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박순(72·춘천 성암교회) 장로가 십자가와 사랑에 빠졌다.
2005년 8월 경기도 양주 연수원에서 진행된 영성 프로그램 ‘엠마오 가는 길’에 참가한 게 사랑의 시작이었다. 이곳에서 그는 기도와 묵상을 반복하면서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겼다.
“대형 십자가 아래 앉아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한창 기도를 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게 십자가는 무슨 의미일까.’ 답은 간단했습니다. 사랑 헌신 희생. 십자가에는 이 모든 것이 담겨 있더라고요.”
그는 십자가에 담긴 숭고한 뜻을 세상에 전하고 싶어 십자가 제작에 뛰어들었다. 목공에는 젬병이었지만 주야장천 십자가 만들기에 몰두하며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십자가 작가’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안 장로의 집은 춘천의 시골동네에 있었다. “지난 10년간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십자가가 1만개는 될 것”이란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십자가를 선물하며 살아왔다.
“십자가는 예수님의 고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성물(聖物)이지 않습니까. 그런 물건인 만큼 십자가를 돈 받고 팔았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십자가 장사’를 하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일입니다. ”
안 장로는 스물다섯 살 때 처음 교회에 나갔다. 크리스천 여성과 맞선을 본 뒤 호기심이 발동해 교회에 출석한 게 신앙생활의 시작이었다. 젊은 시절 회사 경비원으로, 어린이집 차량 기사로 일하며 돈을 버는 와중에도 신앙생활을 게을리한 적은 없었다.
40년 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십자가 만들기는 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다. 바로 ‘섬김’의 가치였다. 그는 “지난 10년은 나를 낮추고 남을 섬기는 정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시간이었다”고 설명했다.
“저의 십자가들이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묵묵히 십자가를 만들며 살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