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밀도는 하천의 크기와 물 흐름의 속도에 비례한다.
열왕산에서 여리게 시작된 물길이 좁은 실개천으로 흐르다 이제는 제법 모양을 갖춘 하천으로 바뀌었다. 지형도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인구밀도는 하천의 크기와 물 흐름의 속도에 비례한다는 공식이 그것이다. 청간샘의 고지에서 실개천을 따라 바쁘게 내려오던 물길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적으로 속도가 낮아지는 반면 물의 량은 많아진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건을 세 가지로 압축해보자. 첫째가 물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전답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바람을 비롯한 자연재해로부터 자유스런 공간이 되어야 한다. 이곳 물슬천 또한 이런 요건에 예외일수는 없다. 수량이 많아지면서 하천의 모양이 갖춰지는가 할 때쯤에는, 시야가 툭 트이는 넓은 들판이 나타나면서 곳곳에 사람들이 사는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지형도에서 물슬천 유역권의 마루금을 따라 채색을 해보면 사다리꼴 형상이 되는데, 동물에 비유를 해보면 마치 야생의 멧돼지 한 마리가 낙동강으로 힘차게 뛰어드는 모양으로 그려진다. 이에 물슬천의 물길은 한 마리 거대한 멧돼지의 소화기관이며 살아있는 생명의 에너지원인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지면서 물슬천은 내부로부터 속병의 진통을 호소하고 있다. 산업화의 시작과 함께 많이 쓰고 없애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논리가 빚어낸 소비의 미덕이 그것이다. 가정과 공장에서 쏟아내는 각종폐수와 화학비닐류를 비롯한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하여 공기와 토양과 수질의 오염이 그 현주소다. 물슬천 언저리에 촌락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 뒤에는, 하천을 오염시키는 요인이나 잔재가 널브러져 있음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물슬천을 거느리고 펼쳐진 넓은 들녘을 ‘어물리들’이라 부른다. 어물리란? 어머리(魚頭) 즉 ‘물고기의 머리에 있는 들’이라는 뜻으로 ‘어머리들’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머리라는 물고기의 머리가 과연 어디 있는가의 물음에 대한 해답은 대지면 모산에서 찾을 수 있다.
원촌다리 북동쪽 야트막한 산에는 한강 정구(鄭逑)선생이 개설하고 백암 조광계(曺光啓)가 가르쳤던 강학소 백암정(白巖亭)이 살포시 보인다. 안마을 원촌에는 심재 조긍섭(曺兢燮)의 제소 덕암서당(德巖書堂)과 위당 조용섭(曺龍燮)의 제소 원동서당(圓東書堂)이 있고, 경주이씨의 봉선소 덕남재(德南齋)와 창녕조씨의 묘각 이필재(履必齋)가 자리 잡은 곳이기도 하다.
만촌다리를 지나서면 행정구역이 고암면 원촌리에서 대지면 왕산리로 바뀌게 된다. 5번 국도와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사이 대지면 왕산리 368번지에는 ‘원물계서원원정비’가 남아있고, 대지면 모산리 80번지에는 물계서원이 있다.
물계서원은 고려 문하시중 성송국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712년(숙종38) 에 사우를 건립하여 창효사(彰孝祠)라 명명하고, 그 후 1719년(숙종45)에 세덕사(世德詞)라 개칭하면서 서원의 규모로 확장하게 되었다. 고종3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폐하게 되어 물계정으로 개편하였다가, 1995년 복원하여 지금은 1성(창녕성씨) 21위의 사선을 봉향하고 있다.
5번 국도에서 북서쪽 이방면으로 이어지는 1080번 지방도로는 창녕읍에서 목포늪 방면으로 진입하는 주도로가 된다. 1080번 도로가 물슬천을 건너게 되면 큰 촌락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대지면 소재지 모산마을이다. 창녕성씨의 집성촌으로 마을의 뒷산을 부리산(浮鯉山)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산의 형상이 마치 잉어의 형국 같아서 나온 말이다.
창녕성씨의 시조 성인보의 묘소가 있는 부리산의 동쪽 산머리를 어두산(魚頭山)이라 명명하는 데서, ‘어물리들’의 어원인 ‘어머리들’의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