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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부수(蓮花浮水). 물 위에 연꽃이 떠있는 모습이라 하여 ‘하의도’라 부르게 되었으며, 유인도 9개, 무인도 47개로 구성되어 있다. 야산으로 된 지형은 농업용수와 식수에 어려움이 많고 천일염과 수산양식으로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신도와 대야도는 모래밭과 송림이 좋아 천혜의 해수욕장이 되고 있다.
하의도 웅곡포구에 들어서면 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깃배조차 눈에 띄지 않고 넓은 들판이 다가온다. 하의도 마을들은 대부분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고 섬 전체가 논밭으로 가득차 있어 섬처럼 느껴지지 않는 섬이다. 하의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농사를 주업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그들에게 토지는 삶의 원천이고 자부심이었으나, 하의도 사람들은 이 땅에 대한 피와 눈물이 맺힌 3백년에 걸친 통한의 역사를 안고 있다.
하의도 농민운동의 역사는 지금도 하의도 토지항쟁비가 말해주고 있으며, 군에서는 하의도 토지항쟁기념관 건립을 구상중에 있다.
하의도는 또한 지조 높은 유학자 초암 김련 선생의 고장이기도 하다. 유학자 초암 김련 선생은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서당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당시 신간서적이라면 국내는 물론 중국, 일본까지 다니면서 2,000여권의 고서(필사본)를 모았던 분이다. 당시 초암의 높은 학문을 배우기 위해 나주, 신안의 모든 지역에서 수 천명의 제자들이 모여 들었고, 제자들은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덕봉강당을 건축하였다. 현재는 초암 선생의 아들인 김춘배 옹(1912년생)이 관리하고 있는데, 대를 이어 책 관리는 물론 5선현의 제사도 지내고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하의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신안의 작은 섬 하의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이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대통령을 배출해낸 것은 너무도 자랑스러운 일이다. 김 대통령 당선 직전 수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방문한데 이어 요즘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는 집터만 남아있던 생가의 구조물을 그대로 이용하여 후광리에 대지 746평, 건평 18평의 6칸 접집으로 60여 년만에 원형대로 복원하였으며, 군에서는 복원된 김대통령 생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변에 화장실 등 기본시설을 갖춰 찾아오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특산물 : 인동초, 흑염소, 돌미역, 꽃게 등 문의안내 : 하의면사무소 (☏061-275-40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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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도 5개, 무인도 30개의 도서로 형성되어 있으며, 해안선은 87㎞에 달하고 있다. 신의면 상태도와 하태도를 좌우 제방으로 연결하고 있는데, 농경지는 비교적 적고 염전이 많으며, 남과 북이 半月形으로 형성되어 있다 신안군의 염전지역 중 신의도 염전지역 생산량이 가장 많으며, 풋고추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가 많이 있다.
신의도의 문화유적으로는 신안군 향토자료 제4호인 상서 고인돌이 있는데, 상서4리 마을 뒷산에 청동기시대의 지석묘로 추정되는 묘군 50여기가 산 하단부터 중턱까지 이어져 있어 옛날의 집단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다른 유적으로는 신안군 향토자료 제13호인 안산성지가 있다. 안산성은 상태서리 안산에 위치한 산성으로 남도포진(진도 임회면 남동리)의 돈대수비처(墩坮守備處)였는데, 성의 높이는 15~30m이고 둘레는 400m이며, 남쪽과 서쪽 산록은 급경사를 이루며 동쪽과 북쪽은 경사가 완만한 작은 봉우리이다. 둘레는 400m로 판석형 자연석을 이용하여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산물 : 소금, 고추 등 문의안내 : 신의면사무소 (☏061-271-7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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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가 적고 평야가 많으며, 남서쪽 엄목리에는 자연적 여건이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지인 시목해수욕장이 있다. 이 해수욕장은 3면이 산과 바다로 마치 병풍을 쳐놓은 듯한 포근한 지형에 2.5km의 백사장이 깔려 있고 물이 수정처럼 맑아 여름철이면 해수욕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해안 2km에는 사방사업을 해놓고 있으며 경사가 완만하여 위험이 적은 곳이다. 타원형의 길고 넓은 백사장에는 군데군데 모래성이 쌓아진 것이 특징이며, 이 곳에 서보면 산과 바다 풍경이 그림을 감상하는 것 같은 환상에 젖기도 한다.
도초면 불섬 부두에서 도보로 한 시간, 김해김씨 문중산을 돌아 용당산 중허리에 위치한 만년사는 ’48년 문귀녀 여사의 지극한 불심과 신도들의 협조로 지어진 절로써 대지 400평에 건평 45평(7동), 신도수 약 160여명 정도의 비교적 큰 조계종 사찰이다. 전설에 의하면 절을 짓기 전 이 곳을 지나던 신비스런 모습을 한 노인이 “산새로 보아 이 터에 절을 지으면 만 년 동안 번영할 수 있고, 큰 가뭄에도 물이 마르는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예언해서 이 곳에 절을 짓고 만년사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산사에는 산새들이 노래하고 골짜기 실개천에서는 맑고 고운 물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지는 조용하고 아담한 사찰이다.
문의안내 : 도초면사무소 (☏061-275-6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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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초에서 서남쪽으로 한참을 가다보면 안개 사이로 신비롭게 펼쳐진 섬들이 바다를 수놓는다. 스물 일곱개나 되는 이섬들이 바로 우이군도이다. 이 섬들 중 어미섬인 우이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43km쯤 떨어져 있는 섬이다.
도초에서 출발한 여객선(신해2호)을 타고 돈목리(우이도2구)에 내리면 물이 맑은 돈목 해수욕장과 함께 마치 실크로드에서 본 것같은 환상적인 모래산이 펼쳐진다. 몇몇 사진작가들에게나 알려졌을 뿐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안 알려진 이 모래산은 비, 바람에 의하여 매일같이 그 형태가 변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높이가 80미터나 되고 경사가 가파른 이 모래산을 오르는 일은 아주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땀을 뻘뻘 흘리며 모래산 정상에 오르면 모래산 너머로 보이는 우이도의 절경이 한눈에 펼쳐지며 누구나 그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게 된다. 우이도에서 가장 높은 산은 상산이다.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빽빽히 들어찬 상산의 정상에 오르면 고운 최치원 선생이 바둑을 즐겼다는 전설이 있는 바둑판의 흔적이 남아있다.
섬 주위 해안으로 펼쳐진 기암절벽 또한 절경으로 우이도의 볼거리 중의 하나이다. 현지에서 배를 빌어타고 유람할 수도 있지만 여객선이 우이도의 해안선을 따라 운항하여 성촌리, 돈목리, 예리, 동리, 서리, 진리등 아름다운 기암절벽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농사라고는 거의 없는 우이도 사람들의 생계수단은 자연산 미역채취와 염소방목, 어업이다. 우이도의 갯바위에서 자라는 미역은 무공해 자연식품으로 그 품질이 뛰어나다.
그리고 우이도 꼭대기에 있는 후박나무와 동백잎,그리고 여러가지 약초를 뜯어먹고 자라는 염소또한 우이도의 특산품이다. 염소의 먹이가 순전히 약초들이고 기름기가 적어 우이도의 염소는 약염소로 유명하다.
우이도의 낚시는 걸리지 않을때가 없을 정도로 조황이 꾸준하다. 봄에는 4월초부터 5월말까지 가을에는 10월말부터 12월 중순까지 감성돔과 농어가 호황을 이룬다. 주요 낚시 포인트로는 건네끝, 나릿바위, 대린지끝, 하나지끝, 농께(농어가 많이 잡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등이 있다.
문의안내 : 도초도 우이도출장소(061)261-18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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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줄기가 오음산에서 배미산을 거쳐 대성산에 연결되고, 여기서 비둘기산, 부학산, 동교 뒷산을 거쳐 활목까지 산줄기가 끊기는데 없이 길게 연결되었다고 하여 장산(長山)이라 칭한다 높은 산은 없고, 산이나 구릉지를 개간하여 밭을 일구고 간사지를 매립하여 논과 염전을 만들어 미맥(米麥) 위주의 영농을 하고 있으며,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아 강우량이 풍부하기 때문에 식물이 잘 자라서 각종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어업은 발달하지 않았고, 천해(淺海)의 갯벌을 이용해 연안에는 해태양식업이 활발하다. 장산도는 신안군의 섬들 가운데 가장 남단에 위치하여 해로를 통해 원해(遠海)로 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그 역사.문화적 성격은 과거로 올라갈수록 그 의미가 커지는데, 조선시대보다도 고려시대나 통일신라시대, 더 올라가서는 마한, 삼국시대의 비중이 훨씬 컸으며, 이는 바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해상교역로가 크게 발달해 있었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잇는 가장 전통적인 항로는 노철산수로였는데, 노철산수로는 산동반도의 연대로부터 2백여 개의 섬들이 줄지어있는 발해만을 건너 요동반도의 끝부분 여순, 대련 그리고 압록강 하구를 거쳐 한반도 서해안의 육지를 따라 서남해안의 다도해 섬들 사이를 바짝 붙어 항해하는 항로이다. 해안을 따라가는 이 항로는 비교적 순탄하여 예로부터 소형선박도 안심하고 항해할 수 있는 뱃길로 꼽혔으며, 서남해 섬 지방들은 이러한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일본을 잇는 해상 교역로의 중심이 되어 육지보다도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궁성에서 일어난 일도 다른 육지지방에서는 몇 달이 걸려도 알지 못하는 일들을 이 지역 섬 지방에서는 일주일이면 알 수 있었다고 하니 물산 뿐만 아니라 정보의 교환지이기도 했던 것이다.
한때 장산현이 들어서기도 했던 장산도는 서남해 섬 지방의 행정중심지이기도 했던 까닭에 갖가지 역사유적들이 많다. 도창리 우실잔등에는 장구한 세월을 증언하는 노거수림(101그루)이 장산도의 오랜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또한 장산도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지방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된 '장산도들노래'이다. 모심기철에 풍년을 기원하며 부르는 '장산도들노래'는 이 고장에서만 부를 수 있는 특유한 가락인데, 각 장마다 다양한 가락에 변화가 있고 중모리에서 중중모리로 넘어가는 구성진 들노래이다.
장산도 들노래는 경쾌하면서도 외로운 섬마을의 애수적인 한이 서려있고 내면의 정서가 짙게 깔려있는 신안의 대표적인 민요로서 1981년 11월 11일 제12회 남도문화제에 출연 최고상을 수상하였고, 1982년 10월 26일 제2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연, 국무총리상을 수상 하였다. 지금도 강부자씨를 비롯한 기능보유자와 전수자들에 의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해마다 방학 때가 되면 전국 각지의 대학생들이 '장산도들노래'를 배우러 오기도 하는데, 공수리에는 장산도들노래 전수관 1동과 노래비 1기가 있다.
장산도 들판에서는 이 외에도 하중밭매기노래, 씻김굿, 길쌈노래들이 불리워지며, 또 다른 문화유적으로는 도창리 석실고분, 대리 고인돌, 장산토성지, 대성산성지, 장병준 묘, 장산 목장터 등이 있다.
문의안내 : 장산면사무소 (☏061-271-25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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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안좌도 읍동리에는 1910년 백두산에서 자란 나무를 이 곳까지 운반하여 건축한 북방식 “ㄱ"자형으로 만든 기와집인 생가(도지정 지방기념물 제146호)가 잘 보전되어 있어 찾아오는 미술학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듯 김환기 화가의 고향으로 유명한 안좌도는 안창도의 "안"과 기좌도의 "좌"를 합하여 안좌도라 칭하였다. 신안군 14개 읍면의 중앙에 위치한 도서면으로 목포로부터 22.9㎞의 지점(동경 126°08′,북위 34°34′)에 있으며, 유인도 10개, 무인도 53개로 형성되었고 해안선은 91.4㎞에 이르고 있다.
높은 산이 많고 넓은 평야는 없으나, 간석지를 막아 염전과 해태양식 등의 어업소득으로 주민소득은 높은 편이며, 안좌도와 팔금도는 연도교(신안제1교)로 연결되어 같은 생활권이 된 지 이미 오래인데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가볼 만한 곳이다.
또한, 안좌도에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고인돌)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방월리 일대의 지석묘는 도지정 지방문화재자료 제117호로 역사학도들이 즐겨 찾고 있으며, 형식은 바둑판 형의 남방식으로 원래 7기가 있어 “칠성바위”라 불렀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4기가 남아있다. 무덤 안에서는 주로 돌칼, 민무늬토기,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으며, 안좌도에는 6개 곳에 55기의 지석묘가 남아있다.
안좌도의 특산물로는 김이 유명하며, 신안군을 제외한 다른 지역처럼 부유식 방법이 아니고 지주를 세워 양식하는 방법인데 간만의 차로 물이 들고 날 때 햇볕을 쬐므로 약을 할 필요가 없어 공해가 없고 맛이 좋다. 흔히 파란 파래가 없는 검정색이 짙은 김을 육지에서는 상품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안좌의 김을 비롯한 신안군의 김들은 약을 하지 않아 약간의 파래가 섞여 있으며 이 김들이 가장 맛있고 공해가 없는 김이다.
안좌의 또다른 특산물로는 크고 작은 규모의 양식장에서 길러내는 대하(큰새우)가 있다. 민물낚시로는 신촌지가 좋은데 붕어, 잉어, 민물장어가 난다. 바다낚시도 잘 되는데 유명 포인트로는 북지, 도래도, 요력도, 우목도, 반월도 등이 있고, 감성돔, 농어, 숭어가 잘 잡힌다.
안좌도 본섬에는 모래사장이 없으며, 부속섬인 사치도 웃섬에는 조그맣고 아늑한 해수욕장이 있어 한적한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이다. 사치도 또한 낚시가 잘 된다.
특산물 : 돌김, 대하 등 문의안내 : 안좌면사무소 (☏061-262-40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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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금도는 우리나라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섬으로 목포로부터 54.5km의 지점(동경 125。45", 북위 34。45")에 자리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암태.팔금.안좌면과, 서쪽으로는 흑산면과 마주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연도교가 가설된 도초면과, 북쪽으로는 자은면과 이웃하고 있다. 유인도 4개와 무인도 76개로 형성 되었고 해안선은 86.4㎞이다. 동서가 길고 남북이 짧으며, 동쪽으로는 성치산맥이, 서쪽으로는 선왕산맥이 뻗쳐있다.
그 사이에 동서부 평야가 펼쳐있고, 북쪽은 황해에서 밀려온 모래로 명사십리 백사장을 이루고 있다. 섬의 모양이 새가 날아오른 형상이라 해서 飛禽島라 칭하였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해있어 해안의 절경뿐만 아니라 내륙의 산들도 절경을 자랑하는 몇 안 되는 섬 중 하나다.
세 바위가 바다를 향해 다리를 뻗고 있는 모습이나 바위 위에 자연적으로 생겨난 줄사다리, 색의 조화가 오묘한 바위들이 홍도의 비경에 버금간다고들 한다. 본래 강우량이 많은 신안은 일제 때부터 천일염을 만들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평안남도 용강군 주을염전으로 징용갔던 박삼만씨가 해방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개펄을 막아 '구림염전'을 개척한 것이 시초이다(1946년). 그 이전까지 주을염전 등지에서는 바닷물을 커다란 솥에 끓이는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었기 때문에 '구림염전'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염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구림염전에 의한 소금제조방법은 주변 신안군 다른 섬까지 전해졌다.
비금도에서는 1948년 450세대의 주민들이 '대동염전조합'을 결성하고 보리개떡과 나물죽을 먹으며 1백여ha가 넘는 광활한 염전을 조성해 냈다. 5.16 쿠데타 직후에는 화폐개혁과 더불어 소금값이 한 가마에 8백원까지 뛰어 염전 인부들까지 돈지갑 실밥이 터질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이야 외국 소금이 수입되고 화학소금이 쏟아져 나와 옛 경기는 다 잃었지만 한때는 "돈이 날아다닌다"라는 뜻의 ‘飛金島’라고 불릴 정도로 염전사업이 호황을 누렸다.
비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알려진 원평해수욕장은 해당화 붉게 피고 고운 모래 해변이 십 리쯤 뻗어있다고 해서 명사십리로도 불린다. 더욱이 이 곳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시뻘건 태양뿐만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조차 마치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황홀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한적한 곳에 위치한 하누넘해수욕장 또한 주변의 기암절벽과 함께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며, 비금의 용소와 몸섬 내부에 있는 기린봉, 떡메봉, 전통사찰인 서산사 등도 볼만한 구경거리이다.
고서리에는 천연기념물 제332호로 지정된 칠발도 해조류번식지가 있으며, 역사적인 유적지로는 광대리 뒷산 용굴을 넘는 고개마루에 성치산성이 있다. 고려시대에 축조되었다고 추정되는 이 성은 높이 12m, 면적 45.936㎡로써 주위가 130칸 되는 돌성이다. 1231년 몽고병이 침입하기 이전만 해도 성 밑에 마련된 넓은 땅에서 군사훈련을 하느라고 함성과 말발굽소리가 요란했다고 한다. 성치산 성지는 거의 소멸되었으나 오늘날까지도 성치산성의 맨 꼭대기에는 봉화대가 뚜렷이 남아 옛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성치산성 봉화는 옛날 우리나라의 서남해 도서지방을 연결하는 곳으로 흑산 봉화를 받아 목포 유달산, 무안 삼향 왕산, 함평 옹산, 개성, 강화도로 이어졌으며, 이 곳에 봉정이 주둔했다고 한다. 이 성지의 남서쪽에는 용이 살다가 사람들의 등살에 못이겨 승천했다는 용소와 광대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비금의 민속으로는 밤달애놀이가 유명하다. 밤달애놀이는 망자의 혼을 달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례로 호상을 당한 상가를 위해 마을 사람들이 밤샘을 하며 치룬다.
문의안내 : 비금면사무소 (☏061-275-52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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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금도 주민들은 성품이 온화하고 인심이 후덕하여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은 섬이다. 주소득원은 미맥 위주이며 마늘 재배, 김 양식, 갯지렁이 채취 등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대하 등의 특산물이 생산되고 있다.
읍리에는 3층석탑이 있는데, 기단부 위에 탑신부를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을 장식한 고려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반형 석탑으로 1978년 9월 22일에 지방유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2.3m, 둘레 3m에 조성면적 662㎡로 사각모형의 화강석으로 되어 있다. 기단면석에는 양쪽에 우주(隅柱:모서리기둥)만 있고, 탱주(撑柱:가운데기둥)는 없으며, 탑신부는 탑신ㆍ옥개석이 각기 한 돌씩으로 조성되었는데 전체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옥개석 받침은 각층 모두 4단씩이며, 옥개석은 두터운 편이고 낙수면의 처마 끝이 약간 반전 되어 있어 둔중감을 다소 면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주군 현곡면의 월성 나원리와 양북면 장항리의 5층석탑, 낭산 황복사의 구황동 3층석탑이 이 탑과 닮은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문의안내 : 팔금면사무소 (☏061-271-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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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많이 흩어져 있고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여져 있다고 하여 암태도로 유래되었으며, 약 600년 전 최씨가 처음으로 입도하여 살았다고 한다.
뱃머리가 암태도에 다다르면 섬 한복판에 장부의 기상인양 우뚝 솟은 승봉산(해발 355m)이 늠름한 기백을 자랑하며 나그네를 반긴다. 멀리 상고 시대까지 올라가는 긴 연혁을 간직한 암태도는 총 40.08㎢의 면적중 13.25㎢나 되는 많은 농경지에서 볼 수 있듯이 예로부터 쌀과 보리, 마늘 등 논.밭작물이 풍성하며, 해태양식업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암태도의 쌀은 일찌기 간척지 특유의 우수한 미질로 널리 알려진 바 있으며, 이러한 토지와 더불어 암태도는 선인들의 피와 땀, 눈물과 통곡이 스며있는 역사와 무게를 짊어진 고장이기도 하다.
1924년에 일어난 ‘암태도 소작쟁의’는 우리나라 소작쟁의의 효시였다. 이것은 암태도 소작인들의 고율 소작료 인하운동으로 1923.8.~1924.8월까지 암태도 소작료 불납운동 과정에서 많은 농민이 구속?희생되어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8년, 높이 6.74m에 면적 1,360㎡의 ‘암태도소작인항쟁기념탑’을 세워 암태도의 숭고한 소작인 항쟁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암태도는 자은도와 연결된 은암대교의 개통으로 역사의 숨결과 함께 아기자기한 볼거리와 얘깃거리가 풍부한 섬기행 코스로 각광받고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수곡리와 추포리를 잇는 노두는 여느 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명물인데, 썰물 때면 2.5km에 이르는 두 마을을 연결해 주는 이 징검다리는 추포리 주민들에게 오래 전부터 전천후 바닷길 구실을 해왔다. 그래서 주민들은 미끄럼을 막기 위해 수 천개가 넘는 돌맹이를 매년 한번씩 뒤집어 준다. 이 노두를 건너 추포리로 가면 추포해수욕장이 있으며, 지금은 노두 옆으로 시멘트 포장도로(2000.6.30일 개통)를 개설하여 차를 타고 노두를 감상할 수 있다.
암태면 장고리에서 동쪽으로 2㎞ 정도 떨어진 ‘비석거리’에 위치한 송곡리 매향비(埋香碑)는 1405년에 건립되었으며, 전국적으로 서너 군데 해안지역에서만 발견된 미륵신앙의 유적이다. 높이 157㎝, 너비 65㎝, 두께 30㎝인 매향비(埋香碑)는 정제되지 않은 자연석의 평평한 면에 음각되어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7행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향나무를 바다에 묻어 언젠가 환생할 미륵과 인연을 맺고자 하는 신앙의례의 한 가지로 매향의식을 행하고 기록을 남긴 것이다. 송곡리 매향비는 남북한 전 지역에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섬에서 발견된 점이 특이하다.
또한, 수곡리 승봉산 기슭에 위치한 노만사는 신안군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찰로 1873년에 창건되었으며, 해남 대흥사의 말사(末寺)로 작은 규모의 사찰이다. 해상 산중에 세워졌다는 점이 각별한 의미를 던져주는 이 절은 대웅전 1동, 칠성각 1동, 요사체 1동으로 구성되었으며, 법당 뒷편에 10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자궁 모양의 약수터가 있고 발아래 펼쳐지는 바다 경치도 놓치기 아까운 비경이어서 암태기행의 필수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이 외에도 암태도에는 신석리 익금우실, 송곡리 송곡우실 등의 문화유적이 있다.
문의안내 : 암태면사무소 (☏061-271-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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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은 백길해수욕장의 광활한 모래밭에 서면 여기가 과연 우리 나라인가 싶을 정도로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다.
3km가 넘는 광활한 해안선을 따라 고운 모래사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심이 얕아 가도가도 끝없는 모래밭이다. 백길해수욕장 뿐 아니라 자은도에는 사월포를 비롯하여 분계, 면전, 신성, 양산, 내치, 대섬, 둔장 등 9개의 아름다운 모래사장이 있어 여름휴양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섬이다.
예전에는 뱃길이 멀어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는데 암태도와 자은도 사이에 은암대교가 개통된 이후로는 많은 피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은암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낙조 또한 일품이다. 백길해수욕장과 함께 많은 피서객들이 찾고 있는 분계해수욕장은 바다 건너로 철새 서식지로 유명한 칠발도앞 바다 풍경이 아름답고 주변의 수많은 노송의 군락 또한 장관이다.
섬들 가운데서 비교적 어염시수가 풍성한 곳인 이 곳 자은도는 한때 신안군 내에서 손꼽히는 부촌이었다. 지금도 주민소득이나 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인데, 풍부한 물산 덕분인지 자은 사람들의 성품 또한 후덕하고 자애롭다.
이 고장에서 구전되는 지명 유래를 보더라도 자은 사람들의 다정다감한 품성과 고장의 훈훈한 인심을 짐작할 수 있다. 자은도 한복판에는 섬에서 보기 드물게 해발 363.8m의 두봉산이 우뚝 서 있다. 이 두봉산을 중심으로 드넓게 펼쳐진 논밭은 이곳 주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있다. 특히 자은면은 특산품 마늘의 주산지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좋은 토질에서 자란 자은 마늘은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품질이 매우 뛰어나기로 유명하며, 섬 전체를 뒤덮은 마늘밭에 쏟아지는 스프링쿨러의 시원스런 물줄기도 자은의 볼거리중 하나이다.
맛좋은 방울토마토 또한 자은의 특산물이다. 맛이 무척 뛰어난 자은 방울토마토는 마늘에 이어 자은도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또한, 자은면의 유일한 어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사월포 앞바다는 임자도 전장포에 버금가는 새우잡이 어장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파시가 설 정도로 호황을 누린 이 곳은 예전 명성에는 미치지 못하나 지금도 새우, 병어, 강달어가 많이 잡혀 여름철에는 사월포 포구에 어선들이 북적거린다.
은암대교의 개통으로 육지와 더 가까워진 자은도는 여러 가지 특산품과 개발 여지가 많은 관광자원을 안고 있어 서남해상의 중심도서로 떠오르고 있다.
특산물 : 마늘, 방울토마토, 밤고구마, 대파 등 문의안내 : 자은면사무소 (☏061-271-83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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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해면과 재경압해향우회에서는 학교리 소재 군립도서관내 노향림 시비(詩碑)를 건립 하였는데, 이것은 섬 지방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시비로 압해도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흔히 여느 관광지를 둘러보듯 건성으로 지나치면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섬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압해도의 이 곳 저 곳을 다니다 보면 섬 특유의 압해도만이 갖는 독특한 정서를 맛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서남단 다도해 중에서 목포와 가장 가까운 섬인 압해도는 시내버스처럼 철부도선이 자주 운항하여 신안의 다른 여느 섬보다 육지와 가깝지만 섬이기에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동쪽으로 바다 건너 무안군 삼향면과 청계면, 서쪽으로는 암태면, 남쪽은 해남군 화원면, 그리고 북쪽은 지도읍과 이웃하고 있다. 유인도 7개, 무인도 71개의 크고 작은 78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면적은 63.9㎢이고 해안선은 190.2km나 된다.
평야지대와 원예 시설하우스가 많고 농산물이 풍부하며, 배, 사과, 포도, 양다래 등의 과일은 그 맛이 탁월하여 수출도 하고 있으며, 수산업은 해태양식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압해도는 역사 문화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서리 도창마을에는 높이 4m, 둘레 3m의 대형 선돌이 남아 있는데, 연대는 알 수 없으며 ‘송장수 지팡이’ 또는 선돌이라 불리고 있다.
옛날에 송장수가 무술을 연마하던 중 휘하에 있는 한 병사가 죽어 석관에 그의 시신과 무기를 넣고 매장한 뒤 그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선돌을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고이리에 있는 왕산성지(고이산성)는 전설에 의하면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던 918년 이후에 축조한 성이라고 전하나 정사의 사료에 의하면 대체로 고려 이전의 삼한시대 또는 후삼국시대의 성으로 추정되는데, 현존하는 성축의 길이는 1,000m 정도이며 대부분 붕괴되어 있다. 왕산성의 높이는 1.5m, 폭 3m 정도로 자연석과 잡석을 이용하여 쌓았다. 송공산 정상에도 고려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송공산성지가 있다. 가룡리에는 1904년에 배화주 씨가 이 곳에 들려 산수가 좋고 경치가 수려하여 불심을 널리 전파하고자 중건한 신안의 전통사찰 제50호인 금산사가 있다.
압해도는 신안의 수많은 섬들과 목포 사이에 있어 개펄과 물골이 많아서 갯것이 흔하며, 낚시가 잘 되는 곳이 많다. 특히, 복룡리 앞바다(나룻갓)는 접은 물길에 들고 섬이 큰 물때에 따라 농어, 숭어 등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낚시가 잘 되고, 기름진 뻘에서 먹이를 찾는 고기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잡히는 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이 난다.
해산물로는 낙지, 운저리, 굴, 꼬막, 해태와 감태, 서렁게, 농게 등이 있는데 뻘에서 나기 때문에 맛이 기막히며, 또한 압해도의 황토와 기후조건의 조화로 들판에서 나는 배, 포도, 단감, 수박 등은 당도가 매우 높고, 고구마, 감자, 마늘, 양다래 등도 압해도의 특산물이다.
특산물 : 압해배(미국 수출), 압해포도, 단감, 황토돼지, 토종돼티, 돌김,세발낙지, 보리새우 (오돌이), 숭어 등 문의안내 : 압해면사무소 (☏061-27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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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도에 내리면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우리나라 최대의 소금 생산지라는 광활한 태평염전이다. 간척지로 생긴 염전과 농지가 조화있게 펼쳐져 있으며, ’80년대 이전에는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았으나, 섬 전체가 어족이 고루 풍부하여 전체 가구의 26%가 어업에 종사한다. 염전 사이를 지나 한참 가다보면 우전리에 위치한 우전해수욕장이 보인다. 백사장 길이 4km, 폭 100m의 우전해수욕장은 90여개의 무인도들이 점점이 떠있는 수평선이 매우 아름다우며, 맑은 물과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 때문에 시원스러운 여름날의 피서를 마음껏 맛볼 수 있다.
또한, 방축리 도덕도 앞 송?원대유물매장해역(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74호)은 600여년간 바다 속에 잠들어 있던 송?원대 도자기 등 23,024점의 유물들이 발굴되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목포에서 43km 떨어진 도덕도 앞 해상은 수심이 20~24m이며 조류가 세찬 곳이어서 당시 이곳을 항해하는 중국선박이 풍랑을 만나 침몰했던 것으로 보인다.
송.원대 유물은 이 지점의 해저 갯벌에 묻혀 있던 침몰선박과 주변에 흩어져 있는 것을 인양해 낸 것으로 도자기는 송?원대의 중국 도자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철 또는 청동을 주조하여 만든 금속유물과 동전 등도 많이 발굴된 바 있다.
증도는 4면이 바다이므로 염전이 많다. 그래서 특산물은 우선 소금을 들 수 있고 해태양식도 잘된다. 또한, 주변에서 잡은 생선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해역에서 나는 관계로 생선회 맛으로는 일품이다.
낚시터로는 내ㆍ외갈도, 명덕섬, 대섬, 부남도, 명섬 등이 있으며 농어와 장어낚시가 잘된다. 민물낚시터로는 증동 염산지가 유명한데 붕어와 장어가 잘 잡힌다.
문의안내 : 증도면사무소 (☏061-271-76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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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임자도의 지형은 중동에서나 보는 사막의 지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고 하며, 그래서 뭇사람들은 임자도를 한국의 유일한 사막이라 부른다. 임자도는 신안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광주로부터 90㎞, 목포와의 거리는 66.6㎞, 지도 점암에서는 12㎞ 지점(동경126。5", 북위 34。5")에 위치해 있다. 동으로 지도읍, 남쪽으로는 자은면,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영광군 낙월면과 이웃하고 있다.
예전에는 목포에서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뱃길 때문에 왕래가 어려웠으나, 무안 해제~신안 지도간 연륙교가 세워지고 지도읍 점암과 임자도를 잇는 철부선이 운항하면서 승용차로 당일로도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코스가 되었다. 선착장에서 5㎞쯤 떨어진 대기리와 광산리 뒷단에 펼쳐진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고 깨끗한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의 길이는 12㎞나 되고, 폭이 300m가 넘는다. 해수욕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려면 걸어서는 1시간 20분, 자전거로도 30분이나 걸리는 광활한 백사장이다. 넓은 백사장 너머로 보이는 수평선 또한 서정적이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렇듯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대광해수욕장은 지난 ’90년 국민광광지로 지정되어 샤워장,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고, 2001년까지 170억원이라는 많은 예산을 들여 집중 개발되었으며, 비금도의 명사십리, 암태도의 추포, 도초도의 시목해수욕장과 함께 신안의 4대 해수욕장으로 꼽힌다.
임자도는 대광해수욕장과 함께 새우젓으로도 유명하다. 임자도의 북쪽 맨 끝 동네 전장포는 우리나라 새우젓의 대명사이다. 전장포의 먼지모래를 딛고 사는 백화새우는 특히 그 몸집과 색깔이 먼지모래처럼 곱다. 전장포에서는 해마다 1천여톤의 새우를 건져내 전국 새우젓 어획고의 60%를 차지한다. 특히 전장포에서 5월과 6월에 잡히는 살찐 새우젓은 각각 '오젓', '육젓'이라고 하여 맛있는 젓으로 유명하다.
전장포 마을 뒤 솔개산 기슭에는 길이 102m, 높이 2.4m, 넓이 3.5m의 말굽모양 토굴 네 개가 있다. 이것은 새우젓 저장실로 이 곳에서 저장된 새우젓은 김장철에 맞춰 비싼 값으로 팔려 나간다.
임자도의 낚시터로는 바람막, 섬타리, 옥섬, 갈도, 어머리 등이 유명하고, 농어, 돔, 장어가 잘 잡힌다.
특산물 : 농어,돔,민어,병어,송어,밴댕이,낙지,광어,우럭,장어,김(맛김,얼구운김) 문의안내 : 임자면사무소 (☏061-275-3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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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로서 무안반도의 최남단 해안지방이었으나 인동장씨 장봉래가 조선 연산군 때 최초로 입향하였는데, 처음에는 함평군 양림리에 거주하던 중 무오사화를 당하자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그로부터 현재의 마을이 형성되어 마을을 동과 서로 구분해서 동촌, 서촌으로 불리워진다. 1869년 군청이 들어서면서 한때 번창했던 지도군은 현재의 신안군 각 도서는 물론 영광의 안마도, 전북의 위도, 목포의 율도, 영암의 나불도까지 관할했다.
1914년 한일 합방으로 지도군이 폐지되고 지도면이 되면서 무안군에 예속되기까지 17년 동안 군세를 떨쳤는데 현재는 신안군에 속하여 지난 1980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5년 2월 무안군 해제면과 연륙되므로써 신안군에서 유일하게 배를 타지 않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고, 미맥중심 농업에서 소득작물 등 작물체계 다변화로 소득이 향상되어 가고 있다. 임자, 증도 등과 철부도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교통이 원활하며, 또한 교육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문화유적으로는 조선 고종 1896년에 이루어진 행정개편으로 지도군이 새로 설치 되면서 “1군 1향교 건립” 원칙에 의하여 1898년에 창설된 지도향교가 있으며, 읍내리 선창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무려 스물 일곱 개의 비석이 나란히 서있는 비석거리가 또한 볼거리이다. 해제에서 지도로 가는 연륙교 방죽에서는 숭어낚시가 잘 되기로 유명하기도 하다. 고동섬에서도 농어와 숭어가 잘 잡히며, 민물 낚시로는 봉리지가 유명한데 붕어와 민물장어가 잘 잡힌다. 지도의 특산물로는 미질이 좋은 간척지 쌀(어머니고향쌀)이 유명하다.
문의안내 : 지도읍사무소 (☏061-275-0027)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