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배화여고 배지와 친구 만평
배화여고 배지
지금도 교복을 입는 학교가 많지만 우리 때에는 거의가 다 교복을 입었다. 하지만 여학교는 학교마다 교복이 많이 달랐지. 진명여고와 풍문여고 교복은 허리띠가 있고 주름이 많았지. 그러나 이화여고, 덕성여고, 배화여고는 몸매가 잘 드러나는 옷이었다. 이화나 덕성여고보다도 배화여고 배지가 훨씬 더 보고 싶었다. 이유는 간단해,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무슨 그림을 그린 것인지를 모르겠더라고. 가까이에서 들여다 본 적도 없었지만 무슨 꽃무늬가 가운데를 중심으로 소용돌이 친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돌돌 말은 꽃잎 같기도 했지. 글자로 보면 ‘옥’자 같기도 했는데 글자가 뒤집혀 있었으니까 말이다.
오늘 찾아보니 이 배지는 학교꽃 난초 잎과 뿌리를 상징하며 윗부분은 꽃잎의 ’ㅂ‘ 과 아랫부분은 뿌리의 ’ㅎ‘을 빨강색과 파란색의 태극문양 바탕 위에 그려져 있는 모양이랍니다. 그래서 거꾸로 써진 ’옥‘자처럼 보인 것이지요. 졸업 후 56년 만에 처음으로 나도 오늘 무슨 뜻인지 알았네.
「요지경 속 친구 만평(漫評)」
2012년도 동창회 명부를 보고 생각나는 대로 쓴다. 워낙 오래된 이야기라 지금은 옛 학생시절하고는 전혀 다르리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옛 모습만 보이지 지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혹 잘못된 이야기일지라도 많은 이해 바란다. 대략 계산해보니까 고교 졸업생 550 여명에서 한번이라도 같은 반을 한 친구가 대략 350여명, 그래서 대략 60%는 같은 반을 했지. 그러니 또 1/3는 같은 반을 못했다. 그렇지만 같은 반이었더라도 잘 모르고 헤어진 친구도 있고 기억에서 벗어난 친구들도 있으니 잘해야 반에 반쯤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 사실이 아닌 것을 빼고 또 팩트(fact 사실)만 쓴다면 쓸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 같더구나. 그래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싶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한다. 잘 아는 친구는 길어지고 잘 모르는 친구는 아주 뛰어넘어 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네.
강계희
둥글둥글한 얼굴에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듯한 촌색시 모습, 얼굴에는 작은 점이 몇 군데 있었는데. 성적은 좋았고 목소리도 작게 욕 한 번 못하는 완전 모범생. 지난해 송년모임에서도 마지막에 같이 나왔는데도 무엇이 그리 바쁜지 더 이상 이야기도 못 나누고 그냥 헤어지게 되더군.
김이식
이름의 이(尼)자가 특이하다고 전에 이야기를 했다. 얼굴이 작고 볼에 살도 없어 마른 형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했다. 어느 날 지나가다 보니 친구들과 책에서 무엇을 묻고 대답을 하는데 아주 잘한다. 다름이 아닌 물리 화학 생물 등등 책에 나오는 삽화를 알아맞히는 것이다. 종의 기원의 「다윈」, X-ray를 발견한 「퀴리부인」 등등의 인물이 많이 나와 있었다. 인물은 주로 펜화같이 그린 것이 많았는데 우리는 대부분 그런 삽화의 이름이나 내용을 주의 깊게 생각하지 않고 출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여 아예 들여다보지도 않는 것을 이식이는 잘도 외우고 있었다. 그래서 책에 나오는 삽화의 설명을 가리고 친구들이 물어보면 척척 대답을 하여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하여간 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김중제와 이상혁
먼저 중제는 나하고는 많이 친하지는 않았다. 키도 크고 하는 행동이 나와 비교해서 무게가 있다고나 할까 어른스러웠다. 그러니 중제의 주변에는 또 그런 친구들이 모여 있어 나는 그저 멀리서만 바라본 친구라고 해야겠다. 얼굴 모습이 큰 편인데 중제는 정말 눈이 아주 컸다. 거기에다가 속눈썹이 길고 그림처럼 예쁘다. 우리 동기 중에 제일 눈이 큰 왕눈이라고나 할까? 물론 쌍꺼풀도 있었지! 눈두덩도 얇아 멋졌다. 왕눈이 하니까 이상혁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되지. 상혁이는 쌍꺼풀이 아주 두터웠다. 눈이 부리부리하다고나 할까. 종로에서 약사로 오랫동안 일했을 텐데. 나도 약국에 아마 한번쯤은 들어가기는 했지. 뭐 약을 사러 종로까지 갈 일이 없었으니까. 그냥 인사차 지나다가 들어갔을 것 같다.
이철원
언제인지야 모르지만 하여간 같은 반을 하고 키도 비슷해서 옆자리쯤에 앉았다. 점심을 매일 같이 먹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당시에 도시락 반찬으로는 간장에 졸인 덴푸라(어묵)가 인기 있었지. 거기에 고추장까지 가져와 찍어 먹고는 했다. 철원이가 자주 싸와서 맛있게 나누어 먹었다. 그래서 내가 철원이네 집을 찾아갔다. 다른 것은 기억에 없고 청파동 언덕을 올라가다가 길 왼쪽에 있는 집이다. 집 구조는 생각이 안 난다. 하여간 집안까지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틀림없다. 철원이는 말투가 입안에서 한 번 굴렀다가 나오는 듯 했다. 철원이도 성적은 우수했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를 들어갔으니 말이다.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더 잘했다고나 해야 할까? 금속공학과 출신이 한국은행 발권과로 들어갔단다. 금속공학과 하면 금속을 배우고 어쩌고 해야 할 터인데 금속공장 아니면 제철소에 입사했을 텐데 어찌하여 한국은행으로 들어갔을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동전에 들어갈 무슨 금속을 관장하나보다 하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해서 모르겠다.
김수극
하나 더 이야기하면 김수극이도 서울공대 금속공학과를 들어갔다. 서울공대가 청량리를 지나고 중랑교를 건너서 공덕동으로 편도 1차선의 아주 좁은 길 끝 구석에 있었다. 지금은 노원구 화려 비까번쩍하는 곳이지만 말이다. 서울대학교가 관악구청으로 옮겨가기 전에는 서울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있었다. 혜화동에 문리과대학 앞에 의과대학 치과대학, 법대는 조금 더 종로 5가쪽으로 올라가서 있고 건너편에 미술대학, 청량리 길가 건물에 상과대학, 농과대학은 수원이다. 수극이는 나중에 인천제철 공장장을 거쳐 사장까지 하였다. 수극이와는 가까워서 인천제철 공장으로 만나러 한번 간다간다 하다가 못 가고 말았지.
언젠가 수극이네로 친구들이 몰려갔다. 미아리고개를 지나 삼양동으로 들어간다. 한참 올라가 집에 도착했다. 그런데 왜 갔는지가 생각이 안 난다. 대학 다닐 때 간 것 같은데 말이다. 무슨 잔치가 벌어졌다. 할머니나 할아버지 7순 잔치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누군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수극이가 장남인데 여동생이 많다. 동생들이 수줍어하며 숨기 바쁘다. 여동생이 충무로 동화백화점(현 신세계백화점)에 다닌단다. 나중에 그 동생을 내가 찾는다고 그 백화점을 뒤지기까지 했지만 못 찾았다. 수극이 막내 외삼촌이 우리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몇 살 위라 수극이와 잘 어울려 언젠가 한 번 연말에 같이 나와 종로에서 우리와도 어울린 적이 있다. (1회 끝,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