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의 건강한 교회는 건물중심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교회 건물을 얻을 수도 없었지만요.) 사역자 중심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사역자를 배출하는 신학교가 없었으니 전문 사역자도 없었지만요.) 그러나 교회는 본질을 정확히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과 성령님의 운행하심과 성도들의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와 성도들의 순종의 사랑은 다른 모든것이 부족하고 없어도 교회를 교회답게 했습니다.
결국 교회가 본질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걱정들 (예를 들면 거세지는 이단의 손길에 교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걱정과 대안들)이 로마제국의 제도와 법을 교회에 접목시키며 성도들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인정된 사제들만 예배를 인도해야 하고 교황의 허락하에서만 모임을 갖고 성경을 읽는 제도화된 교회가 되기 까지 교회는 고난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것을 누리며 부흥해 왔습니다.
초대의 교부들이 신앙을 위하여 많이 애쓰고 힘썼던 것은 귀한것이지만 방향은 조금 아주 조금 비뚫어졌습니다. 그 작은 비뚫어짐이 시간이 흐를수록 원래의 모습에서 너무 많이 각이 빗나가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갈때 교회를 성령님께 부탁드렸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순교하고 이 땅에 없을때를 생각하며 교회를 능하신 말씀위에 부탁했습니다.
오늘 모든 사역자들은 교회를 어디에 부탁하고 의지해야 할까요? 예수님과 바울과 우리가 달라야 하는것은 아닐것이라 생각합니다. 역시 성령과 능하신 말씀에 교회를 부탁하면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아도 형태는 각 문화속에서 다른 열매로 나타날 것입니다.
마지막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작은 목장교회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어머니 교회인 모체교회는 그 역할을 하고 그 밑에 수 많은 목장교회가 흩어지면 작은 교회로서의 모임과 나눔과 간증과 기도로서 섬기며 사랑하고 모이면 강력한 연합공동체가 되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자신들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대형화 된것이 문제라기 보다는 작은 단위의 목장교회가 사라지고 큰 날개 교회만 남아서 힘을 못쓰는 것이 문제입니다. 목장교회가 부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유기적으로 연합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포트스모던 시대는 개인이 우상으로 다시 자리잡는 범신론의 시대가 되었기에 더욱더 이 작은 목장교회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도구입니다.
신앙이 개인화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의미에서 개인의 묵상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개인들이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을 내가 느끼고 깨닫고의 관점에서 사랑하고 섬김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그 장이 목장이 되어야 하고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아직도 꿈꾸며 기도합니다. 한국교회에 목장과 가정교회와 Cell과 G12와 같은 세계의 모든 소그룹이 한 자리에 모이는 Cell EXPO가 꼭 열려서 마지막 마귀와의 싸움을 대비하고 어떻게 주님의 교회가 이 땅에서 효과적으로 성공할지를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