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사건:
정부에서는 흑자를 달성했다고 선전했지만 사실상 가계부채는 늘어나고 사는게 팍팍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럴 때 사주팔자나 타로 같은 미신이 퍼지는 것입니다. 당시 전국에서 이름난 역술인 운산선생을 만났는데 그냥 사기꾼이었습니다. 운산선생은 내 사주에 돈이 많다며 하던 맛사지를 때려치우고 사주를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꼬박 3년을 공부한 끝에 대명동 계대에 사무실을 오픈했습니다.그리고 처음 한 2년간은 손님도 많고 생활에 지장이 없었습니다.
오픈발이 떨어지자 수입은 없고 쓰는 건 그대로다 보니 점점 빚만 지게 되었습니다.’귀신은 한가지 재주는 주고 나중에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집사람이 임신을 하였는데 지금도 수성구에 있는 큰 여성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태아가 크긴 한데 쌍둥이가 아니라고 원장이 큰소리 쳤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의 사주팔자 개인지도 선생님은 ‘쌍둥이’ 라고 자신 있게 말씀 하셨습니다.
제게는 막내 숙부가 계시는데 약간 ‘활량’ 기질이 있으십니다. 실제로 국궁을 하시기도 하십니다. 내가 사주를 배웠다고 하니 저에게 사주를 물으셨는데,거지 팔자였습니다.그 때는 신참이라 곧이 곧대로 말씀드려서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그런데 놀라운 건 맞았다는 것입니다. 주식 투자에 미쳐 선물거래를 하다가 서울 강남에 있는 아파트도 날리고 숙모님과 별거 중 이셨습니다. 그러나 신참 무당보다 나이 많은 신도가 더 약은 법입니다.저는 순진하게 숙부가 주식 투자하기 좋은 날을 잡아달라고 하는 말에 휘둘려 실제로 몇 달간 좋은 날짜를 잡느라 골치가 아팠습니다.
게다가 촌에 증조할아버지의 산이 있다면 가보자고 해서 집사람과 따라 나섰는데, 임신한 상태에서 집에 있기를 바랬건만 돈이라면 사 죽을 못 쓰는지라 기어이 따라 나서고 말았습니다. 가는 길은 험했습니다.비포장에 자갈길이었습니다.물론 산은 장관이었습니다.7만평 규모의 증조할아버지의 산은 넓고 울창한 산림에 공기 좋고 물도 좋은 청도에 있었습니다.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집사람과 정기 검진을 받았는데 태아가 쌍둥이가 맞고 한 명이 숨을 안 쉰다는 것이었습니다. 산모가 자갈길을 달리는 바람에 한명이 자궁에 착상하지 않고 자궁외벽에 착상하여 죽어버린 것입니다.놀란 가슴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미 틀렸고 수술로 긁어내야 한다고 했습니다.여기서 사기꾼 점쟁이가 등장합니다.운산 선생에게 사주를 보니 ‘한명은 물 되고 한명은 살린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머지 태아도 죽고 맙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산부인과 원장은 8개월가량 아기를 키우다가 제왕절개로 끄집어내고 인큐베이터로 키우자고 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집 기둥 뿌리가 뽑혀 나갔을 것입니다.결국 나머지 아이도 유산되고 말았습니다.지금 생각해보면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현명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역술 같은 것에 의지하여 인생을 망친다는 것을 아직도 저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 후에 다시 사건이 터집니다.
27. "세상으로부터 금식하지 않으면 천국을 발견하지 못 하리라.
금식을 우리는 밥을 굶거나, 세속적인 것을 안하고 기도나 명상, 경전공부나 봉사 같은 이타적인 행위를 하하는 것 말합니다. 사실 전통적으로 주로 밥을 굶거나 생식이나 절식으로 몸을 정화하고 기도 나 108배 같은 수행으로 삶을 돌아보는 걸 ‘금식’의 의의로 봅니다. 그러나 앞의 모든 행위가 개인의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한다면 그것은 ‘금식’이라는 형식을 빌린 ‘욕망’입니다. 사주팔자가 망한 이유는 바로 사주 감정의 목표가 개인의 영달이었기 때문입니다.
‘추흉피길’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화는 피하고 복은 받는다는 뜻입니다.이런 개념이 가짜 진리입니다.인생에 있어서 화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그리고 복만 손으로 잡는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인생은 마무리 피해도 화를 당하게 되고,복은 누구나 바라기에 피가 터지는 투쟁으로 가져야하는것입니다.요즘은 tv 에서 공개적으로 연애를 하고 선택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참가자들은 웃으면서 왔다가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으며 결과가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특히 적나라한 구애의 여정을 여과없이 방송합니다. 갈등과 시기 질투 오해 등 마치 우리는 안방에 앉아서 간접적인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입원했던 여자 환자는 다니는 학교도 휴학하고 환청과 환시로 시달려 다중인격적 사고마저 생겨 입원했습니다. 처음 증상이 발현 되었을 때 병원에 오지 않고 사주나, 타로,무당을 찾아 다니다 보니 그들과 어울리고 마치 컴퓨터에 문제가 생겼는데 고친다고 이리저리 만지다가 오히려 바이러스만 간염 된 상태였습니다.’아티반’을 맞추고 수액을 공급하면서 관찰하는데 다른 환자들 손금을 봐주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나 심리상담사나 ‘윤리’가 있듯이 사주팔자나 타로도 윤리를 강조합니다. 이것이 오히려 환자들을 헷갈리게 합니다. 완전히 사기이면 안 속습니다. 그러나 반은 사기고 반은 진짜면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도마복음서를 강의하면서 계속 사주팔자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하지만 저는 지금 ‘금식’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습니다.’금식’을 하는 이유가 개인의 이익이나 집단의 이익이 목표라면 그것은 ‘욕망’입니다. 탐욕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시험에 합격하거나 가족의 병이 빨리 낫기를 바라는것은 정상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부실경영으로 망하기 일보직전인 기업이 3천배를 한다고 매출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물론 하는 건 자유입니다.그것은 ‘회사 극기훈련주’인 것입니다. 기도를 하건 명상을 하건 부적을 쓰건 그것이 사회나 자연의 환원이 아니라 ‘영원불멸’ 를 원한다면 그것은 ‘탐욕’입니다. 사실 저의 아기가 하늘나라로 가서 우리 부부도 저의 본가도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결혼식을 올리느라 속칭 ‘영끌’ 했는데 막대한 ‘인큐베이터’ 비용은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때의 어머니의 난감한 표정을 아직 잊지 못합니다. 저는 금식을 ‘분리’의 개념으로 봅니다.아침에 출근할 때 저는 병동보호사이지만 퇴근하고 나면 저는 ‘신앙인’으로 돌아옵니다.세속적인 일이나 이기적인 일들은 안 할 수 가 없습니다.생존을 위해서 우리는 남을 누르고 올라서야 하고 끊임없이 먹어야 합니다.모든 사회는 경쟁입니다.저마다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을 위해 경쟁합니다.개인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과 상충하며 서로 조정하고 균형을 맞출 수 밖에 없습니다.
가족이 남의 돈을 무서워하지 않고 빚을 내다가 돌려 막기를 한다면 그것은 알코올중독에 못지않은 정신적 고통을 가족이 감당하게 됩니다. 집사람은 금융 브로커를 통해 이종사촌과 또 다른 언니와 8000천만원의 빚을 낸 것입니다. 게다가 계속 빚을 내다보니 스스로 감당을 못하는 상태에서 저랑 만나 결혼한 것입니다. 돈이 없었던 집사람은 다른 사람의 카드를 빌려서 결혼 대금을 치렀고 결혼한지 6개월만에 카드가 터진 것입니다.
당시 저는 순진했기 때문에 우리집이 잘 사니까 이야기하면 돈을 해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건 착각이었습니다. 한평생 알코올중독자와 살아오신 어머니는 처음부터 결혼도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의 고집에 허락했지만 신혼 때 벌써 돈 달라는 며느리의 요구를 아들에게 듣고는 펄쩍 뛰셨습니다. 그것이 지금도 어머니과 안만나는 이유입니다. 결국 저의 성화에 못 이겨 자형이 돈을 해주었고 우리 부부와 어머니 누나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입니다.
27. "세상으로부터 금식하지 않으면 천국을 발견하지 못 하리라.
도박중독자가 도박자금을 바라거나 알코올중독자가 술을, 경제관념이 없는 이가 돈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면 이건 탐욕입니다. 도박과 술은 끊어야 하고, 돈은 규모 있게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과거 사주철학관이 성행하던 시절 아무런 능력도 없는 역술가나 무당에 매달려 우리가 금전융통이나 암 치료 같은 대통령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물어볼 때 해결 해주는 철학관이나 무당은 없습니다.소정의 심리상담 효과는 있을 수 있습니다.
조현병이나 알코올중독 도박중독 같은 문제도 무당이나 철학관을 찾아가서 부적을 쓰고 굿을 할 게 아니라 정신의학과을 내원하여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기야 저도 이제야 깨달었으니 여러분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가족이 경제 관념이 없어 여기저기 돈을 빌려 투자도 하고 빚을 져서 곤란하다면 신용회복위원회나 변호사를 찾아서 상담 받고 ‘개인워크아웃’ , ‘회생’ , ‘파산’ 를 신청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 이 아니라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오랜 기간 기독교에서는 ‘사랑’을 강조했습니다.단순한 사회에서는 ‘용서’만으로 충분합니다.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복잡해서 ‘지혜’ 로운 분리가 필요합니다.마치 조현병 환자가 조기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약물치료를 통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게 사주팔자나 타로나 손금 같은 바이러스에 간염되지 않게 현명한 처신이 중요합니다.
실제 사례를 든다면, 도박 중독자는 보통 경제적 인간적 대인관계가 다 무너진 상태로 입원합니다.현제 27세 남자 환자는 결혼했고 증권회사 모의 투자 대회로 그의 도박경력을 시작했습니다.한때 상당한 수익률을 올린 개미 투자가였습니다.하지만 투자 실패가 빚으로 이어지면서 본인의 대출한도 뿐만 아니라 부모의 대출한도까지 다 소진해버리고, 지인들의 돈까지 빌리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파탄이 난 상태입니다.그리고 자신도 그런 위기를 탈출하고자 '논어'를 읽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논어는 정치나 공무원에 임용되어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덕과 윤리학을 다루고 있어서 도박중독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성경과 기독교의 가르침은 바로 이런 중독자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고 시험을 통해 보다 큰 그림의 일원으로써, 인간회복 프로젝트가 훌륭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젊고 사회 경험이 부족하기에 특히 그의 아내가 독실한 크리스천이기에 더욱 교회 커뮤니티에 지원을 받기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신앙의 3단계에 맞는 지원 계획은 점진적으로 그를 변화시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사주팔자나 타로 神점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사심리학 쪽으로 가면 그것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아는데 시간과 돈이 엄청나게 든다는 것입니다. 과거 인생 실패한 사람들이 사주팔자를 배워서 창업한 사례가 많습니다. 하지만 태반이 문을 닫고 폐업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 당시 제가 철학관을 오픈할 때 6개우러 배워가지고 창업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보통 주변 사람들과 오픈발이 끝나면 하루 종일 앉아서 시간 때우는 게 일이 됩니다. 무엇보다 정신의학의 도움을 받아 항 갈망제를 복용하면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여기에서 신앙은 그의 정서적인 지원을 담당합니다.예비단계에서는 중독의 원인제공이나 치료에 방해되는 요인을 차단합니다.
당연히 인터넷이나 휴대폰, 전화는 사용금지입니다. 사주팔자나 타로 손금도 금지입니다. 재미로 보는 것은 좋지만 치료에 전념하는 데는 방해가 됩니다.
페쇄병동에 입원하면 제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약 먹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카페인도 제한합니다. 카페인을 과량으로 섭취하면서 불면이 오고 그 시간을 도박에 전념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턴 시간이 약입니다. 도파민에 중독된 뇌가 자극물질이 차단되면 수용체는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금단현상이 오면 약물이나 주사 처치를 통해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 분비 기관의 흥분을 가라 앉힙니다.정서지원은 먼저 생활 치료가 병행되고 나서 안정이 되었을 때 비로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의 오해는 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고통과 질병 학살이나 전쟁이 있나? 라는 의문입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탓부터 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외인’이라고 합니다.반대로 자신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내인’이라고 합니다.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첫 단계에서 분명히 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것입니다.
논어에는 인간의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 애 대한 논의나 관점에 따라 국가 통치 유형의 방법이 달라지지만 그렇다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진 않습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점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선택 속에서 우리의 사회를 만든다는 개념입니다. 얼마전에 끝난 ‘나의 데몬’이라는 드라마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데몬’ 이 되었고, 데몬과 계약 하는 건 인간입니다.아이가 아프거나,생명의 위기에 몰리거나 여하튼 하나님에게 기도해도 안되면 인간은 데몬에게 다가가고 소원을 이뤄주는 대신에 자신의 영혼을 팔게 됩니다.
혹자는 ‘하나님이 다 통제하시면 되지 않나? ‘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다 통제하시는 사회는 그냥 ‘군부독재’ 라고 보면 됩니다.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규칙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보다 나은 사회와 인간으로의 성장 드라마는 펼쳐지는 것입니다.이 단계에서 중독자는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자각함을 목표로 합니다.중독자가 자신의 선택에 이러한 결과가 나타났으며 본인이 책임을 지고 치료를 받으면서 비로서 하나님이 계시며,사주팔자나 타로 풍수 같은 유사과학이 아닌 정신의학과 약물치료를 받기 시작하면서 나자신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을 통한 구원만이 진실함을 깨닫게 됩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본인은 괜찮지만 자신의 가족이나 환자가 중독의 구렁텅이에서 못 빠져 나오는 모습을 보고 절망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같은 환자나 보호자의 감정에 이입하여 절망한적도 많습니다.그러나 구르다 보면 길이 열리듯 이제 영적인 변화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약과 상담도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인간은 결국 영적인 변화만이 비로서 자유롭게 합니다.자칫 잘못하면 조상을 모신다 거나 부적을 쓰고 굿을 해야 낫는다는 꼬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오로지 예수만을 통하여 구원된다는 말은, 불교나 유교의 가르침이 아닌 오로지 기독교의 가르침이 옳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기독교 신앙이 약할 때 보호 차원에서 오로지 하나님만을 강조하는 신하기 유행했습니다만,이제 시대가 변하여 종교간의 대화로 신학이 확대되고 있습니다.그러나 첫 단계는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중독자의 강력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두번째 단계는 중독자가 부모나 배우자나 자식의 그늘에 숨어 자신의 잘못을 투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부모의 무관심이나 학대,배우자와의 갈등이 자신을 중독의 길로 이끌었다는 방어기제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그러나 모든 잘못은 한 사람 자기 자신입니다.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중독이 병의 증상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사이트"는 영어로 "insight"로 표기되며, 깊이 있는 이해나 특별한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인사이트는 특정한 상황, 문제, 개념, 사람 등에 대해 깊이 있고 본질적인 이해를 얻는 것을 말하며, 종종 새로운 관점이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연결됩니다. 이는 단순히 표면적인 사실을 넘어서 그 이면에 있는 의미나 원리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중독자가 자신의 인사이트를 깨달을 때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회개하고 구원 받을 때 신앙의 2단계는 시작됩니다. 약물 치료나 입원치료는 계속 중 이거나 퇴원해서 외래진료를 다니더라도 기본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그런 생황이 힘들고 괴로워도 신앙의 힘과 교인들의 지지와 격려로 나아가게 됩니다.
3단계에서는 호전된 상태로 퇴원하여 지역사회에 복귀함을 바탕으로 합니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뇌도 도파민에 취해 있다가 깨어나도 어제 다시 술 취할 지 알 수 없습니다.
재입원하는 환자들은 모두 ‘딱 한 번만’ 돌부리에 부딪쳐 엎어집니다. 신앙의 3단계는 매 순간이 시험이며 이 시험이 나를 재발의 늪이나 인간이하의 상태로 끌고 갈 수도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로 단도박을 선택할 수 도 있고, 다시 재발의 늪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마음이 약해 계속 고민할 수 도 있습니다.하지만 중독자가 이 시험을 견뎌내면 그는 인간이상으로 도약하게 됩니다.
20. 그분의 제자들이 물어 여쭈었다 "천국이 무엇과 같은지 일러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겨자씨와 같아 씨앗중에 가장 작으나 좋은 토양에 떨어지면 커다란 식물을 내고 공중의 새들의 안식처가 되느니라.
중독자는 3단게에서 다시 예비단계 1단계로 떨어지거나 아니면 3단게로 도약할 수 있습니다.중독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시험을 치르고 나면 그는 같은 중독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파워가 생깁니다.보통 환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일반인이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전에 한 알코올 중독 환자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술도 안 마시니까 우리 심정을 모르시죠?’
저는 부친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아들로써 중독으로 쓰러져가는 모습에서 내가 크면 반드시 고치리라 다짐했습니다.
내가 정신병동에서 근무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면 아주 오래전에 꿈꿔왔던 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알코올중독만큼은 진심입니다. 하지만 병원에 입원한 기간 동안만 지원되어서는 안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의 중요성 강조: 장기적인 관점: 중독 문제의 해결은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중독자와 그들의 지지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가 필요함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재발 방지와 지속 가능한 회복을 위한 전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개인 맞춤형 접근의 강화: 중독자마다 처한 상황, 성향, 필요가 다양합니다. 따라서 개인의 특성과 요구에 맞는 맞춤형 치료 계획의 수립이 중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와의 긴밀한 협력, 정기적인 평가 및 계획의 조정이 필요합니다.
가족 및 커뮤니티의 역할: 중독자의 회복 과정에서 가족과 커뮤니티의 지지와 참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지원 그룹의 운영, 가족 상담 등을 통해 중독자와 그들의 가족이 함께 성장하고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후속 지원 및 자기 관리 능력 강화:자기 관리 능력의 강화: 중독에서 회복된 후에도 자기 관리 능력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스트레스 관리, 감정 조절, 자기 효능감 강화 등의 기술을 배우고 실천함으로써 재발 위험을 줄이고, 건강한 생활 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적 재통합: 중독자가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어려움에 대비하여, 직업 훈련, 교육 기회 제공, 사회적 네트워크 구축 등을 통해 그들이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다시 통합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역사회나 국가기관이 앞장서서 지원하고 관리하면 좋겠지만 거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먼저 이해해 야할 점은 인간이 계획해도 하나님이 이룬 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정서적 지원을 통해 개인의 내면에 하나의 씨앗을 심고 스스로 클 수 있을 때까지 지켜보는 정도이지 일일 히 간섭하고 계획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중독 문제는 치료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중독문제를 극복하고 투병하면서 인간의 내적 품성의 변화가 올 수 있습니다. 도박을 안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다수 목표를 여기에 잡아서 절망합니다.
도박중독과 투병 사회복귀와 재활이라는 운명 앞에서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지속적으로 삶을 살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본인이며, 그것은 자신의 '의지'입니다. 그리고 참된 변화는 영적 변화이며 그것은 치료자와 중독자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관계인 것입니다.
안식일을 안식일로써 지키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
안식일에 일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신약성서에 여러 차례 나타나며,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이 당시의 전통적인 율법 해석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고, 인간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여기시며, 안식일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는 요한복음 5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 가에 오랫동안 병든 사람들이 많이 누워 있었습니다. 이 중 한 병자는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에게 다가가셔서 그의 믿음을 시험한 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병자는 즉시 치유되어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이 사건이 안식일에 일어났기 때문에,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대답하시며, 하나님의 사역은 안식일에도 계속된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안식일에 곡식 이삭을 자르는 제자들
또 다른 사례는 마태복음 12장과 누가복음 6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가면서 제자들이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밀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이를 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비난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다윗이 제사장의 떡을 먹은 성경 구절을 인용하시며, "안식일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안식일 법규의 본질적인 의미를 가르치시며, 안식일도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관한 당시의 엄격한 해석에 도전하시며, 안식일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가르치신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법규를 넘어서는 사랑과 긍휼, 그리고 인간의 복지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관심을 강조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안식일을 포함한 율법의 근본적인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인간에게 복을 주기 위한 것임을 밝히십니다.
안식일을 안식일로써 지키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
그런데 도마복음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반대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구절 이야말로 자본가들의 이익추구만을 최선의 가치를 생각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근로자를 위하는 구절이라 생각합니다.저는 경비보안 회사에 오래 근무하였습니다.1995년부터 근무했으니 20세기에 근무했던 것이죠.당시 경비원들이나 보안요원들은 휴무없이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고 쉬고 싶으면 근무자를 사서 대신 근무하게 하고 쉬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야간 근무 수당을 받아서 근로자의 복지가 향상되었지만 당시에는 기본급이 너무 적어서 년말 정산을 안 해도 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가 3교대가 나오고 하루 8시간 근무에, 주5일제로 바뀌었습니다. 야간에 의무적으로 2시간에서 3시간가량 휴게시간도 법적으로 보장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주로 고용주의 입장에서 사회에 자신의 이익을 환원해 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식이기 전에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의 최소한의 권리인 것입니다.
또 다른 점은 퇴직금입니다. 근로자가 갑자기 계약해지가 되었을 때 다음 직장을 구할 때까지 최소한의 대비를 위한 배려인 것입니다. 그러나 편법으로 근로자로 고용하지도 않고 자유계약제의 겉모습을 띄고 근무조건을 일일이 감독하면서 주말 근무도 스스럼없이 시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는 안식일만이라도 지켜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줍니다. 또한 회사 근무중에 다치면 산업재해 신청을 받아 기본금과 치료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제도는 한달 벌어서 먹고 사는 근로자의 최소한의 안전 장치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의 몫입니다. 저는 젊었을 때는 몰라서 나이가 들어서는 그런 열정도 힘도 없습니다, 도마복음은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 들을 예비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지의 사각지대를 말씀하셨다면 저는 대표적인 무산자인 근로자의 기본 생활권을 말하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마복음을 읽는 그리스도교인들이 가진 자는 자신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 해야함을 말하고,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권리를 주장 해야함을 말합니다. 이것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가 대비 해야함을 말합니다.
영화 "카트"는 2014년에 개봉한 대한민국의 드라마 영화로, 부당 해고된 대형 마트 계약직 직원들의 실제 투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계약직 노동자들이 겪는 노동 환경의 현실과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벌이는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줄거리 요약
"카트"는 대형 마트에서 일하는 계약직 직원들이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이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는 과정을 따릅니다. 주인공인 선희(염정아 분)는 두 아이의 싱글맘으로, 오랜 시간 동안 마트에서 일해왔지만 계약직의 불안정한 지위에 놓여 있습니다. 어느 날, 선희와 동료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예고 없이 해고 통보를 받고, 이에 분노와 좌절을 느낍니다.
해고된 직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동 조합을 결성하고, 회사 측과의 협상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회사는 이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오히려 해고된 직원들을 압박합니다. 이에 직원들은 공공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상황을 알리고, 거리 시위와 농성을 벌이며 싸움을 이어갑니다.
영화는 선희와 그녀의 동료들이 겪는 갈등과 투쟁,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 등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계약직 노동자들이 겪는 사회적 불안정과 차별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최종적으로, 직원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격려하고 지지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의의
"카트"는 계약직 노동자의 현실을 리얼하게 다루며, 대한민국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 권리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영화는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적 존엄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대와 지지의 중요성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하여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높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이야기는 몇 번이나 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은 그 능력을 없는 사람들을 위해 돌려야 함을 강조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카트'에서는 외국계 마트 종사자들이 어떻게 인권이 유린되고 한 사람의 계산원이 선택되어 회사에 저항하여 마침내 마트 매각에서 고용승계라는 목표를 달성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실제 사례에서는 노조 대표가 구속되어 형을 살게 됩니다. 결과를 홀로 책임지는 모습은 세상의 십자가을 홀로 지는 예수님의 모습과 같습니다.
27. "세상으로부터 금식하지 않으면 천국을 발견하지 못 하리라. 안식일을 안식일로써 지키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
세상의 욕망을 즐기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영적인 생활과는 분리되어야 합니다. 세속적인 것들은 피할 수 없습니다.푹 젖어서 나를 더럽힙니다.하지만 내가 영적인 기도나 명상에 들어갈 대는 다 두고 와야 합니다.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하나님이 모세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하신 이야기는 구약성서 출애굽기 3장에 나타납니다. 이 사건은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발생했으며, 이를 통해 모세는 처음으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만나고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이 사건은 모세의 생애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 있어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
모세는 이집트에서 태어난 히브리인으로, 어린 시절 이집트 왕실에서 자랐으나 자신의 뿌리와 동족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이집트 사람이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를 죽인 후, 이집트를 떠나 미디안 땅으로 피신합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이드로의 양떼를 치며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부름
어느 날, 모세가 호렙 산 근처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그는 불타는 떨기나무를 목격합니다. 이 떨기나무는 불에 타고 있었지만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이 신비한 현상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가가자, 하나님은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부르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모세야, 모세야!" 하나님이 부르시자,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가오지 말고 신발을 벗으라고 지시하십니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모세가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서 있음을 상징하며, 경외와 순종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선불교 사례집인 ‘벽암록’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전 선사가 지도선사로 있는 선원에서 동당 서당으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었는데 고양이 한 마리로 시비가 붙어 서로 소유를 주장하면서 싸움을 벌린 것입니다. 남전 선사는 칼을 쥐고 고양이를 들어 보이며 ‘누구든지 한마디 하라. 그러면 고양이를 살리겠고 못하면 죽이리라.’결국 꿀 먹은 벙어리로 모두가 잠자코 침묵하고 있자 남전 선사는 고양이의 목을 자릅니다.
그의 제자인 위대한 선사 조주가 들어오자 묻습니다.
‘조주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조주는 신고 있던 짚신을 벗어서 머리에 이고 자리를 떠 납니다.
세속적인 일들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우리 몸을 더럽히고 상처 줍니다. 마침내 ‘금식’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조주는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 금식합니다. 그 곳은 신성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의 갈등은 피로써 풀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속에 사랑과 용서만이 비로서 풀어지게 합니다.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지신 것과 같습니다.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것은 기독교와 선불교의 종교적 대화를 통한 의미 찾기입니다.
구약성서에서의 신발 벗기와 선불교 벽암록에 나오는 신발을 이용한 교훈은 각기 다른 문화와 종교적 배경에서 유사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두 사례 모두에서 신발은 세속적인 가치와 일상성을 대표하며, 신발을 벗는 행위는 거룩함에 대한 존중, 영적인 순수함과 준비, 그리고 세상과의 분리를 상징합니다. 신학적 관점에서 이를 해석하면, 두 전통 모두 인간이 영적인 성장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어야 하는 내면의 변화와 준비 상태를 강조합니다.
안식일을 안식일로써 지키지 않는다면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
단순히 금식을 잘 지키는 인간이 아니며, 그 능력을 이웃을 억압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을 돌리는 시험을 이겨내고,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선택 받은 자.그가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홀로 걸어가는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마침내 더 나은 사회를 창조하는 기적을 이뤄내야 함을 도마복음은 말합니다.
아버지를 볼 수 없으리라
우리가 두려워하는 유일한 질문은 종말의 날에 하나님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너는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느냐?’그 대답이 인생의 전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