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_민중 사건으로서의 세월호와 부활/ 2019. 4. 17

[한심당]

부활절_민중 사건으로서의 세월호와 부활

누가복음 4:14-21

14.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셨다. 예수의 소문은 그 곳 모든 지방에 두루 퍼졌다.

15. 예수께서는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셨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17.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21.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지난 화요일,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 5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구조 가능했던 1시간 40분 동안 탑승자들의 퇴선을 막아 304명을 수장시킨 범죄가 저질러진 지 5년이 흘렀습니다. 그 5년 동안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은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피눈물을 삼켰습니다. 이 엄청난 범죄에 관해 지난 5년간 참사의 진실은 규명되지 못했고 범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세월호 참사 5주기, 이제는 진실을 밝혀야 할 때>라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성명에서 이홍정 총무는 “먼저, 일부 신앙인들이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낸 것에 대해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합니다. 치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과 함께 울며 사랑으로 품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손가락질하며 다 잊고 조용히 살아가라고 강요했던 무지와 폭력을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교계를 대표해서 세월호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또 “진실을 밝히는 일, 이것이 바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304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제대로 된 추모의 시작”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게는 “강제수사 권한을 지닌 세월호참사특별수사단을 설치하여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면 재수사를 실시하십시오. 조사와 고발만 가능한 특조위로는 한계가 있음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이제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가리고 있는 어둠을 보다 적극적으로 걷어내야 합니다. 안전하고 믿음직스러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명백히 밝히고 온 국민의 힘을 모아 제거해야 한다”고 요구하였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와 선체조사위원회에 이어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우리는 참사의 진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커다란 배가 순식간에 침몰한 이유가 무엇인지, 왜 해경은 승객들은 내버려둔 채 선원들만을 표적 구조했는지, 그리고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해야 할 박근혜 정부가 구조가 아닌 은폐와 조작에만 몰두한 이유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또 진실을 은폐하고 증거를 인멸하거나 조작하도록 지시하거나 공모한 자들이 누구인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처벌받은 이는 김경일 해경 123정장 단 한 사람뿐입니다. 현행법상 직무유기죄 공소시효가 5년, 직권남용죄는 7년이기 때문에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려면 수사가 서둘러 진행되어야 합니다.

지난 15일,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4.16연대는 참사 5주기를 앞두고, 당시 정부 관계자 17명의 실명이 담긴 ‘1차 세월호참사 책임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습니다.

명단에 오른 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청와대 관계자 5명,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 3명, 김병철 기무사령부 준장 등 기무사 관계자 2명,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등 해경 관계자 5명 등입니다. 또한 당시 법무부장관으로서 세월호 사건을 맡았던 광주지검 수사 담당자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이름도 있습니다.

이들은 명단을 발표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구조 가능했던 1시간40분 동안 대기 지시로 퇴선을 막아 탈출하지 못하게하여 무고한 국민들에게 벌어진 사고를 참사로 만든 국가 범죄사실에 대한 왜곡과 은폐는 더이상 허용할 수 없다. ▲세월호 이전으로 갈 수 없고, 이후는 달라지게 할 것이라는 국민생명안전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선행 조치는 책임자 처벌과 엄단에서 비롯된다 ▲박근혜 정부 당시의 수사 방해와 진상규명 은폐 때문에 수백 명에 달하는 책임자들을 수사할 수 없었다 ▲범죄사실에 대한 책임자 처벌 수사와 참사의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진시킬 것 등 입니다.

4·16연대는 수사 의뢰가 필요한 사람은 300명이 넘는다며, 참사 책임자 명단을 몇 차례 더 공개할 계획임을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페이스북을 통해 "세월호를 가슴에 간직한 평범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며 "5년 동안 변화도 많았다. 안전에 대한 자세가, 이웃을 걱정하고 함께 공감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고 전했습니다. 또 "얼마 전 강원도 지역 산불 때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동이 불편한 이웃들을 챙겼다. 나만이 아닌 우리를 위한 행동이 모두를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며 "세월호 아이들을 기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이 나라를 바꾸고 있다고 믿는다"라고 썼습니다.

또한 "세월호의 아픔을 추모하는 것을 넘어, 생명과 안전을 최고의 가치로 선언하는 공간인 ‘4·16 생명안전공원’도 빠르게 조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아이들이 머물렀던 자리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안전사고를 대비하는 공간이 됐다는 것이 유가족께 작은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자 국민들은 새 정부에서 5·18 진상규명을 해주길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1993년 5월 13일 김 전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5·18을 역사에 맡기자’고 주장합니다. 이에 5월 운동단체들은 ‘광주 문제 해결을 위한 5원칙’을 제시하고 항의합니다. 광주 5원칙은 첫째 진상규명, 둘째 책임자 처벌, 셋째 명예회복, 넷째 배상, 다섯째 기념사업입니다.

이 광주 5원칙은 세월호 참사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입니다. 진실이 명백히 밝혀져야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고, 피해자들의 명예도 회복되고, 보상을 할지 배상을 할지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해질 수 있습니다.

세월호는 단순한 재난과 참사가 아닌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사건입니다.

"국민을 구하고 보호해야 할 국가가, 권력을 움켜쥔 자들이 죽였다. 해경 지휘부가 죽였다. 박근혜 청와대와 국가 안보실이 죽였다",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우리 아이들을, 304명의 국민을 죽인 그 자들을 모두 잡아서 처벌하라는 국민의 요구이자 명령이다".

안산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5주기 기억식 행사에서 추도사를 낭독한 가족협의회 장훈 운영위원장의 절규입니다. 이 절규는 촛불혁명으로 만들어진 나라라면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입니다.

부활절이 있는 4월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많이 있는 달입니다. 4.3제주항쟁과 4.19혁명,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비극이 얽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그냥 비극으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비극을 넘어 세상을 구원하고 해방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십자가의 고난이 부활로 바뀐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2천년 동안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진실은 매우 왜곡되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고 활동하신 이유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기복음 4장 18-19절 말씀입니다. 이사야서의 두루마리를 읽은 것인데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회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사탄의 시험을 이긴 예수님은 성령에 가득 차서 이사야서가 전하는 복음을 실천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필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돈이나 명예, 권력을 얻으려고 하지 않으셨고 ‘오클로스(Ocholos)’ 혹은 ‘암하 아레츠(Am-ha-aretz)’라 불리우던 ‘가난하고 힘없는 계층’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싸우셨습니다.

'오클로스'란 마가가 처음 사용한 단어인데 유대사회에서 정죄 받은 이른바 '죄인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유대 민족의 일원'으로 '하느님의 백성'이란 뜻을 가진 라오스(laos)란 단어와 대척점에 서 있는 단어라 할 수 있습니다. 라오스는 집단권 내에서 법의 보호를 받는 자들인데 반해 오클로스는 당시의 체제에서 정죄 받고 소외당한 계층입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죄인으로 분류된 가난한 자들이나 나병환자 같은 이들도 이 부류에 포함되죠.

마가는 예수와 만나는 군중이나 무리들을 가리킬 때 라오스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오클로스만을 고집합니다. 그리고 이 오클로스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도취되어 언제나 예수에게 다가서고 그를 따릅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고 옹호합니다. 그들에게 동터오는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통치를 약속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말한 죄인이란 가난해서 안식일 법이나 정결법의 규정대로 살 수 없어서 죄인으로 취급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참 형제요 그의 어머니들 이었습니다.(막 3:34)

저는 신학교 시절 안병무 선생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암하 아레츠(Am-ha-aretz)’라는 단어입니다. ‘암하아레츠’는 예수 시대에 '배우지 못하고 경건하지 못한 반율법적 계층으로 체제에서 멸시받고 밀려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암하아레츠’를 안병무 선생은 민중으로 번역하고 이해합니다.

안병무 선생은 1970년 11월 13일에 일어났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보면서 큰 충격을 받습니다. 선생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절규하며 분신한 젊은 노동자의 삶’을 바울의 말을 빌려 하나님께 드린 '산제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전태일을 통해 민중을 발견했고 동시에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입니다. 전태일 열사의 사건은 예수를 인격(persona)으로 보아왔던 그의 신학을 예수를 사건으로 보게 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선생에게는 민중이 예수고 예수가 민중이었습니다. 예수를 인격으로만 보면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지만 예수를 사건으로 보면, 민중사건과 예수사건은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사건은 2천년 전 팔레스틴에서 단 한 번 일어났던 유일회적(唯一回的) 사건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계속 일어나는 민중사건인 것입니다.

안병무 선생은 민중사건을 거대한 화산맥(火山脈)으로 비유합니다. 각각의 역사적 상황에서 화산맥이 분출한다는 것인데, 그 결정적 사건이 예수 사건이며 이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중요한 민중의 집단적 사건으로 분출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일어난 민중사건 역시 예수사건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는 것이죠.

그러므로 선생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예수가 아니라 현존하는 그리스도입니다. 선생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의 예수, 교리상의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그리스도요 오늘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의 현존이 일어나는 곳은 '성문 밖'입니다. 히브리서는 “주님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도 성문 밖에 서 계신 그분에게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자(히 13:12-13)”고 외칩니다. 여기서 성문 밖은 소외당한 지역이요 역사 현장인데 거기가 그리스도의 현존장소라는 것입니다.

선생이 민중사건에서 주목하는 것은 '민중의 자기 초월'입니다. '민중의 자기 초월'은 자기가 당할 필요가 없는데 고통으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생은 이 '자기 초월'이야말로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 오로지 민중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처절하게 죽은 것과의 연결고리라는 것입니다. 추하고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민중 안에 자기 초월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기 전 민중을 즉자적 민중으로, 자기 초월의 헌신성을 획득한 깨달은 민중을 대자적 민중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십자가 사건이 자기 초월의 사건이라면, 역사적으로 일어난 한국에서의 민중의 자기 초월사건 역시 화산맥의 연쇄폭발로 볼 수 있습니다. 4.3사건, 4,19혁명, 5.18민중항쟁, 6.10민주항쟁, 촛불혁명뿐 아니라 전태일 열사 분신, 4.27남북정상회담 등도 예수사건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을 걷는 예수를 보고 세례요한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요 1: 29)"고 했습니다. 안병무 선생에게는 민중이 오늘의 세상 죄를 지는 자로서 보였습니다. 세상 죄란 국가와 자본이 일으킨 온갖 폭력과 부정 비리뿐 아니라 그것들을 용인하는 자들이 저지른 죄인데, 바로 그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이들이 이 땅의 민중이라는 것입니다.

그 민중들의 자기 초월 사건이 오늘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왔습니다. 독재를 무너뜨리고 친일 잔재를 청소하고, 국가와 자본이 저지르는 온갖 적폐를 청산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 사건을 통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다시 부활하고 계십니다.

촛불 혁명을 통해 부활 하신 예수님은 이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과정으로 다시 부활하실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민중 사건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확장되고 예수 부활의 은총이 널리 퍼지기를 생명과 평화로 다시 사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9. 4.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