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박물관 관람기 -- 노영숙
노인복지관 서예교실 짝꿍이 수도권 근교에 있는 가볼만한 곳 열 군데를 자세히 알려주었다. 친절하게도 기관명, 소재지, 전화번호 그리고 가는 길까지 자세히 적어주었다. 그 중에 우선 추사 김정희 박물관을 가기로 마음먹고 은전 선생님과 함께 길을 나섰다. 초행길인데도 아무에게 묻지도 않고 정확히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상쾌한 기분으로 담 안쪽에 있는 과지초당(추사의 부친 김노경이 지은 별장)부터 자세히 둘러보았다. 앞 뒤 마당까지 두루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살구가 떨어져 있기에 주어서 맛을 보았더니 아직 덜 익은 터라 딱딱하고 맛이 없어 뱉어버렸다.
안에 들어가서 안내원이 2층부터 보라고 하기에 안내서와 간이책자 몇 가지를 챙겨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게시된 안내문을 읽으면서 한 바퀴 둘러보았다. 추사의 삶과 예술세계를 감상하면서 감격스러웠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더구나 하루에 4번 해설을 하는데 마침 해설 시간이 되어 11시 타임에 해설자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모 교육청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맨 앞자리에 앉게 되어 똑똑히 들을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추사 선생님은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으며 8세에 예산을 떠나 서울 큰아버지 댁으로 양자를 갔고, 24세에 아버지를 따라 중국 북경에 가서 평생 스승이었던 오방장과 관원을 만나 공부하였고 그 후에 3번 더 만나 가르침을 받으면서 그 문화를 받아들이려 했다. 41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로 임명되었다. 이어 병조판서가 되었으나 55세에 정치적인 모함을 받고 제주도 대정헌에서 8년 3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풀려난 뒤에 서울로 돌아와 강산에 머물면서 제자들에게 글과 그림을 지도했다. 66세에 또다시 정치적 모함으로 함경북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 67세에 유배에서 풀려난 뒤 과천 과지초당으로 돌아와 이곳에 머물면서 학문과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다가 71세에 과천 과지초당에서 서거하셨다고 한다.
서거하시기 3일 전까지도 붓을 놓지 않고 <판전>이라고 하는 명작을 남기셨다. 추사 선생님은 호가 500가지 쯤 되며 생시에 벼루 10개를 구멍이 날정도로 사용했다. 붓 1000개를 몽당붓이 되도록 사용했다. 세예의 대 선배로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에 감격하였다. 명작 3편으로 <세한도> <불설이란도> 그리고 <판전>이 있다. 멋진 글씨를 쓰기위해 많은 노력과 열정을 기울인 한 평생을 감상하며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서예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찾아가서 감상하기를 극구 추천하는 바이다. 가슴 가득 추사의 정열이 전해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추사의 박물관은 3곳에 있다고 한다. 제주도, 예산 그리고 과천 중에 자기가 사는 곳 가까운 데를 찾아가면 편리할 것이다.
추이: 1. 추사 작품 <불이선란도: 不二禪蘭圖>는 건물 벽 한 면에 크게 그려져 있다.
2. <세한도: 歲寒圖>는 추사가 59세에 성심을 다하는 역관 이상적에게 고마운 마음의 표시로 그려준 것이다.
3. <판전: 版殿>은 봉은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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