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03. 13
2차대전 이후 등장한 팝아트(Pop Art)는 현대미술의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만큼 아직까지 기세가 등등하다. 팝아트의 기발함은 정말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 것인지 궁금할 정도다. 고장난 TV를 예술 작품으로 바꾼 백남준부터 실크프린트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기법의 회화를 만들어낸 앤디 워홀, 인기 만화를 화폭에 담아낸 로이 리히텐슈타인, 그리고 일상생활용품을 확대해 화려한 색깔을 입힌 클래스 올덴버그까지, 직접 보면 ‘정말!’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여기에 가장 영국적인 팝 아티스트 한 명을 추가해 보자. 지금도 색다른 작업을 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그러나 세계적으로 엄청난 추종자를 가진 인물이다. ‘얼굴 없는 거리의 화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뱅크시(Banksy)다.
▲ 지난 3월 1일 가자지구의 폐허에 나타난 뱅크시의 벽화. / ⓒ 연합
뱅크시는 20년 전부터 영국 런던이나 항구도시 브리스톨을 비롯해 세계 각국 도시의 건물이나 벽에 낙서와 그림을 그려 명성과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거리낙서화가(street graffiti artist)’다. 도시 건물 벽, 담벼락, 지하도, 심지어는 물탱크에도 그려넣은, 세상을 비트는 촌철살인 낙서와 익살스러운 그림들이 뱅크시의 대표작들이다. 그의 활동은 이런 일에 그치지 않는다. 거장들의 명작을 패러디한 자신의 작품을 초대받지도 않은 루브르박물관이나 영국박물관에 걸어 놓고 사라지는 악동 같은 일도 한다.
이런 일들은 물론 불법이다. 들키면 경찰 신세를 질 일이기에 항상 신출귀몰하게 순식간에 일을 저지르고 사라진다. 뱅크시는 자신의 이런 작업에 소요되는 평균시간이 35초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보다 더 길면 꼬리가 밟힐 위험이 너무 높아서다. 그는 이런 일을 25년간 해 오고 있으면서도 한 번도 경찰에 잡혀 본 적이 없다. 그 이유를 “잡혔을 때의 대가가 너무 커서 모든 상황을 고려해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뱅크시는 자신과 같은 거리낙서가(뱅크시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냥 ‘거리의 낙서가(street graffiti writer)’라고 자칭한다)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일을 하다가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재수없어 꼬리가 밟히면 결국 테이트모던미술관에서 토니 블레어나 케이트 모스 같은 인간들 옆에 서서 시답잖은 전시회 개최 테이프를 끊어야 하는, 생각도 하기 싫은 최악의 사태를 당할 수 있어서다. 그런 일은 내가 지금하고 있는, 거리 벽에 낙서와 그림을 그리는 불법적인 짓을 해서 얻는 흥분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후다닥 작업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담배 한 대 피우면서 그들이 절대 나를 잡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즐기는 건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이다. 섹스나 마약보다 훨씬 더 흥분되는 일이다.”
그는 영국 글래스턴버리 록페스티벌에서 행한 악동 짓에 대해서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경찰차 7대에 ‘대마초를 현금으로(Hash for cash)’라는 낙서를 했다면서 낄낄댔다. 물론 그때도 잡히지 않았다.
뱅크시가 세계적인 명성과 팬들로부터의 절대적인 충성을 얻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그림이 주는 독특한 매력이다. 뱅크시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그의 그림을 보여주면 하나같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고 한다.
그의 그림은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공부를 할 필요도 없고 전문가로부터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다. 보는 순간 그림이 주는 메시지를 금방 파악한다. 잠시만 생각하면 무릎을 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들어 있다. 허를 찌르는 짧은 경구나, 미소와 고소를 같이 느끼게 하는 그림은 대개 세상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들이다. 그가 주로 그리는 대상은 쥐, 원숭이, 경찰, 군인, 노인, 어린이들이다.
그의 모든 그림에는 무엇인가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자본주의, 기득권, 소비주의, 상업주의, 파시즘, 제국주의, 권위 등이 그가 반대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이길 수 없다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 때문인지 그의 그림이나 문구에는 허무, 절망, 무료, 탐욕, 빈곤, 위선, 부조리, 소외에 대한 느낌이 짙게 풍긴다. 그의 그림을 보면 금방은 미소를 짓게 되지만 돌아서는 순간 슬픔이 진하게 느껴진다. 뱅크시의 작품에 나오는 유머를 ‘잔인한 블랙유머’라고 지칭하는 사람도 있지만 블랙유머인지는 몰라도 잔인하지는 않다.
야구모자를 쓰고 얼굴에 검은 마스크를 한 청년이 몸을 뒤로 제쳐 앞으로 뭔가를 던지려 하는 듯 포즈를 취하는 그의 그림이 있다. 청년이 들고 있는 것이 당연히 화염병이겠지 하고 가만히 보면 꽃다발이다. 소녀가 미사일을 인형처럼 껴안고 있는 그림, 어린 소년이 축제 때 길거리 만국기 줄에 달릴 영국 국기를 재봉질하는 그림(이는 아동착취를 고발한다는 의미), 소년소녀들이 슈퍼마켓인 테스코 깃발을 깃대에 올리면서 경례를 하는 모습, 모네의 일본풍 다리가 걸린 수련 연못 그림에 교통표지 삼각대와 슈퍼마켓 트롤리가 빠져 있는 그림(제목이 ‘내게 모네를 보여주세요’이다), 인기 할리우드 영화 ‘펄프픽션’의 주인공 존 트라볼타와 사무엘 잭슨이 바나나를 권총처럼 들이대는 그림, 런던 경찰이 서로 키스하는 그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얼굴에 스마일 캐릭터 스티커를 붙인 그림, 모나리자가 이어폰을 끼고 바추카 포를 어깨에 멘 그림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런 그림들에는 모두 특징이 있다. 뭔가 모순되고 불합리하고 심지어는 거칠고 폭력적인 장면에서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만드는 파격의 여유 말이다. 예를 들면 어린 팔레스타인 소녀가, 총을 손에서 놓고 항복하듯이 두 손을 높이 쳐든 이스라엘 군인의 몸수색을 하는 그림을 보고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상황이 미소만 짓고 있을 수는 없을 만큼 묘해서 느끼는 파격 같은 것 말이다.
이래서 뱅크시의 작품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교묘하게 웃기고 동시에 울리고, 정치적이면서도 전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듯한 장난기 넘치는 낙서와 그림이 세계 여기저기 도시의 이곳저곳 벽에 나타난다.(영국 언론들은 ‘나타난다(appear 혹은 pop-up)’라고 표현한다.) 어느날 아침 출근길에 회색빛 시멘트 벽에 나타난 이런 그림과 갑자기 마주친다고 상상해 보라. 그 전날까지 보이지 않던 그림이 갑자기 건너편 건물 벽에 보인다면 얼마나 놀랍고 즐겁겠는가?
이런 자신의 낙서와 그림을 뱅크시는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라고 표현한다. 뱅크시는 이런 작업으로 경제적 이득을 얻거나 취하지 않는다.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오히려 그림을 그리다 잡히면 건물주로부터 소송을 당하거나 경찰로부터 곤욕을 치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뱅크시가 작업을 한 작품이 자신들의 건물에 나타나면 주인들은 그림에 보호막을 치고 벽을 뜯어서 팔아먹으려고 난리다. 동네주민들은 그의 그림을 보존해서 관광객을 유치하려고 법석이다. 심지어는 지역구청이나 시까지 나서 그의 그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이제 뱅크시의 작품은 엄청난 금액으로 거래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공중질서 파괴 행위라고 그의 그림을 지우는 도시나 지역도 있지만 대다수의 지역에서는 거의 로또를 맞은 듯이 여기는 분위기가 되고 말았다.
지난해 4월 뱅크시의 작품 두 개가 오랜만에 등장했다. 영국 정보기관 감청센터가 있는 첼튼함시 공중전화 근처 벽에 선글라스를 쓰고 트랜치코트를 입은 세 명의 정보원이 도청기구를 들고 서 있는 그림이다. ‘스파이 공중전화’라고 이름 지어진 이 벽화는 영국 정보기관의 도청을 비꼬는 그림이다. 다른 하나는 뱅크시의 고향인 브리스톨 청소년클럽 벽 합판에 그려진, 두 남녀가 포옹하면서 서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휴대전화 연인’이라고 명명된 그림이다. 이 그림은 스마트폰의 폐해를 한탄하는 듯했다. 그런데 이 두 그림 모두 소유권 문제로 시끄러웠다. 공중전화 그림은 건물 주인이 팔려고 옮기다가 결국 시의 개입으로 중단하고 말았다. 소유권 다툼에서 결국 시가 이겨서 보존하기로 결정되었고 시민들은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휴대전화 연인’은 그림이 등장하자마자 바로 뱅크시의 웹사이트에 사진이 올라왔다. 스스로 뱅크시의 작품이라고 공인한 것이다.
보통은 금방 공인을 하지 않는데, 이유가 있었다. 뱅크시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소년클럽을 도와주려고 공인을 서두른 것이다. 이 청소년클럽 대표는 “아마 뱅크시가 옛날에 우리 클럽을 다녀갔음이 분명하다”고 했다. 보통 벽에 그림을 그리는데 문을 막은 합판 위에 그림을 그린 것도 그림을 옮기기 쉽게 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 지난해 4월 뱅크시의 고향인 브리스톨 청소년클럽 벽에 나타난 뱅크시의 벽화 ‘휴대전화 연인’. / ⓒ 연합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림이 나타나자마자 청소년클럽 건물 소유주인 브리스톨시가 그림을 떼어다가 브리스톨박물관에 전시를 했고, 덕분에 브리스톨박물관은 관람객이 엄청 늘었다. 브리스톨시는 “그림은 시 소유”라고 주장했다. 뱅크시가 공인을 했으니 그림의 시가가 100만파운드를 넘을 거라는 예상이 나왔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러자 뱅크시가 청소년클럽에 직접 편지를 보냈다. 자신은 이 그림을 청소년클럽에 기증했으므로 클럽 소유라는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되자 시는 “그림 판매금액을 모두 클럽이 쓰는 것은 공익에 어긋나니 시의 모든 청소년 관련 기관이 같이 써야 한다”고 물러섰다. 만일 이 사건이 법정다툼으로 번졌으면 아주 미묘한 재판이 될 법했다. 아직 이런 판례가 없어서다. 영국법은 아주 미묘해서 뱅크시가 ‘불법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뱅크시에게 저작권이 있지 않다는 해석을 했을 수도 있다. 아마 재판이 열렸어도 그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뱅크시의 작품은 워낙 위작이 많다. 본인도 불법으로 작업을 하기에 떳떳하게 저작권을 주장하기가 어려워서인지 위작에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그러나 그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그림을 판화로 찍어 판매할 때는 직접 서명을 한다. 그래도 워낙 가짜가 많이 돌아다니자 2008년 ‘해충방제 사무소(Pest Control Office)’라는 회사를 차려 자신의 작품을 감정해 주는 작업에 직접 나섰다. 여기서는 판화와 캔버스 작품만을 감정해 준다. 요청을 하면 진위를 확인해 주고 보증서까지 발행해 준다. 그러나 길거리 낙서와 그림은 감정해 주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공식 웹사이트에 사진이 올라오는 경우 말고는 진위를 확인할 방법은 없다.
그의 벽화와 낙서를 건물에서 떼내어 판매하기를 원하는 경매회사들은 그가 벽화와 낙서는 진위 감정을 해주지 않자 자구책을 세웠다. 뱅크시 전문가들을 모아서 ‘Vermin’(해충이라는 단어. 해충방제 사무소와 묘하게 대치된다)이라는 기구를 만들었다. 뱅크시 측에서는 이 기구가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했다. 뱅크시는 “길거리 작품은 원래 자리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진위 감정을 해 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길거리에 있으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알 이유가 없는데 팔고사기 위한 감정은 해줄 수 없다는 뜻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거리의 낙서가 거액에 사고팔리게 되면 예술이라는 옷을 입고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돼 더 이상 거리의 낙서가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되면 거리의 낙서가 지향했던 모든 가치가 사라지고 그냥 박제된 죽은 사자 한 마리랑 다를 바 없게 된다는 게 그의 이론이다.
그러나 뱅크시는 벽에서 자신의 작품을 지우는 기관이나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활동을 도와주는 조역으로 본다. 자신의 작품이 대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라지고 나면 다시 그 위에 대중들을 위해 새로 작품을 남기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투쟁의 과정이 자신의 작품의 본질이라는 주장이다.
뱅크시는 자신의 작품이 영원히 보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이 경매장에 팔리던 날 공식 웹사이트에 올려진 글이 이를 말해준다. ‘세상에! 저런 거지 같은(shit) 것들을 돈 주고 사다니? 도대체 이런 인간들은 어떤 자들이야?’ 그의 어록에는 이런 말도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문제화하지만 심각한 방법이 아닌 가벼운 태도로 하자. 세상의 어떤 일도 신성한 것은 없다.’ 자신의 그림도 우상화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벽에서 지우면 작품에 의미를 더 부여하고 칭찬하는 셈이 되지만 자신의 작품을 지우지 않고 영원히 보관한다면 작품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낙서는 지워지고 훼손되는 것이 숙명이라는 말이다.
세상이 그의 작품에 경배를 하고 소동을 벌이고 작품이 유명 경매장에서 수십억원에 거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뱅크시의 본명과 얼굴은 아직도 알려져 있지 않다. 이름인지 성인지 모를 ‘뱅크시’로만 통하고 대중에게 얼굴을 한 번도 드러내 본 적이 없다. 물론 사진도 없다. 사람들은 그를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화가”라고 부른다. 뱅크시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신분을 감춰 왔다. 그 이유로 자신의 작업, 즉 낙서가 어느 도시나 불법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작업은 도시의 벽, 특히 남의 건물에 숨어서 작업을 하고 끝나자마자 사라져야 하는 불법적인 일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만일 내 신분이 밝혀졌다면 낙서 작업을 하고 나서 공식 웹사이트(banksy.co.uk·주소 앞에 www조차 들어가지 않는다)를 통해 ‘내 작품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는 일(authenticating)’은 바로 ‘자백서에 서명하는 일(signed confession)’이기에 신분을 밝힐 수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익명성이 뱅크시의 인기를 더 부추기는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는지 몰라도 미술 마케팅의 최고 성공 사례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이런 그의 모든 철학이 담긴 뱅크시의 어록을 보면 심오한 사상을 펼치는 철학자 같다. 뱅크시의 책 ‘Cut It Out’(2004)의 첫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간의 경주(그는 ‘race’라고 했다. 경주라는 말도 되지만 인종이라는 뜻도 된다)는 불공정하고 어리석은 경쟁이다. 수많은 선수가 제대로 된 운동화와 깨끗한 마실 물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태어날 때부터 남들보다 앞서서 먼저 출발했다. 경주 중에도 말로 다 할 수 없는 온갖 도움을 받는 것도 모자라서 심판마저 그들 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경쟁을 완전히 포기하고 마는 것은 극히 놀랄 일이 아니다. 경쟁을 포기한 이들은 관중석에 앉아 정크푸드를 먹으면서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들에게 욕을 해댄다.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경기장을 가로질러 뛰어 우리에게 즐거움과 놀람을 줄) 더 많은 ‘나체 질주자(streaker)’이다.”
뱅크시는 가장 영국적인 예술가이다. 영웅을 싫어하는 영국인답게 익명 뒤에 숨어 있고, 심각한 것을 심각하게 풀지 않고 유머로 풀기 때문이다. 또 직설적으로 할 말을 하지 않고 다른 거장의 작품을 이용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돌려서 한다. 자신의 작품이 대단한 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그런 사람들을 비웃는 여유도 갖고 있다. 기존의 권위에 대한 도전도 은유적이다. 이러한 방식 모두가 정말 영국적이다.
마지막으로 뱅크시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25년이 지났으나 뱅크시가 누구인지에 대한 설은 아직도 분분하다. 영국 신문 데일리메일이 아주 오랫동안 정성을 들여 추적해서 브리스톨 출신의 사립학교를 나온 로빈 거닝함이라는 이름의 중산층 백인 남자가 뱅크시라고 보도했으나 본인이 확인을 안 해주니 설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뱅크시가 여자라는 주장도 있고 여성 지휘하에 움직이는 7명으로 이루어진 팀이라는 설도 있다.
권석하 /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