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4월 21일 목요일, 흐림 12℃.
*걷기- 열하루 날
*벨로라도(Belorado)에서 아헤스(Ages)까지.
*이동거리 : 28km.
*누적거리 : 268.5km.
오늘은 다양한 지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제와는 달리, 88%가 작은 길과 흙길이다. 벨로라도 외곽에서부터 길은 N-120과 나란히 활짝 트인 시골길을 따라 가지만 관목과 숲 덕에 그늘도 종종 나온다. 이번 단계에서 절반 지점인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에서 부터는 오크나무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는 산길을 오르게 된다.
그리고 외진 순례자 마을인 산 후안 데 오르테가(쐐기풀의 성 요한)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소나무 숲이 이어진다.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들,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우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면의 여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일 수도 있다. 산티아고 가이드북에 실려 있는 오늘의 일정 내용이다.
지형도표를 보니 해발 1100m가 넘는 세 개의 산을 넘어가는 여정이다. 모하판 봉, 페드라하 봉, 제일 높은 것이 카르네로 봉이다. 우리는 오카 산길 해발 1050m를 넘어가야한다. 단단히 맘을 먹고 출발한다. 아침 7시다. 아침 기온이 12℃로 날씨가 서늘하여 옷을 단단히 입고 목에 수건을 감았다. 날이 아직 어둡다. 목조로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 벨로라도 마을을 빠져나온다.
티론 강에 놓인 목재 인도교다. 산토 도밍고가 만든 원래의 옛 다리 바로 옆이라는데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좀 더 걸어 나오니 Buen Camino라는 글과 함께 성당 그림이 있고 거리가 표시 되어있다. 부르고스 46km, 레온 174km, 산티아고 310km다. 벽화가 새벽 여명에 드러난다. 걷고 있는 순례자도 보이고 앉아서 쉬고 있는 순례자도 보인다.
노란색이 많이 보이는 커다란 벽화다. 목적지 산티아고 554.6km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날씨는 잔뜩 흐리지만 날이 밝아 초록색 오솔길도 들어난다. 마을도 만났다. 토산토스(Tosantos)마을이다. 마을이 조용하다. 토산토스는 무성한 풀로 덮인 언덕이 있는 오카 산의 굽이치는 풍경 안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이다.
마을에는 커다란 떡갈나무가 많으며, 거대한 바위를 파내어 만든 신비롭고 아름다운 성당인 라 뻬냐 성모의 성당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매년 9월 8일 토산토스에서는 라 뻬냐 성모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사라센인들에게 성모상을 지키기 위해 동굴 안 종 밑에 숨겨놓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오랫동안 그 흔적을 찾지 못하였다가 동굴이 성소가 되면서 발견되었다.
오른쪽 언덕 교회를 쳐다보면서 마을을 통과해 간다. 라 뻬냐 성모 소성당 (Ermita de Nuestra Senora de la Pena)은 바위를 파서 만든 소박한 성당으로,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다시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떨어진 농가들이 몇 채 보인다. 작은 교회도 있다. 비얌비스티아(Villambistia) 마을이다.
언덕 위에는 샘물을 갖고 있는 성모승천 교구 성당이 놀이터와 함께 있다. 그 아래로 산로케 성소(Ermita de San Roque)가 있는데 종탑 위에 순례자 모형이 예쁘게 올라가 있다.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길이 좁다. 벌판 앞에는 교회가 하나 보인다. 사용하지 않는 사라져 가는 유적 같다. 다시 마을이 나타난다. 에스피노사 델 카미노(Espinosa del Camino)라는 마을이다.
에스피노사 델 카미노는 부르고스 지역의 전통 가옥과 대중적인 건축물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은 전원풍 목조 건축물이 많으며 그 중에는 아름답고 화려한 문장으로 장식된 것도 있다. 8월 15일에는 성 로께의 성모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성모 승천 교구 성당(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 de Nuestra Senora)이 있다. 건물 대부분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설화석고로 만든 현관과 처마장식에서 성 인달레시오를 표현한 12세기의 채색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오래되 보이는 알베르게가 있다. 장식이 화려하고 예쁘다. 외벽에 수레바퀴도 달려있고 신발도 매달려있다. 자전거도 세워져 있다. 작은 축구장도 있는데 잔디가 아니라 온통 토끼풀과 흰 꽃이 가득하다. 한적한 마을의 짧은 중심가를 지나간다. 약간 오르막 흙길을 걷는다.
꼭대기 지점에 서니 멀리 비야프랑카 마을이 보인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 오른쪽에 유적이 나타난다. 산 펠리세스 데 오카 수도원 (Monasterio de San Felices de Oca)의 9세기 유적이다. 수도원은 비야프랑카(Villafranca)를 1킬로미터 남겨둔 까미노 위에 세워졌다.
모사라베 양식으로 만들어진 이 오래된 수도원에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서고트 양식을 따른 발굽 모양의 아치와 소성당의 잔해다. 이 수도원은 부르고스 시를 세운 돈 디에고 로드리게스 뽀르셀로스가 영원히 잠든 곳이라고 한다. 작은 길로 들어가 창살로 닫혀있는 유적 안을 들여다보니 텅 비어있다. 시골길을 벗어나 이제 포장 아스팔트를 걷는다.
비야프랑카 몬떼스 데 오카 마을이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 크리스탈 같은 개울, 노루와 늑대의 은신처가 되는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은 로마 시대에는 아우까로 불렸으며 주교가 살던 곳이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와 부르고스의 중간인 이 마을에는 신비로운 전설과 많은 전통이 남아 있다.
비야프랑카에서 오까 산으로 가는 오르막길은 중세 때 순례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곳이었다. 도둑과 강도, 불량배가 많았다. 납으로 만든 동전에 도금을 한 뒤 순진한 순례자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잔돈으로 바꿔달라고 하면서 가짜 돈을 주고 진짜 돈을 받는 사기를 치기도 했다. 그래서 이 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었다. “도둑질을 하고 싶으면 오카 산으로 가라.”
이 지역에 순례자로 왔다가 돌아간 프랑크인들에게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기에 이 마을에 프랑크인들에게 익숙한 명칭이 붙었다. 또한 오카는 스페인어로 ‘야생 기러기’를 뜻한다. 기러기 산이라고 불린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상은 초기 정착촌이었던 아우카(Auca)에서 비롯된 명칭이라고 한다. 마을은 오카산길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있는 Nuevo Meson Alba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차장이 넓은 어수선한 식당이다. 잠시 쉬기로 했다. 순대가 들어있는 빵과 카페라테를 주문해서 먹었다. 서늘한 기온에 따듯한 커피와 실내의 온기가 좋다. 사람들이 많아 복잡하다. 모두 순례자들이다. 스템프도 찍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다. 물을 1유로 주고 샀다.
건너편 작은 가게에서는 물을 0.5유로에 팔고 있어서 하나 더 샀다. 지나온 로그로뇨는 77km, 벨로라도는 11km, 그리고 앞으로 갈 부르고스는 36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커다란 성당을 마주했다. 산티아고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tiago)은 18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다.
필리핀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지는 거대한 조개껍데기로 장식한 세례반이 있다. 다시 시골길 언덕을 올라간다. 해발 950m 라는 표시가 보인다. 잡목 숲길을 올라간다. 산을 넘어가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예쁜 봄 꽃이 아주 작지만 색깔이 진하다. 소나무 숲길이 빽빽하다. 어둡다. 진짜 강도들이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다. 잔설이 두문드문 보인다. 하얀 눈이 보이다니 신기하다.
많이 올라온 것 같다. 핑크 빛 보석 같은 꽃이 선명하다. 기념비가 있다. 1936년이라는 글이 보인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만들어져 있다. 스페인 내전시 전사한 사람을 기리는 카이도스 기념비란다. 해발 1020m 지역이다. 오른쪽 다리가 아프다. 동행 하던 일행이 맨소래담을 주었다. 벤치에 앉아서 듬뿍 바르니 좀 시원해 지는 것 같다.
걷는 발걸음이 통증으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산을 내려간다.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서서히 내려가는 것 같다. 길가에는 나무 십자가가 세워진 돌로 쌓인 작은 묘지가 있다. 여러 가지 장신구들이 올려져 있다. 물통도 보이고 조화도 있다. 슬픈 사연이 있을 것 같은 묘지다. 잡목 숲이 이어진다. 등산화를 신고 가는데 내리막리이라 더욱 발이 아프다. 걷기가 힘들다.
뒷꿈치에 힘을 주고 걸어가니 좀 걸을만했다. 그래도 봄꽃은 눈에 들어온다. 피부에 와 닿는 기온은 차다. 지대가 높아서 그런 것 같다. 습기가 있는 찬 기운이다.“힘 내 !”라는 한글을 길에 돌맹이로 만들어 놓았다. 화살표도 만들어 놓았다. 웃음이 나고 반가웠다. 잔뜩 움츠리고 걸어가는 여성은 추워보인다. 숲 길에서 간이 휴게소를 만났다.
주변에 죽은 나무들로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많다. 통나무 장승들인데 색상이 화려하다. 오렌지와 음료수 색상을 칠한 조가비를 팔고 있다. 비포장 언덕의 신작로를 걸어간다. 소나무 숲이 양쪽에 가득하다. 해발 1100m 인 페드라하 고개다. 인적이 드문 황무지다. 산등성이를 오가며 순례자들을 터는 도적들로 악명 높은 지역이다. 발데푸엔테스 예배당을 만났다.
어린양의 샘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말라있다. 이제는 완만한 내리막 길이다. 마을 초임에서 건강한 염소를 만났다. 산 후안 오르테가 간판이 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산토 도밍고의 제자)는 12세기부터 17세기를 거치면서 교황과 주교, 왕과 귀족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까미노 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 도시란다.
이들의 노력으로 스페인의 외딴 마을은 안전하고 쾌적하며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했고, 순례자들은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는 오래된 삼림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로 로마 네스크와 고딕, 바로크 양식 등의 우아한 건물이 있으며, ‘빛의 기적’ 처럼 지금도 눈으로 경험 할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는 곳이란다.
이 곳은 산세가 험해 순례자들이 넘어올 때 도적떼, 짐승의 공격, 험한 기후등으로 상처를 입게 되면, 오르테가가 제자들과 함께 순찰을 돌고 아픈 순례자들을 치료했다고 한다. 성인이 돌아가신 후에도 제자들이 순례자 보호활동을 계속했고 1차 대전 후까지도 본당에서 마늘 스프를 순례자들에게 제공하고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교구 신부인 호세 마리아는 순례자들에게 빵과 마늘 수프를 대접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2008년에 별세했다. 빛의 기적이란, 춘분(3월 21일)과 추분(9월 21일), 선과 악의 상징이며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이 날이 되면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는 단순한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이 성당의 주두에 일어난다고 한다.
오후가 되면서 약 10분 정도 햇빛이 성당 주두의 부조를 비춘다. 처음으로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고 성모에게 나타난 대천사의 부조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탄생, 예수를 경배한 동방박사, 목동들에게 예수가 태어났다고 알려주는 장면을 차례로 비춰준다. 첫 번째 부조에서는 성모는 천사가 아니라 주두를 비추는 빛을 바라보는 것처럼 보인다.
빛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이자 잊을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경험인 이 현상을 ‘빛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불임이었던 카스틸레의 여왕 이사벨이 1477년 이곳을 방문한 후 아이를 얻어 이 성당을 굉장히 화려하게 증축해 주었다고 한다. 피자 와 음료수를 파는 알베르게 건물이 참 예쁘다. 오르테가 수도원을 만났다. 규모도 크고 오래되 보인다. 흰색 꽃이 핀 고목이 있다.
해발 950m란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수도원 (Monasterio de San Juan de Ortega)은 12세기에 만들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이다. 건물 내부에는 복잡하게 장식된 주두가 눈에 띄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인정되는 고딕 양식의 천개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조각된 산 후안 데 오르테가 성인의 석관이 있다. 종이 3개 달린 수도원이다.
마을을 벗어나니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나무로 만든 십자가가 보인다. 소나무 숲길이 제법 길다. 나무들을 자세히 보니 이끼들이 가득 붙어있다. 우리 집 주방에 있는 스칸디아 모스와 같다. 계속 걸어간다. 잡목숲에 이어 들판길로 접어든다. 소 목장을 만났다. 누런 황소들이 한가롭다. 어린 송아지도 있다. 들판 길은 고목나무 두 그루가 버티고 있다.
마을이 언덕 아래 나타난다. 오래된 마을 아헤스(Ages)다. 아헤스는 중세 시대 기독교 왕국의 패권을 뒤흔들었던 중요한 곳이다. 또한 전원 속의 마을이라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까미노를 순례하며 사진을 찍는 순례자라면 이 그림 같은 풍경의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마을에서 하루를 묵는다. 오래된 돌담과 건물 벽은 투박하고 고풍스럽다.
산티아고 518km라는 글도 보인다. 건물마다 예쁘게 장식해 놓았다. 나무 기둥과 건물 벽에는 새 그림이 그려져 있다. ‘Venta’라는 글이 선명하다. 스페인에는 Venta라는 식당들이 있다. 벤타는 길가의 카페테리아, 바, 레스토랑 등을 총칭하는 말이란다. 주로 마을과 마을 사이를 잇는 국도변 길에 위치한 식당들이다.
저렴한 가격에 정통 스페인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집 매매한다는 글인 줄 알았다. 오래된 집들이 작은 동네에 가득하다. 숙소를 찾다가 작은 성당(Iglesia de santa Eulalia)도 만났다. 소박한 교구 성당이다. 나바르의 왕 돈 가르시아가 1054년 아타푸르에카 전투에서 형제인 페르난도 1세에게 살해당한 후, 그 유해가 매장되면서 유명해졌다.
숙소는 3층으로 된 알베르게 El Pajar de Agés 다. 통나무 2층 침대가 예쁘고 내부는 깔끔하다. 오른쪽 발이 부어서 맨소레담을 바르고 침대에 올라 조용히 누워 오후 시간을 보낸다.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옆 건물이 작은 식당이다. 닭고기 파스타를 주 메뉴로 해서 후식으로 요플레 꿀이 나온다.
전식으로 나오는 렌탈 수프가 정말 맛있다. 진하게 푹 익힌 렌탈 콩 전통 요리다. 아마도 제일 멋진 식사가 될 것 같다. 12유로다. 저녁 날씨가 서늘하다. 스페인 식사는 하루 다섯 끼란다. 아침(데사유노)은 간단한 빵과 커피, 오전 11시 전후 알무에르소는 보카디요 또르띠야 등 간단한 메뉴, 푸짐하게 먹는 점심은 꼬미다.
일과가 끝난 시간에 간단하게 타파스 류와 술을 곁들이기도 하는 메리엔다, 9시 이후 저녁식사인 세나로 간단히 타파스와 술을 마신다. 우리는 세끼를 먹기도 힘든데 다섯끼라니 하루 종일 자고 먹기만 할 것 같다. 다리에 바른 맨소래담 냄새에 취해서 일찍 잠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