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8일 오후 모처럼 아내와 함께 경복궁 경내를 거닐었습니다. 몇 년 전 부근의 회사를 다니던 시절엔 무료 개방하는 점심시간에 직장 동료나 부하 직원들과 거닐면서 일을 비롯하여 이런 저런 명상에 잠겼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그러나 경복궁의 즐비한 새 전각과 새로운 한자 현판을 단 광화문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으로는 연륜의 무게를 느끼기 어려운 신축 한옥 마을처럼 뭔가 낮선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잊고 있었던 경복궁은 광화문의 소나무 현판에 금이 갔다는 뉴스로 다시 생각났습니다. 광화문은 1395년 태조가 축조한 경복궁의 정문이죠. 광화문 현판은 광복절 65주년에 맞추려는 무리한 졸속 복원으로 소나무 함수율이 높았다는 공격에 대해 한 쪽은 원래 소나무 현판이란 그런 것이라고 대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톱밥에 송진을 섞어 틈새를 메우는 것을 대안으로 찾는가본데 어떻게 결론이 날지 주목됩니다.
광화문에 현판의 한자 글씨가 남은 것도 아닌데 역사적 인물인 박정희의 한글 친필을 지우고 고종 때 경복궁 중창공사를 지휘한 훈련대장 임태영이라는 낯선 인물의 글씨체를 디지털 기슬로 복제하여 ‘사이버’ 현판을 다는 것이 민족 주체성과 역사의 정통성 복원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입니다. 한마디로 입에 게거품을 물고 한글의 세계화를 떠벌이면서 파렴치하게 그 앞에 앉아 계시는 세종대왕님의 뒤통수를 때리는 꼴이지요.
공교롭게 새로 만든 것이 석 달도 안 돼서 금이 갔으니 말이지만 과거의 것이 모두 역사라면 한글 현판도 역사의 소산으로 소중히 해야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 한자로 된 광화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중국 서경의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집자한 것으로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의미랍니다.
광화문에 40년 가까이 달려 있던 한글 현판을 기어코 내리고 싶었던 ‘안티 박정희’ 세력들은 그가 일본 육사를 나왔으니 친일했고 독재자였다고 주장하면서 광화문 현판 글씨를 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 국제화 시대의 대한민국 심장부에 왕정복고식의 한자 현판을 달면 조선시대의 왕정은 민주적이었다고 주장하자는 것인지요? 1592년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은 멀리 북쪽으로 도망갔고 광화문을 비롯한 경복궁 전역은 분노한 백성들이 불을 놓아 전소했다는 뼈아픈 기록이 있습니다.
논리적인 타당성 없이, 깊은 생각 없이, 끼리끼리 모여 옛 것을 물리적으로 복원하자는 결정만으로는 문화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문화라기보다 차라리 21세기 재건축 사업이죠. 이를 뛰어넘어 시대에 맞는 정신까지 담는 것이 나는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비판은 있지만 ‘조국 근대화의 기수’였다고 칭송받는 박정희의 한글 친필을 광화문에 단다고 해서 우리의 먼 후손들이 이를 비판할 이유는 별로 없을 것입니다. 나는 요즘 개발 연대 최고위 공직자들의 저술을 읽으면서 그만큼 조국을 사랑한 지도자는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사실 경복궁 중창의 대역사도 1865년(고종2년)부터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사람들이 원치 않는 원납전을 강요해 일반인 727만 냥, 왕족들이 34만 냥을 바치게 해서 만든 것이죠. 불과 14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건설비 조달로 국세는 기울고 결국에는 일제의 침략에 노출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은 호화찬란한 베르사이유 궁전을 축조한 루이14세의 2대 뒤인 루이16세가 재정의 궁핍 등으로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원인(遠因)의 하나가 된 것과 방불하다고 나는 봅니다.
하기야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습니까? 기껏해야 복원에 그치거나 전염병처럼 퍼지는 고층아파트나 주상복합이죠. 뭐하는지 모르게 뒤죽박죽된 경복궁 앞은 길에도 발라놓은 돌로 포위되어 역사를 죽이는 느낌이죠. 석조는 우리 건축에 이질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래 전에 어느 분은 경복궁 담을 없애고 속이 보이는 담장을 둘러 시민에게 다가서는 고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어느 분은 경복궁 담이 일본과 중국에 비해 너무 낮다고 합니다. 종로구청의 경복궁 소개 글을 보니 담 높이가 20자 한 치라고 합니다. 한 6미터를 넘는 것이죠. 옛날에 낮았던 담을 지금 높인다고 무슨 의미가 있나요? 지금 담을 높이면 국격(國格)이 솟아오른답디까? 어차피 흉내입니다.
광화문 앞 세종로의 잘 자란 가로수들을 베어내고 돌투성이로 만든 황량함은 경복궁의 높은 돌담으로 중압감이 배가(倍加) 됩니다. 지금은 무슨 폭탄 차량이 광화문으로 돌진할 시대도 아닌데 고속화도로의 방음벽처럼 중간 중간 투명창이라도 만들어 경복궁 안이 보이게 하면 대중에게 보다 다가서는 우리들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요?
경복궁은 건물을 열심히 복원한 흔적은 보였지만 광화문 현판 논란이 상징하듯 시대정신까지 복원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껍데기만 복원한 느낌이죠. 그날 수학여행 학생들의 왁자지껄한 소음과 뛰는 발걸음, 일본 관광객과 중국 관광객, 영어권 관광객 가이드들의 각종 언어가 뒤섞인 소란한 설명도 도떼기시장처럼 귀에 거슬렸습니다. 경건하고 장중하면서도 부드럽게 우리 역사의 향기를 느낄 고궁 분위기가 절실하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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