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0월 15일 일제의 굴레에서 벗어난 야구인들은 식은구락부(殖銀俱樂部)에 모여 조선야구협회를 다시 조직하였다. 미군의 주둔으로 활기를 띠었고, 1946년에는 한미친선야구대회를 가졌다. 9월 21일에는 중앙·휘문·배재·경신의 4구락부 팀이 서울운동장(지금의 동대문운동장)에서 리그 부활전을 벌여 배재군이 우승하였다.
이 리그전의 부활은 야구계의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청신호였다. 5월에는 조선학생야구연맹과 한성실업야구연맹이 탄생했고, 제1회 4도시대항전도 창설되었으며, 6월에는 제1회 전국도시대항 야구대회가 열리고, 7월에는 제1회 전국야구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다.
1949년 세계아마추어야구연맹 가입이 승인되어, 그뒤 세계아마추어야구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고, 1954년 11월 5일 대한야구협회가 세계야구연맹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 1955년 이후에는 중국·미국 대학팀 등 외국팀과 친선경기를 가졌으며, 1955년부터는 전국 군·실업 야구쟁패전이 열렸다.
이밖에도 전국 지역별 초청 고교야구쟁패전과 재일교포초청 고교야구대회 등을 통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1963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강호 일본을 누르고 한국 야구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였다.
이 무렵부터 주로 일본 원정을 자주하게 되었고 일본의 사회인야구·대학야구 팀을 초청하기도 하였다. 1969년에는 제23차 대의원총회에서 KSC(Korea Sports Council:대한체육회)의 종합규칙에 의한 전면적인 규약 개정이 단행되었고, 이어 1956년 이후 처음으로 우리말로 된 공인 야구 규칙서가 발간되었다.
1971년 9월 서울에서 열린 제9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에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타이완·필리핀·오스트레일리아(준회원국)가 참가하여 접전을 벌였는데, 1차 리그에서 부진하였으나 2차 리그에서 분발한 끝에 5승 1무 2패로 8년 만에 다시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한편 1976년 1월 4일과 4월 6일 2차례에 걸쳐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야구연맹과 국제야구연맹의 통합총회는 새로운 세계조직으로 IBA(International Baseball Association:국제야구연맹)를 결성하기로 결의하였다.
세계아마추어야구의 양대산맥인 세계야구선수권대회는 2년마다 짝수 해에 개최되는데 1982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27회 대회에서는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또한 대륙간컵 국제야구대회는 2년마다 홀수 해에 열리는데 1977년 11월 니카라과의 마나과(Managua)에서 열린 제3회 대회에서는 세계의 강호인 미국·일본·중남미 여러 나라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대한야구협회와 대한연식야구협회가 오랫동안 병립해오다가 1970년 통합되어 KBA(Korea Baseball Association:대한야구협회)라는 명칭으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1982년에는 6개 구단으로 프로야구가 출범하였으며, 1999년부터 2개의 리그제를 채택하여 2000년 현재 각 리그에 4개 구단이 있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및 1988년 제24회 서울 올림픽경기대회에서 각각 4위를 차지하였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제25회 바르셀로나(Barcelona)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예선탈락으로 참가하지 못하였으나,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는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http://100.naver.com/100.nhn?docid=727789에서 퍼옴.
2006년 현재 단일리그로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