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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4) - 소설가 한승원
해산토굴서 빚는 갯가의 생명력
독특한 삶의 방식속 문학세계 일구어
토착어 구사, 40년간 꾸준한 변화 추구
광활한 바다보며 한국문학 확대 재생산
2002. 12.11(수) 15:20
소설가 한승원(63)의 문학세계는 남도 갯가의 정서에 뿌리박은 한(恨)의 미학과 샤머니즘의 중심에 있다. 남도의 장흥 바닷가를 배경으로 그의 독특한 삶의 방식과 깊이가 살아 숨쉬는 문학세계를 40여년 동안 일구어 왔다.
다시말하면 복잡다단한 시류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문학세계를 꿋꿋하게 지켜온 작가이다. 그 곳은 그가 태어난 곳이고 또한 문학의 고향이기도 하면서 그의 작품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생명력은 신화적인 바다를 역사적인 공간으로 이끌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원시적이고 무의식적인 생명력을 샤머니즘의 의식을 통해 원형적으로 형상화하는 한국문학의 독특한 전통을 확대해 이어가고 있는 한국문학사에 한 획을 긋는 작가이다.
광주에서 장흥으로 가면서 그의 바닷가를 내내 생각하며 도착한 '해산토굴(海山土窟)'은 가히 일품이었다.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은 마을 입구에 조그만 표지판을 설치해 놓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해산토굴은 대나무숲이 건물을 감싸고 있어 아주 온화한감을 주었다. 앞마당의 연못과 석등, 석탑이 인상적으로 우리를 맞았다. 마당에 도착해 뒤돌아 본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광활하고 훤히 트인 논밭 너머로 남해바다가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거실에 들어가서도 창문을 열고 앉아 있어도 남해바다는 한승원의 손안에 잡혀 있었다. 이제까지 그가 왜 남해바다 갯내나는 작품을 써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문학인생은 고향인 남해 바닷가에 뿌리를 두고있다. 그의 소설은 운명의 올가미에 한이 서린 인간상을 통해 인간의 존재 근원을 이야기한다.
데뷔작 '목선'에서부터 '앞산도 첩첩하고'(1976) '기찻굴'(1978) '포구1'(1982) '해변의 길손'(1987) '새끼무당'(1994) 등의 중단편과 자전소설인 장편 '해산 가는 길'(1997)과 '사랑'(1998) '꿈'(1998) 등에 이르기까지 수백 편에 이르는 작품을 통해 전남 장흥의 남해 바닷가를 고향의 언어인 토착어를 구사하며 반복적으로 집요하게 다루었다.
그 속엔 한국 근대사가 압축되어 있으며, 그 안에 존재하는 억압과 억압의 해소를 표출하는 남해 바닷가는 한국소설사에 원형상징성을 띠는 한 공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한승원 소설이 다루고 있는 인물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의 인물들은 운명에 구속된 채 운명에 맞서는 과정에서 비극을 구현한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한 차원 고양된 세계, 즉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운명과 대면하는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그의 소설의 또 다른 특질은 그가 구사하는 토속적인 언어가 지니는 미적 자질에 있다. 그의 소설의 언어는 입담 좋은 사람이 연기력을 발휘하듯이 휘둘러 가는 방식으로 이어지면서 삶의 구체적인 감각과 섬세함을 표현한다.
한승원의 등단작은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목선'이다. 장흥 회진 앞바다 덕도와 우산도를 배경으로, 가난한 갯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했다. 그들의 억척같은 생활과 생명력을 표출하는 '목선'은 이후의 한승원 작품의 중요한 요소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목선' 이후 지금까지 35년여의 세월 동안 그의 고향인 바닷가 갯마을 사람들의 원시적인 삶의 모습을 대상으로 밀도 짙은 그림을 그려왔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언어적인 면에서나 주제적인 면에 있어서, 한국 현대문학에 강렬하고 대담한 새로운 생명의식을 가져다주었다.
못된 혼에 씌인 인간들이 운명의 올가미에 묶인 채 '어이없고도 지랄 같은 놈의 세상'에서 운명과 맞서서 발버둥치면서 엮어 가는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작중인물들의 운명은 일종의 '한'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둠이라든지 그늘이 핏빛과 뒤범벅이 되어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환기한다. 괴기로운 눈빛을 번득이면서 본능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하고 악업의 화신처럼 살아가다가 스스로 자멸하기도 하고, 그가 쌓은 악업을 그 자식들이 짊어지고 번뇌의 불구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그 바다는 수시로 변하곤 했다. 은빛으로 번쩍거렸고, 금빛 칠을 해놓은 것 같았고, 허연 눈이 덮여 있는 것 같았고, 회칠을 해 놓은 것 같았고, 흰 옥양목천을 깔아 놓은 것 같았고, 쪽빛 물을 들여 놓은 것 같았고, 바닷속에 있는 수만 수억의 고기들이 일시에 떠올라 푸드덕거리는 것 같았다. 아침에 달랐고, 저녁에 달랐고, 한낮에 달랐고, 황혼녘에 달랐고, 땅거미에 질 때에 달랐고, 비 올 때 달랐고, 눈 올 때 달랐다. 푸르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바다는 자기가 푸른 것인 척하고 있을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바다는 충격적인 매혹이다. 그 매혹은 그의 정신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풍광은 칸트가 말한 바대로 숭고미를 유발한다. 그래서 한승원은 교양 체험의 충격보다 생체험의 충격에서 작가로서의 길을 택했으리라는 추측을 강렬하게 불러 일으킨다. 또한, 그의 소설은 섬세한 정감이나 결로 포착된 삶의 문학이라기보다는 선이 굵고 경험의 부피로 해서 견인력을 발휘하는 문학이다.
최근에 발간한 장편소설 '멍텅구리배'는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멍텅구리배를 배경으로 현대 사회의 '인간성 상실과 회복'이라는 대주제를 그려낸 소설이다. 인간의 내면을 심층적으로 분석, 인간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성에 경종을 울리는 한편, 참된 인간성이 지향해야 하는 바를 제시한다.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 정박해 갖은 만경창파를 견뎌야 하는 멍텅구리배 안의 공간은 작지만 또 하나의 사회를 이루고 있다. 그 공간은 선과 악이 대립하고 신진과 보수가 갈등하는 '세상의 작은 축소판이다. 이 상징적인 장소에서 권력과 욕망과 투쟁과 인간성의 옹호가 치밀하고 박진감 있게 전개된다. 새우잡이를 하는 뱃사람들의 거칠면서도 소박한 생활, 그들이 사용하는 질박한 남도의 사투리는 이 소설을 더욱 감칠맛나게 하는 요소이다. 이 소설은 그간의 한승원 문학의 특장(特長)을 유지하면서도 공간 설정의 새로움과 상징성으로 인해 한승원 문학의 새로운 변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또 전작장편 '꿈'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九雲夢)'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창작한 소설. 작가는 20여 년에 걸쳐 '구운몽'에 대한 신화적, 정신분석학적, 철학적, 종교적, 물리학적 접근 등을 시도했고, 이에 대한 많은 연구서와 자료에 대한 분석을 마친 뒤, 3년 동안 집필한 결과 이 소설을 내놓게 되었다. 3백여 년 전 김만중이 어머니를 위무하기 위해 '구운몽'을 지었다면, 오늘의 한승원은 거품같이 가벼워진 오늘날 삶의 답답한 고리를 푸는 화두로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생명력은 지리멸렬한 삶의 동어반복으로부터 벗어나 드높은 차원의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며, 그 힘은 곧 이상적인 한 남자와 여덟 여자에게서 솟구쳐 오르는 힘의 율동에서 비롯된다. 소설 속의 구운(九雲)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한 남자와 여덟 여자를 말하고, 다른 하나는 도교에서 말하는 초월의 세계, 불교의 극락세상, 기독교의 천국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소설은 현재의 욕심에서 벗어나 참된 삶을 사는 이상세계로 나아가기이다.
6권으로 된 '한승원 중단편전집'은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처 입은 민초들의 삶을 통해 토속적 한(恨)의 세계를 그려온 그의 30년 문학사를 총망라한 중단편전집이다.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목선'에서부터 최근작 '유자나무'에 이르기까지 총 70편의 중․단편이 수록된 이 전집에는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남도 갯가 사람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삶에 대한 치열한 욕망을 건져내는 작가의 독특한 필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장인적 솜씨로 빚어낸 남도문학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이 전집은 그의 문학적 토양과 그가 걸어온 문학에의 노정을 엿볼 수 있다. '한승원 중단편전집'은 그의 문학이 리얼리티에 국한된 서사세계를 넘어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삶의 진실을 찾으려는 노력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 '화사'를 보면 말이 살아 움직이고 꿈틀거리고 책장에서 기어나와 보는 사람을 물어뜯을 것 같은 느낌이 날 정도로 생동감이 있고 아름답다.
"그녀를 향해 진달래꽃 한 떨기가 웃고 있었다. 그 옆의 쇠별꽃과 오랑캐꽃도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 꽃들을 꺾어 머리에 꽂았다. 옷섶에도 꽂았다. 칡덩굴을 이빨로 끊어서 똬리를 만들고 꽃을 꽂았다. 옷섶에도 꽂았다. 그것을 관처럼 썼다. 다시 칡덩굴 또 한 줄기를 끊어서 허리에다 겹겹이 감고 거기에도 꽃을 꽂았다. 꽃타래를 만들어 목에 걸었다. "우히이!"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돌면서 북소리에 맞추어 광기어린 춤을 추는 원시인들처럼 귀기 어린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는 문득 바람 한 오라기, 구름 한 장이 되어 짙푸른 하늘로 둥둥 떠가고 싶었다."
'꽃'이라는 말과 꽃을 여기저기 꽂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묘한 리듬감을 자아낸다. 점점 고조되는 리듬감이 어느 순간 '소리를 질러댐'으로 절정에 이르는 순간, '바람 한 오라기, 구름 한 장으로 여운을 남기면서 마무리 된다. 이렇게 글에 리듬과 여운을 넣는 것은 곱고 이쁜 말만 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또한 아니다.
35년만에 아예 낙향한 한승원은 "어린시절 섬놈이라고 놀림받았던 내 자신도 그 섬에서 나고 자란 것에 대해 늘 부끄럽게 생각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그는 득량만이 내려다 보이는 율산마을 언덕빼기에 자리잡은 작업실 '해산토굴'에서 오늘도 여전히 새로운 삶의 생명력을 잉태하고 있다.
글^이재창 편집부국장
사진^오종찬 기자
한승원은 이제까지 장편과 중․단편 등 모두 1백50여편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또한 그의 이름을 걸고 나온 작품집만도 50여권이 넘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설가라고만 인식하는 독자들에게 또다른 맛을 전해주는 시집이 3권이나 있다.
문학상 수상도 열거하기가 힘들다.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 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상문학상, 전남문화상, 서라벌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많은 작품을 발표했지만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소홀한 작품이 없다. 모두가 그의 혼이 깃든 작품들이다.
그는 1955년 장흥고등학교 재학시 교지 '억불'창간에 참여하면서 문학적인 열병이 도지기 시작했다. 학과공부보다도 문학공부에 열을 올리며 시공부를 시작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며 '우리말 큰사전'과 소설책을 사들고 귀향하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집에서 아버지 대신 농사와 김양식을 하면서 소설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밤이면 창작에 몰두했다. 그때 영산포의 오유권 선생을 만나 소설창작의 기법을 배웠다.
58년 독학으로 중학교 준교사 국어과 시험을 치렀으나 실패하고 당근재배와 닭기르기에도 실패하는 등 바다에서의 절망과 허무를 읽히면서 소설쓰기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61년 22세때 친구의 권유로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 보름만에 한편씩 소설을 들고 김동리 선생을 찾아가 괴롭히며 작품지도를 받았다.
군 복무중에도 꾸준히 시와 소설 창작에 몰두, 신춘문예에 응모 최종심에 낙선하기도 했다. 제대후 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되 2년후인 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목선'이 당선돼 고대하던 등단의 관문을 뚫었다.
그는 1939년 10월 13일 전남 장흥군 회진면 신덕리에서 태어났다. 장흥중, 장흥고를 거쳐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66과 68년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등단했다. 그후 동신중학교 교사로 있다가 79년 전업작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97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장흥 남해바닷가 율산마을에 내려와 작가실을 짓고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글 ; 이재창
https://youtu.be/Bs7d4lBv3o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