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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트레킹지도/여행정보 스크랩 마나슬루 트레킹 지도
정상고집(배연희) 추천 0 조회 225 15.01.23 15:0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영혼의 땅 -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일요다큐-산(KBS)  2007년 6월 3일 (일) / 2007년 6월 10일 (일)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음미하는 여행이다.’ 

히말라야에서는 다른 사람 보다 앞서기 위해, 목표점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생을 음미하기 위한 걸음이 시작된다.

 

‘마음’ 혹은 ‘영혼’을 뜻하는 마나사(manasa)와 ‘토지’를 의미하는 룽(lung)의 합성어인 '마나슬루(manaslu)'는 해발고도 8,163m의 세계 제 8위 고봉이다. 마나슬루 봉을 중심으로 일대를 한 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네팔의 원시림과 문화, 환경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트레킹 중 만나게 되는 마을에는 티베트계 사람들이 네팔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면서 형성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만날 수 있다.

 

‘네팔에서 가장 멋있고 장엄한 풍경이 펼쳐지는 트랙’이라 불리는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그러나 히말라야는 눈부신 비경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가파른 언덕과 정비되지 않은 험한 길. 고도가 높아지면서 고산증세까지 일행을 괴롭힌다.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중에는 다른 히말라야 트레킹 코스와는 달리 롯지가 없다. 잠깐 쉬어가며 차를 마시거나 창문 밖으로 설산이 펼쳐지는 잠자리는 트레킹이 끝날 때까지 가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야영을 하며 대자연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만의 매력이다.

 

구름과 만년설로 온통 하얗기만 한 봉우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웅장하고 신비로운 아름다움 앞에 신의 존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 내딛는 한 발 한 발은 모두 고행의 연속이다. 평평한 길만을 걸을 수는 없다. 길은 평지도 있지만 고개도 있고, 초원도 있지만 설원도 있다. ‘걷는 여행’ 트레킹은 우리의 삶과 같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이 정말 많다. 그리고 자연이 만든 비경을 편안하고 우아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도 많다.
그러나 히말라야로의 여행은 다르다. 매일 엄청난 거리를 걷고, 씻고 자는 것조차 불편하며, 지역에 따라 안전을 보장 받지 못하는 곳도 있다.

그들은 왜 히말라야 트레킹 중에서도 힘든 여정으로 알려져 있는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을 떠난 것일까?

‘마나슬루 라운드 트레킹’ 여정 중 볼 수 있는 설산의 파노라마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그 중 가장 높은 마나슬루(해발고도 8,163m/세계 제 8위 봉)는 뾰족하게 솟은 두 봉우리가 감탄을 자아내는데, 날카로운 모습 때문에 ‘악마의 이빨’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마나슬루는 한국 산악인들에게는 ‘비운의 산’으로 알려졌다. 1972년 마나슬루로 떠난 한국 원정대는 15명의 동료를 잃어야 했다. 등반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사고였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두 얼굴을 가진 산, 마나슬루. 마나슬루는 1980년이 되어서야 우리나라 원정대에게 정상을 허락했다. 마나슬루의 정상에 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산군을 둘러보는 길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한 번 발을 잘 못 디디면 허리춤까지 빠져드는 눈 길. 눈은 일행의 발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한 번 빠지면 많은 에너지를 쏟아내고서야 나올 수 있기에 산행이 점점 길어질 수밖에 없다. 차가운 땅 위에 있어야 하는 시간도 그 만큼 길어진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자 산소가 줄어들며 동상의 위험까지 일행을 괴롭힌다. 그러나 히말라야를 향한 가슴만은 뜨거운 사람들. 오직 정신력으로 힘겨운 한 걸음을 내딛는다.

 

영혼이 깃든 봉우리, 마나슬루.

고된 여정동안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비경에 영혼은 더욱 맑아지는 곳.

직접 걸어보지 않고, 직접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는 히말라야의 신비
직접 걷고, 직접 보았음에도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는 히말라야의 비경
그래서 지금도 전 세계 트레커들은 히말라야를 향한다.
 

 

 

 

마나슬루 서키트 (21일간의 트레킹 / 최고 5100m)

 

마나슬루 트레킹은 1991년 공식적으로 개방되었지만 산악 원정대는 이 지역을 오랬동안 접근해왔다.

1951년 H W 팀만이 이끄는 팀은 톤제에서 빔탕까지 트레킹했고 지미 로버츠 대령은 올라 갈 어떤 흥미있는 산을 찾기 위해 라키야 라를 넘었다.

 

일본 원정대가 1952년부터 처음 등정에 성공한 1956년까지 매년 마나슬루(8156m)를 등정하려고 왔다. "일본산"으로 알려져 왔듯이 이 지역에 대한 많은 정보는 오직 일본어로만 접할 수 있다. 일본인들은 1971년까지 등정 광경을 지배해왔다. 소요학파인 휴 스위프트를 포함한 몇몇 트레커들이 어떻게해서든 이 지역에 대한 트레킹 허가를 얻으려고 노력했지만 이곳은 항상 산악 원정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라르키아는 넘기 어려운 고개가 아니지만 이 트레킹은 다른 대부분의 트레킹보다 더 어렵다. 부리 간다키 계곡의 많은 절벽이 수직으로 깎아지른 형태여서 당신은 계곡의 바닥을 따라 걸을 수 없다. 트레킹의 처음을 포함하여 수많은 회수의 지치게하는 등반이 있다. 당신은 능선을 기어 오르고 내려가거나 아니면 절벽을 우회하기 위해 바위턱 위를 지나가야 한다.

길은 거칠고 가파르다. 그리고 말 그대로 종종 강 위에 허세를 부리듯 매달려 있다. 만일 조금이라도 고소공포증을 느낀다면 더 이상 읽지 말기 바란다. 이 트레킹은 외딴 곳을 가는 것이어서 당신이 만일 지쳤을 때 구출할 구조 설비나 기회가 없다. 오오로지 트레커들을 위한 호텔로 생각할 수 있는 설비만 하나 있을 뿐이다. 1992년 늦게까지도 아루가트와 틸제 사이에는 영어 안내판이 하나도 없었다.

 

이 트레킹은 지리학적으로 장관이고 문화적으로 매혹적이다. 누프리(서쪽 산들)로 알려져 있는 지역인 위쪽 부리 간다키에 사는 티베트 사람들은 티베트 이주자들의 직계 자손들이다. 그들의 언어, 의복 그리고 관습은 티베트와 거의 똑 같다. 누프리와 티베트 사이에는 여전히 무역이 계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담배가 네팔 담배보다 더 많이 발견된다. 누프리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감동적이다. 그리고 라르키아를 넘는 것은 가장 극적인 히말라야 고개넘기이다.

 

 

 

Manaslu Circuit Trekking
by Kev Reynolds 번역 buddhaeye

 

중앙 네팔 고르카(Gorkha) 위 능선에 둥지를 틀고 있는 역사적인 왕궁의 성벽 북쪽 멀리에는 마나슬루 히말이 길게 늘어 선 북극의 벽처럼 있다 하늘에 눈과 얼음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벽은 땅에서 하늘로 연결되어 아침 안개의 실타래 속에서 나타난다. 그 능선의 세 면은 주름진 땅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아래에는 부채 모양으로 계단식 논이 언덕을 가로지르고 있다. 몬순의 끝자락이 되면 풍광은 깨끗하게 씻겨 색깔은 특별하게 생생해지고 투명한 가을이 오면 모든 것에 광채가 난다.

 

중앙 네팔 고르카(Gorkha) 위 능선에 둥지를 틀고 있는 역사적인 왕궁의 성벽 북쪽 멀리에는 마나슬루 히말이 길게 늘어 선 북극의 벽처럼 있다. 하늘에  눈과 얼음이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벽은 땅에서 하늘로 연결되어 아침 안개의 실타래 속에서 나타난다. 그 능선의 세 면은 주름진 땅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 아래에는 부채 모양으로 계단식 논이 언덕을 가로지르고 있다. 몬순의 끝자락이 되면 풍광은 깨끗하게 씻겨 색깔은 특별하게 생생해지고 투명한 가을이 오면 모든 것에 광채가 난다.

 

집들은 산언덕에 흩어져 있다. 집 주변에는 바나나가 자라고 물소들은 트림을 한다. 매미들은 나무에서 요란하게 울고 떨기나무 꽃이 주변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앞 풍경은 다양한 물감이 든 팔레트이고 뒷배경은 수직의 눈과 얼음이 뚜렸한 극적인 모습이다. 이곳이 바로 네팔에서 가장 멋진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마나슬루 일주 트레킹의 무대이다.

 

마나슬루(8,156m)는 대히말라야 산군의 남쪽으로부터 돌출한 이웃 봉우리인 나디출리(Ngadi Chuli)와 히말출리(Himalchuli) 그리고 보우다(Baudha)와 함께 있다. 대히말라야는 말안장 모양의 빙하 고개인 라르키아 라(Larkia La, 5213m)를 통해 연결되어 있으며 라르키아 라는 네팔-티베트 국경인 체오히말(Cheo Himal)과 연결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부리 간다키 협곡에 건너편에 가네시 히말(Ganeshi Himal)이 있고 서쪽 깊은 마르샹디 계곡 건너편으로는 안나푸르나 산군이 있다. 고르카는 남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마을로 세계 8위봉의 얼음 꼭대기에서 48km 떨어져 있다. 마을의 위치와 접근성이 좋아 이 장엄한 트레킹의 시작점으로 그리고 마침점으로 좋다.

 

마나슬루 트레킹은 3주간의 화려한 쇼로 초목이 무성한 구릉지대 능선을 넘어 아루갓바자르(Arugat Bazar)의 부리 간다키(Buri Gandaki)  계곡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서 그 계곡을 통하여 가네시 히말 왼쪽의 거친 북쪽을 향해 올라가 히말라야 거봉들을 막고 있는 여러 개의 협곡으로 들어간다.

 

뎅(Deng) 위부터 가파른 협곡은 느슨해지기 시작하고 계곡은 히말출리와 나디출리(다른 이름은 피크 29)아래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리가온(Ligaon)에서 지류 협곡으로부터 진정한 설봉이 처음으로 가까이 보인다. 그리고 로(Lho)에서 보리밭 위로 솟아 있는 두 개의 가장자리가 있는 왕관 모양의 마나슬루가 잊지 못할 모습으로 나타난다. 모레인 지대의 숲에 들어서 있는 시얄라(Syala)는 거대한 설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원형경기장 같다. 사마가온(Sama gaon)은 마나슬루가 내려다보고 있는 넓고 평평한 야크 방목장이 있는 마을이다. 마을 위에는 멋진 불교 곰빠가 있는데 곰빠 주위는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토굴들이 밀집되어 있다.

 

사마가온에서 반나절 트레킹하면 부리 간다키 계곡에서 가장 위에 있는 마을에 삼도(Samdo)에 이른다. 삼도는 티베트와 동쪽 국경을 이루고 있는 팡푸치(Pang Phuchi) 아래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다. 삼도부터 트레일은 라르키아 라(Larkia La)로 가기 위해 주요 지류협곡을 타고 올라간다.라르키아 라를 넘으면 체오 히말, 힘룽 히말(Himrung Himal), 강구루(Kang guru) 전체와, 광대한 설벽 위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일부를 보며 급경사를 내려간다. 그리고 라르키아 라에서 거의 1500m 하강하여 넓은 초지에 자리잡은 빔탕(Bingtang)에 도착한다. 빔탕은 넒은 모레인지대의 한 쪽이며 다른 쪽은 박달나무가 무성한 산 경사면이다. 빔탕에서 남동쪽으로 다른 멋진 봉우리들 사이에서 다시 한 번 마나슬루가 나타난다.

 

 

빔탕을 떠나면서 마나슬루 일주트레킹은 두드 콜라(Dudh Khola)의 하안을 따라 간다. 우윳빛 강인 두드 콜라는 안나푸르나 일주트레킹 코스에 있는 다라빠니(Dharapani)에서 마르샹디(Marsyandi) 강과 합류한다.  이제 트레킹은 마낭을 향해 올라오는 트레커들과 길을 공유하며 마르샹디 강을 이리 저리 건너 불불레(Bhulbule)로 내려간다. 그리고 타르쿠가트(Thrkughat)로 향한 작은 길을 따라가다가 체파 콜라(Chepa Khola)와 도란디 콜라(Dorandi Khola)를 건너 능선들을 넘어 고르카로 돌아간다.

 

이것은 마나슬루 트레킹의 한 일정일 뿐이다. 이 지역에는 우뚝 솟은 봉우리들, 눈덮인 높은 고개, 비옥한 구릉지대의 방문,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선택이  가능한 일정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다라빠니에서 안나푸르나 일주트레킹과 연결하여 마낭으로 계속 오르는 것이다. 마낭에서 토롱 라(Throng La)를 넘은 후 깔리 간다키 강에 있는 좀솜으로 내려가면 포카라행 비행기를 탈 수 있다. 아니면 불불레에서 마르생디 강을 건너 쿠디에서 안나푸르나 트레일을 벗어나 몇 개의 경작지 능선과 계곡을 횡단하여 시수와(sisuwa)로 갈 수도 있다. 작은 마을 시수와에는 포카라 가는 버스가 있다. 이 두 트레킹에서 잊지 못할 풍경을 많이 경험 할것이다. 틸먼(H.W Tilman)은 일찍이 "이곳에는 단조로움이란 없다."라고 말했다.

 

 

*****

 

틸먼은 마나슬루 히말을 본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그는 1950년 작은 규모의 원정대를 이끌고 안나푸르나 산군 일부를 탐사했다. 물론 당시에는 카트만두를 벗어나면 도로가 없었다. 그래서 틸먼과 그의 다섯 동료들은 6일 동안 여러 구릉을 넘어 고르카와 아르갓바자르 사이의 능선에 있는 마을 칸촉(Khanchok)에 도착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북쪽으로 거의 30마일 떨어져 있는 히말출리(7893m)를 똑똑히 보았다... 쌍안경과 망원경으로 보니 그것의 번쩍이는 꼭대기가 잘 보였다. 비록 30마일이나 떨어져 있어도 대부분의 산들이 쉽게 등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저 산이 과연 히말출리가 맞는가 의심했다. 히말출리 바로 남쪽에 있는 아름다운 설봉을 지닌 보우다(Baudha, 6672m)가 우리가 보기엔 더 오르기 쉬운 능선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우리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단지 지나가며 바라보기만 했다. 몇 달 후 우리가 오를 수 있는 봉우리를 찾을 때 로버츠(J.O.M. Roberts 소령. 그는 나중에 히말라야 트레킹의 '아버지'가 된다)와 나는 그것을 그냥 지나친 것을 후회했다. 우리는 아무도 보우다가 보기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은지 아니면 오르지 못할 것 같은지를 기억하지 못했다."(Nepal Himalaya)

 

 

마낭에서 안나푸르나에 접근할 수 있는 계곡과 빙하를 탐사하기 전 틸먼 탐사대는 그들의 주의를 두드콜라에 이르는 위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곳 빔탕에서 그들은 마나슬루를 똑똑하게 보고 감동을 받았다. 석 달 후 안나푸르나 4봉 등정에 실패한 후 그들은 빔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로버츠는 라르키아 라를 넘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이 그의 생각으로는 마나슬루 정상 평원으로 가는 직접적인 루트일 것이라는 보고서를 썼다. "우리는 마나슬루에 오를 생각이 없는 사람의 차분하고 조용한 마음으로 토론했다."

 

마나슬루를 처음 등정하려는 시도는 틸먼도 아니고 틸먼과 동시대의 어느 누구도 아니었다. 그것은 1952년 몬순시즌이 지난 후 첫 정찰대를 보낸 일본의 산악인들이었다. 다음 해 미타(Y. Mita)가 이끄는 원정대가 사마가온 위쪽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7750m에서 실패했다. 1954년 다른 일본팀이 부리 간다키 강을 따라 올라갔으나 사마가온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그들은 큰 산사태가 일어나 풍겐(Pung-gyen) 승원이 무너져 18명의 목숨을 잃은 일이 지난 해 일본팀의 등정 시도가 신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킨 탓으로 믿었다. 그런 성난 사마가온 주민들의 위협에 등반대는 목표를 가네시 히말(Ganesh Himal)로 돌렸다. 그렇지만 2년 후인1956년 5월 9일, 유꼬 마키(Yuko Maki)가 이끄는 일본 원정대의 이마니시(T. Imanishi)와 서다인 걀첸 노르부(Gyaltsen Norbu)가 마침내 정상에 이르렀다.

 

이처럼 오랫동안 마나슬루는 오직 등반가들의 목표가 되었을 뿐 히말라야 여행에서 트레킹은 아직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1956년 저명한 티베트 문화와 종교학자인 데이비드 스넬그로브(David L. Snellgrove)는 세 명의 네팔인 동료와 함께 7개월 동안 중서부와 중부 네팔 지역을 여행했는데, 그 기간 중 그는 빔탕에서 라르키아 라를 넘어 부리 간다키 강을 따라 내려왔다.

 

1950년 틸먼은 그의 여행기에 이렇게 썼다. "팀원 중 3명이...부리 간카티를 따라 되돌아 내려갔는데, 갈수록 상황이 나빠졌다. 그리고 식량과  운송수단이 부족했다.

 

<히말라야 순례(Himalaya Pilgromage)>에서 스넬그로브는 "나는 부리 간다키 강을 따라 내려가는 길에 대해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다. 허리까지 빠지는 협곡의 거센 지류를 건너야 하고 바위 위에 걸쳐진 작은 통나무를 통해 좁은 통로를 지나야 하며, 목자들이 양들을 한 마리씩 건너게 하는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라고 쓰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빌 오코너(Bill O'conner)는 그 길을 간단하지만 사실적인 언어로 요약했다. "어떤 길과 다리는 하늘 높이 솟아 있느데 젖은 상태에서는 아주 무섭다"(Adventure Treks-Nepal)

 

 

*****

 

트레킹이 네팔의 주요 수입원이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마나슬루는 원정대 외엔 거의 접근이 허락되지 않았다. 나중에 오직 용감하고 악착같은 휴 스위프트(Hugh Swift)같은 여행자들만 그곳 트레킹 허가를 받았다(그의 저서 Trekking in Nepal, West Tibet & Bhutan을 보라). 그러나 그것은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마침내 1991년 네팔정부는 몇 군데 제한구역을 트레커들에게 개방한다는 발표를 했다. 마나슬루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방문 인원을 1년에 400명으로  제한했다. 틸먼의 원정대가 부리 간다키강을 따라 내려가며 갈수록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안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길은 많이 좋아졌다. 스넬그로브의 외나무다리는 보다 튼튼한 다리고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물로 들어가 강을 건너야 하는 일은 이제 아주 드문 경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리 간다키 협곡을 따라 난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연속적으로 요구하는 어려운 길이다. 어떤 곳은 좁고 노출된 산사태 길이다.

그러나 그 길은 히말라야의 경이로운 풍광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고 그곳에 이르면 그동안의 노력이 정말로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마나슬루 트레킹 기본일정

카트만두 →(차량)→ 고르카 → 칸촉 →아루가트바잘 → 소티콜라 → 마차콜라 → 도반 → 자가트 → 뎅 → 남룽 → 샬레 → 사마가온 → (마나슬루 베이스캠프) → 삼도 → 다람살라 → 라르키아라 패스 → 빔탕 → 고 → 다라파니 → 샨제 →(차량)→ 불불레 →(차량)→ 카트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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