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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보조.고문단(SG)09:34 새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
[ ╋ 내맡김 영성체험 The experience of Spirituality
내맡김이 깊어지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지도사제 18.02.05 08:25
< 내맡김이 깊어지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
< 내맡김이 깊어지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
< 내맡김이 깊어지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
내맡김이 깊어지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진실입니다,
참으로 진실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상태가 <내맡김이 깊어진 상태>인가요?
그것은, 그것은, 그것은~
<아주 쉬운 말>로 ☆ 어른 ☆이 ☆ 아이 ☆가 된 상태,
아니 ★ 하느님의 젖먹이 똥싸개 철부지 ★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로는 ★ 이원론에서 벗어난 상태 ★를
말하는 것입니다.
젖먹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어미 품에 가만히 안겨 있는 것,
단순히 그것 뿐입니다.
젖먹이는 똥을 싸도 똥의 더러움을 모릅니다.
똥에 대한 더러움과 깨끗함의 분별이 없습니다,
그 분별은 어미의 몫일 뿐입니다.
어미는 자신의 젖먹이가 그저 설사만 안 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젖먹이*는 *똥싸개*가 될 수밖에 없으며,
어미 품 안의 똥싸개는 그래서 행복할 수밖에 없으며,
그래서 *철부지*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철부지!*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 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루카 18, 21)
하느님(엄마)의 철부지 젖먹이 똥사개는
자기 엄마(하느님)의 품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엄마(하느님)의 품이 자신의 ☆생명의 터전 ☆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젖먹이 똥싸개 철부지는 그래서
☆오로지 엄마만 바라다 봅니다.☆
하느님(엄마)은
자신만 바라보는 젖먹이 똥싸개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지켜봅니다.
젖먹이 똥싸개의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줍니다.
하느님의 젖먹이 똥싸개는 엄마만 사랑하며
엄마가 물려주는 젖을 물고 엄마가 불러주는 자장가에 맞추어
★웅알이만 되풀이할 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 내맡김이 깊어진 상태 ★입니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맡김이 깊어진 상태란!
【 그러면 도대체 어떤 상태가 <내맡김이 깊어진 상태>인가요?
그것은, 그것은, 그것은~
<아주 쉬운 말>로
☆ 어른 ☆이 ☆ 아이 ☆가 된 상태,
아니
★ 하느님의 젖먹이 똥싸개 철부지 ★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말>로는
★ 이원론에서 벗어난 상태 ★를 말하는 것입니다. 】
이원론, 비이원론?
이원론 = 옷 입은 상태,
비이원론 = 벌거벗은 상태
사실 요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리차드 로어 신부님의 <벌거벗은 지금>에서의
<비이원론에 대한 말씀>은 퍽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원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에 대한 말씀>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원론적 사고>에서 벗어나기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오랜세월 우리 안에 고정화된
이원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탁월한 방법이 바로,
★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완전히 100% 다 내어맡기는 것 ★
입니다.
사실,
우리 모든 인간은 하느님 앞에 ★ 벌거벗은 존재 ★입니다.
< 거룩한 내맡김의 봉헌 >은
하느님 앞에 벌거벗지 못한 자신을 ★ 벌거벗기는 작업 ★입니다.
자기를 벌거벗겨야
자신의 민몸, 자신의 본 모습, 지 꼬라지를
올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신을 벌거벗겼을 때,
그때 드러나는 자신의 꼬라지가
얼마나 더럽고 비참한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ㅠㅠㅠㅠㅠㅠ
< 교황이든, 교구장이든,
물라(이슬람교 신학자 또는 율법학자-옮긴이)든, 라삐든,
이맘(이슬람교 성직자-옮긴이)이든, 주교든, 신부든 간에
마땅히 종교의 원로와 선생이 되어야 할 사람들,
깊은 공부와 기도로 더 알아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 오히려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눠놓고 보는 방식에 골몰하는 듯하다. >
(벌거벗은지금 1부
더 잘 알아야 할 것이 있는 우리, 신비주의 그리스도교 - 내부 비판)
어느 누구도
교황도 추기경도 주교도 모무모두
오랜세월 자신이 걸쳐 입던 내 뜻의 더러운 옷을
활짝 벗어버려야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하느님과의 만남이 관계가 시작됩니다.>
벌거벗읍시다, 우리 모두!
더럽고 교만함에 찌든 ☆ 내 뜻 ☆의 겉옷을,
악취나는 ☆ 내 뜻 ☆의 속곳을!
그리하여 하느님이 입혀 주시는 새 옷,
★ 하느님 뜻 ★을 의복으로 차려 입고
☆ 비이원론적 사고의 소유자 ☆로,
☆ 하느님의 참자녀 ☆로
자유를 만끽하며 살아갑시다, 이땅 위에서! ]
사랑하는 아버지,
아버지 앞에 아이가 되어
똥도 싸고 오줌도 싸고
아버지께 한없이 어리광도 부리고 재롱도 떨며 투덜거리기도 하며
아버지와 격 없이 노는 천상의 삶을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전한 요새인 엄마 품에 안겨 똥철이 되어 사는 이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감사에 감사만 드릴뿐입니다.
저의 모~~~ 든 것을 맡기오니 더 어린이가 되어
아버지만 뜨겁게 사랑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 저는 봉헌한지 14년차로 100% 다 내맡겨드렸고,
나는 하나도 없고 잘 내맡겨 드리고 산다고 생각했으나
아버지 한분만이 완전함을 이번 일을 통해 다시 느꼈습니다.
성전의 기도요청으로 다들 아시겠지만
아버지께서는 큰 뜻이 있으셔서 저를 4일 동안 잠재우셨습니다.
이 사건의 발단은 사순절 단식기도였습니다.
제가 희귀병을 가지고 있고, 평소에 자주 앓고,
작년 사순절 단식기도로 거의 죽을 뻔 했었기에
이번엔 지도신부님이나 다른 보조교사들도 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제가 아버지께 드린 게 너무 없어서...정말 너~~무 드리고 싶은데,
목숨을 내놓은 제가 7일도 아니고 겨우 3일 단식기도도 못 드리겠나 하는 마음에
정말 목숨 걸고라도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주말 부부라서 남편이 올라오기 전에 3일 단식을 마치려고
재의 수요일보다 하루 일찍 시작해서
목요일 아침까지 잘 마치고 점심때가 되었을 때,
작년에 제가 느꼈던 똑같은 증상이 다시 찾아 왔습니다.
정신은 말짱한데 온 몸을 하나도 움직일 수 없어서
이대로 죽는구나, 이제 아버지께 갈 수 있겠구나를 체험했었는데
작년엔 마침 남편이 집에 있어서
어떻게 저를 발견하고는 119를 불러 살게 되었었습니다.
그때와 똑같은 증상이 온 것을 느끼고 뻔히 알면서 이대로 죽는 것은 아니다싶어
억지로 겨우 죽을 끓여 먹고 고문단에 현재 나의 증상을 설명한 후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있다고 문자를 하고
그대로 누워서 쉰다고 생각했는데 의식을 잃었습니다.
목요일 오후 2~3시 정도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남편이 금요일에 올라올 텐데
목요일에 뭔가 필요한 일이 있어 저에게 전화를 했었고
통화가 안 되니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들어
금요일 저녁약속을 취소하고 일찍 퇴근해서 집으로 올라왔고,
피를 토하고 누워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의식을 잃은 지 하루하고도 몇 시간이 지났고
골든타임을 한참 넘긴 상태로 당연히 죽었어야하는데......
하느님께서 저를 딱 잡고 계시지 않았다면
도저히 생명이 지탱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흔들어도 반응이 없으니 119를 불러 병원으로 가는데
하필 전공의들이 파업 중이라 응급실에서도 받아줄지 의문인 상태였는데
희한하게도 아산병원에서 받아주어 온갖 검사를 하고......
제가 4일째인 주일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억이 전혀 없지만 제가 눈을 뜨고 남편에게 한 첫 말은
“내가 어떻게 병원에 왔어?”라고 했답니다.
병원에서는 그런 상태로 입원해서 이렇게 빨리 의식을 찾음은
전례 없는 일이라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는군요.
저는 전해질이 거의 바닥이어서
신장내과와 신경과 협진으로 치료를 받았는데,
병원에서는 섬망증세라고 하지만 저에겐 너무나 뚜렷한
하느님의 계시, 꿈 같은 환시를 이틀 연속으로 보았습니다.
저는 분명 수도원에 있는데 눈에는 병실들이 보여 참으로 이상했고,
의사선생님은 익숙한 집으로 가야 증세가 빨리 호전될 거라며
퇴원을 허락하여 일주일만에 집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두 딸과 사위가 집에 와서 살고 있었고,
정신이 점차 들면서 아버지께서 왜 저를 치셨고
왜 깨어나게 하셨는지 깨달음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작은 딸은 아예 일을 접고 저를 전담 간호하는데
두 딸의 모습은 평소 제가 알던 딸들이 아닌 걸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잘 하는 딸들인 줄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굉장히 냉정했던 딸들이었고(제가 그렇게 키웠으니까요)
저 또한 딸들에게 냉정하게 했었기에
너무나 해준 것이 없는 저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후,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는 너를 사랑으로 키웠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적인 너의 사랑이 아직도 부족하다,
나는 니 사랑이 필요하다,
너의 힘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확실한 느낌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시야를 좁혀서 가족을 보게 하시면서
‘너, 가족의 소중함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있느냐?’
이 물음을 주셨습니다.
남편을 생각하면서 아버지께서 짝지워 주실 때는 그냥이 없구나,
절대로 공짜로 짝지워 주신게 아니었어요.
이혼까지 생각했던 제가 거내영을 살면서도 남아있던
그 모든 것을 너무나 말끔히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딸들이 제게 어떻게 해도 이제는 다 괜찮아요.
아버지께선 저에게 두 가지, 인간이 태어난 이유는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임을 정확히 알려 주셨어요.
네가 그 사랑을 다 소비하기 전까지는 아직 나에게 올 때가 아님을,
그리고 네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거룩하다고 하는 것도
내가 시키지 않은 것,
그것은 거룩한 것이 아니야!
너 단식하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했지?
그래서 넌 잠시 죽음을 맛 보아야 했어.
아무리 거룩하다 생각한 것도,
제가 너무나 아버지께 드린 것이 없다고 생각한 것도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니가 지금 나에게 주고 있는 사랑이 나는 너무 행복했어.
그런데 니 생각을 그렇게 했고 니 뜻을 막 세워서...
주위에서 막 하지 말라고, 지도사제도 하지 말라 했던 것도 무시하고
넌 단식기도에 돌입했잖아. 그건 아닌 거였어.
결론은 지도신부님 말씀을 안들은 것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단 0.00001%라도 내 뜻이 들어가서 단식기도를 한 것이었습니다.
‘너 그거 아니야!’ 를 너~~무도 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내가 거룩하다 생각한 그건 거룩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거룩하다고 인정하신 것만 거룩한 것입니다.
그걸 너무나 확실히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족에 대한 소중함, 가족에 대한 끈끈함도
저의 아픔을 통해서 가족의 단합을 보여주셨는데
저에겐 그런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그대로 죽었다면 저는 너무 행복했겠지만 가족들은......
내맡김을 뻔히 아는데, 잘못된 신앙을 하다가 죽었다고 생각 했을 테니
그걸 바로 세워 주시려고 저를 다시 일으켜 주신 것입니다.
내맡김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거,
아버지는 저를 잡고 계셨다는 것을 또 보여주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요.
그런 고백을 제가 남편에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어요.
남편이 일을 하게 된 50주년 기념일에 제가 밥 먹자 하며
남편과 딸들에 대한 고마움을,
아버지가 느끼게 해 주셨음을 고백했어요.
남편은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었어요.
우리는 모두 내맡김 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났는데 그걸 다 모르고 살아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음을 작년에도 올해도...
그분이 허락하셔야 하는데 그걸 내 힘으로 하려하면 안 돼요.
제발 내맡겨서 내 안에서 아버지가 저를 이끌어 가셔야 되는 거예요.
요만큼이라도 제가 하려고하면 어떤 거라도 이렇게 생겨요.
화살기도! 화살기도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진짜 화살기도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신부님도 리어카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 리어카로 자식들 대학 다 공부시켰다고 예를 들어 말씀 하셨잖아요.
거룩한 내맡김 안에 들어있는 그 화살기도 절대로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그 화살기도가 길다고 느끼면 그냥 ‘아빠아버지’만 죽어라고 부르세요.
그러면 박힙니다. 새겨지고요.
그래서 진짜 누워 잠자는 동안에도 화살기도가 된다는 말은 100%예요.
그걸 신뢰하셔야 합니다.
듣기만 하지 말고 부르세요,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을 때는 마음으로 부르세요.
마음에 새겨져 있으면 내가 다른 사람 만나고 있을 때
아버지가 대신 해주고 계세요.
그걸 의심하지 마세요. 절대 의심하지 마세요.
믿는 만큼 이루어집니다. 거기까지 가는 데는 자신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게 딱 통하는 순간부터는 내가 할 게 없어요.
정말100%예요. 그 100%를 절대 의심하지 마세요.
- 송강 끊기모 앗숨 고백 -
사랑으로.보조작성자 15:04 새글
첫댓글
하느님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 영적독서 노트
평화안에 머물러라 - 자크 필립 지음 (p.64-66)|
참행복(신비) 2014.01.10. 19:20
철저한 내맡김
내맡김에 대해 한 가지 이야기해 두는 것이 좋을듯하다,
내맡김이 제대로 이뤄져 평화를 가져오려면 철저해야 한다,
<아무것도 제외하지 말고
몽땅 하느님 손에 맡기고.>
물질이든 감정이든 영적 차원이든 모든 영역에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관리하거나 '스스로를 구하려' 해선 안 된다.
어떤 영역에서는
하느님께 신뢰하며 내맡기는 것이 타당하고
또 다른 영역에선
자신의 힘으로만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 맞다는 식으로
구분해선 안 된다.
우리가 내려놓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하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우리의 내적 평화는 포기와 이탈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맡김에는 반드시 포기가 따르는데>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힘든 것이다.
우리에게는 물질적 재화나 애정, 욕구나 계획 등
수많은 것에 '매달리는' 자연스런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을 포기하는 것은
마치 모든것을 잃어버리고 죽는 것처럼 힘이 든다.
그러나 바로 이때야말로 예수님 말씀,
곧 복음에서 분명하게 표현된
'잃는 자가 얻는다.'는 법칙을 온 마음으로 믿어야 한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
<이탈과 포기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참 생명을 발견>한다.
무언가에 매달리고
삶의 어떤 부분을 자기 좋을 대로 처리하는 식으로,
하느님 손에 철저히 맡기지 못하는 사람은
잘못 계산하는 것이다.
그는 쓸데없이 근심하면서
집착하는 대상을 잃을까 불안해한다.
이와 반대로
모든 것을 하느님 손에 맡기면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가져가거나 주시도록 허심하는 사람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깊은 내적 평화와 자유를 누리게 된다.
<"아! 만일 사람들이 모든 일에서 자기를 포기할 때
얼마나 큰 것을 얻는지 이해하기만 한다면!">이라고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말했다.
이는 행복의 길이다.
우리가 하느님이 당신 마음대로 활동하시게 해드린다면
그분은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우리가 자신을 알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알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진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더 이상 선을 찾지 않게 되자
하느님께서 모든 선을 나에게 주셨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느님 손에 맡김으로써
그것들에서 이탈한다면
하느님은 "현세에서"(마르 10,30) 백배로 갚아주실 것이다. ]
< ▣ 주일강론
연중 제23주일(2012,9,9) 지도사제.
증산도의 개벽이나 종말사상 속에는 "반전(反轉)사상(?)" 이 깊이 숨어 있다.
성경의 예수님은 그야말로 "반전의 귀재" 이시다.
이 세상의 삶 이후에는 반드시 반전이 있을 것이며,
당신이 이세상에 오신 목적도
이 세상에 반전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음임을 알려주셨던 것이다.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며, 목숨을 살리려면 잃게 될 것이며" , 등등,,,
그러면, 모든 사람이 다 반드시 "반전" 을 겪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는 것이 저의 주장이고 저의 지론이다.
"이미 반전을 겪은 사람들" 에게는 증산도에서 주장하는
소위 '인류의 대변혁기'가 찾아온다 하여도
사람인지라 잠시 놀라기는 하겠지만,
곧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굳굳하게 잘 받아들이고 잘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반전을 이미 겪은 사람들이란 어떤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먼저, 반전(反轉)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자.
"反" 이라는 한자는 "되돌릴 反" 字이며, "轉" 은 구를 轉, 옮길 轉" 字이다.
그래서 뜻은,
"반대쪽으로 구름, 일의 형세가 뒤바뀜, 방향이 뒤바뀜" 의 뜻이다.
이미 반전을 겪은 사람들이란,
지금까지 세상에 의지하여 세상 욕심대로 살아오던 사람들이 방향을 전환하여,
하느님께 의지하기 위하여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겨 드리고
하느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게 반전이 아니고 그 무엇이 반전이겠는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의 전환" 보다 더 엄청난
일생일대의 가장 소중한 "大轉換" 인 것이다.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위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하느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바꾸어 사는 "轉向者"들이다.
"이념" 의 전향보다 더 강하고 진한 전향이 "신앙" 의 전향이다.
그러면, 자신이 오랜 동안 살아오던 방향을 전향하기란 쉬운 것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것을 바꾸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 정말 "영적인 홍역"을 치뤄야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생명까지도 내걸어야 하는 약속, 맹서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이미 반전을 겪은 것이 되는 것이다.
정말 저는 자신 있게 말씀드린다. >
[ 지도사제 13.10.12. 16:47
머리가 똑똑한 어르신네들께서는,,,,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는 일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화살기도 능구 3개월이면 성인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고
아무리 외쳐도 귀에 들어올리 만무입니다.
<낭비란>
똑똑한 어르신네들에게 있어서의 용서받지 못할 대죄이기
때문입니다.
<낭비>는 재산을 앗아갑니다.
그러나,
★<거룩한 낭비>는 영혼을 살찌웁니다.★
<한 번 생겨난 것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거룩한 내맡김의 화살기도 성가는
절대로 <낭비>가 아닙니다.
화살기도를 바친만큼 그대로 쌓여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에 그대로, 아니 <백 배, 천 배>로 나타납니다. ]
아멘, 아멘!!
영성의 최고봉 거내영의 삶에 모든 희망을 걸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사시는 은총으로
< 이유를 찾는 것은 제 에고임을 > 깨우쳐 주시고
납작 엎드린 < 순명의 자녀가 되 >도록 이끌어 주시니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발견하고 자유를 찾으신
복영님의 마음에 깊이 공감되어 저도 덩달아 아버지께 감사찬미 드립니다.
세상살이 인정 받으려는 욕구로부터
힘들고 지치셨을 첼레스틴님의 마음도 깊이 스며들며
내맡김으로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랑과 성령의 힘으로
< 첫째가 아니어도 되고 꼴찌여도 되는 마음의 평화를 찾 >으시고
< 지금 현재를 살아 가 >심에 참으로 감사와 기쁨에 찬 위로를 드리며,
‘무소유 고백’을 통해
<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따르는 길이 어찌 이토록 가볍고 행복한지 >를
< 현세에서부터 백배의 상급을 받아 천국을 누리 >는 아가님의 고백이
제 마음에 울려 퍼지며 환희에 가득 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시고 자비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께, 사랑의 향기가 되어 아름다운 찬양노래 올려드립니다.
자비로우신 아빠아버지!
모~~~든 식구들과 깊이 공명을 이루는 무형의 성전에서
세상에서 인정 받으려는 욕구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은
내 뜻이 조금이라도 더 갖기 위해 많은 것에 집착하였으며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였지만
탐진치의 좁은시야 안에 갇혀 길을 잃고 말았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꼴찌가 되라고 하십니다.
인정 욕구를 버리고 세상을 거슬러 사는 것,
‘거룩한 내맡김’과 ‘무소유 고백’이 아니겠는지요.
하내영이 되어 아버지의 열절하신 사랑 때문에
여러가지 모양으로 일상에서 오는 현세의 박해들은
내 뜻을 버리고 꼴찌가 되도록 이끌어 주는 귀한 도구입니다.
그리하여 내 뜻이 아버지의 뜻으로 바뀌는 ‘반전‘으로
좁은 시야를 벗어나 활기찬 생명으로 가득찬 충만함을 느끼며
현존의 삶에서 아버지 뜻으로 작은 사랑이라도 실천 할 때면,
그 무엇도 부족함 없는 부요함으로 바뀌어짐을 체험하며
아버지의 자녀로 더없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첫째가 되어
아버지를 소유함으로 모~~~든 것을 얻고
대 자유와 깊은 평화를 누리는 식구들을 통해
아버지의 완전한 영광을 드러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아빠아버지!
내맡김의 끊임없는 아버지기도는 내 뜻을 비워내고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를 수 있도록
철부지 어린이 같은 깊은 신뢰를 주심에 엎디어 경배드립니다.
당신 닮은 사랑스런 자녀들,
복영, 첼레스틴, 아가와 모든 사제와 거내영의 모든 영혼을 통하여
거룩하신 뜻을 이루시며 무한찬미영광 홀로 받으소서.
아버지의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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