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양 이야기(4) - 왜 교회 나오세요?
어려운 질문
이 영화의 주인공인 신애와 종찬이는 우여곡절 끝에 교회생활을 시작한다. 오늘은 두 사람의 교회생활을 쫒아가보자.
종찬이는 교회에서 주차안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영화 전편에 나타난 그의 본래 성품이 말해주듯이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에서도 사람들을 섬긴다. 신애는 어떠한가? 신애는 신데렐라가 되었다 아름답고 극적인 신앙고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많은 사람들이 놀랍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점에서 두 사람의 신앙은 매우 대조적이다.
어느 날 교회 앞에서 주차안내를 하는 종찬이에게 동네 선배가 나타나 “니 교회 다니나?” 하고 묻는다. 그러자 종찬이는“착하게 한번 살아볼려고요” 하고 대답한다. 아주 평범하게 주저없이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이 말이 교회에 나오는 종찬이의 목적인 셈이다. 이리하여 이 영화는 기독교 신앙을 갖고 교회 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도전을 시작하고 있다. 이 영화는 작심을 하고 직설적인 질문을 던진다. 종찬이가 교회나오는목적을 선배에게 말하던 그 시점, 교회 예배당에서 나오던 신애가 종찬이에게 나타난다. 신애는 거두절미하고 질문을 한다.“왜 교회 나오세요? 종찬은 신애의 느닷없는 질문에 “참 어려운 질문 하네요”라고 대답한다. 앞서 선배에게 무의식적으로 쉽게 대답했었지만 신애가 따지듯이 정색하고 질문하자 종찬이는 어려운 질문이라고 대답한다
영화는 종찬이의 입을 통해 “왜 교회 나오세요?” 하는 이 질문이 쉽지 않은 물음이라고 말하려고 한다. 과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이 질문에 시원하게 대답을 하고 있을까? 하는 의심을 해 보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어려운 대답
'어려운 질문’이라는 말은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대답이 쉽지 않다는 뜻은 한 마디로 딱 뭐라 할 수 없는 복잡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답이 여럿일 때도 말하기가 어렵고 알고는 있어도 딱히 설명할 수 없을 때도 어렵다고 느낀다. 전혀 모른다면 어렵다고 말하기 보다는 모른다고 하면 될 일이다. 어려울 필요가 없다. 그러니 종찬이가 한 말 ‘어렵다’는 말은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딱 이렇다 하고 말할수 있는 쉬운 질문인가? 자 이정도 정리하고 두 사람의 대화로 다시 돌아가보자.
앞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종찬이는 역시 신애의 질문에 ‘모른다’가 아니라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종찬이는 쉽지 않은 질문에 쉽지 않은 대답을 시도한다. “하나님 믿으려고 나오지예” 하고 마치 선생님 앞에 어린 학생이 대답하듯 모범답안을 내 놓는다. 그러나 그 답안이 신애 선생님(?)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신애는 피아노학원 학생을 다그치는 것처럼 종찬이를 몰아세운다.“정말요?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에요? ” 그러자 종찬이는“나에게도 믿음이 있습니다” 하고 반격을 한다. 그러나 신애는 물러서지 않고 더욱 세차게 종찬이를 몰아세운다. “하나님이 지금 보고 계시는 데 정말 맹세할 수 있어요?” 그러자 종찬이는 더 이상 할 말을 못하고 하늘을 물끄러미 처다본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교회에 나가는 목적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 외에 다른 목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교회에 나오는 이들이 하나님을 목적하지 않고 다른 목적이 있다면 무엇일까? 나는 이 대목에서 두 가지 주제를 생각한다. 하나는 교회에 나오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고 다른 하나는 종찬이 신앙과 신애의 신앙을 비교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과연 신애의 신앙이 종찬이 신앙을 마구 닦아세워도 될만한 신앙의 자리에 있는지, 그리고 종찬이 신앙이 그렇게 신애에게 무시당해도 되는 지이다. 이번 글에서는 교회 나오는 목적에 대한 물음, 쉽지 않은 질문에 답을 찾아보도록 하려 한다. 다음에 종찬이와 신애의 신앙을 비교해보도록 하겠다.
교회에 나오는 목적?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종찬이와 신애의 대화는 교회에 멤버십을 갖고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교회공동체에 나오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이른다. 그러나 종찬이가 말한 바 처럼는 이 질문에 대답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교회 나오는 이들마다 자신의 목적을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한다고 하여 그 목적이 다 옳은 것은 아니다. 신애가 종찬이를 의심한 것처럼 ‘다른 목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을 의심한다면 적어도 참된 목적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 된다. 그것은 교회에 나오는 개인들의 목적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의 목적보다 우선 하여 교회가 세워진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목적과 교회에 나오는 이들의 목적이 일치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 있게 교회 나오는 목적을 말할 수 있겠다. 이 것은 신학적으로 말하면 교회론과 관련이 있다. 그러니 점점 어려워지는 물음이 되는 것이다. 교회에 왜 가는가? 하는 물음은 교회가 왜 세워졌는가? 하는 물음과 닿아있는 것이다. 어휴 점점 더 어려워지네...? 그래서 이 영화는 종찬이의 입을 통해 “어려운 질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애는 아주 쉽게 생각하는 것 같고... 이 것이 영화가 말하려는 속내 같아 보인다. 어떤 사람은 교회 다니는 일과 신앙에 대하여 진지하고 쉽지 않게 생각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아주 단순하고 쉽게 생각하기도 한다.
내 소원대로?
영화는 신애가 동네 아줌마들과 대화를 하는 장면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좀더 교회 나오는 다양한 이유를 엿보게 한다. 그들은 대화 속에서 교회 나오는 이유들을 말한다. 신애는 연애감정을 말한다. 다른 아줌마는 제사를 안 지내려고, 그리고 아이들 장래가 잘 되게 하려고 교회를 나갈 거라 말한다. 각 자가 자기 소원을 말하고 있다. 신애는 남편을 잃었고 아들을 잃었다. 그에게는 연애감정을 가장 큰 위안이 되기 때문에 연애감정을 강조한다. 제사를 안 지내고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소원들도 모두 주관적이다. 과연 그들의 소원이 교회에 나가는 목적이 될 수 있을까? 영화는 그 점을 의심해 보는 것 같다.
교회 처음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나름대로 많은 이유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신애처럼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의지할 곳을 찾아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다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찾으러 철학적 질문을 갖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누구를 만나러 오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사회적 관계와 지위를 얻는 방편으로 오기도 할 것이다(유명한 교회). 저마다 자신의 문제를 들고 해결하려는 소원 혹은 목적으로 오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각기 바라는 소원이 다 다르다. 인간의 문제로 출발하는 신앙은 옳은 이야기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움직일 수 없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쯤 해서 결론을 내려보자 “왜 교회에 나오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성서 안에서 예수님의 육성을 들어보자.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 11:28-30/표준새번역)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 28:19-20/표준새번역)
교회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말씀이다. 우리가 인생의 문제로부터 구원을 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그의 가르침을 배워 지켜 살도록 하려는 목적으로 교회를 통해 우리를 초대하시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나름대로 소원을 갖고 왔다 해도 초대자의 초대 목적에 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다.
(심용섭/엘파소한인신문 2008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