몬느의 성실한 스텝들과의 코웍을 가치있게 생각한다. 이탈리아 터키 중국 등 세계 여러나라 공장과 업무를 같이 하고 있지만 시몬느와의 거래는 그 중 단연 비중이 크다. 이는 시몬느가 「케이트스페이드」의 성공적인 발전을 가능토록 그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핸드백과 액세서리 생산능력을 제공해줬기 때문이다. 민감할 수 있는 비즈니스이지만 시몬느는 놀라운 중국 공장의 고품질 상품으로 고퀄리티를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적인 비즈니스 파트너로 나아갈 것이다.”
②어포더블 럭셔리 주역 ‘케니박’ 민은선 기자 esmin@fashionbiz.co.kr
“지난 5년 간 전세계 핸드백 시장의 변화는 그 전 15년 간의 변화보다 더 크다. 소재 디테일 디자인 등 프로덕트는 놀라울 만큼 향상됐고 시장은 엄청나게 커졌다. 특히 브리지와 럭셔리 마켓, 그리고 마더레이트와 디자이너브랜드의 중간에 위치한 ‘어포더블 럭셔리(Affordable Luxury)& 액세서블 럭셔리(Accessible Luxury)’ 조닝의 파이가 2배 반만큼 커졌다. 5년 혹은 10년 전에 비해 미국 여성들은 연평균 2.4개의 핸드백에서 지금은 3.7개로 늘어났다. 기성복 시장이나 다른 상품에 비해 핸드백 시장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 커지면서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뤘다.”
열정적인 모습의 박은관 시몬느 회장은 전세계 핸드백 시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기업을 재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최근 수년 간 LVMH, 구치 등 액세서리 시장의 성장과 함께 의류 전문회사들은 예외없이 레더굿 디비전을 강화했으며 투자와 사람과 디자이너 등이 이 부문으로 몰리고 있다. 미국의 파슨스스쿨과 FIT 등 패션학교의 졸업생들은 5년 전부터 핸드백 액세서리 분야 희망이 넘버원이다.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이너들의 핸드백 부문 유입도 훨씬 늘어났다. 광고 면에서도 신발과 핸드백 등을 멀티로 한 광고가 늘어나는 등 이 부문의 성장과 발전은 눈부신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청담동 갤러리보다 더 멋진 사옥
이같은 상황에서 단연 돋보이는 회사가 있다. 경기도 의왕시 인덕원 4거리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시몬느 본사에 들어서면 여러번 놀라게 된다. ‘공장’인 줄 알았던 이 회사가 청담동의 갤러리 보다도 더 멋진 건물이라는 사실. 건물의 구석구석에 앉혀진 각종 소품들은 이 회사 박은관 회장이 10년 넘게 직접 컬렉팅한 귀중품(?)들이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터키 이집트 등 전세계 고가구와 앤틱소품, 한국의 민화 등 4백점의 소품을 업무 공간 설계와 인테리어에 활용했다. 모두가 개인이 수집해 소장했던 물건들. 전 세계를 안방처럼 돌아다닌 그의 궤적과 함께 지구 반대쪽에서 건너온 물건들이 모두 제자리인 듯 아름다운 모습을 뽐낸다. 누군가의 말을 빌리자면 “박 회장이 언젠가 세워질 아름다운 사옥을 위해 하나하나 직접 컬렉트했으며 그 물건들은 모두 몇 년 동안 건물 한쪽에 보관돼 왔다”는 것.
2003년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수상했을 만큼 공들여 지은 사옥, 회사 곳곳에 위치한 앤틱 가구와 친환경적으로 설계된 사무 공간, 퍼스트 클래스 뮤지션을 초대해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시몬느 음악회 등에서도 시몬느의 ‘특별함’은 빛을 발한다.
전세계 종횡무진하는 ‘케니박’
“지난 87년 15명의 직원이 마음을 합쳐 사업을 시작하기로 했을 때 삼겹살에 소주로 저녁식사를 하면서 우리가 성공하면 멋진 업무 공간을 만들어 보자고 약속했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12시간 이상이므로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회사가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즐겁게 일하면서 리프레시할 수 있는 휴게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각층의 화장실도 컨셉을 갖고 꾸몄다. 체육관, 산책로, 퍼팅연습장, 연주회가 가능한 대강당도 갖췄다.
또 지난해부터 시몬느만의 음악회를 시작해 여름에는 재즈를, 겨울에는 클래식 공연을 개최해 다양한 문화활동을 직원들과 공유하고 있다. 매년 개최하는 체육대회 역시 자유롭고 절제된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도 쉴 수 있는 다양한 컨셉의 공간들이 연출되어 있는 시몬느 본사, 그리고 중국과인도네시아 공장의 모든 직원이 시몬느 속에서 같이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공유된 믿음과 문화를 업무 속에서 즐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박 회장의 생각이다.
‘케니박(Kenny Park)’으로 더 유명한 박은관 시몬느 회장. 10년 전 그는 5천만달러 규모의 핸드백 수출회사 사장이었다. 핸드백 수출업체들 사이에서 ‘무서운 아이’로 떠오른 시몬느의 젊은 수장은 열정적인 수출맨으로서 세계를 종횡무진 달렸다. 당시 시몬느의 주력 바이어는 「DKNY」 「앤클라인II」 「에스쁘리」 「페리엘리스」 등이었다. 지금 그는 2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패션컴퍼니 회장이다. 현재 주 바이어는 「코치」 「케이트스페이드」 「마이클코스」 「셀린」 「로에베」 「지방시」 등 언뜻 보아도 잘나가는 브랜드들이다.
그의 이름은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 동안에도 시몬느에는 세계 굴지의 패션회사 관계자들이 상담을 하기 위해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많은 바이어들이 떠나버린 한국에 이 회사들은 오로지 시몬느와의 상담을 위해 들어온다.
‘시몬느’ 때문에 한국 못 떠난다?
전세계 럭셔리 시장이 급속한 속도로 커질 때 그 바람을 타고 시몬느도 급성장했다. LVMH와의 만남도 4년 전이다. 유럽의 핸드백 생산기지가 와해되고 붕괴될 무렵 유럽의 럭셔리 브랜드 50개 중 10개를 제외하고는 모든 브랜드들이 유럽생산 캐파가 부족하고 숙련공 부족과 함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자 그때부터 ‘China Rush’가 시작됐다. 이미 중국에 탄탄한 공장을 세팅해 놓았던 시몬느로 몰려든 것은 당연한 일. 「코치」도 7년 전부터 거래하기 시작했다. 작년 올해 갑자기 늘어난 전세계 브랜드들의 중국공장 러시 결과 시몬느와 독점계약을 맺으려고 난리다. 중국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은 몇 개 안되기 때문이다.
현재 LVMH사의 브랜드는 6개 거래하고 있다. 「셀린느」 「로에베」 「겐조」 「지방시」 「크리스찬라크르와」와 함께 미국 브랜드지만 LVMH가 소유한 「DKNY」, 그외 「마크제이콥스」, 「버버리」도 올해 거래를 시작했다. 모두가 차이나 러시 덕이다. 또한 중국에서 럭셔리 브랜드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 계속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잠재력있는 공장이 몇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LVMH 소속 5개 브랜드와 거래를
이같은 배경은 미국 시장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 백화점내에서 메이시 백화점 이상은 싸구려 브랜드들을 다 걷어내고 대신 브리지 브랜드, 럭셔리 브랜드로 모두 교체됐다. 노드스트롬, 블루밍데일즈, 니만마커스, 삭스피프스애비뉴, 로렌테일러, 버그돌프굿맨 등이 그것. 핸드백 매장 공간이 매년 매시즌 계속 확장됐고 「발렌시아가」 「멀버리」 「끌로에」 등 유러피안 새로운 브랜드들이 계속 도입됐다. 3개월만 한눈 팔면 트렌드에서 멀어질 정도로 핸드백 시장의 액티비티는 가속화됐다. 어포더블 럭셔리 시장이 2배 이상 커진 것이다. 이러한 세계시장의 흐름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그 흐름을 타는 시몬느는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박 회장(55년생)이 걸어온 길은 사실 패션과는 무관하다. 큰 원양어선 12척을 운영하던 부친 밑에서 조선소와 어망 공장 등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는 4형제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 갔다. 제물포고와 연세대 독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청산이라는 핸드백 수출업체에 대졸 공채 1기로 입사했다. 당시 이 회사는 3백만달러를 수출하던 중소기업이었다.
청산에서의 그의 족적은 가히 기록적이다. 입사 당시 3백만달러규모의 청산은 이후 8백만달러 1천8백만달러 3천6백만달러 5천만달러로 급성장했다. 그 와중에 그는 청산에서 과거의 모든 승진기록을 깼다. 입사 1년 6개월 만에 대리, 이후 6개월 만에 과장, 다시 1년 만에 차장, 또 1년 만에 부장, 이렇게 그는 입사 4년만에 부장을 달았다. 그때 나이 스물아홉이었다.
‘인터내셔널 패션컴퍼니’ 향해 진군
8년 간 직장생활을 한 뒤 그는 사업을 결심한다. 시몬느 설립과 함께 그가 세운 철칙은 모회사의 바이어는 단 하나도 갖고 오지 않는다는 것. 중저가 브랜드에 OEM 수출하던 청산과 달리 시몬느는 고급 바이어를 겨냥한 전략으로 집중했다. 중저가 브랜드로부터 상담이 들어오면 박 회장은 청산으로 바통을 넘겨주었다. 96년을 기점으로 청산보다 시몬느의 규모가 커졌다. 지금은 사라진 친정 회사 청산을 구하려 한때 시몬느가 대주주가 되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내일처럼 애착을 가져야 하며 멈추지 말고 일에 부딪쳐야 한다. 또한 언제나 도전을 즐겨야 새로운 세계와 만날 수 있다”며 그는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를 강조한다. 이제 그는 시몬느에 만족하지 않고 수입 비즈니스를 통해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돈’보다는 언젠가 이루어질 ‘인터내셔널 패션컴퍼니’의 비전을 위해 제조업에서 브랜드 비즈니스로 영역을 확대한 것.
젊은 인재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매뉴팩처링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판단으로 수입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으며 이제 신규사업 「마이클코스」를 통해 이 꿈이 좀더 구체화될 예정이다. 이어서 그가 머지않아 도전하게 될 일은 이러한 모든 그의 경험치를 녹여 만들어 낼 인터내셔널 패션 브랜드다. 새로운 꿈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그의 새로운 도전은 계속 ... ing다.
③새 엔진 「마이클코어스」 달다 장지현 기자 jhjang@fashionbiz.co.kr
시몬느의 자회사 정하는 패션 향수 기초화장품 색조화장품 등의 사업부를 각각 운영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패션 및 액세서리 분야의 사업을 대폭 확장해 새롭게 부상하는 패션 회사로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시몬느(대표 박은관)가 글로벌 패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2003년 정하실업(대표 홍석진)을 인수했다. 향수 화장품 패션을 두루 전개하고 있는 정하는 시몬느가 향후 더 많은 패션 브랜드를 수월하게 전개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기 때문이다. 이어 시몬느가 패션 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한 두번째 작업은 「마이클코어스」.
이미 「마이클코어스」 핸드백을 제조쪾수출해 오던 시몬느에 오는 2006년 F/W시즌부터 향후 10년 간 「마이클코어스」를 국내에서 독점으로 전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이를 위해 이 회사는 시몬느와 정하 외에 별도 법인을 설립할 예정이며 최근 사업부를 구성, 본격적인 진행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시몬느는 ODM업체에서 현재 뷰티에 강한 정하실업과 「마이클코어스」 로 인해 패션&뷰티 업계를 섭렵한 글로벌 컴퍼니로 도약을 준비 중이다.
지난 2003년 인수한 정하실업은 1999년 향수 사업을 시작으로 뷰티 비즈니스와 함께 지난 2003년 시작한 「쿠스토바르셀로나」 「던힐」 「베이비디올」과 지난 2005년 S/S시즌 「타라자몽」을 전개한다. 아직은 뷰티 비즈니스가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지만 향수를 기반으로 패션과 뷰티를 5:5 비율로 키워 나갈 예정이다.
정하, 「쿠스토바르셀로나」 「타라자몽」
홍석진 정하 사장은 삼도물산 출신으로 20여년 간 화장품과 의류 무역업에 종사했으며 ‘인터리그 키즈웨어’의 대표이사와 가죽의류 전문업체 ‘SIM’s 인터내셔널’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지난 2000년 정하에 합류, 부사장으로 일하다 올해부터 사장으로 정하의 총대를 멨다. 그는 오랜 무역업 경력으로 시몬느가 패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정하는 패션 향수 기초화장품 색조화장품 등의 사업부를 각각 운영하고 있으며, 2003년부터는 패션 및 액세서리 분야의 사업을 대폭 확장해 새롭게 부상하는 패션 회사로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쿠스토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하이패션을 보여주는 티셔츠가 강한 브랜드로 정하에서 세계 최초로 단독숍을 오픈했다. 2003년 2월 갤러리아 웨스트점을 시작으로 현재 대백플라자 대구백화점 현대본점 삼성플라자 신세계강남점 등 총 7개점을 전개 중이다.
이번 F/W시즌 정하는 「쿠스토」의 기존 모델수 2백 스타일을 2백85점으로 대폭 늘리며 스페인 본지에서만 선보였던 액세서리 등 수입 라인을 30% 비중으로 구성한다. 홍 사장은 “「쿠스토」가 하의와 겨울 아우터류 등 국내 마켓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 리뉴얼을 통해 국내 마켓에 맞는 스타일을 비롯해 디자이너 감도가 묻어나는 다양한 상품을 선보여 기본적으로 토털브랜드는 아니지만 구성력을 탄탄히 해 안착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타라자몽」, 소프트한 국내 진입
정하는 「쿠스토바르셀로나」와 함께 성인 브리지 조닝군을 형성하는 「타라자몽」을 런칭, 지난 2월부터 갤러리아웨스트점 롯데본점 현대무역점 3개의 유통망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 두시즌째로 초반기이기에 6천만원대를 유지하며 인지도를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16일 디자이너 타라자몽이 방한해 국내 패션계를 둘러보고 프레스 행사 등에 참여, 국내 패션피플의 주목을 끌었다.
「쿠스토바르셀로나」와 「타라자몽」 외에도 정하는 지난 2003년 4월 남성복 「던힐」을 런칭했으며, 이 브랜드는 계약 만료로 인해 지난 2004년 9월 리치몬드에 양도됐다. 2004년 8월까지 「던힐」의 매출액은 60억원으로 마감했다. 이와 함께 명품 유아동복 「베이베디올(Baby Dior)」을 지난 2003년 8월에 런칭, 현재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성인복은 어포더블(Affordable) 럭셔리 조닝 브랜드를 주로 전개해 오고 있으며 럭셔리 명품 브랜드인 「베이비디올」과 함께 패션 조닝을 확장한다는 포부다. 현재 수입 럭셔리 아동복 시장의 위축으로 국내에서 철수하는 브랜드가 속출함에도 불구하고 갤러리아 웨스트점과 신세계강남점, 현대본점 등 주요 백화점 3개점에서 운영하고 있다.
마이클 코어스의 어제와 오늘
Michael Kors
「마이클코어스」는 「셀린느」 디자인디렉터로 활동한 미국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가 런칭해 명예회장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지난 1981년부터 Michael Kors, Inc(대표 John D. Idol)에서 전개한다. 이 브랜드는 현재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 다양한 패션 & 뷰티 라인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를 졸업한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는 「마이클코어스」 「코어스 마이클코어스」 「마이클 마이클코어스」 등의 라인을 전개한다.
그는 패션쇼에서는 도발적이고 튀는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착용하기에 부담스러운 의상보다 일상 생활과의 접목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의상을 디자인한다. 코어스는 튀는 화려함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화려함 속에서 나오는 세련되고 실용적인 의상, 우아함과 동반하는 섹시함, 클래식하고 현대적인 디자인과 믹스 매치의 중요성을 살린 의상을 선보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마이클코어스」가 런칭된 1981년 첫번째 컬렉션 쇼에서 그는 기자들과 패션계의 뜨거운 환호와 찬사를 받았다. 그후 그의 ‘작품’들은 뉴욕에 위치한 유명 백화점에 입점돼 판매되기 시작했다. 1995년 선보인 세컨드 라인 「코어스 마이클코어스」는 좀더 캐주얼하면서 스포티하며 실용성을 강조한 의상으로 구성됐으며 신발쪾향수 등과 함께 젊은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 2000년 9월 마이클 코어스의 첫 번째 여성 향수가 런칭됐고,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하여 출시한 스포츠웨어와 액세서리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의류 슈즈 워치 향수 스포츠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성장해 나가고 있는 「마이클 코어스」와 「코어스 마이클코어스」는 「셀린느」와 더불어 마이클 코어스의 정체성을 잘 살려주는 브랜드다. 마이클 코어스는 지난 1997년 「셀린느」에서 여성복 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되면서 한번 더 세계 패션계의 주목을 받았다. 「셀린느」가 추구하는 컨셉은 클래식한 우아함을 바탕으로 한 럭셔리함인데, 바로 이런 점이 마이클 코어스의 디자인 철학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 것. 2003년 3월 13번째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셀린느」와의 계약이 만료되기까지 그는 「셀린느」의 디자이너로서 자기 역량을 1백% 발휘했다.
「마이클 코어스」의 빅팬(Big Fan)으로는 패션 모델 카르멘 카스와 귀네스 펠트로, 르네 루소, 셀린 디옹, 브룩 실즈, 크리스틴 데이비스, 엘리자베스 헐리, 샤론 스톤 등 할리우드 정상급 스타들을 꼽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황신혜, 송윤아, 변정수, 명세빈 등 셀러브리티의 마니아층이 두텁다.
마이클 코어스는 다양한 단체의 임원을 맡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The Council of Fashion Designers of America) 위원이다. 그는 현재 뉴욕시에 거주 중이다. ■
마이클 코어스 히스토리 & 수상경력
1959 뉴욕 근교 롱아일랜드에서 출생, 뉴욕 FIT에서 패션 디자인 전공
1978 19살에 뉴욕에 위치한 <로터스(Lother’s)> 에서 디자인과 머천다이징 담당
1981 자신의 첫 컬렉션 「마이클코어스」 런칭
1983 DuPont's first American Original Award 수상
1995 엘르/캐딜락 최고 패션상 수상
1997 세계적 명품 그룹 LVMH하의 「셀린느」에 합류, 수석디자이너이자 아티스틱디렉터
1999 라이트하우스 인터내셔널의 라이프타임 어치브먼트 수상 /
CFDA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 수상/ 뉴욕 매거진의 뉴욕상 수상 /
E! 방송의 골든행어(Golden Hanger)상의 베스트 디자이너 수상
2000 향수협회 ‘올해의 여성향수’수상 / 여성 코스메틱협회 ‘베스트 뉴 여성 향수’수상 /
CFD 올해의 액세서리 디자이너 노미네이트 /향수협회 ‘올해의 남성향수’ 수상 /
여성 코스메틱협회 ‘베스트 뉴 남성 향수’ 수상
2002 세컨드 브랜드 「코어스 마이클코어스」 런칭
2003 CFDA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 수상
2004 CFDA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상에 노미네이트
CFDA 올해의 남성복 디자이너상에 노미네이트
2004 세번째 컬렉션 「마이클 마이클코어스」 런칭
「쿠스토바르셀로나」 스토리
1980년대 초 쿠스토와 데이비드 달마우 형제에 의해 만들어진 「쿠스토바르셀로나」는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독특한 개성의 브랜드다. 세계 30여개국에서 3천여개 스토어를 두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기발한 아이디어의 그래픽과 다채로운 컬러, 다양한 패브릭들로 믹스 & 매치된 티셔츠는 「쿠스토」의 대표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 브랜드는 튀는 개성을 소유한 감각파 25~35세까지의 남녀를 메인 타깃으로, 넓게는 젊은 마인드를 소유한 15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연령층을 마니아로 확보하고 있다.
「쿠스토바르셀로나」는 예술과 문화, 철학의 다양한 특징을 알기 위해 시작된 세계 여행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런칭 당시 스페인에서 볼 수 없었던 캘리포니아 스타일의 화려한 색깔과 혁신적인 패션은 지난 1994년 17개의 티셔츠로 미국시장을 강타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확대됐다. 바르셀로나와 시카고 등 13개의 플래그십숍을 가진 데 이어 지난 2004년에는 전세계 20여개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추가 오픈했다.
「쿠스토」는 국내에 지난 2003년 S/S시즌 소개돼 올 들어 전년대비 1백% 신장이라는 놀라운 신장률을 달성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특히 강남지역 백화점에서 월평균 매출은 8천만원대로 빠르게 안착하고 있다. 지난해 35억원의 매출을 달성했으며 올해는 50억원을 목표로 한다. ■
“한국 여성에 꼭 맞는 브랜드”
Tara Jarmon
「타라자몽」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타라자몽」은?
「타라자몽」은 페미닌 걸리시 로맨틱 컬러풀한 컬렉션으로 25~35세의 여성을 타깃으로 한다. 특히 어느 나라보다도 한국 여성들에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여성스럽지만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주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과 흥미를 느끼는 한국 여성들에게 최적의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또한 커리어 우먼의 파워풀한 면을 보여주기도 하는 양면성을 띠기도 한다. 종종 사람들은 이 브랜드가 나와 매우 닮았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스타일을 만들다 보니 내 라이프스타일이 많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나 16살 때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왔다. 그 후 3개월 간 프랑스 파리에서 모델 생활로 패션을 접하게 됐다. 하지만 모델이란 직업은 기간의 한계가 있어 나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정치학 공부를 마친 뒤 파리로 되돌왔다. 그곳에서 남편 데이비드 자몽을 만났다. 당시 그는 남성복 업계에 종사하고 있었다. 난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것이 전부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백화점 시어즈(SEARS) 카탈로그를 보며 패션에 대한 꿈과 열정을 키워 왔었다. 여기에 짧은 모델 경력과 남편의 영향이 밑거름이 돼 지금 디자이너로서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됐다.
아시아지역으로 사업을 확장을 시작한 소감과 한국시장에 대한 의견은?
아시아로 사업을 넓히기 전까지는 이 지역의 패션문화가 어떠한지 자세히 인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특히 한국에 와서 놀란 점이 많다. 성숙되고 발전된 패션에 대해 영감도 많이 얻었다. 한국 여성들은 새로운 패션을 시도하는 과감성이 있는 것 같아 그들의 특성이 매우 흥미롭고 놀랍기까지 하다. 나 역시 「타라자몽」을 통해 지속적으로 다양성을 시도하고 있어 공감대가 형성된다.
한국 여성들은 패션 감각이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 한국에 도착한 뒤 「타라자몽」이 입점돼 있는 갤러리아와 롯데를 둘러봤다. 해외 브랜드 외에도 여러 한국 브랜드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감각적이고 트렌드한 디자인에 놀랐다. 한국 브랜드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른 디자이너들은 자신만의 패션세계를 고집하는 특징이 있지만, 난 한국인들이 원하는 스타일을 어느정도 수용할 생각도 갖고 있다.
「타라자몽」의 글로벌 비즈니스 계획은?
많은 사람들은 「타라자몽」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난 1995년에 시작돼 올해로 10년째를 맞이했으며, 지난 1986년부터 멀티숍에서 ‘타라’라는 라인으로 시작됐다. 유럽을 벗어나 아시아 지역에 눈을 뜨면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끝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또한 아시아 지역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고 놀랐다. 「타라자몽」에는 시즌마다 등장하는 컨셉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에스닉(Ethnic)’이다. 나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그곳의 문화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어 디자인하는 데 활용한다. 글로벌 브랜드로 확장하는 데 다양한 문화의 에스닉한 컨셉은 세계 모든 패션피플에게 친숙함으로 다가가지않을까 생각한다. 이와 함께 유통망 확장과 인지도 향상 등 앞으로 진행해야 할 숙제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가까운 시일 안의 계획은 오는 12월에도 10주년을 맞아 특별한 이벤트를 구상 중이다.
라인 확장의 계획은?
서브라인 런칭을 계획하고 있지만 에이지 타깃을 넓힐 계획은 없다. 혹자는 디자이너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 브랜드도 함께 올드해진다고 말하지만 「타라자몽」은 항상 25~35세의 타깃층에 집중할 계획이며, 현재의 18세가 향후 타깃층 나이가 됐을 때는 그들의 핫(hot)하고 트렌디해진 감성과 호흡을 함께할 것이다. ■
Vittorio Orebi
「타라자몽」 부사장
-방한 목적과 소감은?
「타라자몽」이 한국에 런칭된 후 두번째 시즌을 맞아 확고한 브랜드 인지도 구축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에서 정하가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타라자몽」의 컨셉을 잘 이해하고 전개해 줘서 고맙고, 앞으로 프랑스 본사와 함께 협력해서 잘 이끌어 나갔으면 한다. 한국에 도착해서 보니 우리 브랜드가 패셔너블하고 센스있는 한국 여성들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한국시장에서 발전 가능성을 볼 수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한국에서 「타라자몽」의 향방은?
우리 브랜드는 프랑스 스웨덴 멕시코 대만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국가에 30개의 매장과 1천개의 숍인숍을 확보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그 여러 국가에 포함이 됐으며, 정하를 통해 각 주요 백화점 입점에 힘쓸 계획이다. 이를 위해 대중적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구축해야 할 것 같다. 브랜드 퀄리티를 위해선 타라가 지금처럼 파리지앵적인 빈티지 감성을 선보이도록 디자인에 더욱 신경을 쓸 계획이며, 한국 실정에 맞는 기획 아이템도 구상 중이다. 디자인력과 영업력에 초점을 맞춰 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