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선열전(八仙列傳) 3 - 선인(仙人) 여동빈(呂洞賓)
- 팔선(八仙)에 대해
팔선은 중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속세를 초월한 숱한 기행(奇行)들로 알려진 8분의 대선인(大仙人)이다. 이들은 종리권ㆍ장과로ㆍ이철괴ㆍ한상자ㆍ여동빈ㆍ조국구ㆍ남채화ㆍ하선고를 말한다. 이들 중에 하선고만이 여선(女神仙)이다.
민간에서 유행하는 팔선도(八仙圖) 그림에서 조국구(曺國舅)는 송나라 조황후의 아우로서 신선이 되어 운양판(雲陽板)을 가지고 있다. 종리권(鍾離權)은 한나라 때 사람으로, 부채를 들고 있다. 한상자(韓湘子)는 한상의 존칭인데, 당나라 때 유명한 유학자이자 문장가 한유의 조카인데, 피리를 불고 있다. 여동빈(呂洞賓)도 당나라 때 사람으로, 늘 등에 칼을 차고 손에는 불자(佛子)를 들고 있다. 유일한 여성 신선 하선고(何仙姑)는 이름이 경(瓊)이며, 당나라 때 사람으로 연꽃을 들고 있다.
그리고 남채화(藍采和)도 당나라 사람으로 청년 모습을 하고 꽃바구니를 들고 있다. 장과로(張果老)는 장과의 존칭이며, 당나라 때 사람으로 나귀를 거꾸로 타고 어고와 간판을 가지고 있다. 이철괴(李鐵拐)는 절름발이로, 어느 시대 사람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표주박과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
이들 팔선들은 당나라와 송나라 때 문헌에 나타나다가 원나라 때부터 팔선으로 정리된 듯하며 중원의 소설, 희곡, 회화, 건축 등 여러 분야에서 흥미로운 소재가 되어 왔다. 또한 민간에 널리 유전되어 오는 여러 가지 수많은 일화들이 전해져 온다.
이번에는 고금에 널리 알려졌고, 민중들에게 가장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선인 여동빈의 이야기이다.
- 여동빈 악양루에 오르다
신선 여동빈의 호쾌함이 돋보이는 시 한 수가 있다. 어느 날 동정호에 달이 휘영청 뜬 밤에 여동빈은 홀로 악양루에 올라, 이 시를 읊었다고 전한다.
자영(自詠) 스스로 읊노라
獨上高樓 望八都 독상고루 망팔도 (홀로 높은 누각에 올라 팔방을 바라보니)
墨雲散盡 月輪孤 묵운산진 월륜고 (먹구름 흩어지고 둥근 달만 외롭게 떠있네.
茫茫宇宙 人無數 망망우주 인무수 (망망한 우주에 사람들은 많고도 많은데)
幾個男兒 是丈夫 기개남아 시장부 (사내대장부라 할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
이 시는 무한한 우주공간까지 이어지는 기개를 느끼게 하는 통쾌한 작품이다. 여동빈은 당(唐)나라 때의 대표적인 도인이며 민간에서는 팔선의 하나로 인구에 널리 회자되었다. 도사 여동빈이 활약하던 당시는 황소(黃巢)의 난으로 세상이 뒤숭숭할 때였다. 그래서 혹자들은 이 시에서 여동빈이 황소의 난을 평정할 사람 하나 없는 현실을 탄식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동빈은 팔선 중에 전해오는 일화와 사적이 가장 많다. 민간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개가 여동빈을 보고 짖다니, 좋은 사람을 몰라본다”(狗咬呂洞濱, 不識好人心)는 말이 있다. 그만큼 여동빈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여동빈 성명 석자는 세간을 두루 돌면서 중생을 구원한 신선의 대표적 명칭이 되었다.
- 출생 일화
여동빈의 본명은 경(?)이고, 자(字)는 백옥(伯玉)이며 또 다른 이름은 소선(紹先)이다. 출가 후에는 이름을 암(岩)으로 고쳤고, 자는 동빈(洞賓)이다. 그는 당나라 후대, 관서 하중부 낙현 사람이다. 현재 지명은 산서성 영락현이며, 그곳에는 그가 태어난 것을 기념해서 만수궁(萬壽宮)을 세웠다. 그는 당나라 덕종 정원(貞元) 12년(797년) 4월 14일에 출생했다고 한다. 그의 모친이 여동빈을 낳을 때, 기이한 향기가 온 방에 가득하고 자주색 구름이 하늘을 덮었으며 한 마리 선학(仙鶴)이 하늘에서 날아 내려와 침상으로 날아들다가 돌연 사라졌다고 한다.
- 마조 도일(馬祖 道一)의 미래 예견
여동빈은 태어나면서부터 관상이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양쪽 눈썹이 길게 비스듬히 구레나룻과 이어졌고, 봉황의 눈매에 광채가 나며, 코는 높고 단정하며 왼쪽 눈썹과 왼쪽 눈 아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이렇게 기이한 조짐을 갖고 태어난 이 아이를 매우 총애하였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교롭게도 불교 선종의 6조 혜능대사의 손(孫)제자인 마조(馬祖)화상이 그의 집을 방문했다. 동빈의 부친은 강보에 싸인 아이를 안고 와서 마조대사에게 보이면서 아이의 앞날을 물었다. 마조대사가 동빈의 운명을 점쳐본 후 “이 아이는 풍모가 맑고 기이하며, 골상 또한 평범하지 않으니, 풍진을 벗어난 뛰어난 인물이다. "아이가 성장한 후 우여즉거(遇廬則居, 여를 만나면 머물고)하고, 우종즉고(遇鍾則叩, 종을 만나면 두드려라)하라."하면서 "이 여덟 자를 평생 꼭 기억하라."는 말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나중에 마조대사가 예언한 그 여덟 자의 의미처럼, 동빈은 과연 여산(廬山)에서 수행하였고, 종리권(鍾籬權)을 만나 도를 배우게 된다
[*마조도일(馬祖道一) : 당나라때 승려로 750년 전후에 활약하였으며 속성은 마(馬)씨, 통칭 마조도일이라 한다. 사천성 출신으로 19세에 출가하여 선종 6조 혜능 문하의 남악 회양(南岳 懷讓)의 법을 이었다. 강서성 홍주를 중심으로 교화하였기 때문에 그 일파를 홍주종(洪州宗)이라 한다. 널리 알려진 문하생은 백장, 대매, 남천 등이며 남악의 종풍이 크게 융성하였고, 후일 임제종(臨濟宗)으로 발전하였다. 당시는 '마조 천하'라 하여 마조의 선풍이 온 세상을 덮었으며, 일상생활 속에서 선(禪)을 실천하는 새로운 선종이 이 무렵 시작되었다.]
- 여동빈의 젊은 시절, 두 차례 과거시험 낙방
여동빈은 어린 시절에 총명이 남달라, 하루에 글자 만 자를 암송하고 말이 입에서 나오면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성장한 후 신장은 8척 2촌에 목덜미는 기다랗고 이마는 넓었으며, 봉황의 눈과 광채 나는 눈썹에 행동거지는 당당했다. 성격은 소박하였으나 말주변이 없었으며, 언사가 능숙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성년이 되어 김씨를 아내로 맞아 자녀 넷을 두었다. 당나라 무종(회창) 연간에 여동빈은 두 차례나 장안에 가서 과거를 보았으나, 두 번 다 낙방하고 말았다.
- 장안 술집에서 선인 종리권을 만남
여동빈이 두 번째로 장안에 올라가 과거에 응시하였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46세였다. 이번에도 과거에 낙방하고 낙심한 가슴에 쌓인 울적한 심정은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오후에 그는 울적한 마음을 풀기 위해 발길이 가는대로 걷다가 어느 작은 술집에 들어갔다. 그리고는 홀로 술을 따라 마시고 있었다. 그 심정은 바람에 떠도는 가을 낙엽처럼 의지할 바 없이 쓸쓸하였다.
바로 이때 그 술집으로 긴 수염에 빼어난 눈썹, 안색이 붉으레 빛나는 도사복장의 한 노인이 들어와 여동빈의 맞은 편 빈자리에 앉았다. 세간의 다툼이 없는 듯 사리사욕이 없고, 온화함이 넘치는 듯한 그 노인의 풍모는 여동빈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새 두 사람은 마주하여 술잔을 권하면서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 선인 종리권, 즉석에서 시(詩)를 짓다
술잔을 돌리면서 서로의 심사를 한마디씩 토로한 후, 풍채 좋은 노인은 돌연 시심이 크게 일어난 듯 술집 종업원을 불러 붓과 먹을 가져오게 하였다. 노인은 즉석에서 시를 읊으면서, 붓을 들어 술집 벽 위에 다음과 같이 써내려 갔다.
坐臥常携 酒一壺 좌와상휴주일호 (앉으나 누우나 늘 한 호로의 술을 갖고 다니며)
不敎雙眼 識皇都 불교쌍안식황도 (두 눈으로는 서울의 일을 모르도록 했다네)
乾坤許大 無名姓 건곤허대무명성 (하늘과 땅은 이리도 큰데, 성도 이름도 없이)
疏散人間 一丈夫 소산인간일장부 (한낱 인간세상 떠도는 한 사내일 뿐이라네.)
여동빈은 시를 음미해 보고는 노인의 시풍이 표일하고 호방함을 깊이 찬탄하였다. 여동빈은 두 손을 맞잡고 가슴까지 올려 절을 하고난 후, 노인에게 물었다.
“비록 하늘과 땅이 이렇게 큰데 성도 이름도 없다고 하시지만, 후배인 저로서는 도인께서 칭호가 있을 것 같아 묻자옵니다. 어르신의 성명 삼자를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노인은 두 눈에 미소를 띠면서 “나의 성은 종리(鍾離)이고, 이름은 권(權)이요.”라고 하였다. 여동빈은 ‘종리(鍾離)’ 두 글자를 듣자, 마음속에 마치 종이 울리듯 옛날 부모가 늘 말씀하셨던 ‘마조(馬祖)선사의 예언’이 떠올랐다. "여廬를 만나면 머물고(遇廬則居), 종鍾을 만나면 두드려라(遇鍾則叩)."라는. 문든 앞에 앉은 이 기이한 노인이 바로 자신이 마땅히 두드려야 하는 종(鍾)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여동빈, 선인 종리권에게 시(詩)로 화답하다
여동빈은 어려서부터 들어왔던 예언이 적중하는 상황을 만나자, 순간 멍하였다. 이때 종리 노인이 술잔을 들며 “자, 우리 술 한 잔 합시다.” 하면서 술을 권한다. 술을 마신 후, 종리 노인은 “자네도 시 한 수 짓는 게 어떠한가?” 하였다. 여동빈도 술 한 잔을 마시자, 시심이 샘솟듯 올라와 붓을 들고 술집 벽 위에 일필휘지로 써내려갔다.
生在儒家 遇太平 생재유가 우태평 (선비 집안에 태어나 자라 태평시대를 만났건만)
懸纓垂帶 布衣輕 현영수대 포의경 (갓 끈 걸어두고 허리띠 벗어 놓으니 삼베옷이 가볍구나.) (*벼슬하지 않음을 삼베옷에 비유)
誰能世上 爭名利 수능세상쟁명리 (그 누가 세상과 더불어 명예와 이익을 다투리오?)
欲侍玉皇 歸上淸 욕시옥황귀상청 (옥황상제를 모시러 상청경으로 돌아갈까 하노라.)
종리권은 여동빈의 시를 한참 물끄러미 쳐다본 후 크게 기뻐하면서 “그대는 이미 도(道)를 향하는 마음이 있는데, 나를 따라 세상을 버리고 입산하지 않겠소?” 하였다. 여동빈은 머리를 흔들며 집안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을 생각하고는 아무래도 속세를 떠나기가 어려운 듯이 말하였다.
종리권은 여동빈을 한번 척 보고는 그의 마음을 다 꿰뚫어 본 듯이 몸을 일으키면서 “그대와 나는 곧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지금은 우선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내일 당신은 여기 적혀있는 이 여관의 주소로 나를 찾아오라.” 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 여동빈, 종리권을 찾아가다
종리권과 헤어진 다음날, 여동빈은 종리권이 준 주소를 들고 장안 근처 여관으로 찾아갔다. 찾아간 때가 정오여서 선인 종리은 마침 방안에서 작은 화롯불을 피워놓고 부채질을 하면서 노란 조밥을 짓고 있었다. 서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여동빈은 갑자기 졸음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종리권이 그를 보고는 말했다.
"자네는 이미 피곤에 지쳐서 자고 싶다는 생각뿐이니, 저기 내 침상에 올라가 조금 자게나. 내게는 작은 베개가 있는데, 이름을 여의침(如意枕)이라고 하네, 자네는 여의침을 베고 자면서, 여의몽(如意夢)이나 한번 꾸게나."
- 인생은 한낱 꿈인가
여동빈이 여의침을 베고 눕자마자 몽롱해지더니 하염없이 잠속으로 곯아 떨어져서 꿈을 꾸었다. 여동빈은 젊어서 장안에 가서 진사시험을 보았다.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었다. 그 후 권문세가의 여자를 아내로 맞아 장가들고, 자식도 여럿 낳았다. 인간세상의 부귀영화가 한몸에 모이듯이 출세 가도를 달렸다. 평생의 소원을 크게 이루어졌다고 그는 기뻐하였다.
바야흐로 만사가 순조로워 인생의 최고조를 만난 듯 득의양양할 때, 재앙이 하늘에서 내려오듯 홀연 다른 당파의 모함에 걸려 들었다. 황제의 노여움이 하늘을 찔러, 감찰기관으로 하여금 그의 죄를 다스리게 하여 재산을 전부 몰수하였고, 아내와 자식들도 다 흩어졌으며, 그 자신도 재판을 받아 강제로 멀고먼 변방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 자신 혈혈단신으로 겪는 그 고초는 이루 형언할 수가 없었다.
스스로 인생의 무상함을 크게 탄식하다가, 홀연 꿈에서 깨어났다. 여동빈은 잠에서 부시시 깨어나면서 “그 수십 년의 인생살이 역정에서 부귀영화가 정녕코 한바탕 꿈에 불과하다는 것인가?” 하며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니, 낮잠에 들기 전처럼 선인 종리권이 아직까지도 화롯가에 쭈구리고 앉아 노란 조밥을 짓고 있는데, 그 조밥은 아직 익지도 않았다.
- 선인 종리권을 스승으로 모시다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이 꿈에서 깨어난 것을 보고는, 웃으며 읊조리듯이 말했다.
"노란 조밥이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꿈이 끝났다. 너의 오십 년 부귀영화도 절정까지 갔다가 이렇게 결말이 나지 않았는가?"
여동빈은 본래 도(道)를 향한 마음이 속에 있었는데, 단지 지난 10년 간 어려운 고난이 있었고 그 고난에 대한 소득이 없어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생생하게 꿈속에서 점화(點火)가 되었고, 갑자기 그는 자신을 성찰하고 깨닫게 되자 세상에 대하 모든 미련을 버리고 수도하고자 결심을 하였다. 여동빈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선인 종리권에게 절을 하고는 스승으로 모셨다.
- 자네 황백술(黃白術)을 배우겠는가?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을 제자로 받아들인 후, 여동빈에게 말했다.
"천부적인 너의 좋은 자질을 보건대 세상을 제도하는 선술(仙術)을 닦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오욕칠정에 물들은 인간의 마음을 제거하기가 어려워, 신선이 되기는 실로 어렵다. 너의 공행(功行)을 다 채우지 않아서, 설사 신선이 되는 신선술을 배웠다 하더라도 실제 효과가 나타나기 어렵다. 그러니 내가 너에게 쇠를 금으로 만들고, 납을 은으로 만드는 황백술(黃白術)을 전수하는 것보다 못하다. 너는 이 황백술로 세상을 제도하고 사람을 이롭게 하라. 삼천 가지 공덕이 차고 팔백 가지 선행을 마치고 나면 내가 다시 와서, 그때 너를 제도하겠다. 너의 생각은 어떠한가?"
- 종남산 학정봉 동굴에서 수련하다
사제(師弟)의 예가 끝난 후 선인 종리권은 여동빈의 손을 끌고서 장안 교외로 나갔다. 그곳에서 순간적으로 공간이동을 하여 종남산(終南山) 학정봉(鶴頂峰) 위의 한 동굴에 도착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니 햇빛이 비추어 들어오는데, 포근하기가 마치 봄날과 같았다.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큰 반석 위에 마주앉아 원화주(元和酒)를 석 잔째 마시고 있는데, 비취빛 저고리에 붉은 바지를 입은 한 사람이 구름을 밟고 기이한 향기를 풍기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와 선인 종리권에게 봉래산 천지회 모임에 같이 가자고 초대를 한다. 그러자 종리권은 수련서인 '현결(玄訣)'을 그에게 남겨놓고는, 자주색 구름을 타고 하늘 저 멀리로 사라졌다.
며칠이 지난 후 종리권이 동굴로 되돌아 왔을 때, 여동빈은 스승이 남겨놓고 간 '현결(玄訣)'을 부지런히 숙독해서 경지가 전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 스승과 이별 - 십년 후 동정호에서 만나기로 약속
여동빈이 스승과 함께 수행하고 있는 동안에 청계선인 정사원과 태화선인 시호부가 선인 종리권을 만나러 찾아왔다. 여동빈은 두 분의 선인에게 큰절을 하고는 가르침을 받았다. 그 당시 때는 바야흐로 봄이라, 새들이 다투어 울고 있는 호시절이기에 선인 종리권은 흥에 겨워 시를 읊조렸다.
春氣塞空 花露滴 춘기색공 화로적 (봄기운이 공중에 가득하고 꽃에 이슬 맺혀 떨어지는데)
朝陽拍海 岳雲歸 조양박해 악운귀 (아침해 바다에서 솟아오르니 산구름이 흩어지네.)
-아침해 바다에서 솟아오르니 산구름이 흩어지네
스승 종리권은 여동빈에게 이 시를 동굴 입구에 새겨 놓으라고 했다. 이어서 종리권이 여동빈에게 “나는 하늘의 옥황상제를 배알하러 가려고 한다. 너는 이 동굴에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십 년 후 동정호 악양루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스승은 그에게 '영보부법(靈寶符法)'이라는 도가 비전의 수련서를 주고는, '삼원삼보(三元三寶)'에 관한 설법을 하였다.
설법을 마치자, 두 명의 천사가 금첩(황금으로 만든 초대장)을 받들고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어서 하늘에서 봉황과 난새가 출현하고 선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선인 종리권은 두 천사와 함께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라 사라져 갔다.
스승 종리권이 떠난 후, 여동빈은 동굴에서 몇 년을 더 머물렀다. 수련을 한 동굴이 거대한 암석 가운데 있어, 여동빈은 동굴을 집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름을 경(瓊)에서 암(岩)으로 고치고, 자(字)를 동빈(洞賓: 동굴 속의 손님)이라 하였다. 또 동빈은 이곳에서 도가의 진전(眞傳)을 모두 얻었고, 수도하여 몸속에 음의 기운(塵陰)을 모두 몰아내었으며, 순양(純陽: 순수한 양의 기운)만 몸에 남아, 도호를 '순양자(純陽子)'라고 하였다.
- 십년 후 악양루에서 스승과 해후
종남산 학정봉의 동굴을 나온 후, 동빈은 누런 모자에 도인 복장을 하고 호(號)를 회도인(回道人)이라 바꾸었다. 회(回)자는 크고 작은 두 개의 구(口)로 구성되어 있으니, 암암리에 여(呂)자로 성(姓)이 여(呂)씨라는 것을 나타낸다. 이때부터 동빈은 흘러가는 구름처럼 천하를 노닐면서 사해(四海)를 집으로 삼았다.
스승 종리권과 만날 약속시간이 다가오자, 동빈은 동정호로 갔다. 악양루에 올라, 마침내 10년만에 스승 종리권과 해후하였다. 종리권은 동빈을 데리고 자기의 스승 고죽진군(苦竹眞君)을 알현하였다. 고죽진군은 동빈에게 도가의 비전인 '일월교병지법(日月交幷之法)'을 전수하였다.
- 여산에서 천둔검법을 배우다
그 후 동빈은 스승과 사조(師祖)와 헤어진 후, 양자강 하류 지역에 있는 천하명산 여산(廬山)에 놀러갔다가 화룡진인(火龍眞人)을 만나서 수련하게 되었다. 이 여산이야말로 일찍이 마조대사가 예언한 우여즉거(遇廬則居: 여를 만나면 머문다)의 그곳이 아닌가?
동빈은 여산에서 화룡진인에게서 '천둔검법(天遁劍法)'의 진수를 배웠다. 이때부터 여동빈은 강호상에 노닐 때 항상 몸에 보검을 차고 다녔다. 선인 여동빈은 이 칼로 수많은 요마(妖魔)를 제거하고 허다한 공덕을 쌓았으므로, 항상 등에 칼을 찬 모습으로 신선도(神仙圖)에 등장한다.
- 구름 따라 무창 황룡산에 오르다
하루는 여동빈이 구름 따라 노니면서 무창 황룡산으로 갔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중 절위에 자주색 구름이 가득 덮여 있어 이인(異人)이 있음을 알고, 문득 절 안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황룡선사가 마침 법당에서 설법을 시작하려는 중이었다.
여동빈도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 무리들 속에 묻혀, 함께 법당으로 들어갔다. 문득 황룡선사는 ”오늘 여기에 법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는데, 이 늙은 중은 설법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 여동빈, 황룡선사와 선문답을 하다
여동빈은 곧 자기를 가리키는 것을 알고는, 군중 속에서 나와 예를 취하면서 말하였다.
“화상께 묻겠습니다.
一粒粟中 藏世界 일립속중 장세계 (한 알의 조 알갱이 속에 세계가 감춰져 있고
半升金當內 煮山川 반승당내 자산천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는다)
이 한 마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황룡선사가 껄껄 웃고는 여동빈을 가리키면서 “원래 당신은 시체 같은 죽지 않은 귀신이로구나!” 하였다.
여동빈 또한 노여움을 띠지 않은 채, 눈썹을 펴면서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내가 늙어도 죽지 않는 것을 조롱하지 마시오. 나의 호주머니 안에는 장생불사의 약이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소?”
이에 황룡선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饒究經得 八萬劫 요니경득 팔만겁 (당신이 설사 팔만 겁을 지내 왔더라도)
難免一朝 落空亡 난면일조락공망 (하루아침에 공망에 떨어짐을 면할 수 없다.)"
- 여동빈, 황룡선사와 법력을 겨루다
여동빈은 황룡선사의 기지와 총명이 남다름을 알고는, 황룡선사의 법력이 얼마나 고명한가 시험해보고 싶어 등에 찬 보검을 꺼내면서 말하였다. “이 검은 내가 늘 휴대하는 신령한 보검이오. 내가 원하는 대로 능히 되니, 검을 칼집에서 나오라 하면 곧 빠져 나오고, 칼집에 들어가라 하면 곧 들어가오. 선사께서는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소?”
황룡선사가 빙그레 웃으면서 “비록 영물이지만 그것이 도력 있는 사람의 명령을 들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당신이 먼저 한번 시험해 보시오.” 하였다. 여동빈은 보검을 향해 '칼집에서 나오라'고 외치자, 그 검은 칼집에서 스스로 나와 은빛을 뿌리며 절 대웅전 기둥으로 날아가 검 끝이 똑바로 나무로 깎은 용의 눈에 박혔다.
황룡선사가 가볍게 웃으면서 오른손을 들어 올려서는 중지로 기둥에 박힌 보검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내가 보건대, 당신이 이 검을 능히 칼집에서 끄집어낼 수는 있으나, 다시 꼽을 수는 없다.”
여동빈이 잠시 놀라다가, 큰소리로 웃으면서 보검을 향해 “칼집으로 들어가라.”고 외쳤다. 그러나 보검은 기둥에 박힌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 검은 여동빈이 여산에서 검술을 배우고 하산한 후 줄곧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어서 그 신령스럽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여동빈은 황룡선사의 도(道)와 법(法)이 실로 높고 깊음에 탄복하고는 그 자리에서 절하여 사과하면서 불법(佛法)을 가르쳐 줄 것을 청하였다. 황룡선사는 여동빈의 마음에 진심과 성의가 있음을 알고는 그 자리에서
“당신은 이미 반 되 들이 솥으로 산천을 삶고, 또 어떻게 한 알의 조 속에 세계를 감출 수 있는가를 듣지 않았는가? 내가 말한다면, 그 뜻은 즉, 먼저 마음속에 아무런 욕심이 없어야만 (先要心中無物) 능히 삼라만상을 둘러싸 안을 수 있다(方能包羅萬象)는 것이다.” 하고 알려주었다.
- 황룡선사의 가르침에 오도송을 짓다
황룡선사의 한 마디에 크게 깨달은 여동빈은 즉석에서 오도송을 지었다.
棄却瓢囊 擊碎琴 기각표낭 격쇄금 (하나있는 표주박 주머니도 버리고, 거문고도 깨뜨렸다.)
從今不戀 汞中金 종금불연 홍중금 (이제부터 불사약에 더는 연연하지 않으리.)
自從一見 黃龍後 자종일견 황룡후 (이제 황룡선사를 한번 만나본 후에
始覺當年 錯用心 시각당년 착용심 (비로소 당시 마음 잘못 쓴 것을 깨달았다네.)
여동빈은 낭랑히 오도송을 읊으면서 황룡선사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는 표연히 떠나갔다.
- 여동빈, 신선이 되어 올라가다
여동빈은 이 세상에서 백여 세까지 지내다가 무창 황학루 3층 누각 위에서 마침내 신선이 되어 올라갔다고 한다. 신선이 된 후에도 여동빈은 수시로 인간 세상에 그 모습을 나타났다고 한다. 역대로 그가 인간 세상에 와서 놀다가 세상과 사람을 제도한 전설이 너무 많아서 모두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중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 하나를 소개하겠다.
- 여동빈, 200여 년 후 송(宋)나라 때 악양루(岳陽樓)에 출현하다
송(宋)나라 경력 4년(1044년), 등자경은 중앙 정치무대에서 쫓겨나 파릉군 태수가 되었다. 부임한 다음해 그가 다스리던 파릉군은 정치를 잘하여 백 가지 폐단이 바로 서고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이때 등자경은 당나라 때 연국공 장열(張說)이 세웠던 악양루가 낡아서 보수를 하였다. 악양루 보수가 끝난 날 그는 큰 잔치를 열었다. 연회가 막 시작되려고 하는데, 등자경은 문득 이름만 적힌 명첩 하나를 받았다. 그 위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고, 다만 ‘화주(華州)도사가 삼가 문후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등태수는 사람을 보내서, 그 도사를 악양루 위로 올라오게 하였다. 얼굴을 보니 긴 수염이 가슴까지 드리웠고 등 뒤에는 장검을 메고 있는데, 그 모습이 청수하고 기이한 도인이었다. 그 도사는 누각 위로 올라와 등태수와 마주하여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아서 호쾌하게 술을 마시고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좌중을 압도하였다. 악양루 중창 경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술에 취한 후 각자 붓을 들고는 시와 글을 짓기 시작했다. 화주도사 또한 붓을 들어 다음과 같이 시를 지었다.
朝游東海 暮蒼梧 조유동해모창오 (아침에는 동해에서 놀다 저물어 창오군으로 가니, ) (*창오군은 광서성에 있음)
袖裏靑蛇 膽氣粗 수리청사담기조 (소매 속 단검에는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네.)
三醉岳陽 人不識 삼취악양인불식 (악양루에서 세 번 취해도 사람들은 몰라보아도, (*내가 여동빈임을 모른다는 뜻)
郞吟飛過 洞庭湖 랑음비과동정호 (낭랑히 시 읊으며 동정호를 날아서 지나가네.)
등자경은 화주도사의 시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는, 즉시 그 자리에 있던 화공에게 화주도사의 취한 모습을 급히 그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등태수는 친히 예를 취하면서 나아가, 화주도사에게 존함을 물었다. 화주도사는 이미 모든 것을 알려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는 곧 성은 ‘여’요 이름은 ‘암’이라 하였다. 그 말을 마치고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작별을 고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등자경과 그 자리에 있던 문사들은 이때서야 비로소 그 도인이 당나라 때의 유명한 도사 여동빈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일화를 기리기 위해 악양루 우측에는 삼취정(三醉亭)이 세워져 있다. 삼취정은 청나라 건륭 40년(1775년)에 세워졌고, 그곳에는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모양의 여동빈 상과 그가 쓴 시가 새겨져 있다.
- 인명을 해치는 이무기를 단검으로 만들다
위에 나온 시(詩) "소매 속 단검(푸른 뱀)에는 담력과 기력이 더욱 호쾌하다("袖裏靑蛇 膽氣粗)에 나오는 '청사(靑蛇)'와 관련하여 고사가 전해져 온다. 일찍이 파릉현(현재 악양성) 남쪽 백학산에는 큰 호수가 두 개 있는데, 그 호수 가운데 이무기가 살고 있어서 민간에 피해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던 여동빈이 그 얘기를 듣고는 법술로 인명을 해치는 이무기를 다스려, 한 자루 단검으로 변화시켜서 항상 소매 속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 여동빈, 점쟁이로 변신하다
남송 때 비릉시에는 점을 잘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머리에는 푸른 두건을 메고 몸에는 누런 도복을 입고 있었다. 스스로 '지명(知名)선생'이라 하였다. 비릉군 태수 호도는 지명선생이 점을 기가 막히게 잘 친다는 소문을 듣고, 하루는 지명선생을 청해서 점을 쳤다.
지명선생은 태수에게 ‘당신의 수명은 매우 긴데, 곧 당신의 관직에 변동이 있을 것이오. 변동 시기는 청명절 전 5일 또는 청명 후 7일이 될게요.’ 하였다. 태수 호도는 과연 청명 5일 전에 자리를 바꾸어 형문군 태수로 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청명 후 7일이 되자 정식으로 이동명령을 받았다. 태수는 지명선생의 신기막측한 점술에 탄복하여, 사람을 보내 그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이미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호도는 형문군 태수가 된 후, 어느날 한 친구에게서 남경의 석각에 새겨진 여동빈 상을 탁본한 그림을 한 장 받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명선생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때서야 지명(知名) 두 글자 중에 지(知)자에 ‘口’, 명(名)자에 ‘口’가 있어 두 구(口)자를 합한즉 ‘여(呂)’자가 아닌가? 호도는 그가 친히 겪은 이 기이한 일을 자기 문집에 남겨 놓았다.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가
여동빈이 하루는 구름 따라 북방으로 갔다. 그는 거지 한 명이 길바닥에서 굶주려 아사 직전까지 간 모습을 보았다.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불쌍한 중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여동빈은 법술을 사용해서 거지를 구해주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돌을 금으로 만들어 거지에게 주면서 그것으로 살아가도록 하였다.
뜻밖에 황금 덩어리를 얻은 거지는 기쁘기 그지 없었다. 그러나 곧 그 거지는 욕심이 발동하여, 여동빈에게 ‘돌을 황금으로 만드는 손’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니!
또 한번은 여동빈이 기름장사로 변신하여, 기름을 팔면서 악양에 갔다. 기름을 사는 사람들마다 더 달라고 요구했다. 다만 한 노파만이 기름을 사면서 더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여동빈은 그녀가 신선공부를 할 만하다고 생각하고는, 제도하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서 한 줌의 쌀을 우물 속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그녀에게 ‘당신은 이 우물물을 팔면 부자가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노파는 여동빈이 간 후에 보니, 우물 속의 물이 전부 미주(美酒)로 변한 것을 알았다. 그 노파는 우물 속의 술을 팔아서 일년 후에 큰 부자가 되었다. 그 후 어느 날 여동빈이 그 노파의 집에 찾아가보니, 마침 노파는 집에 없고 그녀의 아들이 집에 있었다.
여동빈이 ‘당신들 집은 지난 일년 동안 술을 팔아 부자가 되었는데, 느낌이 어떠한가?’ 하고 물었다. 그 노파의 아들은 ‘좋기는 좋은데, 다만 돼지 먹일 술 찌꺼기가 없어서 힘들다.’고 푸념을 하였다. 값비싼 고급술이 매일 샘솟는데, 그까짓 술 찌꺼기가 없다고 불평을 하다니.
여동빈은 ‘인심이 탐욕스러워 부끄러움도 모르는구나.’고 탄식을 하면서, 손을 들어 우물 속의 쌀을 다시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흔들며 떠나갔다. 외출에서 돌아온 노파는 그제서야 우물 속의 술이 모두 다시 물로 변한 것을 알았다.
- 중생들이여, 시간을 아껴 수행하라
사람 욕심은 끝이 없는가? 한편으로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도 어려운 중생들을 돕고 구제하면서 여동빈은 구름처럼 천지(天地)를 집으로 삼아 운유(雲遊)하였다고 한다.
순양자 여동빈은 중생들이 명리재색(名利財色)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헛되이 죽음으로 가는 것은 우려한 듯,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겨서 후학을 경계하게 하였다.
人身難得 道難明 인신난득 도난명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도 밝히기도 어려워라.)
塑此人心 訪道根 진차인심 방도근 (사람마음 따라 도의 뿌리를 찾나니)
此身不向 今生度 차신불향 금생도 (이 몸을 이 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再等何時 度此身 재등하신 도차신 (다시 어느 때 기다려 이 몸을 제도하리.)
출처; https://cafe.daum.net/gycenter/Edmk/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