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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조산의 하루
仲安 / 조상진
천안에 왔다. 그냥 들리러 온 것이 아니라 친구 따라 살려고 온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그 당시에는 의미의 시작점이 서울의 강남으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한 나라 수도의 서울에서도 잘 개발되어 부를 누리는 지역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보고 싶은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원래의 강남은 중국 남송 시대의 양자강 이남지역을 말한다, 여하튼 서울의 강남은 아니더라도 충청도에서 대표적 도시라는 점은 공감이 가능하므로 천안의 내력을 훑어보기로 하였다.
나는 산을 좋아하는 마니아라고 자부한다. 따라서 우선 산세를 관조해 보기로 하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산은 태조산이었다, 산명이 특이하고 시내에 가깝기 때문에 첫 산행 코스로 잡았다. 태조산은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었고 안내표시도 잘 되어 있다.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를 앞세워서 주차장에서부터 정상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였다, 때는 늦봄인지라 따사한 햇볕의 눈부심도 만만치 않다. 선글라스 생각이 간절하다. 지난달 대천해수욕장에 갔다가 벤치에 놓고 온 이유로 오늘은 맨눈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까만 까마귀도 한마디 한다. 선글라스가 얼마나 비싼가요라고, 덩달아 날아든 산까치 한 쌍도 끼어든다. 둘이서 다정하게 올라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그런데 등산복이 비싼가요. 아차 천안에 내려올 때 이삿짐을 모두 갖고 오지 못했기 때문에 평상복으로 올라왔더니 아닌 게 아니라 걸음이 민첩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산까치는 이곳에서 터주대감으로 살고 있을 것이고 매일 찾아오는 수많은 등산객들을 관찰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선글라스 안 끼고 등산복 못 입은 사람이 우리 둘 뿐이겠는가마는 중요한 대목은 등산을 하고 있고 천안의 명산 태조산을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므로 기분은 상쾌하다. 진달래나무는 이제 낙화 상태로 분홍색 옷을 벗어버리고 연록의 새잎 얼굴을 내어 놓고 있다. 철쭉나무도 질세라 먼저 새잎으로 선을 보인 후, 붉은 꽃망울을 품고 있으면서 내일이라도 금방 새 얼굴을 자랑할 것 같은 기세이다.
소나무들은 푸른 잎가지들을 한껏 펼치고 있는데, 나는 세한도(歲寒圖)의 주인공이라고 스스로의 꿋꿋한 존재를 자랑한다. 일찍이 조선시대의 김정희는 인간세계의 변화무쌍한 세태를 지적하고자 하얀 눈밭에 서 있는 소나무 그림을 그렸다. 한여름에는 온갖 나무들이 풍성하여 서로의 존재를 밝은 태양 앞에서 과시하려고 애를 쓰지만 가을이 오고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하나 둘 옷을 다 벗어던지고 죽은 듯이 서 있다. 인간세계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권력이나 이권 앞에서는 너도 나도 나서지만 어려울 때는 서로 변절하는 경우가 많으니 좋을 때 어려울 때를 가리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며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김정희는 그러한 의리를 중요시하면서 사시사철 변하지 않고 푸르름의 충절을 간직하는 소나무를 선비의 상징으로 그린 것이리라.
더욱 힘을 내어 올라가니 언덕바지에 기와지붕의 정자가 나타난다. 나는 조선시대의 선비가 된 기분으로 어깨를 펴면서 팔자걸음을 흉내 내고 나무 계단을 오른다. 팔각형으로 만들어진 목재 바닥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걸터앉을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져 있으므로 일단 앉았다. 시조라도 한 수 읊조리고 부채질을 하면서 고관대작의 폼으로 흉내 내고 싶었으나 먼저 올라온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마음속으로만 만족할 수밖에 없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태조산의 내력을 실감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안내문들이 즐비하다.
천안이라는 지명이 고려 태조 왕건으로부터 지어졌다는 설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으므로 안내문구들이 새롭지는 않지만 마지막 후백제를 제압하기 위하여 이 산이 요충지가 되었다고 하니 군사들의 함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이 산 진입로의 마을이 유량동(留糧洞)이니 군사들의 군량미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는 의미가 된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탁 트인 언덕 위에도 팔각정이 서 있다. 부임한 사또가 행차하는 기분이 되어 누각에 오르니 천안 시내의 풍광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이 시간만큼은 내가 최고위의 자리에서 천하를 호령할 사람이 되었다. 이 산의 정상이므로 나의 머리 위에서 나를 내려볼 사람은 없다.
마루와 같은 바닥에 양반 자세로 주저앉아 배낭 속에 잠자던 김밥과 막걸리를 꺼내었다. 옛날 선비들이 즐기던 음식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그 시대에도 막걸리는 빠지지 않았을 것이리라. 쌀밥과 김, 당근, 시금치, 단무지가 고루 섞인 김밥은 현대적 진수성찬의 축소판이다. 때마침 시장기도 있었으니 그 맛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리오.
그동안 말이 없이 힘들게 따라만 오던 친구의 입에서 드디어 말문이 열렸다. 천국이 따로 있을까 하나님을 더 가깝게 바라볼 수 있으니 축복이 따로 있을까라고. 나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는 없으나 친구의 일설은 충분히 공감된다. 좀 더 확장해서, 단순히 생각해 보더라도 다리가 튼튼하므로 집을 나서서 대자연의 혜택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으니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과도 일치한다. 위장이 나쁘지 않으니 정상에서 먹는 음식은 꿀맛과 같다. 산중에서 스님들도 간간히 즐긴다는 곡차로서 막걸리도 한 잔 곁들이니 태조산 모두가 내 소유인 듯 호기마저 발동한다. 이 순간 이 시간만큼은 천당이 부럽지 않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 되었다. 청설모 한 마리가 검은 털실을 자랑하면서 또 한마디 건넨다. 쓰레기는 깨끗이 치우고 가세요. 올라올 때는 정상만 바라보고 걷다 보니 힘은 좀 들었지만 내려갈 때가 되니 아쉬우면서도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비교적 완만한 코스를 선택하였으므로 하행길은 편안했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경사도가 많은 지점에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뒤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이쿠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놀라서 돌아보니 30미터쯤 뒤따라오던 친구가 쓰러진 것이다. 모래가 섞인 비탈길이기 때문에 조심해서 내려오기는 하였으나 순식간에 미끄러진 것 같다. 혼자 일어나지 못하므로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는데 다시 주저앉아 버린다. 갑자기 헬기 구조요청을 해야 할 문제가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친구야 걸을 수 없겠나 하고 상태를 살펴보니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는다. 헬기를 동원하자면 문제가 커질 것 같고 자체적으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하여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발목이 아파서 걷지 못하겠다고 말을 한다. 그렇지만 나의 직감으로 큰 부상은 아닐 듯싶었고 일단 걸어 보자고 설득하면서 앞으로 이끌었다. 나의 어깨에 의지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보니 친구도 나에게 미안했는지 잠깐 쉬어가자고 말을 한다, 한참 동안 발목을 이리저리 흔들고 손으로 주물러 주었고 조금 후 걸을 수 있겠다는 말을 들으니 기적이 따로 없다. 그러나 내려가는 동안 쉬기를 수차례 반복함으로써 올라갔던 시간보다 두 배가 더 걸린 후에야 주차장에 있던 자동차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천만다행이다. 발목도 문제지만 엉덩이 뼈라도 다쳤으면 오늘의 태조산 하루는 최악이 되었을 터인데 말이다.
마지막, 집으로 돌아가는 지점에서 다시 한 번 문제없느냐고 확인한 후 친구와 헤어졌다. 그리고 혼자 다짐을 해본다. 오늘의 사고는 준비부족이 원인이다. 등산복, 등산화, 지팡이는 기본이요 필수이므로 다음 산행에는 반드시 갖추어서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야 하겠다고....
2. 성거산과 십자가
仲安 / 조상진
충청도는 백제시대에서 허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뿐만 아니라 백제의 최초 도읍지이었다는 설도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 근거로서 직산산성이 있고 지금도 그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산산성을 끼고 있는 산이 성거산이기 때문에 풍수적 산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또다시 발동이 걸린다.
성거산은 한자음으로 성(聖)이 거(居)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성스러운 존재는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가. 나는 간단한 등산장구를 챙기고 자동차에 몸을 실어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달려갔다. 종착지에 다다르자 자그마한 저수지가 나타나는데 팻말을 읽어보니 천흥지이다. 물 위에 반사되는 햇살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등산로 안내도에 성거산에 대한 구절을 본다. 나는 이미 태조산을 답사하면서 고려 태조 왕건에 대하여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었고 또한 어렴풋이 이 산의 성스러움의 주인공도 왕건일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으므로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도로변 한쪽에는 깊지는 않지만 계곡이 보이고 나에게도 관심을 가져 주세요라고 속삭이듯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천안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이러한 계곡도 있다는 정보 역시도 내 머릿속에 새롭게 입력된다. 한참을 오르고 보니 산허리에서 사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만일사라는 표지도 있다. 저 사찰 안에는 부처님으로 모시는 불상이 있을 것은 들어가 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산에는 부처님의 흔적도 있다는 말인가.
종교적 의미로만 본다면 왕건의 자취보다는 부처님의 기운이 더 성스럽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사찰 건물로 들어서기 전 다람쥐 한 마리가 반갑다는 듯이 앞다리를 비비면서 인사를 한다. 저를 따라오세요 이곳에 얼마나 많이 성스러움이 머물고 있는지를 알려 드릴게요.
하지만 나는 한시라도 빨리 오늘의 목표지 정상에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옆으로 발길을 돌리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한다. 능선에 따라 오르고 또 오르다 보니 이제는 시야가 넓어지고 눈요기거리도 많아졌다. 자동차로 들어올 때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들판과 큰 도로변에 세워진 공장들의 규모가 이 지역 생존권과 연결될 것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높이 오르는 새가 먹이를 더 차지한다고 했던가. 더 올라갈수록 더 많은 풍광들이 새로운 얘깃거리를 축적해주고 있다고 자족하는 사이에 드디어 정상에 도달했다.
백제의 도읍지로서 산성의 의미심장한 모습을 보려 했던 나의 기대는 어긋났다. 작년 가을에 말라 서 있던 억새들이 서로 엉켜서 산바람을 타고 흔들거리며 반겨줄 뿐 뚜렷한 역사적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성스러운 기운이시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소리 내어 물어보아도 대답이 없다. 혹시라도 나의 감각이 무딘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해보면서 어딘가에서 애타는 나의 모습을 보고 계실 줄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을 모았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본 후, 교신이 되었다는 나 스스로의 신호에 따라 하산을 시작한다.
올라올 때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얼굴을 알 수 없는 주인공의 묘지들이 한가롭게 나타난다. 높은 지역이고 전망이 넓은 묘지일수록 그 가문의 무게도 다르리라. 능선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 보니 비교적 큰 규모의 묘지가 하나 발견되고 좌우에 망주석이 세워져 있으며 비석과 상석으로 잘 갖추어져 있다. 묘지 앞을 바라보니 탁 트인 조망은 물론이고 산 아래 지점에 저수지도 흩어지는 지기를 막아주고 있는 형국이니 그야말로 풍수적 사상(四像)이 잘 조화를 이루는 명당 중 명당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 명당에 성스러움이 숨어 있다는 뜻인가. 여러 가지 상념들이 교차하는 사이에 하산이 마무리되어 갈 때, 오를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십자가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그리고 그 조금 위에 교회 건물이 외딴집처럼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기독교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지고 있었는데 문득 이 교회가 궁금해진다. 왜 하필이면 산속 입구까지 들어왔는가. 어떤 신도가 여기까지 교회를 찾아오겠는가 하는 궁금증도 발동한다.
나도 모르게 교회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교회문을 열고 들어갔다. 인기척을 들었는지 중년으로 보이는 여성 한 분이 나와서 나를 반기며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나님 뵈러 오셨지요? 저는 이 교회 목사입니다. 저는 성거산에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곳에서 복음을 전도하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또박또박한 말씨와 차분한 자세로 나를 대하는 모습에서 나는 순간 하늘에서 막 내려온 천사를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아 지나다가 한번 들려보았습니다. 저는 남자 목사님이 나오실 줄 알았는데 놀랍습니다. 더구나 이러한 산속에서 여성 목사님을 만나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아부를 했는가 싶지만 그냥 튀어나온 말이니 어쩔 수도 없다. 목사실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니 커피와 간단한 다과도 내놓는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나는 커피잔이 미끄러져 커피를 바닥에 쏟아버리고 말았다. 신성한 교회의 목사실에서. 왜 하필이면 이럴 때 나는 실수를 할까. 교회에 와서 헌금은 못할 망정 민망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평소에 나는 하나님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은 없었지만 이 마당에 빈말이라도 듣기 좋은 대답을 해야겠다고 순간적으로 입을 열었다. “하나님은 다른 어떠한 신들보다 최고 권위의 절대적 신으로 추앙하고 또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가 번쩍이는 머리를 짜내어 목사님을 위한 즉흥시를 만들어 낭송해도 되느냐고 제안을 했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동의를 한다. 나는 휴대폰을 열어 메모하며 간단하게 시를 만들었다. 그리고 읽었다.
“성거산 아래, 먼 거리도 아닌 산, 멀리 오르지 않아도 되는 산, 그 입구에 십자가 서 있네,
하나님의 성(聖)이 거(居)하나니, 예배소리도 조용하구나, 산 아래 지나는 사람들아, 갈 길 멈추고 예배당에 모이라, 그리고 천사가 간곡히 전하는, 기쁜 복음을 들을지어다.”
성거산의 성스러운 기운이 머물러 있다는 곳의 핵심이 산의 정상이라 생각하고 그 현장을 찾아가 보았으나 그 흔적도 없었고 불교사찰에서 혹시라도 그 존재를 찾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부처님은 신(神)이 아니고 해탈자로 추앙을 받고 있으므로 번지수가 아닌 것 같았다. 깊은 산속에 아무리 명당으로 자리하고 있다고 한들 결국 한 인간의 유골에 지나지 않으니 당연히 성스런 기운과는 거리가 있다.
오늘 산행의 끝자락에 만난 교회는 기독교의 성전이 만들어져 있고 실제 매주 예배와 경배, 찬송의 노래가 울리고 있을 것이니 하나님의 성령은 성거산의 먼 곳에 있지 않고 그 입구의 십자가가 서 있는 조용한 교회에 서려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현실과 신앙은 분명히 구별된다고 믿고 있는 나의 굳은 에고(ego)가 있기는 하지만, 믿음이란 개념도 각자의 신념에서 출발하고 또한 형이상학적 접근도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에게 위안으로 승화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의 확장으로 구원과 영생으로까지 보장된다는 또 하나의 굳은 믿음이 있다면 그것을 말려야 할 이유와 논거도 없어진다.
나의 즉흥시에 대하여 감동하는 듯 감사의 표시로 성경책 한 권을 덤으로 선물 받고 교회문을 나섰다. 나는 오늘 성거산 천사를 목격하고 마주 앉았었다.
3. 층 간 소음
仲安 / 조상진
아파트 주거의 유래는 썩 유쾌하지는 않다고 역사적으로 논의된다. 그 이유는 집단으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건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는 서구나 미주의 경우와 상당히 다르다고 본다, 아니 특이하다고 보는 견해가 더 어울릴 것이다. 물론 좁은 국토의 사정을 이유로 드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고대 로마제국은 전쟁에 필요한 군인들과 도시생활에 필요한 각종 공사 인력들을 점령지 노예들로 채웠다. 그들을 끌고 와서 집단으로 수용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당시의 귀족들은 넓은 농장을 소유하면서 식량과 식재료들을 생산하였고 농장지 중앙에 큰 저택 (villa)을 지어 살면서 전쟁이 발생하면 인력과 자금을 지원하였다. 그러나 용병으로 또는 노예로 끌려 온 많은 사람들은 저택에서 같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집단으로 한 장소에 거주하게 할 건물이 필요했는데 그 개념이 아파트이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물자와 장비가 충분하지 않아서 5층 이하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로마 시내에서 지금도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콜로세움의 건축물을 보더라도 그 당시 5층 높이 아파트 건립은 사실로 입증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 한국에서 초기의 아파트 건설도 5층 이하로 건설되었고 농어촌에서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들, 또는 자가 주택이 없는 도시 서민들을 위하여 최소한 작은 주거면적을 위주로 도시 외곽에 아파트를 건축하였던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우리 한국사회는 이제 도시 농촌을 구분하지 않고 신도시 건설이라는 구호까지 만들어 전국적으로 아파트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내 집 마련’의 꿈과 희망을 만들어 주었으니 누구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할까.
그러나 모든 일들은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옛날 우리의 부모들은 크든 작든 집터를 잡고 초가든 기와든 소박한 집을 지어서 특별하게 남의 눈치를 살필 필요 없이 뛰고 노래하고 귀여운 아들 손자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 가족이 큰 소리로 웃기도 하면서 보다 자유롭게 살아왔지만, 아파트라는 주민공동체 내에서는 문화적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외면적으로만 본다면, 아파트 단지의 멋진 수목 조경과 자동차 통행을 위한 아스팔트. 그리고 편리한 주차장과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또한 엘리베이터가 높은 층이라도 편하게 올려주고 내려주니 로마제국 귀족들의 저택이 부럽지 않은 것이다. 고층일수록 베란다 너머로 보이는 조망은 볼 때마다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우리 집의 전망은 아주 끝내 준다.”라고 친지 친척들을 불러들여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리라. 고급 아파트일수록 그 안에서 살다가 보면 아파트 전체가 모두 자신의 집터이고 잘 가꾸어진 조경은 마치 큰 전원주택을 소유한 존재로 착각도 들 것이다.
오늘은 일요일이고 시간이 좀 한가하여 13층의 34평 중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와 만나기로 하였다.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있는 조용한 카페에서 둘이 앉았다,
카페 창문을 통하여 15층 높이의 아파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왜 선생님은 우리 아파트로 이사 오지 않으세요? 우리 아파트보다 더 비싼 아파트에 사시나 보네요.”라고 비웃는 하다. 그렇다면 나의 눈초리가 그리 호감스럽지 못하게 보였다는 것인가.
“아 친구야 잘 지내나” 안부를 묻자 “응 요즘 머리가 좀 아프다. 위층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라고 답을 한다.
이어서 하는 말은, 그런대로 나는 참을 만한데 아내가 좀 민감한 성격이라서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위 14층에서 젊은 부부가 어린애들을 키우며 사는 것 같다면서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란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라고 묻자 “관리사무소에 소리가 나지 않게 조치해 달라고 전화를 수차례 했어.”라고 답을 한다. 그러나 관리소의 반응은 신통하지 않다고 한다. 중간에 끼어서 난처한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관리사무소에서 위층의 주민에게 주의를 요청하게 되면 오히려 신고자가 누구냐고 밝혀 달라고 역정을 낸다는 것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위층이 아래층에 내려와 항의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하니 감정싸움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는 친구의 말이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렇다면 친구야, 너의 손자손녀들이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게 되면 마찬가지로 아래층에서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나의 물음에 친구는 자신도 1년 전에 아래층에서 소음 피해를 신고했다고 하면서 관리사무소로부터 주의를 받은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손자들이 보고 싶으면 밖에서 만난다고 하면서 한숨을 토해낸다.
나는 아파트의 1층에 산다, 그래서 아래층에 피해줄 일은 없지만 나 역시 2층인 위층에서 나는 소음을 경험한다. 낮에는 의자를 끄는 듯하거나 나무를 툭툭 치는 소리가 들리고, 밤에는 침대의 매트리스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고 친구에게 들려주었더니 동병상련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파트 문화는 우리나라의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서구나 미주 등 자유와 민주적 의식이 선진화되어 있는 나라들은 개인 주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아파트 형식 말고 타운하우스라는 건축물도 생겨났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3층 높이로 옆으로 길게 늘어진 건축물이다, 타운하우스 역시 영국에서 아파트 대용으로 시작된 개념으로 보이므로 아파트의 원래 개념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의도가 깔린 부분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아파트 문화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단순한 주거공간을 넘어서 부의 증식으로 변질되었다고 단정하고 싶다. 한 편으로 보면, 잘못된 정부의 정책이 발단이 되었고 천박한 자본주의에 의한 건설 부분 투자가 주거공동체의 시민 정신을 흔들고 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 층간의 소음은 입주하기 전에 전혀 모르는 문제이었는가 하는 과제도 짚어 봐야 한다. 분양이득을 최대화하기 위하여 방음시설 설계를 소홀히 한 건설사의 욕심, 집단 주거장소의 예상 문제점을 착안하지 못한 정치와 정부의 무능, 일정공간에서 집단으로 주거하는 공동체 생활 중 발생할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한 입주자의 마음 준비, 그리고 층간 소음뿐만 아니라 흡연으로 인한 간접피해 등을 일괄하여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심을 키우도록 관리단과 관리주체의 노력 부족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복합되어 발생하는 현상들이 된다.
서구나 미주 선진국들이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 큰 이유는 사생활을 간섭받지 않기 위함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그 반대로 사생활의 간섭을 각오하고 입주하였다고 스스로의 책임을 추궁해도 할 말이 적을 것이므로 한 개인으로서 재산권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생활에서는 상대방을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는 의식을 성숙시켜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진정한 시민정신이라고 나는 외치고 싶다. 성숙한 시민의식 그것이 곧 천민적 민주주의와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또 한 번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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