襄公 4年(紀元前 569年)
四年春, 楚師爲陳叛故, 猶在繁陽. 韓獻子患之, 言於朝曰 : 「文王帥殷之叛國以事紂, 唯知時也. 今我易之, 難哉.」
사년춘, 초사위진반고, 유재번양. 한헌자환지, 언어조왈 : 「문왕수은지반국이사주, 유지시야. 금아역지, 난재.」
[解釋] 노나라 양공 4년 봄에, 초나라 군대는 진나라가 초나라를 배반하였으므로, 아직도 초나라의 번양에 머물고 있었다. 진나라의 韓獻子는 그것을 걱정하여, 조정에서 말하기를, 「주나라의 문왕이 은나라를 배반한 나라들로 주왕을 섬겼던 것은, 오직 시대형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진나라가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三月, 陳成公卒. 楚人將伐陳, 聞喪乃止. 陳人不聽命. 臧武仲聞之曰 : 「陳不服於楚, 必亡. 大國行禮焉, 而不服, 在大猶有咎, 而況小乎?」 夏楚彭名侵陳, 陳無禮故也.
삼월, 진성공졸. 초인장벌진, 문상내지. 진인불청명. 장무중문지왈 : 「진불복어초, 필망. 대국행례언, 이불복, 재대유유구, 이황소호?」 하초팽명침진, 진무례고야.
[解釋] 3월에, 陳나라의 成公이 죽었다. 楚나라 사람들은 진나라를 치려고 하였으나, 성공의 상을 듣고 그만두었다. 陳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초나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노나라의 臧武仲은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陳나라가 초나라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망할 것이다. 大國인 초나라가 예에 맞게 행동하는데, 복종하지 않는다면, 진나라가 대족이라고 하여도 무례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니, 하물며 소국임에랴?」라고 하였다. 여름에 초나라의 彭名이 진나라를 침략하였는데, 그것은 진나라가 무례하였기 때문이다.
穆叔如晉, 報知武子之聘也. 晉侯享之, 金奏肆夏之三, 不拜. 工歌文王之三, 又不拜. 歌鹿鳴之三三拜. 韓獻子使行人子員問之曰 : 「子以君命辱於敝邑, 先君之禮, 藉之以樂, 以辱吾子, 吾子舍其大, 而重拜其細, 敢問何禮也?」
목숙여진, 보지무자지빙야. 진후향지, 금주사하지삼, 불배. 공가문왕지삼, 우불배. 가록명지삼삼배. 한헌자사행인자원문지왈 : 「자이군명욕어폐읍, 선군지례, 자지이악, 이욕오자, 오자사기대, 이중배기세, 감문하례야?」
[解釋] 노나라의 穆叔이 진나라에 간 것은, 知武子의 빙문에 대한 답례였다. 晉侯는 향연을 베풀어, 肆夏이하의 세 곡을 쇠북으로 연주하였는데, 목숙은 배례를 행하지 않았다. 아공이 文王이하의 세 편의 시를 노래했는데도, 또한 배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鹿鳴 이하의 세 편의 시를 노래할 때는 편마와 배례를 행하였다. 그래서 韓獻子가 행인 자공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그대가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우리나라에 오셨기 때문에, 선군 이래의 향례를 행하고, 음악을 연주하여, 그대를 대접하였는데, 그대는 대악은 버려둔 채, 소악에만 거듭 배례를 행하니, 무슨 예입니까?」라고 묻게 하였다.
對曰 : 「三夏, 天子所以享元侯也, 使臣弗敢與聞. 文王, 兩君相見之樂也, 使臣不敢及. 鹿鳴, 君所以嘉寡君也, 敢不拜嘉? 四牡, 君所以勞使臣也, 敢不重拜? 皇皇者華, 君敎使臣曰, '必諮於周.' 臣聞之, '訪問於善爲咨, 咨親爲詢, 咨禮爲度, 咨事爲諏, 咨難爲謀.' 臣獲五善. 敢不重拜?」
대왈 : 「삼하, 천자소이향원후야, 사신불감여문. 문왕, 량군상견지악야, 사신불감급. 녹명, 군소이가과군야, 감불배가? 사모, 군소이로사신야, 감부중배? 황황자화, 군교사신왈, '필자어주.' 신문지, '방문어선위자, 자친위순, 자례위도, 자사위추, 자난위모.' 신획오선. 감부중배?」
[解釋] 그러자 목숙은 대답하기를, 「三夏는, 天子가 제후의 우두머리를 대접할 때에 쓰는 것으로, 제가 감히 참여하여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文王의 노래는, 두 임금이 서로 만날 때에 부르는 것으로, 제가 감히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鹿鳴은, 임금께서 저희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므로, 어떻게 감히 배례를 행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四牡는, 임금께서 저를 위로하는 것이니, 어떻게 감히 거듭 배례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皇皇者華는, 임금께서 저에게 이르기를, '반드시 여러 사람들에게 물어보자.'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훌륭한 사람을 찾아가서 묻는 것을 咨라고 하며, 친척에 대하여 묻는 것을 詢, 예에 관하여 묻는 것을 度, 정사에 대하여 묻는 것을 諏, 어려운 것에 대하여 묻는 것을 謀라고 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다섯 가지의 선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감히 거듭 배례를 행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秋定姒薨. 不殯于廟, 無櫬, 不虞. 匠慶謂季文子曰 : 「子爲正卿, 而小君之喪不成, 不終君也. 君長, 誰受其咎?」
추정사훙. 불빈우묘, 무츤, 불우. 장경위계문자왈 : 「자위정경, 이소군지상불성, 부종군야. 군장, 수수기구?」
[解釋] 가을에 정사가 돌아가셨다. 묘에서 빈례를 행하지도 않고, 내관도 쓰지 않았으며, 우례도 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경은 계손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노나라의 정경이면서, 부인은 상례를 잘 행하지 않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도리를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성장하시면, 누가 그 허물을 당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初季孫爲己樹六檟於蒲圃東門之外. 匠慶請木, 季孫曰 : 「略.」 匠慶用蒲圃之檟, 季孫不御. 君子曰 : 「志所謂'多行無禮, 必自及也.' 其是之謂乎.」
초계손위기수육가어포포동문지외. 장경청목, 계손왈 : 「약.」 장경용포포지가, 계손불어. 군자왈 : 「지소위'다행무례, 필자급야.' 기시지위호.」
[解釋] 처음에 계손은 자신을 위하여 여섯 그루의 檟나무를 蒲圃의 동문밖에 심었다. 그래서 장경은 그 나무를 관재로 쓰겠다고 청하자, 季孫은 말하기를, 「간략하게 하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장경이 蒲圃의 檟나무를 써서 관을 만들었지만, 季孫도 금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군자는 말하기를, 「옛날 책에 남에게, '무례한 짓을 많이 행하면, 반드시 남으로부터 무례한 짓을 당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계손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고 비평하였다.
冬公如晉聽政. 晉侯享公, 公請屬鄫, 晉侯不許. 孟獻子曰 : 「以寡君之密邇於仇讎, 而願固事君, 無失官命. 鄫無賦於司馬, 爲執事朝夕之命敝邑, 敝邑褊小, 闕而爲罪, 寡君是以願借助焉.」 晉侯許之. 楚人使頓間陳而侵伐之. 故陳人圍頓.
동공여진청정. 진후향공, 공청속증, 진후불허. 맹헌자왈 : 「이과군지밀이어구수, 이원고사군, 무실관명. 증무부어사마, 위집사조석지명폐읍, 폐읍편소, 궐이위죄, 과군시이원차조언.」 진후허지. 초인사돈간진이침벌지. 고진인위돈.
[解釋] 겨울에 양공은 진나라로 가서 공물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진후는 양공에게 향례를 베풀어 주었는데, 그때 양공은 소국인 증을 노나라에 예속시켜 줄 것을 청하였지만, 진후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나라의 맹헌자는 말하기를, 「저희 임금께서는 원수의 나라와 밀접해 있지만, 본래부터 귀국의 임금을 모시기를 바라고 있으며, 명령을 어기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증 나라는 귀국의 사마에 대하여 공물을 바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아침`저녁으로 명령을 하시므로,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로서, 잘못하여 죄를 짓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저희 임금께서는 증나라의 도움을 빌려 공물을 완납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고 하므로, 진후는 그것을 허락하였다. 초나라 사람들은 돈국에 명하여 진나라의 빈틈을 노려 침벌하게 하였다. 그래서 진나라 사람들은 돈국을 포위하였다.
無終子嘉父使孟樂如晉, 因魏莊子納虎豹之皮, 以請和諸戎. 晉侯曰 : 「戎狄無親而貪. 不如伐之.」 魏絳曰 : 「諸侯新服, 陳新來和, 將觀於我. 我德, 則睦, 否則攜貳. 勞師於戎, 而楚伐陳, 必弗能救. 是棄陳也, 諸華必叛. 戎禽獸也. 獲戎, 失華, 無乃不可乎? 夏訓有之.」
무종자가보사맹악여진, 인위장자납호표지피, 이청화저융. 진후왈 : 「융적무친이탐. 불여벌지.」 위강왈 : 「제후신복, 진신래화, 장관어아. 아덕, 즉목, 부즉휴이. 로사어융, 이초벌진, 필불능구. 시기진야, 제화필반. 융금수야. 획융, 실화, 무내불가호? 하훈유지.」
[解釋] 무종국의 임금 嘉父는 孟樂을 사자로 진나라에 보내어, 진나라의 위장자를 매개로 하여 호랑이나 표범의 가죽을 진후에게 바치고, 융의 여러 나라와 화해해줄 것을 요청하게 하였다. 그러자 진후는 말하기를, 「융적은 친애의 정이 없고 욕심이 사납다. 토벌함만 같지 못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위강은 말하기를, 「제후들은 갓 복종하고, 진나라도 요즈음 와서 화평했을 따름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덕을 베풀면, 화목해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반할 것입니다. 융을 공격하여 군사들을 피로하게 했을 때, 초나라가 진나라를 친다면,
반드시 구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는 진나라를 버리는 것이고, 중국의 제후들은 반드시 배반할 것입니다. 戎은 짐승입니다. 융을 얻고, 중국을 잃어버리는 것은, 안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서에 유궁의 후예라는 것이 실려 있습니다.」고 하자,
曰 : 「有窮后羿.」 公曰 : 「后羿何如?」 對曰 : 「昔有夏之方衰也, 后羿自鉏遷于窮石, 因夏民以代夏政. 恃其射也, 不脩民事, 而淫于原獸, 棄武羅伯因熊髡尨圉, 而用寒浞.
왈 : 「유궁후예.」 공왈 : 「후예하여?」 대왈 : 「석유하지방쇠야, 후예자서천우궁석, 인하민이대하정. 시기사야, 불수민사, 이음우원수, 기무라백인웅곤방어, 이용한착.
[解釋] 진후는 말하기를, 「후예는 어떤 인물인가?」라고 했으므로, 위장은 말하기를, 「후예는 어떠한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옛날 하나라가 쇠했을 때에, 후예는 서국에서 궁석국으로 옮겨와서, 하나라의 백성들을 복종시켜 하나라의 정권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활솜씨를 믿고, 백성들의 농사일 에는 힘을 쓰지 않고, 들판의 짐승들에 열중하고, 武羅, 伯因, 熊髡, 尨圉 등의 혁신을 버려두고, 寒浞을 썼습니다.
寒浞, 伯明氏之讒子弟也, 伯明後寒棄之. 夷羿收之, 信而使之, 以爲己相. 浞行媚于內, 而施賂于外, 愚弄其民, 而虞羿于田, 樹之詐慝, 以取其國家. 外內咸服, 羿猶不悛, 將歸自田, 家衆殺而亨之以食其子. 其子不忍食諸, 死于窮門. 靡奔有鬲氏.
한착, 백명씨지참자제야, 백명후한기지. 이예수지, 신이사지, 이위기상. 착행미우내, 이시뢰우외, 우농기민, 이우예우전, 수지사특, 이취기국가. 외내함복, 예유불전, 장귀자전, 가중살이형지이식기자. 기자불인식저, 사우궁문. 미분유격씨.
[解釋] 寒浞은, 伯明氏의 못된 자식으로서, 백명이 한의 임금이 되자 착을 추방하였습니다. 그것을 이예가 거두어들이고, 그를 신용하여, 자기의 재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착은 궁인들에게 알랑거리고, 가신들에게 뇌물을 쓰며, 국민을 우롱하고, 예를 사냥을 시켜 즐기게 하고, 사위`사악한 수단을 써서, 나라를 가로채 버렸다. 내외에서 모두 복종하였으나, 예는 여전히 마음을 고쳐먹지 않았는데,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려고 할 때에, 예의 부하들이 예를 죽이고 그의 살을 예의 아들에게 먹이려고 하였습니다. 아들은 차마 그것을 먹지 못하고, 유궁국의 국문까지 달아나 자살하였습니다. 그때 미는 우격씨에게 달아났습니다.
浞因羿室, 生澆及豷. 恃其讒慝詐僞, 而不德于民, 使澆用師, 滅斟灌及斟尋氏, 處澆于過, 處豷于戈. 靡自有鬲氏, 收二國之燼, 以滅浞而立少康. 少康滅澆于過, 后杼滅豷于戈, 有窮由是遂亡. 失人故也.
착인예실, 생요급희. 시기참특사위, 이부덕우민, 사요용사, 멸짐관급짐심씨, 처요우과, 처희우과. 미자유격씨, 수이국지신, 이멸착이립소강. 소강멸요우과, 후저멸희우과, 유궁유시수망. 실인고야.
[解釋] 확은 예의 처첩을 차지하여, 요와 희를 낳았습니다. 착은 사악하고 사위의 수단을 믿고, 백성들에게 덕을 베풀지 않고, 요에게 명하여 군대를 이끌고, 짐관과 짐심 두 나라를 멸망시키게 하고, 요을 과국에, 희를 과국에 살도록 했습니다. 미는 유격씨의 나라에서, 두 나라의 남은 백성들을 모아, 착을 멸망시키고 소강을 세웠습니다. 소강은 요를 과국에서 멸망시키고, 후저는 희를 과국에서 멸망시키기 때문에, 유궁유는 이 때문에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훌륭한 사람을 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昔周辛甲之爲大史也, 命百官, 官箴王闕. 於虞人之箴曰, '芒芒禹迹, 畵爲九州, 經啓九道, 民有寢廟, 獸有茂草, 各有攸處, 德用不擾. 在帝夷羿, 冒于原獸, 忘其國恤, 而思其麀牡, 武不可重, 用不恢于夏家. 獸臣司原. 敢告僕夫.' 虞箴如是. 可不懲乎?」
석주신갑지위대사야, 명백관, 관잠왕궐. 어우인지잠왈, '망망우적, 화위구주, 경계구도, 민유침묘, 수유무초, 각유유처, 덕용불요. 재제이예, 모우원수, 망기국휼, 이사기우모, 무불가중, 용불회우하가. 수신사원. 감고복부.' 우잠여시. 가부징호?」
[解釋] 옛날 주나라의 신갑이 무왕의 태사였을 때에, 백관에 명하여, 관직마다 왕의 잘못을 경계하는 말을 짓게 하였다. 사냥을 맡고 있던 우인의 잠에는 말하기를, 「'한없이 넓은 우임금이 다스리던 발자취를, 아홉 개의 주로 나누고, 구주의 길을 열고, 백성에게 편안한 집이 있고, 짐승에게는 풀이 무성한 들판이 있어서, 각각 살 곳이 있으므로, 백성들의 덕이 어지러운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예가 하나라를 빼앗아 제가 되자, 들판의 짐승들을 향하고, 국가의 걱정을 잊어서, 암사슴`수사슴을 뒤쫓은 생각만 하였는데, 그러한 사냥은 자주해서는 안 되는 것이므로, 하 왕조를 크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신은 들판을 맡고 있습니다. 감히 복부에게 고하는 바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우인의 잠은 이와 같습니다. 경계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於是晉侯好田, 故魏絳及之. 公曰 : 「然則莫如和戎乎?」 對曰 : 「和戎有五利焉. 戎狄荐居, 貴貨易土. 土可賈焉. 一也. 邊鄙不聳, 民狎其野, 穡人成功. 二也. 戎狄事晉, 四鄰振動, 諸侯威懷. 三也. 以德綏戎, 師徒不勤, 甲兵不頓. 四也. 鑒于后羿, 而用德度, 遠至, 邇安. 五也. 君其圖之.」 公說, 使魏絳盟諸戎, 修民事, 田以時.
어시진후호전, 고위강급지. 공왈 : 「연즉막여화융호?」 대왈 : 「화융유오리언. 융적천거, 귀화역토. 토가가언. 일야. 변비불용, 민압기야, 색인성공. 이야. 융적사진, 사린진동, 제후위회. 삼야. 이덕수융, 사도불근, 갑병부돈. 사야. 감우후예, 이용덕도, 원지, 이안. 오야. 군기도지.」 공열, 사위강맹저융, 수민사, 전이시.
[解釋] 이때 진후는 사냥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에, 위강은 예에 대하여 언급한 것이었다. 진후는 말하기를, 「그렇다면 융과 화목하는 것이 가장 좋겠는가?」라고 하였으므로, 강은 말하기를, 「융적과 화목하면 다섯 가지의 이익이 있습니다. 융적은 수초를 따라 생활하며,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만 토지는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토지는 재화로 살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융과 경계를 접하는 변경지방 사람들도 걱정이 없어서, 백성들은 그 들판에 애착을 갖게 되고, 농부들은 수확을 풍족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둘째입니다. 융적이 진나라에 복종하게 되면, 사방의 이웃 나라들은 두려워하고, 천하의 제후들은 두려워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셋째입니다. 덕을 가지고 융을 편안하게 다스린다면, 군졸이 애를 쓸 일도 없어지고, 갑옷과 무기도 정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넷째입니다. 옛날의 后羿를 거울삼아, 법도에 맞는 올바른 일을 한다면, 먼 나라 사람들은 모여들고, 가까운 나라 사람들은 그 땅에 안주할 것입니다. 이것이 다섯째입니다. 임금께서는 잘 생각하시기 바랍니다.」고 대답하였으므로, 진후는 기뻐하고, 위장에게 명하여 융의 여러 나라와 화목을 맹약하게 하고, 농민의 경작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농사철을 피하여 사냥을 하도록 하였다.
冬十月, 邾人莒人伐鄫. 臧紇救鄫, 侵邾, 敗於狐駘. 國人逆喪者皆髽. 魯於是乎始髽. 國人誦之曰 : 「臧之狐裘, 敗我於狐駘. 我君小子, 朱儒是使. 朱儒朱儒! 使我敗於邾.」
동십월, 주인거인벌증. 장흘구증, 침주, 패어호태. 국인역상자개좌. 노어시호시좌. 국인송지왈 : 「장지호구, 패아어호태. 아군소자, 주유시사. 주유주유! 사아패어주.」
[解釋] 겨울 10월에, 주나라 사람과 기나라 사람들이 증나라를 쳤다. 노나라의 대부 臧紇은, 증나라를 구원하려고 주나라를 쳤지만, 주나라의 狐駘에서 패배하였다. 그 전사자의 시체를 맞아들이는 노나라의 여자들은 급한 김에 모두 머리를 삼실로 묶었다. 노나라에서는 이때 비로소 상에 머리를 삼실로 묶게 되었다. 그때 노나라 사람들은 노래하기를, 「장이라는 여우 가죽옷을 입은 사람, 우리 군대를 狐駘에서 패하게 하였네. 나이 어린 우리 임금은, 난쟁이 장을 등용하였다네. 난쟁이여, 난쟁이여! 우리 군대를 주나라에서 패하게 하였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