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유학에서의 기(氣)의 개념
김 용 헌
1. 머리말
2. 조선 초기의 기 개념
1) 리기이원론의 기 개념 (1) 정도전 (2) 권근
2) 기일원론의 기 개념 (1) 김시습 (2) 서경덕
3. 조선 중기의 기 개념
1) 퇴계 학파의 기 개념 (1) 이황 (2) 정시한 (3) 이현일
2) 율곡 학파의 기 개념 (1) 이이 (2) 한원진 (3) 김창협
4. 조선 후기의 기 개념
1) 성리학자들의 기 개념 (1) 임성주 (2) 이항로 (3) 기정진
2) 실학자들의 기 개념 (1) 홍대용 (2) 정약용 (3) 최한기
5. 맺음말
1. 머리말
이 글은 조선 유학자들의 기氣의 개념을 그들의 자연관과 결부하여 검토하는 것이 목적이다. 여기에는 조선 유학자들이 자연自然을 인식하는 태도나 그 인식의 체계가 변화된 모습을 보였고, 따라서 기의 개념 역시 변화되었으리라는 가정이 전제되어 있다. 자연 현상을 기에 근거해서 설명하는 자연 이해는 고대 이래로 동양인들의 오랜 전통이었고, 조선 유학자들도 그러한 전통선상에 있었다. 리기이원론理氣二元論의 틀로 자연을 설명하고자 했던 주자학朱子學이 500여 년 동안이나 줄곧 조선 사상계를 지배했다고는 하지만, 기에 대한 조선 유학자들의 이해가 한결같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500여 년 동안 수많은 정치적 굴곡은 물론이고 생산력의 발전 및 그것에 기반을 둔 생산관계 상에서의 변화가 있어 왔기에,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서양의 자연관이 유입됨에 따라 우리의 전통적인 자연관에는 변화의 조짐이 일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존재의 세계에 대한 총괄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존재론存在論, 즉 리기론理氣論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후한後漢 시대를 거치면서 동양의 지배적인 존재론으로 자리 잡은 기의 존재론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자와 그 존재자의 운동 변화를 기로 설명한다. 이때 기는 현상 세계의 물질, 생명, 정신이라는 세 층차의 존재 또는 현상을 담보해 주는 근원적 존재이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에서 있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를테면 귀신의 영역까지도 기에 의거해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결국 기는 동양의 전통 사회에서 모든 존재와 현상을 설명하는 만능열쇠였던 셈이다. 이러한 경향은 기의 세계 이전에 무無 또는 도道의 세계를 설정했던 도교적道敎的 존재론이나 리理로서의 태극太極을 궁극적 존재로 설정했던 주자학적朱子學的 리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서도 그대로 관철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형이하形而下의 세계에 대한 주희朱熹와 장재張載의 설명 방식 사이에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데서 간접적으로 입증된다.
서경덕徐敬德, 임성주任聖周로 대표되는 이른바 성리학적 기일원론氣一元論의 철학이나 이황李滉, 이이李珥 등에 의해서 정착된 리기이원론의 철학에서 기는 현상 세계의 시원始原이자 구성 요소라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조선 성리학에서 기는 천지와 만물로 이루어진 현상 세계가 생겨나기 이전의 근원적인 물적物的 존재인 동시에 현상 세계의 다양한 존재자들을 구성하고 있는 현실적인 물적 존재이기도 하다.
다만 주자학에서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본체로서 리理 또는 태극太極을 설정했다는 점에서는 차이를 보이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형이상학적 본체가 결정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 자연학, 그리고 그에 근거한 자연 철학의 영역에서 기일원론과 리기이원론의 차이점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가 된다. 이것이 조선 성리학자들의 기 개념을 발전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점이다.
이와 같은 어려움은 주자학적 자연관에서 탈피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홍대용洪大容, 정약용丁若鏞, 최한기崔漢綺 등의 실학자들의 기 개념을 검토하는 데서도 발견된다. 이들 실학자實學者들의 기와 주자학자들의 기 사이에 발견되는 결정적인 차이는 음양오행과 관련해서이다. 그러므로 리理와 음양오행(그리고 귀신론을 포함해서)을 제외하고 기만을 따로 떼어 독립적으로 논할 경우 조선 유학자들의 이론 체계 속에서 규정된 기 개념의 차이를 도출하는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 개념의 변천에 대한 고찰은 기 개념 그 자체보다는 학자들의 이론 체계 안에서 기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검토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2. 조선 초기의 기 개념
1) 리기이원론의 기 개념
(1) 정도전
정도전鄭道傳(1342-1398)의 철학 이론은 불교 및 도교와의 이론 투쟁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의 자연관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도전은 항상 도학道學을 밝히고 이단異端을 물리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는 권근權近의 평가는 정당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자연관에서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자연 세계를 비실재적인 것(假幻)으로 보는 불교의 자연관에 대한 비판이다. 일시적인 것(假) 것은 잠시 있는 것이어서 천만 년 오래 있지 않고 환상적인 것(幻)은 한 사람을 속일 수 있으나 천만인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므로 천지天地의 유구함(常久)과 만물의 영원한 생성(常生)을 가라고 하고 환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지는 오래도록 있어 왔고 만물은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것이 자연에 대한 정도전의 일차적인 이해이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실재론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정도전의 두 번째 인식은 자연의 근원이 태극太極이라고 보는 것이다. 천지 만물이 있기 전에 태극이 먼저 있어 천지 만물의 이치가 그 가운데 갖추어져 있었는데, 온갖 변화가 이것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인식은 자연의 움직임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태극으로부터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와 달, 추위와 더위가 가고 오는 것은 일정한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인식은 자연의 질서는 실재하는 리(實理)가 지배하는 것이라는 인식이다. 자연은 실리實理가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그 리를 탐구하는 궁리의 학문이 없다고 정도전은 비판한다.
다섯 번째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 관계에 대한 견해이다. 그는 [심문천답心問天答]에서 인간의 행위와 그 행위로 인한 결과가 도덕적으로 서로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에 대해서 인간의 잘못 때문에 풍우한서風雨寒暑의 질서가 어그러지고 해와 달이 가려지는 이변이 일어난다고 답한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그릇된 행위가 초래한 것으로 하늘의 뜻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늘을 책망할 것이 아니라 그 올바름을 지켜 하늘이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도전의 도덕적 천관天觀에 기반한 것으로 여기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 그에 따르면 선한 사람에게 복福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禍를 주는 것이 하늘의 도道이다.
자연의 운행은 질서 정연하며 그 질서 정연함 속에는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화를 주는 도덕성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질서 정연함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 일시적이긴 하지만 깨뜨려질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자연관 속에서 기는 어떻게 규정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그는 자연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기화氣化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즉 태어난다는 것은 바로 기화의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이지 원래 정신이 태허의 가운데 서려 있던 것이 아니며, 죽음이라는 것은 기와 더불어 함께 흩어지는 것이니 다시 형상이 아득한 공간(冥漠) 속에 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영혼불멸설靈魂不滅說 즉 윤회설輪廻說에 대한 비판으로, 모든 존재는 기의 합으로 생겨났다 기의 흩어짐으로 사라진다는 기론적氣論的 존재론이다.
둘째, 음양오행의 운행이 고르지 않으므로 기에는 통색通塞·편정偏正·청탁淸濁·후박厚薄·고하高下·장단長短의 다름이 있다. 그리하여 바르고 통한 기(正通)를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기(偏塞)를 얻은 것은 사물이 된다. 그리고 사람은 맑은 기(淸)를 얻으면 지혜롭고 어진 사람이 되며, 흐린 기(濁)를 얻으면 어리석고 불초한 사람이 된다. 이것은 사물의 다양성을 기의 차별성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셋째, 그는 태극의 동정으로부터 음양 오행이 생겨나고 이 태극의 진眞과 음양오행의 정精이 묘합하여 사람과 만물이 생겨난다는 주돈이의 생성론을 수용하고 있다.여기서 태극이란 리이다. 이것에 대해서 정도전은 "아름답다, 리理여. 천지보다 앞서 있었다. 기가 리로 말미암아 생겨났고 마음心 또한 품부稟賦되었다. 마음이 있는데 리가 없으면 이해利害에 얽매이게 되고 기가 있는데 리가 없으면 혈육의 몸일 뿐이다"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권근에 따르면 그는 "사람이 생겨남에 천지의 리를 받아 성性이 되었고 형체를 이룬 것은 기이며 리와 기를 합하여 능히 신神하고 명明할 수 있는 것이 심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전형적인 주자학적 리기이원론이다.
(2) 권근
권근權近(1352-1409)이 일종의 성리학 개설서인 [입학도설入學圖說]을 쓴 해는 1390년인데, 이것은 정도전의 [심기리편心氣理篇](1394)과 [불씨잡변佛氏雜辨](1398)보다 앞선다. 물론 정도전이 이보다 훨씬 앞선 해인 1375년에 [심문천답心問天答]을 쓰긴 했으나, 이 저술은 본격적인 성리학 이론서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권근이 언급하고 있듯이, 정도전에게는 [학자지남도學者指南圖]라는 저술이 있긴 했지만 그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나라의 성리학 이론은 권근에 의해서 그 체계가 완비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권근의 자연관은 정도전과 별 다를 바가 없는데, 그 이유는 정도전의 자연관을 권근이 리기이원론적理氣二元論的 틀로 세련화시켰기 때문이다. 권근에 따르면 풍우와 한서는 하늘의 기가 되고 해와 달은 하늘의 눈이 되며, 사람은 천지의 마음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는 일이 한 가지라도 바른 것을 잃으면 하늘의 풍우와 한서가 반드시 어그러지고 해와 달이 반드시 가려지는 데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권근은 인간과 자연의 감응관계를 인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희의 이론을 수용하여 그 관계를 마음과 기를 매개로 설명하고 있다. 천지와 만물이 본래 한몸과 같으므로 사람의 마음이 바르면 천지의 마음 또한 바르고 사람의 기가 순조로우면 천지의 기 또한 순조롭다는 것이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천지의 재앙과 상서는 진실로 인간 행위의 잘잘못에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연관을 다음과 같이 리와 기로 설명하기도 한다.
재앙과 상서의 바르지 않은 것은 모두 기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 기수氣數의 이상(變)이 비록 그 리의 정상(常)을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다만 하늘이 안정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기는 쇠하고 성함이 있으나 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니,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하늘이 안정되면 리가 반드시 그 정상을 얻게 되고 기 또한 바르게 되는 것이니, 복선화음福善禍淫의 이치가 어찌 소멸되겠는가?
하늘은 결코 자의적恣意的이거나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존재가 아니다. 하늘 그 자체도 한계가 있고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그 질서가 파괴될 수도 있다. 하늘은 인간의 그 질서 파괴적인 행위 앞에서 무력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하늘은 의지적인 존재도 아니고 그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힘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저 자연의 질서 그 이상이 아니며, 따라서 천은 곧 리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근은 인간의 자연 질서의 파괴는 일시적인 것이며, 자연의 질서가 궁극적으로 안정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자연은 도덕적 원리가 지배하고 그 원리는 비록 일시적으로 어그러지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자연의 본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었다.
권근의 생성론은 주자학적 이론틀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리가 있은 연후에 기가 있고, 이 기가 있은 연후에 양기陽氣의 가볍고 맑은 것은 위로 올라가 하늘이 되고 음기陰氣의 무겁고 탁한 것은 아래로 엉켜 땅이 되었다. 사계절이 여기에서 유행하고 만물이 여기에서 화생하니, 사람이 그 사이에서 천지의 리를 온전히 얻었고 또 천지의 기를 온전히 얻어 만물보다 귀하고 천지와 더불어 참여하게 되었다.
권근의 존재론의 기초가 되는 것은 주희의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함에 기로써 형체를 이루니 그 속에 리 또한 부여되었다"는 언급이다. 이것은 만물이 리와 기의 합으로 이루어졌다는 리기이원론적인 견해이다.
사람과 만물이 생겨남에 그 리는 같지만 기에는 통색편정通塞偏正의 다름이 있어, 바르고 통한 기를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기를 얻은 것은 사물이 된다. 이와 같이 기의 차별성에 의해 인간과 사물의 다름을 설명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주자학적 설명이다. 한편 권근은 만물이 각자 하나의 리를 갖추고 있다고 보는데, 그 개별적인 리(萬理)가 하나의 근원 즉 태극에서 흘러 나왔다고 본다. 반면에 기는 형이하자여서 반드시 형이상의 리가 있은 연후에 이 기가 있게 된다. 기를 말하고 리를 말하지 않는 것은 그 끝이 있는 것만을 알고 그 근본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리를 무위無爲한 것으로 기를 유위有爲한 것으로 본다. 아울러 리를 선한 것으로 기를 악의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상을 통해서 권근이 리일분수理一分殊, 리선기후理先氣後, 리무위기유위理無爲氣有爲, 리기의 선악 문제 등 주자학 이론의 기본 원리를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 기일원론의 기 개념
(1) 김시습
김시습金時習(1445-1493)의 자연관은 오늘날 이른바 미신으로 통칭되는 신비주의적 자연관을 비판하는 데서 그 특징이 두드러진다. 이것은 그가 자연현상을 경험적 사실로서 설명하고자 하는 합리적인 자연 인식 태도를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이러한 자연관은 열자列子와 장형張衡의 기론적氣論的 자연관에 근거한 것이다. 그는 [천형天形]에서 천天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서 "하늘은 쌓인 기일 뿐이다. 해와 달과 별은 쌓인 기 속에서 빛을 내는 것이다"라는 열자의 말과 "별이라는 것은 체體는 땅에서 생겨나고 정精은 하늘에서 이루어져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나 각각 속하는 바가 있다"라는 장형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김시습은 하늘이 형체가 있고 기가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둥글지만 물체가 없는 것이 형체이고 해와 달과 별들이 번갈아 나타나고 추위와 더위, 밤과 낮이 왕래하는 것이 기라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기로 가득한 하늘은 더없이 높고 크며 둥글게 회전하는데, 그 운행은 굳건하여 쉬지 않는다. 그리고 거기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매여 있으나 붙박이처럼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바람과 비와 서리와 이슬은 기화로 인해서 내리는 것이지 어떤 의지의 결과가 아니다. 대지와 산천은 하늘이 회전하는 가운데 떠 있고 풀과 나무, 사람과 사물은 일정한 법칙(性命) 속에서 움직인다.
그가 이해한 자연의 운행은 인간의 의지와 무관한 기의 운행이다. 그러므로 "귀하고 천함,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은 천명에 매여 있고 가난하고 부유함, 길하고 흉함은 운수에 달려 있으며, 소멸하고 성장하는 것 그리고 차고 비는 것이 때를 따라 유전하는 것이니, 진실로 빌어도 면할 수 없고 물리쳐도 막아낼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연의 질서를 인간이 자의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영역과 자연의 영역을 완전히 분리한 것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은 도덕성이라는 매개고리를 통하여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는 호안국胡安國의 말을 인용하여, "하늘의 경계를 잘 삼가면 비록 재앙이 있더라고 당하지 않으나,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재앙과 변고가 왔을 때 그것을 물리칠 수 없다"고 하고 있다.
결국 김시습이 이해한 자연 운행의 귀결은 선한 사람에게 복을 내리고 악한 사람을 징벌하는 것이다. 김시습이 말하는 자연은 도덕성이 내재되어 있는 자연인 셈이다. 그래서 김시습이 기론자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성리학자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다.
김시습은 천지 자연을 끝임없이 운동 변화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그 운동변화의 과정을 생生으로 규정한다. "생생生生하는 것은 천지의 대덕大德이고 생生하고자 하는 것은 만물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본 우주는 생명의 전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은 "만물이 생하고자 하는 본성을 통해 천지의 생생하는 본질을 체득하여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본성을 이루게 하고 깊은 인仁과 후한 은택 속에서 자라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인간을 자연의 과정과 조화시키려는 관점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 관계가 아니라 연속 관계로 파악하려는 유가의 전통적인 사고이다. 김시습은 이러한 사고를 장재의 말을 빌려 "사람과 만물은 함께 천지天地의 대화大化 사이에서 났으므로, 백성은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라고 표현한다.
사람과 자연의 터전인 천지의 대화란 곧 기의 운동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그가 인간과 자연의 연속성 내지는 통일성을 기氣에 의해서 확보하고자 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사람과 만물이 천지의 기를 균등하게 품부 받고 일원의 묘를 똑같이 키워 내니, 비록 기질에 치우침이 있다고 할지라도 지각의 성은 다른 적이 없었다"라는 언급에서도 확인된다.
김시습의 철학 체계 속에서의 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우주는 기로 충만되어 있다. 천지 사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모두 기이며, 천지 사이에는 오직 한 기의 풀무가 있을 뿐이다.
둘째, 만물은 음양의 기가 모여서 이루어진다. 음양의 기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회전하고 있는데, 기를 모아 형체를 이룬 것이 만물이라는 것이다.
셋째, 천체의 운행이나 계절의 변화를 비롯한 자연현상은 기의 작용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수직적으로 말하면 해와 달이 오가는 것, 별들이 운행하는 것, 추위와 더위가 번갈아드는 것, 음양이 서로 바뀌는 것, 그리고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과정(消息盈虛生旺休因)이 모두 기이다. 평면적으로 말하면 산과 내, 큰 산과 큰 강이 모여 어울리는 것, 바람이 불고 비와 서리 그리고 이슬이 내리는 것, 초목이 자라는 것, 사람과 동물이 살고 죽는 것, 성현과 우매한 사람들이 맑고 탁하고 깨끗하고 더러운 차이가 나는 것 모두 기가 그 사이에 깃들여 있기 때문이다."
넷째, 천인일기天人一氣를 근거로 하여 자연과 인간의 감응感應 관계를 인정한다. 천지 만물은 서로 다르긴 하지만 그 체가 하나이므로 나의 기가 순順하면 천지의 기도 역시 순하여, 음양이 화하고 풍우가 유순하고 온갖 생명체들이 저마다의 본성을 잘 발휘하는 반면에, 나의 기가 어그러지면 천지의 기도 어그러지게 되고 그 결과 천지의 조화가 상하고 음양이 변이를 느끼고 해와 달과 별들이 어긋나고 일·월식이 일어나 는 등 자연의 운행이 질서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김시습의 이론은 기론적 색채가 강함에도 불구하고 심성설의 영역에서 성즉리性卽理를 인정하는 등 리기이원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적지 않다. "성과 리는 두 가지가 아니다. 선유가 말하기를 '성은 곧 리이다. 하늘이 명하고 사람이 받았으니 실리가 내 마음에 갖추어진 것이다'라고 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명덕이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으로 허령불매하여 모든 리를 다 갖추어 온갖 일에 응하는 것이다"라는 [대학장구大學章句]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또 "천지 사이에 낳고 낳아 끝임 없는 것은 도이고, 모이고 흩어지고 오고 가는 것은 리의 기이다", "음양의 시작과 끝은 언어나 형적으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천지의 생생의 도는 무망無妄이라고 말할 뿐이니 오직 실리實理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원형이정元亨利貞은 하늘의 덕이고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성의 덕이라는 것이다. "추위와 더위가 왕래하고 일월이 교대로 밝은 것과 낮과 밤의 도道는 이 리理의 자연自然이다."
이상에서 인용된 글들은 김시습이 기 이외에 리를 적지 않게 언급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김시습이 언급한 리가 과연 기의 속성이나 원리라는 제한적인 의미를 넘어서, 기를 주재하는 객관 존재의 의미까지 지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이와 같이 리를 언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자들의 경우처럼 리를 절대화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그의 이러한 모습이 그를 기일원론자로 볼 수 있게끔 해주는 결정적인 요소로서, 이 점은 태극에 대한 그의 견해에서도 확인된다.
"태극이라는 것은 무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다. 태극은 음양이고 음양은 태극이다.…… 음양 밖에 따로 태극이 있다면 음양이 될 수 없으며 태극 안에 따로 음양이 있다면 태극이라고 할 수 없다. 음이면서 양이고 양이면서 음이고 움직이면서 고요하고 고요하면서 움직이니, 그 리의 무극한 것이 태극이다. 그것의 기는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며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면서 음양이 된다.
그것의 본성은 원형이정이고, 위축되기도 하고 확산되기도 하는 것이 그것의 현실적인 모습이다. 그리고 천지가 둥글고 모나며 원기가 발육하고 만물이 성을 완성하는 것은 모두 그것의 작용 때문이다."
태극에 대해 논하고 있는 이 글은 그 의미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태극이 근원적인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의 구체적인 내용이 시원적인 물적 존재(기)인지, 아니면 그것에 선행하면서 그것을 생성하고 지배하는 관념적 존재(리)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태극이 음양이라는 것으로 보아서는 전자가 옳은 것 같지만 리의 무극한 것이 태극이라거나 원기가 그것 때문에 발육한다는 말에서는 태극이 기가 아니라 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글에 대해 섯부른 판단보다는 다소 모호하기는 하지만 가장 덜 틀릴 수 있는 판단을 하자면, 태극이란 리와 기가 미분화된 근원적 존재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밑받침해 주는 것이 "그 기는 움직이기도 하고 고요하기도 하며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면서 음양이 되고, 그 성은 원형이정이고……"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그 기라는 말과 그 성이라는 말은 태극의 기와 태극의 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태극은 기의 측면과 성의 측면을 아울러 가지고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시원적 존재인 태극은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운동 형태인 음양의 운동을 자신의 본질로 하고 있다. 그래서 "태극의 도는 음양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운동의 주체가 있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은 기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본다면 다소 불분명한 점이 있긴 하지만 다음과 같이 최소한의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시습은 정도전이나 권근 같은 학자처럼 리가 궁극적 존재이자 궁극적 존재 원리라는 것을 명확하게 표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가 주희의 리기이원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는 그 이론을 잘 알고 있었고, 특히 심성론心性論의 영역에서는 그 이론을 부분적으로 차용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 이론을 자신의 이론을 정립하는 데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 김시습의 리기론의 주요한 특징이다.
(2) 서경덕
서경덕徐敬德(1489-1546) 역시 자연을 도덕적인 관점에서 이해했고, 그것을 기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김시습과 다르지 않다. 그 역시 자연의 성誠, 천지의 심心, 천지의 선善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서경덕은 존재의 시원 또는 근원에 대해 매우 깊은 관심을 보였고, 그에 따라 체계적인 이론적 작업을 진행했다는 데 그의 자연관 및 존재론의 특징이 있다.
그는 [천기天機]라는 시에서 "혼돈混沌의 처음을 거슬러 올라 보건대, 음양오행을 누가 움직이게 했을까?"라고 했고, [유물有物]에서는 "오고 오는 것은 시작이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 묻노니 그대는 처음에 어디에서 왔는가"라고 했으며, 또 [만인挽人]에서는 "만물은 어디에서 왔다가 또 어디로 가는가?"라고 하였다.
이러한 물음들은 그가 가졌던 존재의 근원에 대한 강렬한 문제의식을 잘 보여 준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그의 결론은 잘 알려진 대로 기에서 나와 기로 돌아간다는 것이었다.
서경덕은 이 우주를 선천先天과 후천後天으로 나누어 이해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후천이라면 이 우주가 생겨나기 이전의 세계가 선천이다. 후천은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겨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선천은 바로 이러한 후천의 세계가 그 모습을 갖추기 이전의 상태이다. 그것을 서경덕은 '태허太虛'라고 하였다. 태허는 글자 그대로 큰 공간이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아니라, 기가 가득 차 있는 공간이다. 그것은 중간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존재했던 것인 동시에, 소멸하지 않는 존재이다. 그리고 맑고 형체가 없으며 무한히 큰 존재이다.
이 태허의 맑은 기 즉 일기一氣가 갑자기 운동을 하는데, 그 운동은 누가 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다시 말해 동정이 없을 수 없고 열리고 닫힘이 없을 수 없는데, 그것은 기틀이 스스로 그러한 것이다. 이러한 운동의 결과로 일기가 음양이 되는데, 양의 움직임이 극에 이르러 하늘이 되고 음의 모임이 극에 달하여 땅이 된다.
이렇게 서경덕은 일기로부터 음양의 기가 분화되고, 이 음양의 기에 의해서 하늘과 땅을 비롯해 일월성신과 수화水火가 생겨난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후천이다. 그에 따르면 후천 즉 지금의 이 우주는, 기로 이루어져 있는 하늘이 바깥에서 회전하고 땅은 그 중간에 고요히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그는 기에 의해서 우주 및 만물의 생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리의 역할은 잘 드러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서경덕의 이론 속에서 리는 어떤 존재를 지칭하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리理는 기와 별개로 존재하는 객관 존재가 아니라, 기의 작용의 질서이다. 리라는 것은 기의 주재자이긴 하지만, 이 주재자라고 하는 것은 밖에서 와서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의 작용이 그 질서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것을 가리켜 주재자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주재자일 수 없다. 다시 말해, 리는 기를 주재하는 주재자도 아니며, 기가 복종해야만 하는 원리도 아니다. 그것은 기의 작용의 질서일 뿐이다. 그렇다면 서경덕의 자연관을 기론적 자연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서경덕의 기 개념이 갖는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는 우주 전체에 충만해 있어 빈틈이 없다.
둘째, 기는 양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무한하다. 하도 커서 바깥이 없다.
셋째, 기는 시간적으로 영원하다.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작도 없고 또한 끝도 없다.
넷째, 기는 초감각적인 그 무엇이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소리도 냄새도 없다. 다섯째, 공기도 기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부채질을 했을 때 바람이 일어나는데, 바람의 선행적 존재가 곧 기이다.
다섯째, 만물의 질료이다. 기가 모이면 만물이 되고 흩어지면 만물은 다시 태허로 돌아간다.
여섯째, 기의 움직임은 외재적인 요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글은 김 용 헌 선생의 논문 <조선 유학에서의 기(氣)의 개념>의 일부입니다. 원전은 확인할 수 없어서 밝히지 못합니다. ]
출처: 아름다운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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