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금
오전에 가족들과 같이 산에서 밤을 주어 농협과 택배로 판매를 하였다. 1시에 하동고려페이트 사장에게 제각을 보여주고 페인트공사 견적을 받았다. 본채 아래채 전부는 850만원이고 본채만은 650만원인데 에누리 없다고 한다. 악양 화개 여러곳의 제각과 제각 아래 변효종의 새로 짓는 집의 페인트도 했다고 한다.
29일.목
오늘은 어머님 한글학교에 가시는 날이다. 오전에 친구 손창욱이가 연락이 왔다. 3일전에 농장관리 때문에 왔다고 우리집에 온다고 했다. 어제 주은 밤을 농협에 주고 오니 조금 있다가 친구가 왔다. 오전에 정원벤치에서 차를 마시고 고구마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오후에는 3가족이 산에서 밤을 주었다. 6시경에 서울 이모님이 오셨다고 연락이 와서 집에 왔다.
28일. 수
오전에 하동도서관에 책 대여한 것 반납하고 블루 스퀘어를 대여하여 왔다. 오후에 산에 밤을 온 가족이 가서 주었다
27일. 화
6시 30분 발인을 하여 포항화장장에서 화장을 한 후 밀양 납골당에서 유골을 납골한 후 부산을 거쳐 하동으로 와서 주차장에 주차한 트럭을 타고 악양 집에 오니 4시 30분이 되었다. 연로하시고 병이 있어서 오래동안 병원생활을 하신 장모님을 천국으로 잘 환송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앞으로 이세상에서 장모님을 더 이상 뷥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장례를 위하여 처제들 동서들 조카들 인규가족들 진규가족들 모두 고생이 많았다.
26일. 월
9시에 입관예배를 드렸다. 내가 가족대표로 기도를 드렸다. 인규가족이 왔다.
하루 내내 상주로서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이했다.
김광목사와 같은 노회목사님들이 단체로 예배를 드렸다.
11시 경 서울있는 안철이 왔다. 그래서 숙소인 처남집에는 12시 넘어 들어갔다.
25일.일
11시 예배를 드리고 밤을 농협에 주고 택배로 주문받은 것 보내고 장모님 장례를 위해 하동서 1시 30분 버스로 부산을 거쳐 포항에 도착하니 7시가 되었다. 택시를 타고 시티장례식장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진규네가 먼저 도착했다. 저녁을 먹고 나는 일찍 장모님 댁에 가서 쉬고 잠을 잤다.
24일.토
오늘은 어머니와 아내와 같이 오전.오후 산업에 밤을 주었다. 산에서 일할 때 6시 24분에 장모님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모님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평생동안 고생하셨다. 노년에 교회에 다니시고 포항에 살면서 평안함을 찾으셨고 치매가 와서 병원생활을 하시다가 89세로 소천하셨다. 장례는 4일장으로 하기로 했고, 포항에는 처남과 김광옥 목사 홍병희 박사가 있어서 우리부부는 내일 오전예배를 드리고 포항을 가기로 했다.
정권이 형님이 제각수리 진행사항을 전화로 문의 하셨다. 그래서 페인트 업체 선정중이라고 말씀을 드렸다.
23일.금
오늘은 어머니와 아내는 오전.오후 산업에 밤을 주었고, 나는 오전만 밤을 줏고 오후는 면사무소에서 하는 임업직불금 지급에 대한 교육을 들었다.
22일.목
오늘은 오전.오후 산업에 밤을 주었다. 밤을 주는 일은 할 때 집에서 고르는 일을 포함하여 하루 12시간을 일은 한다. 3식구가 일을 하는데도 버는 돈은 남의 일 하는 남자 보통인부 하루 인건비인 14만원도 못 버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일 하지 않고 집안일을 하는 이유는 농장을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부들의 이런 마음이 우리나라 농촌이 존재하고 도시 사람들리 우리 농산물을 먹게 되는 것 같다.
21일.수
하동에서 7시30분 버스로 부산을 가서 10시 포항가는 버스로 포항에 도착하여 2시에 김광옥 목사와 큰 쳐제와 홍박사를 만나 장모님을 뵈었다. 산소호흡기로 호흡을 하는 상태인데 아내가 말하니 대답은 하나 눈을 뜨니 못하고 말도 못했다. 그래도 호흡과 표정은 좋았다. 하나님 나라에 편안하게 가실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이것은 아내와 나와 김목사와 홍박사와 처제 모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장모님을 편안한 마음으로 하늘나라로 보낼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좋았다. 4시 40분 차로 부산에 가서 7시 하동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9시 30분이 되었다. 내일이라도 장모님 소천소식을 들을 것 같아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20일.화
아침밥 먹기전 아침에 창욱 친구 농장의 밤 익은 상태를 조사하여 친구에게 전화로 알려 주었다. 약 7주일이 지나야 익을 것 같다고.
오늘은 오전.오후 아내,어머님, 나 모두 산에서 밤을 주었다. 오전과 오후 농협에 가서 팔았다. 영미가 밤 주문을 받아서 택배로 10키로를 보냈다. 송연고모님에게도 6키로를 보냈다.
19일.월
태풍이 온다고 하여 걱정을 조금했는데 저녁에 바람만 좀 심하게 불고 피해없이 지나갔다.
오전 오후 산에서 밤을 주었다. 특히 오전에는 어머님이 도와 주셨다. 오후에는 한글학교 그림그리는 수업을 고전면에서 하여서 그 곳에 가셨다.
제1콜옵션도서의 수정 등 이상사회건설사업의 진행이 농사일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
18일.일
오늘은 어제 주은 밤을 농협에 갖다주고 교회에서 예배만 드리고 쉬면서 책만 읽었다.
대신 어머님과 아내는 아침부터 밤을 고르느라고 고생했다.
포항있는 체제에게서 장모님 상태에 대한 소식을 전해왔다. 나이가 많고 지병 때문에 1주일 내에 천국에 가실 것 같다고. 아내가 이때문에 마음이 바쁘다. 그래서 밤 줏는 것을 서둘고 있다. 아내는 큰 딸이고 큰 며느리라서 짐이 크다. 특히 농사일을 나 보다 더 열심히 하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어머님 모시고 내 병 관리하고 ... 정말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쉴 틈이 없다. 4아이 할머니이고 64세라서 좀 편안히 살 나이인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평생동안 고생만 많이 시켜서 정말 미안하다.
17일.토
아침에 아내와 같이 장인묘에 벌초를 했다. 추석전에 했지만 장인묘에 참배를 겸해서 했다.
아침밥을 먹고 어머니,아내와 같이 산에 밤을 주으러 갔다. 10경 정수형님이 전화를 하셔서 제각에서 만났다. 제각수리에 만족해 하시면 도색은 벽과 천장 뿐만 아니라 나무도 전문회사에 맡겨서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러면 제각이 새것과 같아지면서 앞으로 30년 동안 수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문중의 가장 큰 일은 제각보수인데 도색에 돈이 많아 든다고 해도 효과에 비하면 작은 돈이 되기 때문이다. 형님을 보낸후 산에가서 밤을 실고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도 밤을 주었다. 오늘은 식구들 모두 힘든 하루였다.
16일.금
6시 50분 정도에 제각에 도착했다. 아직 미장기사가 도착하지 않았다. 마루보수한 부분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밑에 큰 블록+벽돌로 밭침을 했다. 그러는 중에 기사가 도착했다. 오늘 기사가 한일은 아래채 기둥보완과 각 벽의 밑부분에 시멘트를 하는 것이다. 또 제각 외부 천장부분의 회가 떨어지려는 부분을 시멘트로 교체를 하는 것이다. 또 마루 밑에 세멘을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 하다 보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비록 일찍 일을 마쳤지만 일을 당초 기대 보다 많이 하여서 2일 인부임 50만원과 점심값 1만원을 더해 51만원을 통장으로 입금했다. 기사가 간 후 제각 마루와 축대를 청소를 하고 장비를 챙겨서 집에 두고 산업에 가서 아내가 주은 밤과 어머니가 자를 토란대를 싣고 왔다. 그런 후 밤을 농협에 갖다 주었다.
아내와 어머니는 점심 먹고 3시에 동청에서 하는 건강체조에 가고 나는 집에서 쉬었다.
정수형은 내일 오전에 제각 일을 보러 온다고 한다.
15일.목
6시 30분 정도 제각에 가니 미장기사가 사다리를 벌써 갖다 놓았다. 7시 정도 되니 미장기사가 세멘트반죽용 사다리와 믹서기와 전선줄을 가지고 왔다.
미장기사가 마루위 벽 회를 벽에 고정이 잘 되어 있어서 전부 제거하지 않으면 세멭트하는 부분과의 사이에서 금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벽의 회를 완전히 제거했다.
오늘과 내일은 제각수리일 때문에 산에 밤 줏는 일을 못한다. 그래서 작은집 제수씨가 내일까지 산에서 밤 줏는 일을 도와 주기로 했다.
오늘 미장기사는 정말 많은 일을 했다. 내일 할 일까지의 90%을 했다. 그래서 내일은 오전만 해도 미장일을 마친다.
그러면 벽이 마를 때 까지 기다렸다가 약 1개월 후에 페인트를 칠하고 마루 샌딩을 하고 오일스텐을 칠할 것이다.
14일.수
아침부터 제각 수리 일을 했다. 미장기사가 바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제각 마루 위 벽의 회와 제각 내부의 보수할 부분을 회를 벗겼다.
아침밥을 먹고는 산에서 밤을 주었다. 오후에는 밤을 줏지 않고 쉬다가 제각에서 제작 오른쪽 부억 위 벽의 회를 벗겼다. 그리고 미장기사에게 미장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고 하는 내일 일하러 온다고 했다.
13일.화
오늘은 나는 밤을 줏지 않고 아침부터 제작수리하는 일만 했다.
아침에는 대나무와 풀이 나서 붕괴가 된 제각축대수리를 위해 나무뿌리를 파내고 세멘공글을 위해 돌을 다시 쌓고 채웠다.
또 필요성이 없게 된 윈쪽 부억을 축대로 되도록 나무와 풀뿌리를 파내고 돌을 쌓고 채웠다. 또 정환이가 와서 마루수리할 부분의 나무판을 아주 힘들게 뜯어냈다. 또 레마탈 20포를 화개철물점에서 구입해서 쌓았다. 또 벽의 시멘트작업과 페인트작을 위해 아래쪽 문부분을 비닐로 가리고 벽 일부분의 회를 떼냈다.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할 것이다. 그러면 미장이 작업을 위한 준비를 다 하는 것이다. 오늘은 작년 우리집을 수리할 때와 같이 힘들게 일했다.
제1콜옵션도서 2권의 9월1자 수정분 제1회독을 하였다. 앞으로 한번더 읽고 100세트 제작을 하여서 418번글의 공문을 이용하여 세상지배세력에게 후불제구매용으로 발송하고 서울대 기숙사에도 후불제구매용으로 배포를 하고 이상사회건설후원자들을 초빙하는 일을 시작으로 사업을 시작할 것이다.
12일.월
오전과 오후 2번 산에서 밤을 주었다.
6시경 제각에 수리할 도구를 가져다 두고 먼저 윈쪽 모서리 축담 무너진 곳 보수를 위하여 나무뿌리와 풀뿌리 제거를 한 후
세멘트공글을 하도록 돌을 쌓았다.
내일 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미장과 페인트칠을 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해야 한다.
11일.월
인규가 어제 4시30분에 서울출발을 했는데 새벽 3시에 도착했다고 한다. 모두 고생이 많았다.
지혜아빠가 9시30분차로 서울로 갔다.
11시 예배를 드렸다.
제각수리를 위해 미장이 김정모씨에 전화를 하여서 제각을 보여주고 견적을 받았다. 2일이면 되고 레미탈 20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루 25만원에 하기로 했다. 내가 시멘트 미장을 위해 벽 회 철거등의 일을 사전에 해 주기로 했다.
마루수리를 위해 정환이 동생에게 마루밑 철제프레임 공사견적을 받았다. 20만원에 하기로 했다.
페인트 18리터 2통과 스텐오일 4리터 2통을 사기로 하여 전체 수리비용이 1,388,000원이 나왔다.
정권이형님과 정수형님에게 견적보고를 하니 정수형님이 수리비 140만원을 내 통장에 보냈셨다.
이제 벽 회 철거하는 일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10일.토
오늘은 추석이다. 날씨가 좋다. 올 추석은 작년과 달리 철이 늦어서 밤과 고구마의 수확이 늦다,
아침에 운동겸 뒷밭의 감나무에 비료를 주었다. 그런후 작은집 쪽 감나무 밑에 풀을 에취기로 베고
집뒤의 금송을 가리는 옆집의 산수유나무 가지를 기계톱으로 베었다. 그런후 집안의 새로 만든 화단에 심은
옥수수대로 베었다.
아침밥을 먹고 정환이와 인규, 준학, 다은, 정철이 동생과 같이 산 묘소에 참배를 하였다.
점심을 먹은 후 정철이 동생과 꽃메 벌초를 갔다. 아무도 주변에서는 벌초를 하지 않아서 길을 만들면서 묘에 갔다. 이 과정에서 동생이 싱크홀에 빠져서 발목이 큰 상처가 났다. 그만하기 다행이다. 앞으로서 꼿메 증조부모님 벌초가 점점 어려워진다.
인규가 4시30분에 서울로 출발을 했다.
9일.금
아침에 큰손자 준학이 자전거 탈곳을 위하여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같이 놀았다.
아침밥을 먹고 준학이 가족과 동정호 공원에서 놀았다.
점심을 먹고는 큰동생과 득재아재와 같이 제작에 가서 제작수리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를 하였다.
정수형님이 전화를 해서 제각에 같이 가서 수리 방법을 논의 하였다.
먼저 미쟁이 일을 한 후 페이트칠을 해야 마루수리를 할 수 있어서 미장과 페인트 작업부터 해야 겠다
준학이가 자전거를 페달을 앞뒤로만 젓과 306도 회전하는 것을 몰라서 준학이 아빠 인규가 혼내가면서 가르쳤는데도 못해서 내동생 정철이가 잘 가르쳐서 360도 회전을 하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준학이와 다은이 노래하는 것을 도와 주었다.
8일.목
동생 지혜아빠가 6시 20분경에 제수씨와 같이 집에 왔다. 인규도 자동차로 8시30분경에 도착했다.
7일.수
아침밥을 먹고 산에 가서 아내와 밤을 주었다. 양이 작아서 내일 줏는 것과 같이 농협에 주려고 창고에 보관했다.
추석을 위하여 아내와 같이 하동장에 갔다. 가는 길에 아내의 자전거 바퀴 튜브교체를 위해 앞 바퀴를 빼서 수리점에 맡기니
고장난 것 아니라고 하면서 심부만 교체하여 바람을 넣어 주었다. 심부 스페어도 공짜로 주면서 모든 것에 비용을 받지 않았다. 앞으로 자기집과 계속거래를 원한다는 표시이다. 나는 하동도서관에서 책 3권(새로운 가난이 온다. 최재봉의 메타버스 이야기. 초가속 파과적 승자들)을 빌리고 아내는 장을 보았다.
점심을 먹고 책을 읽다고 5시경 정권형님 할아버지 묘소 저번에 말벌 때문에 벌초를 못한 것 벌초를 마쳤다. 형님에게 사진을 보냈다. 집에 오니 쿠팡에 주문한 부억찬장에 부착할 렌지후드가 배송이 되어 어렵게 부착했다. 기존에 것과 부착방식이 달라서 공간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 후드보관 찬장문의 장석도 교체했다. 아내가 좋아 하였다.
6일.화
새벽이 되니 비가 그 쳤다. 태풍이 지나간 것이다. 다행이 태풍의 큰 피해는 없다.
아침밥을 먹고 산업가서 나는 감나무에 웃비료를 조금 주고 아내와 어머니는 밤을 주어서 농협에서 팔았다.
5일.월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하루내내 비가 내렸다.
윗채 부억의 화장실 문이 알류미늄+불투명유리로 되어 있고 오래되어서 미관이 좋지 않아서 아내가 나무색 쉬트를 붙여주기를 원해서 옆집에 안쓴다고 준 나무색 쉬트를 붙였다. 아내가 나무문을 새로 단 것 같다면서 좋아했다.
4일.일
아침에 자전거타기를 축지 체육공원까지 했다.
11시 예배를 보았다.
점심을 먹고 아내가 30년된 본채 부억 찬장수리하는 것을 도았다.
3일.토
9월1일에 제본을 요청한 책이 배송이 되었다.
제본비 43,000원 배송비 3,000원 내가 회사를 대신하여 결제를 하였다. 이 돈은 추후 회사에게 받거나
나의 개인적인 저술비용으로 처리할 것이다.
제각 마루수리를 위해 이순석 목수 친구에게 현장을 보여주니 전문한옥 목수에게 수리를 맡겨야 한다고 신흥에 있는 김종선이라는 목수를 알려주어서 전화번호부에서 전화번호를 알아서 전화를 하였고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남겼지만 응답이 없다.
그래서 내가 직접 김승래 목수 동생을 도움을 받아 수리를 해야 할 것 같다.
2일.금
중앙도서관에 신청한 제1콜옵션도서의 납본이 회사이름으로 정식으로 등록이 되었다.
그래서 비록 집단지성에 의한 업그레이용으로 10세트만 우선 출판을 하였지만 중앙도서관에 정식으로 납본이 되어서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대여를 할수 있게 되어 있다.
이로서 세계와 국가와 자본주의체제가 소비자들이 주인과 지배주주와 권력자와 경영자와 b2b사업자와 1인금융회사가 되는 민주적자본주의체제이면서 민주적주식회사와 민주적경제공동체와 이상사회로 재탄생시키는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는 설계도를 내가 최초로 발명하여 공개를 하였다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게 되어서
이것은 제2시민혁명의 전쟁을 위한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제1 전초기지를 건설한 것에 해당이 된다.
이사실과 책과 사업의 장점만 널리 알려지만 이상사회가 세계차원에서 저절로 건설이 된다.
또 이것은 이순신 장군의 대첩인 명량대첩에서 명량을 먼저 확보한 것에 해당이 된다.
중앙도서관 홈페이지 도서검색 화면
1일.목
새벽에 제1콜옵션도서 5.16 수정판을 8회 수정 후 유하에 최종수정을 위하여 제본을 인터넷으로 요청했다.
이 책의 고유번호는 14번으로서 앞으로 사업이 성공적으로 시작이 되면 nft상품으로 판매를 할 것이다.
1번 정도 읽고 약 100부 인쇄를 하여 먼저 418번글의 공문을 이용하여 한국의 지배세력에게 사업설명과 사업참여요청을 위한 후불구매용으로 발송을 하고 나머지는 서울대 기숙사 학생들에게 사업설명과 사업참여요청을 위한 후불구매용으로 배포를 할 것이다.
그래서 다음주 부터는 418번글의 공문을 보낼 공적사적 조직들의 주소를 파악해야 한다. 책의 인쇄와 공문과 책의 실제 발송을 지혜아빠가 하도록 하겠다.
오랫만에 아침에 운동을 위하여 자전거타기를 축지 체육공원까지 했다. 그동안 농사일로 자전거타기를 오랫동안 하지 않았지만 저녁에 동네야외 운동기구로 운동을 하여 다리힘이 자전거타기를 할 때 보다 더 쎄어져서 자전거를 탈 때 보다 더 힘들지 않고 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