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 강정숙

[강정숙]

                                알프스

                                                                                               강 정 숙

 스위스, 알프스 산악열차를 타고 유럽 최고(最高)에 위치한 융프라우요흐 전망대(3,454m)를 올랐다. 7월의 무더위에도 만년설을 품고 있는 웅장하고 아름다운 용프라우와 알레취 빙하를 조망한 후 아이거 북벽 터널을 지나 기차역을 출발하여 아이거 등산 루트가 있는 능선 길을 걷고 있다.

고도가 낮아지면서 자갈길이 고산 초원으로 바뀌고 지천으로 여름 야생화가 우리를 반긴다. 고산지대라 날씨의 변화가 심하다. 후두둑 쏟아지는 비바람에 안개가 온통 앞을 막는다. 서둘러 판초를 입고 몇 걸음을 걷다 보면 다시 안개가 그치고 맑은 하늘이 열린다. 비에 젖은 알프스는 선경(仙境)이다. 아름다움에 너무 가까이 와버리니 풍경을 카메라 앵글 속에 도저히 담을 수가 없다. 그냥 바라보며 마음에 담는다. 광활한 자연이 황홀하다 못해 경이롭다. 꿈이 아니다. 지금 나는 9일간의 알프스(융프라우, 마테호른, 몽블랑) 트레킹을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강타하면서 주인공처럼 살던 사람들이 그들이 만든 과학만으론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 또한 집안에 들어앉아서 위축되어 사람을 피하고 백신이 개발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흐르면서 두려움과 갑갑함을 피하고자 주변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자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우릴 맞아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등산은 이산 저산에서 이 강(江) 저 강변길로, 해파랑길로 이어졌다. 코로나19 덕분에 종아리에 근력이 생겼다.

산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스멀스멀 피어나는 트왈라잇 블루 신비가 더하던 날,, 오두막집 샬레의 목가적 풍경 넘어 눈 덮인 알프스 산자락이 떠올랐다. 알프스 여름 야생화가 너무 아름답다던 지인의 말에 알프스 트레킹을 꿈으로 품고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여긴 알프스 여름 야생화가 만개한 산 능선 길이다.

 저 멀리 볕 바라기를 하면서 노부부가 나란히 않아 차를 마신다. 스쳐오는 바람 빛깔이 맑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걸음이 서툰 아이들이 배낭에 작은 물통을 지고 부모와 함께 고산 초원길을 걷고 있다. 알프스산맥을 곁에 두고 자연을 즐기면서 산길을 걷는 트레킹(trekking)이 일상인 그들의 생활이 부럽다.

 아름다운 자연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알프스’라는 이름이 핵 오염수와 연계되어 이미지 메이킹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다핵종제거설비의 영어 약칭인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는 고급 액체 처리설비이다. 일본이 온전히 검증도 되지 않은 설비에 청정한 자연의 상징인 알프스 이미지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핵물질의 평화적 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기구이지 핵 오염수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기구는 아니다.

  2011년 태평양해역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의 전력공급이 중단되고 냉각시스템이 마비되어 발생한 방사능 누출사고이다. 인간이 만든, 필요하지만 위험한 사고 핵발전소의 누출물을 우리 앞바다로 방류하며 오염시키고 있는데 처리수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말장난하고 있다.

 병원에서 쬐고 있는 작은 방사능 조사량에도 촉을 날카롭게 디밀던 언론들조차 핵 오염수를 불완전한 기계에 지구촌 최고의 정화시설인 알프스(ALPS)라는 이름을 도용하여 제대로 검증조차 하지 않고 면죄부를 주고 있다.

 어떤 이유이든 핵물질은 유해하다. 이미 환갑을 넘은 우리들은 그렇다 치고, 어린이와 청년들의 미래에 완전히 검증되었다 해도 미완의 상황이 올 수 있는데, 히로시마 원폭 피해를 본 후손들의 삶이 어떤지는 그들에게 일본 정부가 왜 보상을 해주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 삶의 시선을 바꾸어야 할 때가 지금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믿음이다. 지식인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다. 우린 그런 어른이 되어야 한다.

 알프스는 트레킹 천국이다. 트레킹은 뇌에 산소가 충분히 공급돼서 머리가 맑고 기분이 좋아진다. 철학자 니체는 걸으며 생각한 것만 이 가치가 있다고 했으며 걸을 때 뇌는 자극을 받으면서 활성화된다고 하였다. 어느 철학자는 걷기는 가장 좋은 약이라고 하며 앉아있는 것은 흡연과 같다며 꾸짖었다. 못 걷는 것이 아니라 걷지 않아서 아픈 것이다. 알프스는 유럽의 주요 강들의 발원지로 극지 기후와 고산 초원과 빙하가 펼쳐져 있고 유럽대륙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문화와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어 뭇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프스 = ALPS 라는 오류로 단순한 바다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긴 삶의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 오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 진리는 침묵시킬 수 없다.

 우주는 과학에 인문학적 요소를 결합시켜 설명하는 것이다. 변화 혹은 흐름은 덧없음이 아니라 삶의 다른 무늬일 뿐이다. 알프스 고원 초지에는 여름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고 있다. 서로 어우러져 한 다발의 꽃으로 뭉텅뭉텅 카메라 앵글 속으로 파고든다. 알프스를 걷고 또 걷는 걸음마다 야생화가 ‘나도’ 하며 바장거린다.

약력 : 2013년 수필시대 등단,

前 한국전력공사 근무

공동수필집 『해국』

알프스(강정숙 수필원고).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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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

트레킹의 천국에 다녀오셨군요.
알프스가 영원하도록 일상을 트레킹으로 해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