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저 귀
如常 김 해 곤
나는 자식들을 많이 낳은 사람이다. 세 번 낳아 넷을 얻었다. 이것은 또 무슨 논법이란 말인가!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깃들어 있다. 원래는 셋을 낳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 본다. 총각 말년에는 베트남(당시에는 월남이라 했다)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파병을 많이 했는데 이른바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였었다. 남의 나라 전쟁에 가서 죽고 사는 것을 떠나서 사나이로서 전쟁 마당에 거서 총을 들고 싸우는 것이 의미도 크고 얼마나 멋있고 대단한가 말이다. 나는 자식이라도 낳을 때 띠라도 호랑이 띠, 용 띠, 말 띠를 만들어야겠다는 뜻을 세우고 말았다. 그렇다면 1974년에 첫 애를 낳아야 호랑이를 만들 수 있으니까 73 년도에는 꼭 결혼을 해야만 했다. 72 년도부터 바짝 서두르기를 시작했다. 밤이고 낮이고 서울이고 지방이고 간에 선 볼 자리가 있다면 찾아갔다. 그렇지만 어디 처녀들이 나만 기다릴 것이며 또 본다고 다 나한테 오겠는가. 초조해하고 있는 판에 내 조건에 맞는 자리가 있다길래 밤 10 시에 억지를 부려 찾아갔다. 웬만하면 해야 한다고 다짐을 하고 4 개월 교제해 본 후에 그야말로 결혼을 하고 말았다. 1973 년 4 월 12 일이다.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어느 사람은 그렇게 급했으면 연애라도 해서 편하게 짝을 만들 일이지 어렵게 사느냐고 할 지모르겠지만 당시의 남자들은 다 산업의 역군들이어서 별을 보고 출근하여 별을 보고 퇴근하는 데다 거기에 야간작업까지 하는 날이 허다하여 그럴 시간이 없었다. 눈치 빠른 총각은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내 조건에서는 함부로 아무 데나 들이댈 조건도 못됐었다. 그건 그렇고 하여간에 어찌어찌해서 아내가 신혼여행에 맞춰 임신을 해 주는 덕분에 소위 허니베이비를 1974 년 2 월 20 일 새벽 4 시 30분에 산부인과 병원 옆에 있던 우리 교회 새벽기도 종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해서 첫아들이 태어났다. 계획대로 맹호가 우리 집에 창설이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이때부터 터지기 시작하여 계속 이어져 갔다. 아이가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일주일을 먼저 밀고 나와 버린 것이다. 거기다가 아내는 충청도 출신이어서 준비가 안 됐는지 기저귀가 없냐고 간호사가 뛰어 왔다. 새벽 3 시에 진통이 와서 놀래가지고 급한 김에 상무님 전용차를 모는 기사를 깨워 그 차를 타고 급히 오는 바람에 겨를이 없었겠다 싶어 따질 것 없이 시장으로 뛰었다. 다행히 시장이 멀리 있지는 않았지만 개장 시간에 맞게 간호사의 재촉이 있었기에 그리 오래 뛰지는 않았지만 혹시 기저귀가 없으면 큰 일이나 일어날 것처럼 심장까지 뛰었다. 그 후로는 광목을 많이 사다가 기저귀를 만들어 놓고 번갈아 채워 가면서 첫아들을 키워가는 것을 보아왔다. 겨울에는 거실에다 연탄 난로를 피워놓고 말려가면서 사용했다. 드디어 둘째가 태어날 때는 1976 년 1 월 6 일있은데 다행이었다. 일주일만 일찍 나왔어도 청룡부대는 물 건너갈 뻔했던 것이다. 막 출근 하려는데 진통이 와서 급히 옆집 할머니를 모셔와서 아이를 받아 달라고 부탁드렸다. 땀을 빗줄기처럼 흘리며 고통을 이겨내는 아내의 머리맡에서 만세를 부르는 자세의 두 팔을 잡고 있으면서 남자로 태어난 것의 다행함을 알았다. 딸이다. 여군이면 어떠냐 용띠면 됐지 ~. 기저귀 걱정은 필요가 없었다. 첫째의 부산물이 쌓여 있으니 말이다. 아내는 나의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김없이 또 임신을 해주었다. 첫째도 둘째도 소홀히 했던 병원 검진도 중간중간받는 것 같았다. 이상이 없단다. 숨소리도 튼튼하단다.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오후 느지막하게 언락이 왔다. 출산 조짐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부리나케 퇴근을 앞당겨 집으로 와서 지시하는 대로 짐을 챙겨 택시에 싣고 병원으로 달렸다. 산후 대기실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가 나오라기에 아내는 분만실로 들어가고 나는 문 앞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간호원이 하얀 수건에 싸인 아기랄 수도 없는 꿈틀거리는 핏덩이를 안고 나오면서 내 얼굴에 바싹 들이밀면서 " 애기가 참 이쁘네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전문가? 의 말이니 그렇겠거니 하고 미소만 보였을 뿐 내색은 안 했다. 첫째와 둘째의 자라온 이력을 보면 알겠거니 했다. 애기를 칭찬하고 지나가는 간호원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것은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 어! 애기가 또 나오네? " 분명히 아내의 분만실에서 나오는 의사의 말소리가 맞다. 생각도 못했고 예상도 안 했고 꿈에도 없던 일이 아닌가. 연이어 나오는 아내의 외마디 고함소리가 소름을 돋게 하고 만다. " 액?! " 누구보다 더 놀라고 만 것이다. 다른 애들보다 더 병원도 자주 와서 중간 검진도 해왔고 신경을 덜 쓴 것도 아닌데 쌍둥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다. 집안 내력도 없는데 우리 형제에서만 셋이서 쌍둥이를 낳다니 ~. 큰 누님이 딸 쌍둥이, 둘째 형님도 딸 쌍둥이, 그리고 나까지 쌍둥이를 그것도 아들이 둘이라니 ~ 참으로 기가 막혀 놀랄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한참을 놀랜 상태로 어안이 벙벙한데 다른 간호원이 수건으로 돌돌 말아진 아기를 내 얼굴에 또 디리 밀고는 " 아기가 튼튼해요 " 보니 먼저 나온 녀석보다는 좀 더 통통한 것 같기는 했지만 거기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이왕 벌어진 일이니 마음부터 추슬러야 했다. 그렇다. 계획대로 셋째로 말馬이 태어난 것이다. 백마부대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한꺼번에 둘이라니. 맹호 청룡 백마를 나와 아내 사이에서 태어나게 하고 만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생각지도 않은 일을 저지르고 말았으니 기쁨을 표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급히 아니 당연히 짐을 싸다 보니 기저귀를 하나 만 달랑 넣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나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느 누가 쌍둥이 일 줄을 알았겠으며 집에 오면 수북이 쌓인 것이 기저귀인데 급한 대로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원래의 뜻이 하나였으니 당연한 처사이리라. 이론은 그렇지만 따질 때가 지금 아니다. 기저귀 하나를 급히 구하는 것이 작금의 해결책이다. 또 뛰어야 한다. 1978 년 12 월 15 일에 태어난 또 하나의 말馬이 아비의 바짓가랑이에 먼지를 일으키게 하고 만 것이다. 이런 녀석들이 지금은 어언 40 대 중반이 넘어 둘이 한 몸처럼 공동대표가 되어 주식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자식들을 키우면서 기저귀도 구했으리라 생각하니 참 세상이란 돌고 도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또한 성장해 가는 제 자식을 쳐다보면서 제 자신들이 살아온 과정도 짚어보고 저를 길러 낸 부모의 생각도 해보는지 ~ 까지는 염두에 두지 않기로 했다. 안해도 되는 생각을 해서 괜히 부스럼 만드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용기도 때로는 필요하다.
2023. 0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