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예술문화의 등대의 세월 50년
[예술에의초대 2023.10월호]
부산예술문화의 등대의 세월 50년
_ 만남과 그리움의 시간을 보내고 _
정 두 환(문화유목집단동행 예술감독)
어린시절 조방 앞은 넓은 공터로 친구들과 축구와 야구를 하며 놀던곳이었다. 집에서 조금 멀기는 하지만, 학교 운동장 보다 넒은 공터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곳이었으며, 동네 친구들과 놀러 간다는 것은 아주 신나고 즐거운 일이었다.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웃고 떠들며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듯 시간은 저녁 먹을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과 보다 넒은 공터를 찾아다니던 그 시절, 뽀얀 먼지를 마시며 놀던 어릴 때 이야기이다.
부산시민회관은 1973년 10월 10일 개관되었다. 시민회관 주변엔 그다지 큰 건물이라곤 바로 옆의 삼익아파트, 조금 떨어진 곳에 평화시장, 부산시외버스 터미널, 고속버스 터미널 정도였다. 특히, 늦은 밤 배의 안전 운항을 돕는 등댓불 처럼 부산예술문화의 등대를 밝히는 시간이 되면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불빛으로 변하여 부산시민회관 공연장의 당당함을 알리는 그 위용에 부러움과 공연에 참여하고픈 꿈을 키웠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많은 사람들이 잘 차려입고 음악회장을 찾았다. 부산시민회관은 어릴 때부터 필자 역시 참으로 열심히 찾은 곳이다. 그때 일반 대중들의 삶이 대부분 다 비슷하겠지만, 많이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필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음악회장을 찾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어머니께서 사주신 회수권(버스를 탈 수 있는 표)을 친구들에게 팔곤 학교를 걸어 다니며 아낀 돈으로 시민회관을 찾아 음악회를 보기도 하였다. 그때 들은 음악이 너무 좋아 서면의 레코드점에서 빽판이라고 하는 복사판을 사서 집에서 늦은 시간까지 들었던 기억도 새롭다. 처음 백건우의 피아노 독주회를 관람한 곳도 시민회관이며, 로저와그너 합창단을 비롯한 수많은 무대 위 음악인들을 시민회관에서 만났다.
필자는 음악이 참 좋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며 그냥 좋았다. 듣는 것이 좋았고, 부르는 것이 좋았다. 그러니 무대 위의 음악인들이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불이 환하게 밝혀진 시민회관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데 가지 못하고 집에 있는 날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환하게 밝혀진 시민회관이 보이는 곳에 서서 화려한 불이 꺼질 때까지 하염없이 바라보기를 참 많이도 하였다. 불 켜진 시민회관이 마냥 좋았고, 그곳에서 듣는 음악은 천국 같았다.
이제 부산시민회관이 개관한 지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무리 긴 시간이 흘러도 부산시민회관은 여전히 부산 문화예술의 상징이며 등대 같은 존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부산시는 1963년 정부 직할시 승격 이후 꼭 10년만인 1973년에 부산시민회관을 개관하였다. 이는 부산문화예술 특히, 공연, 전시분야 관련 예술의 활성화를 위한 축포와도 같았다. 부산시민회관이 개관되면서 흩어져있던 부산시립교향악단, 부산시립합창단, 부산소년소녀합창단 그리고 전국 최초의 시립무용단인 부산시립무용단까지 모두 4개 단체가 부산직할시립예술단이라는 명패를 부산시민회관에 붙이며 예술인들의 터전의 깃발을 올렸다.
부산시립예술단은 매 연주를 극장과 교회를 비롯하여 공간이 있는 곳이며 그 어디든 달려가 연주를 하던 떠돌이에서 벗어나 최고의 연습시설과 공연시설을 갖춘 곳에서 연습과 공연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필자의 어린눈에도 정말 열심히 공연하던 연주자들의 모습이 아직도 보이는 듯하다. 어찌보면 열악한 환경을 지내온 연주자들이였기에 열정으로 뭉친 그들의 연주는 실력을 능가하는 힘이 있었는지 모를일이다.
1973년 10월 10일 개관한부산시민회관은 2004년 부산시설관리공단으로 그 ㅇ운영권이 넘어갔다가, 2017년 10월 1일 재단법인 부산문화회관과 통합하여 부산문화회관에서 운영되어지고 있다. 한때는 아시아 최고의 음향을 자랑한다며, 부산시민회관을 찾은 많은 연주자들 또한 그 음향에 칭찬하였던 시절이 있었다. 전문공연장 형태는 갖추었으나, 복합문화예술공간이라는 복합으로 인하여 대규모의 실내 행사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르의 행사와 공연이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다보니, 세월이 흐르면서 음향판이 망가졌다. 자연음향 위주의 홀이였으나, 전자음향이 쏟아내는 음향을 다 소화하지 못하여 결국은 반사판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던 것이다. 부산에 1,600여석의 좌석을 제대로 갖춘 대극장이 시민회관 대극장 뿐이니 실내 대규모 행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이해는 된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립예술단들은 더욱 열과 성을 다하여 다양한 공연을 소화해 내기도 하였다. 1986년 부산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설문하여 부산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교향곡을 선정하여 LP작업을 처음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지휘자 박종혁선생이 이끄는 부산시립교향악단은 브람스(JOHANNES BRAHMS)의 교향곡 제4번 (Symphony No.4 e-minor op.98) 전 악장의 음반을 서울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하기도 하였다. 당시 예술인들의 열정을 필자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부산시민회관은 1,606석의 대극장을 비롯하여, 385석의 소극장과 240㎡의 면적의 전실. 야외극장등을 구비하여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특히, 3.4층에 마련된 연습실은 일반 예술 동호회등이 사용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추고 있다. 필자는 부산시민회관의 역량을 더욱 강화할 필요성을 늘 피력하여 왔다. 부산 공연문화의 태동을 중심적으로 역할을 하여온 것도 있지만, 부산공연예술의 전문극장으로 시작하였다는 역사성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50년을 한결같이 예술의 향기를 부산시민들에게 전하고 있는 부산시민회관은 더 많은 일들을 위해 뛰어야 한다. 어린시절 예술의 향기를 맡으며 자란 지금의 예술인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필자 또한 그 중의 한명이며 관객에서 연주자로 40여년을 활동하였다. 수없이 관람하던 곳에서 처음으로 무대에서 관객을 향해 인사를 올렸던 그 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공연이 모두 끝난 뒤 불꺼진 객석을 무대에서 바라보며 다짐하였다. 진심을 담아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로 살아갈 것을 필자에게도 부산시민회관은 예술혼을 가르쳐주었던 현장이다.
이제 이곳이 부산의 공연예술을 더욱 단단하게 앞서가기 위해 부산공연예술을 전반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부산예술도서관을 부산시민회관에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부산 그 어디에도 예술 전문도서관이 없다. 부산의 1세대 또는 1.5세대 예술인들이 점점 하늘의 명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다. 부산의 앞선 예술가들의 흔적을 더 늦기 전에 한 곳에 모으는 작업을 하여야 한다. 이는 일제시대를 지나 6.25전쟁과 산업화에 이어 정보화를 이루어낸 뒤 세계속의 한국 예술문화 속에서 부산이 자리하였던 역사들을 모으는 작업이기도하며, 앞으로의 50년 아니 100년을 향한 기반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부산예술도서관은 꼭 필요하며 그 장소로는 공식적인 예술문화공간이었던 부산시민회관이 적격이다.
부산시민회관 50년은 부산공연문화예술의 산 기억이며 증거의 현장이다. 앞으로의 삶은 더욱 문화와 예술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컴퓨터라는 기기를 통하여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지만, 이는 아날로그의 삶을 돕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더욱 쉽게 찾을 수 있는 예술현장, 더욱 친근하게 만나는 예술현장. 결론적으로 예술현장을 찾기 위해 존재하는 가상현실의 세상이다. 앞으로의 50년 100년을 향한 힘찬 항해에 큰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부산시민회관이 이었기에 지금의 부산공연예술은 더욱 성장할 수 있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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