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오천유적지, 이천동석불, 봉정사, 태사묘, 안동포... '선비정신'의 고장, 안동은 곳곳에 문화재와 토산품이 숨어 있는 도시 자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다. 안동은 특유의 향토음식이 많아 별미여행지로도 제격이다.헛제사밥과 안동간고등어가 유명하다. 허투루 만든 제례음식에서 유래한 '헛제사밥'의 정갈하게 담백한 맛도 좋고, 간간한 맛으로 밥맛을 돋우는 '안동간고등'도 별미다. 옛 빛의 아름다움이 있는 그 곳에 가면, 안동 토속음식의 깊은 맛이 있어 여행길이 풍요롭다.
문화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안동으로 들어서자 기세가 등등하던 장마비가 잦아들면서 자욱한 안개가 구름 처럼 나지막이 산허리 아래로 드리운다. 마치 신비로운 '전설의 고향' 에라도 온 듯하다. 밤새워 내리던 장 마비가 오전 내내 이어진 터라 여행객들의 발길이 듬성한 틈을 타 안동의 향토 별미인 헛제사밥과 안동간 고등어 취재를 위해 안동댐부근 월영교로 향했다. 장마비속에 찾은 월영교는 풍만하게 피어오른 물안개가 신비함을 더한다. 지난 4월에 문을 연 안동의 새로운 관광명소인 월영교 맞은편에 헛제사밥을 전문으로 하는 '까치구멍집'과 '민속의 집'이 있다. 하회마을이나 임하댐 부근 식당에서도 헛제사밥을 맛볼 수 있지만, 안동댐 헬기장 맞 은편에 나란히 붙어 있는 '까치구멍집'과 '안동 민속 음식의 집'이 유명하다. 안동시에만 헛제삿밥을 파는 식당이 30∼40곳 된다는데, 전문점은 이 두 곳뿐이다. 안동 민속음식의 집은 조계행 할머니가 1978년 헛제사밥을 처음으로 메뉴에 넣어 상품화시킨 곳이고, '까치 구멍집'은 그 다음 해 헛제사밥 전문 음식점으로 문을 연 집이다.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지구의 보존 가치가 있는 집들을 지난 1976년에 안동 민속박물관 옆 민속촌으로 이전했는데, 안동시에서는 이 집들을 임대해 주고 안동 향토음식점으로 활용토록 했다. 그 가운데 한 집 을 맡은이가 조계행 씨고, 안동에서 30년 가까이 음식점을 하면서 다진 손맛을 바탕으로 헛제사밥을 향토음식으로 처음 내놓았다. 조계행 할머니(78세)는 지난 1994년에 식당을 아들 부부에게 맡기고, 하회 마을 입구 탈박물관 건너편에 '옥류정'이란 헛제사밥집을 차렸으나 연로한 관계로 지난해 5월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현재 '안동 민속음식의 집'은 하회별신굿 탈놀이 기능보유자인 이상호(인간문화재) 씨와 부인 방옥선 씨가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안동 민속음식의 집'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전명자 씨는 "헛제삿밥은 제사음식이 그러하듯 고춧가루, 마 늘, 파 등 자극적인 양념을 쓰지 않아 구수하고 담백해 외국인들도 좋아한다." 며 "나물도 조선간장, 깨소 금, 참기름으로 무쳐내 각각 고유의 맛이 살아있고 깔끔하다"고 소개한다. '까치구멍집'은 안동을 대표하는 향토명물 맛집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까치 구멍집' 이란 이름은 옛 건축양식에서 따온 말. 까치 구멍식으로 지어졌다 해서 붙은 이름인데, 임하 댐건 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민속촌으로 이전했다. 굴뚝이 따로 없이 부엌 연기가 방벽을 거쳐 천장을 통해 지붕의 양쪽 구멍으로 흐르게 돼있으며 봉창이 없는 게 특징이다. '까치구멍집' 집터와 집은 민속촌에 원 형보존돼 있고, 2001년부터 안동댐 월영교 앞에서 영업중이다. 까치구멍집 주인 서정애 씨는 헛제사밥 맛에 대해 "제사 음식답게 재료를 고급으로 쓰고 제사를 지내는 정성으로 만드는 게 비결" 이라고 말한다. 두집다 야외박물관에 있을 때는 나물 대접, 각종 전(煎)과 적(炙)을 하나씩 담아 내놓았다. 그러다 지금의 장소로 옮긴 뒤부터는 안동식혜와 탕평채, 청포묵, 떡, 멧국수 등 다른 제사 음식을 추가해 '양반상'(까치구멍집)과 '선비상'(안동 민속음식의 집)이란 메뉴도 내놓고 있다. 나물그릇에 밥을 비벼 헛제사밥을 먹을 때는 고추장을 넣지 않고 깨소금을 넣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야 제 맛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음식점에서는 손님의 기호에 따라 고추장을 내놓기도 한다. 늦은 점심이라 허기진 탓도 있겠지만, 처음 먹어보는 헛제사밥은 눈 깜짝 할 사이에 한 그릇 뚝딱 해치울 정도로 꿀맛이다. 무나물, 취나물, 고사리, 콩나물, 도라지, 배추 등 6가지 나물이 들어있는 대접에 밥을 넣고 조선간장과 탕국의 국물도 두어 숟갈을 붓고서 잘 비벼 먹은 그 맛이란.. 한 숟갈, 두 숟갈 먹을수록 나물들의 풍미가 그윽하고 고추장으로 비벼먹는 맛과 달리 담백하고 구수하다.
제삿밥 핑계 대며 몰래 먹던 맛, 악의 없는 거짓음식 치레 왜 헛제사밥인가? 어디서 유래된 이름인가. '헛' 이란 접두어가 '가짜'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니, 제사를 지내지 않고 제삿밥처럼 해먹는 밥이라는 정도의 추론은 누구나 가능하다. 늦은 제사를 올리고 나서 음복을 겸해 허기를 달래려고 상에 올랐던 각종 나물로 밥을 비벼먹었을 때의 그 맛을 잊지 못해 만들었음직하 다. 특히 유교문화가 발달된 '양반마을' 안동에서 헛제사밥이 생겨난 건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안동사람들에게 전해들은 헛제사밥의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있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유명 서원이 많 은 안동지역 유생들이 쌀이 귀한 시절, 제사음식을 차려놓고 축과 제문을 지어 풍류를 즐기며 허투루 제사 를 지낸 뒤 제사 음식을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보편적이다. 일부의 주장에 의하면 제사를 지낼 수 없는 상민들이 쌀밥이 먹고 싶어 그냥 제사음식을 만들어 먹은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최홍년(崔汞年)의 <해동죽지(海東竹枝)>(1925년)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제사를 지낸 음식으로 비빔밥 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제사밥을 먹지 못하므로 제사음식과 같은 재료를 마련 하여 비빔밥을 먹는데 이것을 헛제사밥이라 한다. 안동에서 맛본 헛제사밥은 제사음식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음복상과 흡사하다. 제사에 사용되는 각종 나물 한 대접과 전(煎)과 적(炙)이 한 접시씩 나온다. 특히 산적에 간고등어와 상어가 들어가는 것이 특징. 여기 에 탕은 어물로 끓인 어탕, 채소로 끓인 채탕, 쇠고기로 끓인 육탕이 모두 섞인 막탕이다. 쇠고기, 오징어, 북어, 무, 다시마, 버섯, 상어 등을 넣어 끓인 탕은 맛이 담백하고 깊어 안동지방의 고유한 제사음식 맛을 느낄 수 있다. 헛제사밥을 먹을 때 함께 내오는 '안동식혜'와 '안동간고등어'도 대표적인 안동의 토속음식이다. 안동식혜는 지금도 안동과 의성 등 안동권에서만 먹는 독특한 향토음식이다. 불그스레한 국물에 자잘한 무가 떠있는 음청류로, 숟가락으로 떠서 먹는다. 단맛의 국물이 많은 감주계 식혜와 달리 끓이지 않으며, 얄팍하게 썬 무와 엿기름 우린 물, 생강, 고춧가루를 넣고 삭혀 만든다. 일반적인 식혜가 단맛의 음청류지 만, 안동식혜는 무와 고춧가루물이 들어가 시큼하고 매운 맛과 함께 단 맛이 남는다. 이 곳 출신들에겐 겨울철이면 살얼음이 살짝 낀 식혜를 떠먹던 맛이 생각날 정도로 인이 박힌 맛이라는데, 처음 맛을 본 탓인지 영 어색하다. 헛제사밥에 상어와 함께 산적으로 나오는 간고등어도 짭짤한 맛이 입맛을 당긴다. '안동간고등어 양반밥상'에 가면 다양한 간고등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월령교 맞은편에 헛제사밥집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 찾기도 쉽다. (주)안동간고등어에서 직영하는 곳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일 계획이란다. 간고등어로 찜, 구이, 조림, 쌈밥 등 다양한 요리를 내는데, 의외로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난다. 간고등어구이 한 쪽을 뚝 떼어 입에 넣으니, 비린내는 간데 없고 짜지도 싱겁지도 않으면서 쫄깃쫄깃한 육질과 담백한 맛이 깊이 스며든다. 안동간고등어 조병규 상무에게 '쌀뜨물에 담가 짠맛을 뺀 것 아니냐'고 묻자 '그냥 물로 한번 가볍게 씻어 낸 후 그대로 구우면 먹기 알맞게 간간하고 고소한 맛이 난다'고 대답한다. 조병규씨 설명에 따르면 이 곳 에서 맛본 간고등어는 안동 전래의 오리지널 맛과 조금 다르다. 간고등어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흔히 '독간잽이'로 불리는 원래의 자반은 부패 직전의 고등어에 소금을 듬뿍 친 것. 장기 보관에 좋지만 한 토막으 로 밥 두 공기를 비울 만큼 너무 짜 60년대 이후 자취를 감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