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9시. 광명실내체육관. 배드민턴 동호인들이 모인다. 다들 가방에 빵빵한 칼(라켓)을 숨긴 채. 코트 9개가 금새 꽉 찬다. 사이사이 난타치는 친구들로 분위기가 소란하다. 시청에 다니는 고교동창의 전화다. '한 수' 가르쳐주겠단다. 불감청고소원(不敢聽固所願). 그 친구는 아내하고 라켓을 잡은지 십수년이나 된 '부부 고수'이다. 미쳐야 미친다. 뭐이든지 배우려면 제대로 배워야 하는데, 나는 '민턴'을 후루꾸로 배웠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운동이라면 완전히 젬병이었던 나, 이제 민턴이 취미라고 말할 수 있게 됐으니. 학창시절, 가장 괴로웠던 시간이 체육과목. 공하고 관련된 것은 뭐 하나 할 지 몰랐다. 공(球)에 대해 공포감까지 생긴 데는 내력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중학 1학년 체육시간 배구를 배우는데 토스를 하거나 받을 때 엄청나게 안됐다. 이를 본 선생님과 친구들이 혀를 차며 비웃는 말 한마디씩을 날리며 당장에 '왕따'를 시켰다. 그 이후이었을 것이다. 둥근 것만 보면 피하게 된 것이. 오로지 하는 운동이라는 게, 아마 그때쯤부터 저절로 배운 '오형제 놀이'(hand play라고도 했다)와 잠자기, 숨쉬기운동이었다. 바둑도 운동일까. 책읽기도 독서운동에 들어갈까. 사회에 나온 이후에는 하는 운동이 좀 달라졌다. 손운동(술잔 무시로 왔다갔다하기)이야 여전했지만 결혼을 했음으로 당연히 밤운동(야간 레슬링)이 추가되었다. 그러던 중 1994년 '만능 운동맨' 친구의 '제발 한번만 해보자'는 간곡한 부탁으로 '민턴' 라켓을 처음 잡았다. 그때 배우는데 쓸만하다는 라켓 하나가 3만8천원이었다. 지금은 요넥스 27만원짜리도 있다고 한다. 엉망이었다. 열 번이면 한 번도 셔틀콕을 맞추지 못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체질이라 정식 교습도 받지 않았다. 나같은 젬병도 짠밥(연륜)이 쌓였든지, 흉내는 쬐끔 낸다. 헤어핀, 하이클리어, 드롭샷, 랠리, 난타. 별호도 얻었다. '난타 대형'. K신문의 형님과 짝을 이루면 '난타 브러더스'라고 불렀다. 직장생활중 일주일에 세 번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하나 둘 모이다보니 15명을 넘었고, 수년이 흘렀다. D일보, K일보, 대부분 기자들이었다. 말빨도 다 한몫씩 하다보니, 그 재미는 말도 못했다. 백수생활중 유일한 낙이다. 그들은 점심을 사주며 복식경기에 기꺼이 끼어준다. 이제 배드민턴 예찬론자가 됐다. 내가 운동을 할 수 있다니, 처음 강권하던 그 친구가 고맙다. 하여튼, 오늘 만난 그 친구는 역시 몇 수 위였다. 당장 서브넣는 법부터 새로 배우란다. 그래 가지곤 어디 명함도 못내민단다. 맞는 말이다. 내가 왜 그걸 모르랴. 언제 제대로 배우고는 싶다. 파트너로 워낙 실수를 하다보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어쩌랴. 실력은 실력대로 가는 걸. 민턴은 기본적으로 실내운동이다. 약수터나 공원등지에서 하는 것을, 우리는 '동배'(동네 배드민턴)라고 부른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동배 고수'라고 해도 대뜸 '100 대 3 내기'를 하자고 시비를 건다. 상대방이 3점을 내면 내가 진다는 것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그 정도다. 코트에서 '똥개 훈련'(見習? 犬習?)을 시켜보면 상대방은 30점쯤 가서 기진맥진,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 다음부터는 자유자재, 상수(上手)들의 '잔치'다. 정말 실력없으면 더러워서 못사는 세상이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다. 스포츠맨십에 투철한 민턴맨들이 으스대거나 잘난 체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들이 부럽지만, 따라갈 자신도 의욕도 없다. 무슨 일이고 치열하지 못한 나의 성격탓이다. 그래도 이 정도만 한 것이 어디냐며 나 자신을 대견하게 생각하곤 한다. 아내도, 아이들도 나의 운동실력을 못믿기는 마찬가지다. 몇 주전 애비의 민턴 실력을 늘 우습게 여기던 아는 큰 놈을 30대 빵으로 눌러놨더니 컨디션 탓으로 돌린다. 내 참!!! 아무튼 배드민턴은 참 좋은 운동이다. 운동량이 농구보다도 앞서고 마라톤 다음이라고 한다. 나의 친구는 1시간 30분을 뛰면 체중이 정확히 2kg가 빠진다. 그날밤에 음주로 '도로 마찬가지'인 게 탈이지만. 그 친구는 최근 어느 월간지에 "늙어가는 부부들이여, 노여움만 늘어나는 40대 후반의 남정네들이여, 신새벽 추위를 털고 라켓을 들고 집을 나서자"는 장문의 글을 긁어댔다. 한번 민턴에 미쳐보면 어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